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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1화 (221/434)

제221화

역시 무모한 선택이었을까.

가족들에게서 독립하겠다며 블랙카드를 반납한 김은아는 포켓으로 쇼핑사이트를 보며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흠, 이건 진짜 괜찮은 물건 같은데.”

하지만 지금 부실에 있는 건 김은아를 제외하면 오르카와 놀고 있는 벨벳을 제외하면 에이미 뿐.

“내가 살아생전 은아가 돈이 없어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다니 정말 진귀한 구경이야.”

“말했잖아. 이제 난 가족들한테서 독립할 거야.”

에이미는 저 마음이 얼마나 갈까 생각했지만 김은아는 진심인 모양이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니……. 좋아! 내가 돕지 뭐!”

“돕는다고?”

“너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돈 많아~ 내가 얼마나 교외 활동을 열심히 하는데? 물론 대부분 방송수입이지만……. 하여튼 빌려줄게! 얼마인데?”

돈보다 소중한 우정의 힘.

에이미가 흔쾌히 카드를 내밀자. 그걸 받아 든 김은아는 홀로그램에 카드를 긁으려고 했다.

하지만 에이미는 예측불가인 김은아의 스케일이 떠올랐는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근데 은아야. ……사려는 물건. 가격이 얼마야?”

“흑운석이랑 미스릴 코일. 그리고 이것저것 합하면…….”

김은아는 별거 아니라는 얼굴로 툭- 가격을 내뱉었다.

“한 6억?”

“비싸-!

말도 안 되는 금액에 질겁한 얼굴로 소리를 지르는 에이미.

탓!

마치 고양이 같은 날렵한 몸놀림으로 카드를 뺏어 든 에이미는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 심지어 흑운석…… 이건 소모품이네? 여러 개가 들어 있긴 해도 엄청 비싸잖아! 은아 바보! 누가 교외 활동에 이런 물건을 써!”

김은아는 팔팔 뛰는 에이미의 기세에 뒤로 물러났다. 놀라운 건 겨우 이 정도가 큰돈인지는 정말 몰랐다는 김은아의 표정이었다.

“그, 그렇게 비싸?”

“당연히 비싸지! 이런 물건을 쓰면 받는 의뢰금보다 사용하는 돈이 더 크다고!”

17살의 나이가 되어서야 일반인의 상식을 배우는 김은아. 하지만 에이미는 생각을 달리했다.

‘하긴 부실에 포탈존을 설치할 정도인데……. 은아의 금전 감각이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김은아는 기관에서나 사용할 장치를 동아리급의 부실에 설치하는 인간. 에이미는 그런 김은아에게 상식을 가르쳐 줄 의무가 있었다.

“대부분의 헌팅 의뢰금은 규모가 큰 것도. 천만 단위 정도야. 학생 수준의 의뢰에서 억대 규모는 흔하지 않아.”

몬스터마다 케이스는 다르지만.

3급에서 4급으로.

4급에서 5급으로.

위험도가 한 단계 오를 때마다 실질적인 전투력은 10배가 증가한다고 한다. 그 때문에 헌터들은 급수가 오를 때마다 의뢰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대부분의 의뢰는 2급에서 3급 헌터 수준.

“그 정도 돈을 벌려면 의뢰를 몇십 개를 해도 부족할걸?”

하지만 에이미의 상식은 지금까지 푼돈이라며 교외 활동의 의뢰금에 사인도 안 했던 김은아에겐 잔혹한 현실이었다.

“그럴 수가……. 할아버지한테 인사만 해도 받던 돈인데…….”

김은아의 완벽한 독립은 멀어만 보이는 상황. 김은아가 어떻게든 돈을 벌 생각을 궁리 중일 때 방안에서 벨벳의 비명이 들렸다.

“크향! 안대! 잡아먹힌다! 살려죠오-!”

벨벳의 다급한 목소리에 김은아와 에이미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타닷!

도대체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일단 방을 향해 달리고 보는 김은아와 에이미.

“벨벳!”

“흐갹, 대체 무, 무슨 일이!?”

하지만.

문을 열고 방 안에 벌어진 광경을 확인한 김은아는 충격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 이게 대체…….”

입을 우물거리는 오르카.

그런 오르카의 입에서 삐죽 나와 있는 벨벳의 손.

“냠냠냠……. 크크크, 안일했군! 나와 이 드래곤 꼬마만 단둘이 두다니!”

오르카는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호탕하게 웃더니. 오르카가 아닌 장난감 왕국의 보스 토이킹으로서 복귀를 선포했다.

“느껴진다! 넘쳐흐르고 있어! 강대한 드래곤의 마나가!”

팟!

힘을 얻은 오르카는 천장을 향해 고개를 높이 들더니.

화르르르륵-

하트 모양의 불을 뿜었다.

눈치가 빠른 에이미는 불룩해진 오르카의 배를 보더니. 뒤늦게 연기 톤으로 소리쳤다.

“이, 이럴 수가~ 벨벳이~ 오르카에게 잡아 먹혔어어어~!”

에이미의 호응에 힘입어 오르카는 지느러미로 자신의 배를 만지며 쩝쩝쩝- 입맛을 다셨다.

“냠냠냠……. 지금까지 나의 연기에 속고 있었군. 나는 지금까지 이 드래곤의 마나를 흡수하기 위해 잠자코 있었지. 냠냠냠…….”

하지만 완전히 속아 넘어간 모양인지 김은아는 분한 얼굴로 죽일 듯 소리쳤다.

“너, 너어-! 잘도!”

찌릿-!

김은아의 분노에 반응해 튀기는  푸른 스파크. 위험을 감지한 에이미는 어깨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허억! 은아야! 잠깐!”

하지만 이미 늦었다.

“벨벳을!”

김은아의 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푸른 전기가 오르카를 덮쳤다. 어깨에 손을 올린 에이미는 함께 휘말린 상황.

“아댜댜댜-!”

덕분에 에이미가 짜릿한 전기의 맛에 몸을 떨었고.

“오르르르르-”

“으갸갸갹-!”

장난을 친 오르카와 벨벳도 너무나 짜릿한 김은아의 전기 맛을 보았다.

스윽스윽.

오르카는 지느러미로 힘없이 땅바닥을 기더니 푹 고개를 떨궜다.

“끄거걱…….”

오르카가 입을 열자 퐁- 하고 나오는 검은색 연기.

“제가…… 아가씨한테는 장난치지 말자고…….”

전기에 당한 오르카가 힘없이 중얼거리자. 벨벳도 어기적어기적- 오르카의 입에서 기어 나왔다.

“캬, 캬응……. 이러케 댈지 몰라써…….”

정말이지 장난의 대가를 호되게 치룬 벨벳과 오르카.

“으윽, 난 어째서…….”

그리고 에이미였다.

*     *      *

탑과 던전이 생겨나고.

몬스터가 쏟아진 아웃 브레이크 현상이후, 상식이 부서진 세계에서 인류에게 ‘힘’이라는 가치는 새롭게 적립됐다.

[힘이란 곧 정답입니다.]

신오가문의 신강윤은 헌터로서 힘이라는 정답을 체계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자신의 길드를 수백 명의 헌터를 거느린 초대형 급으로 성장시킨 것도. 유수 가문의 7급 헌터 유민서와 결혼하게 된 것도 그 목표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그 정답으로 가는 길에는 공식이 없죠. 저는 그 공식을 만들 생각입니다.]

그렇기에 신강윤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신오가문과 유수가문의 길드를 합병시켰고 4대 가문으로 꼽히게 만들었다.

거기에 커진 덩치를 이용해 학원 도시 주변의 헌터 협회 지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기도 했다.

협회를 통해서 길드에 입단하는 건 이제 갓 아카데미를 졸업한 헌터들이었지만. ‘힘’을 향한 공식을 만드는 신강윤에게 좋은 싹을 고를 필요는 없었다.

[우리들이 걸어가는 길은 피로 쓰인 역사입니다.]

100명이 입단하든.

1000명이 입단하든.

신강윤은 모든 과정을 통과한 소수의 인원만 챙기면 되는 일이었다. 결국 신오 길드는 6급 헌터가 가장 많은 길드가 됐다. 그 환한 빛에 이끌려 입단한 헌터들의 숫자는 셀 수가 없었다.

[베스티판의 보고인가?]

[네. 부상자가 21명, 사상자는 3명입니다.]

[5급 보스를 상대로 그 정도 피해라니. 올해 입단한 녀석들은 쓰레기가 대부분이군.]

하지만 나방처럼 그 화려한 빛에 이끌린 자들은 대부분 불꽃에 휘말려버렸다.

헌터의 특성과 능력은.

소수의 인원에게 주어지는 선택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상급 헌터가 될 재능은 소수에 불과했다.

[쓰레기들은 네 선에서 잘라버려. 인간에겐 정해진 그릇이 있다. 노력은 한계가 있지.]

[알겠습니다. 길드장님.]

신강윤이 운영하게 된 신오 길드는 크나큰 사건 사고에 계속해서 휘말렸지만 몸집은 끊임없이 부풀었다.

[ - 신오 길드! 6급 헌터 백안의 강준철을 섭외! - ]

[지나친 독점 문제. 신오 길드의 산하에 소속된 길드만 300개가 넘어…….]

[신오 길드. 사상자만 20명! 대형 길드 중에서도 최악으로 꼽히는 지표…….]

세간의 손가락질과 달리.

신강윤의 안목은 신오 길드를 계속 성장시켰다. 길드에 입단하려는 헌터들의 발길도 끊이질 않았다.

신강윤은 그렇게 실리만을 추구하며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그렇게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그런 신강윤의 방식은 주변에 적을 너무 많이 만들어버렸다.

스읍- 후우우-

테라스에 선 신강윤이 들이마신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하나같이 하이에나 같은 놈들뿐이군.’

가장 큰 문제는 합병과 인수를 거치며 무리하게 덩치를 키운 탓이었다. 대형 길드를 소유한 신강윤의 입장에서도 6급 헌터는 위험한 폭탄과 같았다.

[신오 길드에 소속된 지도 3년입니다. 이제 제가 맡은 지부는 길드를 분립해주시고 운영권도 주시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요구를 무리하게 해도 대체할 인력이 없는 이상 신강윤은 6급 헌터를 내칠 수가 없었다.

거기다 하나로 합병된 신오가문과 유수가문을 움직이는 건 오직 ‘힘의 논리’.

[가주님의 방식은 낡은 운영입니다. 신오 길드라는 하나의 틀로 묶이면 지금 세상에선 오히려 세분화가 불가능하죠!]

[맞습니다. 이제 길드에 들어오는 의뢰의 성격도 천차만별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지부장을 늘리고 운영권을 저희에게 주시면…….]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이면 가족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매섭게 물고 늘어졌다. 하지만 그런 반발에도 신강윤과 유민서는 단 한 발자국도 물러날 수 없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거늘…….’

지금 헌터 협회장을 맡은 강유찬의 남은 임기는 1년. 신강윤은 그 뒤에 뽑힐 후임자 중 하나였다.

하지만 후보들이 가지고 있는 쟁쟁한 배경을 압도하려면 길드의 힘은 클수록 좋았다.

‘협회장의 자리만 얻을 수 있다면 …… 나는 진정한 정답을 만들 수 있다.’

신강윤은 이제 길드가 아닌, 국가 전체를 자신이 생각한 체계를 도입할 생각이었다.

그가 원하는 건 야생과 같은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세계. 신강윤은 그 세계의 정점에 서길 원했다.

‘이제 겨우 한 걸음…….’

하지만 신유성의 존재는 신강윤에 맞서는 반대파 진영들에게 좋은 장작이었다.

[저희들이야 가주님의 안목을 믿지만. 신유성의 일만 보더라도 인간에게 ‘약간의 실수’는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워낙 바쁘신 분이니 자식에겐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하신 거겠죠.]

[맞습니다. 원석인지, 석탄인지를 구별하려면 일단 확인할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지금은 각자 가지고 있는 지분만큼…….]

신강윤은 오늘 회의를 떠올리자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짚었다.

‘……딱 1년. 정말로 딱 1년이거늘.’

누구보다 큰 야망을 가진 신강윤은 공들인 탑을 이렇게 무너트릴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 방법은 있다.’

만약.

자신에게 신유성이 돌아온다면?

현재 최고의 덩치를 가진 신오 길드에 루키들 중 탑급으로 꼽히는 신유성이 합류한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신오 길드는 어디까지 성장할 재목인지 알 수가 없었기에.

길드에선 유민서와 신강윤의 입김이 강해지고 반대진영은 구심점을 잃기 마련이었다.

지금 신강윤에게 필요한 건 협회장이 되기까지 단 1년의 시간.

스읍- 후우우-

다시 짙은 담배 연기를 뿜어낸 신강윤은 테라스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궁궐 같은 저택의 입구에 들어선 검은색 리무진이었다.

쿵.

문이 열리고 리무진에서 내리는 건, 다름 아닌 신유성과 스미레.

“……지금은 선택지가 없어.”

물러설 곳이 없는 신강윤은 결국 최후의 결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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