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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0화 (220/434)

제220화

커튼 사이로 드문드문 쏟아지는 오전의 햇살. 이혁은 말없이 책을 읽는 신하윤을 바라보았다. 

사각- 사각- 

신하윤이 검지로 페이지를 넘기며 몇 번이고 본 책을 정성 들여 다시 읽는 모습은 참 신기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나이에 걸 맞은 학생으로 보였기 때문일까? 

이혁은 폭군 신하윤이 아닌, 인간 신하윤에겐 이런 모습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역시 하윤이도 이렇게만 있으면 평범해 보이는데 말이야.’ 

하지만. 

텁. 

신하윤이 읽던 책을 덮고 입을 여는 순간. 

“그 쓰레기들은 어떻게 됐어?” 

평안했던 무드는 박살이 났다. 

그러나 이혁은 오히려 ‘이게 신하윤이지.’라며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몬스터를 제때 제압하지 못해서 주변의 상점가가 휘말린 모양이야. 손해가 커졌어.” 

“……그래?” 

담담한 신하윤의 반응. 

이혁은 그런 신하윤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어갔다. 

“받았던 의뢰는 ……취소하고. 위약금은 운영금의 일부로 물어줬어. 그리고 그 사건 이후, 파견 예정이던 던전 2곳에서 계약의 파기를 요구했어.” 

“좋아. 알겠어. 어쩔 수 없지.” 

툭. 

신하윤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아까 전에 읽던 책을 다시 폈다. 

언뜻 보면 다시 평화로운 분위기를 되찾은 듯 보이지만. 신하윤은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그 쓰레기들. ……누가 추천했지?” 

신하윤이 다스리는 헌터부 동아리에서 임무를 맡을 수 있는 기회는 대게 3가지 종류로 주어졌다. 

동아리장인 신하윤의 선택이나. 

세븐 넘버를 비롯한 교내의 성적. 

이혁을 비롯한 동아리 내의 중요 멤버들의 추천. 

“그건…….”
 

이혁의 머리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신하윤이 ‘쓰레기’라 부르는 이들을 임무에 추천한 건 다름 아닌 이혁 자신이었다. 

팟- 

지금 이혁의 머릿속에선 지금까지 봐왔던 신하윤의 행동이 파노라마처럼 재생되기 시작했다. 

[컥! 컥! 사, 살려주세요!] 

노크 안 하고 벌컥 문을 연 1학년 염동력으로 목조르기 3회. 

[학생회장!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부원이었던 동기를 매몰차게 쫓아내 버리기 4회. 

[혈연이라는 이유로 이런 무리한 부탁을 하다니. 정말 염치없는 인간들이야.] 

자신의 가족조차 쉽게 봐주지 않는 폐륜 독설 11회. 

지금 당장 이혁이 생각나는 것만 이 정도니 신하윤의 인성은 3관왕을 넘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정도였다. 

‘망했다. 벌써 하윤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 

[……실망인데. 혹시 이혁. 너도 쓰레기가 되고 싶은 거야?] 

평소처럼 웃으면서 매도하거나. 

[너한테 실망한 게 아니야. 나한테 실망했어. 네가 유능하다고 믿은 나 말이야.] 

수준급의 실력으로 비꼬거나. 

[내 옆에 있을 그릇이 안 된다면 지금이라도 관두는 게 어때?] 

일을 때려치우라고 말을 할 것 같았다. 

‘그래 분명 이 셋 중 하나겠지.’ 

서걱- 

그러나 오늘따라 무슨 일일까. 

신하윤은 느릿하게 페이지를 넘기며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이혁에게 말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혹시 자신이 잘못 들은 걸까? 

그럴 수도 있다니? 

“우리 일은 신용이 중요하니까. 다음에는 너도 신중히 추천해.” 

이혁은 진심으로 신하윤이 아픈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영문 모를 말을 하며 웃는 걸 보면 신하윤은 오히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어.” 

이렇게 기분이 좋은 날이라면 대답을 해주지 않을까? 

“하윤아…… 얼마 남지 않다니?” 

이혁이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지자. 신하윤은 대답 대신 피식 웃으며 오히려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너 편린이 뭔지 알아?” 

헌터들에게 편린이란 단어는 하나였지만 해석은 여러 가지였다. 

“그럼. 알고 있지. 물론 협회에서도 아직 해석을 통일해주진 않았지만.” 

“맞아. 기억이 담긴 물건이니, 계약의 촉매니 각성의 재료이니……. 아직은 해석들이 제멋대로야.” 

“음, 그건 아마……. 편린의 각성자마다 케이스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재밌네. 예를 들면?” 

신하윤이 흥미를 보이자 이혁은 기세를 탄 듯 진지하게 말했다. 

“그냥 내 생각이지만. 누군가는 사념체와 대화를 하는 경우도 있고. 누군가는 각성한 순간 기억을 얻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거든. 그런 걸보면……. 편린마다 각성의 방식이 정해지지 않았다 생각해.” 

“역시 넌 유능해. 좋은 분석이야. 그럼 말이지…….” 

신하윤은 이혁에게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재미있다는 이야기라며 하나의 이론을 들려주었다. 

“전생의 기억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더욱이 그게 인간이 아닌 존재라면?” 

“……인간이 아닌 존재?” 

장난기 어린 신하윤의 얼굴은 터무니없는 말을 하고 있었지만. 이혁은 어쩐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그저 공상에 불과한 터인데 온몸에 돋는 소름은 왜일까? 

그저 신하윤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일까? 

“……예를 들면?” 

이혁이 긴장감에 꿀꺽 침을 삼키며 묻자. 신하윤은 겁먹은 이혁을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편린을 얻지 않았는데도. 그 존재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 어떨까? 과연 그 힘을 쓸 수 있을까?” 

“……아니. 단순히 기억만 가지고 있다면. 불가능할 거야.” 

헌터들이 스킬이라 부르는 힘은 사용하는 법만 알고 있다고 조건이 충족되는 게 아니었다. 

“기억이 있다고,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기본적으로 마나의 성질이 다르잖아.”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마나가 뒷받침되어야 했다. 모든 헌터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다르듯. 마나의 성질도 다르다. 

그리고 그게 헌터들마다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다른 이유. 

“편린의 보유자가 드문 이유는 신체의 마나 성질이 계약의 존재와 동일해야 한다는 점이야.” 

이게 바로 신하윤이 이혁을 거둔 이유이자 자신의 곁에 남겨둔 이유였다. 신하윤은 빙긋 웃었다. 

“그럼. 마나의 성질을 같게 만든다면 어떨까? 아티팩트의 힘을 빌려서 말이야.” 

계속해서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던지는 신하윤. 이혁도 이번만큼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이론만큼은 가온 최고의 수재인 이혁에게 이건 어려운 질문이 아니었다.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사용하는 연료도, 엔진도,  조작법도 같다면 조종사가 달라도 기계가 움직이지 않을 이유는 없지.” 

이혁의 비유에 무엇이 그리 웃긴지 신하윤은 미친 사람처럼 한참을 웃어 재꼈다. 

“아, 웃겨서 정말 눈물이 날 정도야……. 내 공상에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어울려주다니.” 

신하윤은 잘 웃었다며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몽환의 마녀 모르간 전기] 

그제야 이혁의 눈에 들어오는 책의 제목. 

‘전생의 기억. 2가지 마나. 2가지 힘…….’ 

이혁은 신하윤과 나눴던 방금의 공상들을 떠올렸다. 전생의 기억의 기억과 2가지 특성을 가진 헌터. 그건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이야기임에도 이혁은 어딘가 뒷맛이 찝찝했다. 

*     *      * 

팀 배틀이 끝난 다음 날 아침. 

주말을 빌미로 오랜만에 푹 늦잠을 잔 신유성은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벌써 누군지 알겠는걸.’ 

부엌에서 아직 잠이 덜 깬 신유성을 맞이한 건. 

부스럭- 

부스럭부스럭- 

아침 식사를 위해 조미료를 꺼내고 있는 스미레의 모습이었다. 

“앗! 유성 씨! 일어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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