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9화
본드래곤의 다크 브레스.
카니나의 행운 펀치.
두 몬스터의 격돌로 늪은 폭풍 같은 마나에 휩쓸려버렸다. 결국 마나의 폭풍이 남긴 건 잿더미가 되어버린 늪뿐이었다.
[블린 아카데미 엘란 탈락]
[블린 아카데미 아크만 탈락]
눈앞에 홀로그램이 뜨고.
‘내가, 이겼어…….’
승리를 확인한 스미레가 몸을 주춤 거리던 순간. 주변의 세상은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블린 아카데미와 뮌헨 아카데미의 참가자 전원이 탈락했습니다.]
[포탈의 가동을 중지합니다.]
[아직 포탈에 남아 있는 참가 인원은 전원 외부로 퇴출됩니다.]
스미레는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의 메시지에 눈이 커졌다.
“어, 어라?”
자신을 제외한 팀원들은 이미 승패를 결정지은 모양이었다.
화악!
그 증거로 새하얗게 변한 세상을 걸어 나와. 포탈 밖에 나온 스미레르 반기는 건.
[승리]
[쵸텐 아카데미 (일본)]
[가온 아카데미 (한국)]
[패배]
[뮌헨 아카데미(독일)]
[블린 아카데미(아일랜드)]
승패를 결정 되었다는 스크린의 내용이었고.
-와아아아아!!
경기장이 떠나가라 관중들의 환호성이 울렸다.
- 승자는 가온과 쵸텐 아카데미입니다!
- 물론 승리한 팀이라도 전투 중 탈락한 학생들은 아쉽지만 더 이상 경기에 참가할 수 없습니다!
[A팀 탈락자 : 잇신]
[B팀 탈락자 : 아크만]
[B팀 탈락자 : 엘란]
[B팀 탈락자 : 베르단디]
[B팀 탈락자 : 라키온]
“두 분 승리하셨군요!”
얼떨떨한 얼굴로 전광판을 확인하는 스미레.
“후우…… 상성이 좋았어.”
한시름 놓았다는 듯 한숨을 쉬는 이시우.
“흐흥~ 뭐야 잇신만 탈락했네?”
환하게 웃으며 잔인한 말을 뱉는 사쿠라.
퍼어엉!
경기장에는 살아남은 3인의 파티원을 축하하기 위해 아름다운 색색의 종이 폭죽이 쏟아졌다. 대망의 국가대항전도 이제 단 한걸음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 * *
파티장이 기다리고 있는 대기실로 돌아가며 베르단디는 방금 전의 경기를 복기했다.
“……정말 이렇게 지는 건 말도 안 되는데.”
사실 방심이랄 것도 없었다.
전투를 치렀던 유람선이라는 장소는 베르단디에게 너무나 유리한 곳이었다. 다양한 물체들이 널린 유람선은 은폐와 엄폐까 자유로웠고, 물체를 피해서 상대에게 적중하는 마탄에겐 제격이었다.
하지만.
[탕!]
이시우는 평범한 총알로 마탄을 빗겨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모든 전경을 꿰뚫고 있는 듯 자신의 마탄을 계속해서 쳐냈다.
다가오는 총알의 위치.
사격중인 자신의 위치.
사격에 대한 숙련도.
그 모든 것에 통달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 하지만 베르단디는 그렇게 유리한 상황에서도 보기 좋게 패배했다. 먼저 상대에게 닿은 건 이시우의 총알이었다.
“대체 뭐야……. 어떻게 한 거야? 뭐 투시라도 쓴 거야?”
이시우의 특성이 천리안이란 걸 알았다면 베르단디도 대비했을 테지만. 이건 이시우가 유명하지 않기에 생긴 정보의 격차였다.
한편.
“……바닥에 구멍을 뚫어? 그런 방법이 있었다니…….”
라키온도 억울하긴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라키온은 사쿠라의 바람을 자신의 흙벽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아무리 사쿠라의 돌풍이 매서워도 단단한 바위처럼 전진하는 라키온을 막아낼 순 없는 상황.
하지만 승리가 굳어진 그때.
사쿠라는 라키온이 있는 건물 바닥 자체를 부숴버렸다.
“……상상도 못 했어.”
상대의 특성을 몰랐던 베르단디.
생각의 전환에 당한 라키온.
바보가 되어버린 두 팀원이 터벅터벅 돌아오자 파티장인 시엘은 무표정한 얼굴로 팀원들을 위로했다.
“……괜찮아요. 어차피 인원수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
“차라리 욕을 해!”
베르단디의 부탁에도 시엘은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된 이상. 다음 경기에 모든 걸 거는 수밖에 없죠.”
너무나도 인자한 어투로 웃어주는 시엘.
“대장!”
“차라리 우리를 탓해줘!”
라키온과 베르단디는 그게 더 괴로웠다.
* * *
국가대항전의 대기실.
좋은 성적으로 팀전을 통과한 가온은 거의 파티 분위기였다. 물론 그 중에서도 가장 기뻐한 건 파티장인 신유성.
“스미레. 시우야 모두 수고했어.”
스미레와 이시우는 팀전에서 강적으로 손꼽히던 아일랜드와 독일을 이기고, 두 명 모두 살아남았다. 전력의 차이는 물론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특히 와일드 카드를 준비하지 않은 독일과 아일랜드는 다음 경기에 참가하는 건 파티장뿐. 유럽 연합의 전력을 반 토막 낸 것이다.
“캬항! 본드래곤이라니 스미레 엄마! 대단해! 역시 드래곤은 최강이야!”
벨벳은 특히 전투에서 본드래곤이 활약하는 모습을 감명 깊게 본 모양이었다.
“승리의 특제 불 뿜기! 캬르르-”
승리한 팀원들을 축하하며 천장을 향해 불을 뿜어대는 벨벳.
짝짝짝짝!
그때 어디선가 들리는 혼이 담긴 박수 소리. 김은아는 갑자기 뒤에서 느껴지는 묘한 시선에 휙-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조금 열린 문틈 사이로 벨벳을 지켜보는 아델라가 있었다.
“아니…….”
기껏 벨벳을 되찾아 왔더니 이젠 직접 찾아오다니. 김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아델라에게 물었다.
“야, 거기서 뭐하냐?”
찌릿.
마치 김은아가 스파이를 대하듯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자 아델라는 자연스럽게 대기실로 들어왔다.
“아…… 가온의 승리를 축하드리러 왔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전 가온의 출신이니까요.”
하지만 아델라의 대답에도 김은아는 여전히 스파이 취급이었다.
“흥, 이젠 비앙카로 갔으면서.”
말투만 보면 김은아는 질책하는 듯 보였지만 거기엔 묘한 감정이 있었다. 줄곧 김은아를 지켜본 신유성은 그 사실을 알아챘다.
‘알겠다. 은아는 지금…….’
김은아와 아델라는 신유성이 가온에 오기 전부터 라이벌 사이였다. 특히 승부욕이 있던 김은아에게 아델라는 묘한 애착이 있던 상대. 하지만 아델라는 이탈리아의 비앙카로 떠났다.
성격 때문에 김은아는 자신의 기분을 자세히 표현하진 않지만 신유성은 알 수 있었다.
‘……아델라에게 서운한 거야.’
김은아는 은근히 아델라가 가온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걸. 그리고 그 순간 마치 마음이 통한 듯 아델라는 입을 열었다.
“그렇죠……. 저는 가온을 떠나 비앙카에 왔습니다.”
김은아를 바라보던 아델라는 신유성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여전히 눈은 멍해 보였지만 아델라는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그리고 그건 이 국가 대항전에서……. 제가 발휘할 수 있는 전력으로. 신유성 당신과 겨뤄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감했던 아델라에게 강자와의 전투란 모든 것이었다.
전투에 돌입하면 긴장감으로 빠르게 뛰는 가슴은 혈액을 뜨겁게 만들었고. 승리를 위해 머리는 차갑게 식었다.
아델라에게 중요한 건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증명하는 일.
“물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당신과의 전투에서 전 제 모든 걸 쏟아부을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러나 말을 끝낸 아델라의 얼굴은 맹목적이게 전투를 쫓던 이전과 조금 달라져 있었다.
루인 성에서 마주한 과거.
신유성과 나눴던 교감.
벨벳과의 소중한 시간.
그중 무엇이 영향을 주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아델라는 무감하고 외로웠던 이전과는 명확히 달라져 있었다.
“이 모든 일이 끝나면 전 가온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아델라는 그 말을 끝으로 신유성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곤 지금까지 본적 없는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신유성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때가 온다면……. 저를 당신의 파티에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델라는 헌터 협회의 대회에서 조차 파티가 없이 홀로 얼음성을 공략했었다. 지금까지 아델라가 어떤 파티에도 속하지 않았던 건 그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젠 달랐다.
아델라의 감정은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고, 아델라는 생기를 되찾고 있었다.
충만함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부족함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신유성의 파티에는 아델라의 갈증을 채워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응. 아델라. 언제든 가온으로 돌아와.”
신유성은 그런 아델라의 부탁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주었다.
“뭐, 뭐야…… 진짜? 우리 파티에 들어오고 싶다고?”
김은아는 듣고도 믿기지 않는 듯 놀란 얼굴로 아델라를 바라봤다.
“아, 아델라 씨가 저희 파티에!? 우와…… 그럼 저희 파티는 정말 최강이에요!”
스미레의 말처럼 이번 국가대항전이 끝나고 파티에 아델라가 합류한다면 가온의 전력은 최강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부실에서 시간을 거의 보내지 않았던 이시우는 아델라의 선택이 마냥 신기한 모양이었다.
“오……. 신기하네. 근데 갑자기 들어오려는 이유가 뭔데?”
신유성은 그런 이시우를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미 아델라와 마음이 통했다는 듯 무언가를 말하려는 신유성.
“아델라 그건 역시…….”
하지만 아델라는 신유성의 말에 끼어들며 단호하게 말했다.
“역시 벨벳 때문이죠.”
아델라의 예상외의 답변.
신유성은 조금 놀란 눈치였다.
말을 뱉는 아델라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지금까지 가족이랄 존재가 아덴밖에 없었던 아델라에게 벨벳은 너무나 소중한 새로운 가족이었다.
그 때문일까.
“전 벨벳의 어머니니까요.”
아델라는 진심으로 벨벳의 어머니가 될 생각인 모양이었다.
“캬, 캬항!?”
감동을 받아 평소보다 눈이 커진 벨벳과 자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델라.
“아, 아델라 엄마!”
“……벨벳.”
“캬흐앙! 아델라 엄마!”
“벨벳!”
인간과 드래곤.
종을 초월한 감동적인 모녀의 상봉 아델라는 벨벳이 태어나기 전부터 줄곧 알을 안고 있었기 때문인지, 벨벳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다.
“캬흐아앙! 감동이야! 벨벳의 특제 불 뿜기!”
“대단해요. 벨벳…… 불이 더 강해졌군요.”
김은아는 그런 아델라의 합류에 기쁜 건지, 아닌 건지 미묘한 얼굴로 고민을 했다.
“뭐, 돌아온다니……. 그건 알겠는데 벨벳만 보고 파티에 들어온다니……. 정말 이거 괜찮은 거야?”
하지만 김은아의 질문에도 신유성은 답하지 않았다.
‘……그 일 때문이 아니었구나.’
아델라가 파티에 들어오는 게 루인성의 일 때문이 아니었다니.
하지만 아델라라는 최강의 전력이 들어오게 된 이상 과정이야 아무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