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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8화 (218/434)

제218화

보랏빛 나비의 안내대로.

찌르르르-

풀벌레가 우는 숲을 지나.

개굴개굴-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개울가도 지나 아크만과 엘란은 계속해서 걸었다.

하지만 그렇게 도착한 장소는 방금 보았던 생기 넘치던 장소들과 분위기부터 달랐다.

말 그대로 죽음의 늪.

하늘을 가릴 정도로 길게 자란 나무 때문에 빛이 통하지 않아 어두웠고, 덕분에 습해진 장소에선 얼굴이 찡그려지는 냄새가 났다.

“윽, 진짜…… 이런 음침한 곳에 숨어 있다고?”

쫑긋-!

카니나는 이 조용하기만 한 늪에서 무언가를 감지했는지 고개를 숙이고 귀를 쫑긋거렸다.

“뀨뀨- 뀨-!”

“아크만 조심해라! 산의 주인 카니나가 경고하고 있다. 이곳은 죽음의 냄새가 난다고 하는 군.”

“카니나가 아니라도 이 곰팡이 같은 찝찝한 냄새는 저도 이미 맡고 있는데요?”

아크만은 한숨을 쉬며 주위를 크게 둘러보았다. 그러나 보이는 거라곤 끔찍한 냄새가 나는 늪지대뿐. 아크만이 할 수 있는 건 늪을 피해 조용히 중심부로 걷는 게 전부였다.

“……이 나비. 믿을 수 있는 거긴 해요?”

결국 아크만은 눈을 가늘게 뜨며 애꿎은 나비 정령을 의심했다. 하지만 엘란은 오히려 쉿- 하고 소리를 내어 주의를 집중시켰다.

“가만……. 뭔가 심상치 않다. 아크만 정말 들리지 않더냐? 우리를 향해 속삭이는 정령들의…….”

득.

드윽.

엘란의 말대로 집중을 하니 아크만은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구웅-

마치, 누군가 발을 구르는 진동 같기도 하고.

드득-

어딘가 신호를 보내기 위해 문을 두드리는 것 같기도 한 요상한 소리.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덜컹! 따악!

모두가 밟고 있는 땅이 소리를 내며 움직인 순간이었다.

“어!? 이거! 설마!”

다급한 아크만의 목소리.

하지만 이미 늦었다

콰앙!

모두가 밟고 있었던 땅은 사실 땅이 아니라. 흙을 덮은 나무판자였다. 무거운 카니나가 얇은 판자에 올라가면 부서지는 건 당연한 일.

“함정이다!”

아크만을 비롯한 카니나와 엘란이 구멍을 파둔 함정으로 떨어지자.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언데드들이 매섭게 달려들었다.

“그륵, 그르륵!”

“딱, 딱딱!”

“실프! 우리를 인도하라!”

휘이이!

엘란은 다급하게 바람의 정령을 불러냈다. 덕분에 아크만과 엘란이 함정에 빠지는 건 막았지만….

“뀨유유유우!”

거대한 카니나까지 함정에서 구해내진 못했다.

“딱딱! 딱!”

“그르륵!”

병장기의 무기를 들고 무자비하게 카니나를 내려치는 해골 병사들과 손톱을 휘두르며 유독한 체액을 입으로 뿜어내는 구울의 합공.

“뀨유유, 뀨-!”

함정을 이용한 언데드들의 린치에 카니나가 울부짖자. 아크만은 신성력을 발휘해 오른손으로 빛을 내뿜었다.

“빛이여. 망자를 심판하라!”

[빛의 심판]

번쩍!

아크만이 마나를 신성력으로 바꿔 발휘하자. 언데드들은 환한 빛에 몸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아……. 뭐 이렇게 많아?”

그러나 신성력으로 언데드를 처치하는 건, 뜨거운 열기로 물을 증발시키는 것과 같았다.

많은 수의 언데드를 처치하는 건 그에 버금가는 신성력을 소모한다는 것이었고, 그건 곧 아크만의 마나 소비로 이어졌다.

특성의 힘을 빌리는 [축복의 페이지] 같은 스킬과 순도 높은 신성력을 발휘하는 건 아예 원리가 다른 것이다.

“뀨으…… 뀨뀨-”

그래도 언데드가 사라진 덕분에 카니나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함정에서 나오려던 순간.

“아, 아크만……..”

당황한 목소리로 엘란이 아크만을 불렀다.

“……예? 무슨 일이에요?”

“주위를 봐라…….”

엘란의 절망에 찬 목소리.

꿀꺽 침을 삼킨 아크만은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하- 미, 미친…….”

그극- 그고고-

잠에서 깨어나듯 땅에서 기어 나오는 구울과 해골들.

‘몇십? 몇백?’

아니 보이는 것만 해도 상식적인 숫자를 이미 넘겨 있었다. 그래. 이건 땅에서 자라난다는 표현이 맞았다.

‘이게, 정말…… F급 특성의 사령술사라고?’

역병의 마녀 라플라스의 편린.

그 힘으로 스미레는 마녀의 흑마술을 개화했다. 이건 청의 사제인 아크만의 상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규격의 힘.

콰아아-

정체 모를 무언가의 울부짖음과 함께 조용했던 늪이 해골들이 턱을 부딪치는 소리와 구울의 하울링으로 뒤덮였다.

평범한 헌터들이라면 단숨에 전의가 꺾여버릴 상황.

하지만 사제인 아크만은 숨을 고르며 결단을 내렸다.

“……이걸 이렇게 빨리 사용할 줄이야.”

“아크만. 설마.”

“교회에서 내려준 아티팩트를 개방 하겠습니다. 제가 사용 할 수 있는 건 1장 정도지만…….”

아크만은 최연소 청의 사제로서 국가대항전에 참가했다. 비록 아직 신입에 불과한 위치였지만 세간의 주목을 받았기에 교회는 아크만에게 특별히 총애를 내렸다.

“어쩌겠습니까? 함정에 당했으니 우리도 전력을 보여줘야죠.”

사아아-

아크만의 손에서 입자들은 하나의 성서로 변했다. 이건 교회가 보유했던 유니크 급 아티팩트 중 하나인 심판의 성서.

“……심판의 성서에 첫 장을 밝혀라! 데우스의 십자군!”

화아아악!

아크만이 불러낸 빛 무리는 암운을 뚫고 그늘진 땅까지 닿았다. 그리고 그 빛의 세례가 걷혔을 때 지옥 같았던 늪에는 3인의 기사가 강림해 있었다.

“데우스의 십자군이여! ……빛의 힘으로. 망자들을 심판하라!”

그들은 아크만의 명령에 방패와 검으로 파도처럼 몰려오는 언데드를 손쉽게 도살하기 시작했다. 숫자는 중요하지 않았다. 신성력을 품은 십자군의 검과 방패는 스치는 것만으로 언데드를 소멸시켰다.

“가온의 사령술사……. 이런 함정을 꾸미다니 생각보다 머리를 좀 쓰는걸…….”

말을 하면서도 아크만은 현기증이 온 듯 이마를 짚으며 힘들어했다. 흔히 마나 부족으로 생기는 부작용.

“괜찮은가? 아크만?”

옆에 있던 엘란이 자신을 걱정해주자 아크만은 진정하기 위해 숨을 골랐다.

아크만이 읽은 건 10가지 계명 중, 첫 장에 불과한 스킬이지만 그건 아크만의 마나로 사용 할 수 있는 유일한 스킬이었다.

‘모처럼 유니크급 아티팩트를 빌렸는데……. 더 써먹을 수가 없군.’

결국 이건 사용자의 힘에 비해 아티팩트의 능력이 너무 강하다는 증거.

“됐고…… 더 언데드를 만들어내기 전에 빨리 사령술사나 찾아요. 카니나한테는 버프도…… 걸어 줄 테니까.”

아크만은 아티팩트로 기세를 잡았을 때 경기의 승패를 끝내고 싶어 했다.

촤르르- 화아악!

“축복의 페이지.”

번쩍!

‘마침 좋은 버프가 걸렸군.’

축복의 페이지가 카니나에게 내려준 버프는 [흉포의 꿀오소리].

일시적으로 대상자의 근력을 증가 시켜주는 버프였다.

“뀨우우우우-!”

덕분에 기세가 죽어 쭈그려 앉았던 카니나는 눈이 붉게 물들며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자, 올라타라! 아크만!”

엘란은 데우스의 십자군이 언데드를 막고 있을 때 승부수를 띄울 생각이었다.

“좋습니다. 빨리 찾아서 대기실로 보내버리자고요.”

그리고 그건 아크만도 마찬가지.

카니나는 두 남자가 등에 타자마자 사족보행으로 엄청난 속도를 내며 달렸다.

다다다다!

그렇게 막아서는 언데드를 짓밟으며 광란의 돌진을 한 끝에.

“뀨우우우-!”

“저기! 저기 있어요!”

드디어 보이는 스미레의 모습.

스미레는 카니나와 아일랜드 팀의 모습을 보자 마치 들으란 듯 연기 톤으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 아아-! 어떻게 벌써 찾아 왔지……. 이러다간 상대에게 잡혀 버리겠어요오…….”

어기적어기적 늪을 향해 도망치는 스미레와.

“저기 있다! 이번에 놓치면 끝이에요! 빨리 잡아요!”

“놓치지 않는다! 사령술사!”

그런 스미레를 쫓기 시작하는 아크만과 엘란. 카니나는 광란의 추격을 시작했다.

*     *      *

언데드 공장의 공장장. 스미레.

그녀는 사업을 진출 한지 1시간 만에 수많은 언데드를 죽음의 늪에 납품하며 명성을 높였지만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해골과 구울은 아무리 많이 소환해도. 마나를 소비시킬 뿐. 승패를 결정할 순 없어!’

그건 바로 사업의 확장성.

주력 생산품인 구울과 언데드만으로는 아무리 공장을 돌려도 사업에 종지부를 찍을 수 없었다.

‘중요한 건. 결정적인 한 방이야!’

그리고 그 고민이 바로.

스미레가 거대 토끼 카니나에게 쫒기고 있는 이유였다.

‘좀 더, 좀 더 빠르게 달려-!’

처음부터 이런 무식한 방법을 쓰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상대 팀에는 사제인 아크만이 있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맞붙는다면 신성력의 힘으로 언데드는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아크만이 신성력의 힘으로 약화시키기 전에. 스미레가 소환한 최강의 소환물이, 가장 강력한 필살기를 퍼부을 방법은 없을까?

‘조금 더 빨리……. 어떻게든 늪 까지. 유도하는 거야.’

아직 거리가 제법 멀었지만 스미레는 땅을 박차며 아까 보아둔 늪을 향해 달렸다.

타닥! 탁!

마나까지 사용하며 신체를 강화했지만 스미레는 몸을 사용하는 전투와는 거리가 멀었기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이제! 포기해요! 당신은 여기서 탈락입니다!”

“뀨우우우!”

타악!

“아!”

스미레는 덩굴에 발이 걸렸지만 주춤거릴 뿐, 넘어지지 않고 다시 달렸다. 정말이지 무서울 정도의 집념.

하지만 승리를 위한 플랜은 계획대로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변수는 오직 스미레의 역할 뿐이었다.

꽈악!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주먹을 쥐며 스미레는 파티원들을 떠올렸다.

‘유성 씨…….’

[스미레 이 닭튀김 정말 맛있어.]

처음 떠오른 건 신유성의 얼굴이었다. 언제나 자신을 믿고 응원해주었던 신유성은 스미레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 다음 스미레가 떠올린 건 김은아의 얼굴.

‘은아 씨…….’

[이거 괜찮네. 난 찌개는 싫어하는데 제법 먹을 만해. 응? 찌개가 아니라 전골이라고? 그게 그거지.]

김은아는 겉은 까칠해 보이지만 실은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스미레의 소중한 동료였다.

그 다음으로 스미레가 떠올린 건 새롭게 부원이 된 벨벳의 얼굴.

‘벨벳…….’

[벨벳 케이크는 이름에 벨벳이 들어가! 캬항! 역시 벨벳은 정말 대단해!]

스미레에겐 익숙한 일들이 벨벳에겐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고 추억이었다. 스미레는 그 사실이 참 좋았다. 자신을 통해 누군가가 성장한다는 사실은 참 기쁘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에이미 씨…….’

[크흐~ 역시 스미레의 스파이시 크랩 커리는 최고야!]

마지막으로 매운 걸 잘 먹는 에이미까지.

‘……난 질 수 없어.’

스미레의 어깨에는 소중한 팀원들이 간절히 바라는 승리가 걸려 있었다. 그래서 스미레는 최대한 변수를 없애고 최고의 작전을 짰다. 스미레는 자신에게 걸린 무게를 알고 있었다.

탓!

이건 스미레가 고민 끝에 내린 최고의 방법.

파앗!

늪의 앞에 멈춰선 스미레가 몸을 회전 시켰다.

“마녀의 흑마술! 서머너 링크!”

스미레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자. 푸른빛에 마나는 줄을 형성해 늪에 있는 무언가와 이어졌다.

[소환사의 마나가 소환수에게 이전 됩니다.]

[소환수 : 본드래곤]

[본드래곤이 브레스를 차징한 지 21초가 지났습니다.]

[축적된 에너지가 100%를 초과했습니다.]

마치 경고라도 하듯 포켓은 홀로그램의 메시지를 엄청나게 띄워댔지만 스미레는 개의치 않았다.

그그그-

“본드래곤!”

정말 스미레의 부름대로.

입을 쩌억- 벌린 본드래곤이 몸을 일으켰다. 본드래곤은 초월종인 드래곤이 아닌, 언데드가 되어 죽음의 군주로서 다시 태어났다.

6급 보스가 뿜어내는 압도적인 위압감.

차악!

스미레는 검지로 달려오는 카니나를 겨누며 이게 마지막이라는 듯 크게 소리쳤다.

“다크 브레스-!”

스미레 최후의 명령.

본드래곤이 품은 칠흑의 구체에 고열의 에너지가 붉은 줄을 쩍쩍- 그었다.

위이이잉!

“본드래고오오온!? 아니 이런 미친! 저게 뭐야!”

“아크만! 정신 차려! 일단 후퇴다! 지금은 카니나를 믿는 수밖에 없어!”

아크만은 카니나의 등에서 굴러 떨어지듯 내려왔다. 신성력을 발휘하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스미레가 본드래곤을 믿어주듯.

지금은 아크만도 엘란의 말대로 카니나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본드래곤! 저희들의 유대를 담은 다크 브레스에요!”

스미레.

“브레스를 뱉기 전에 머리통을 날려 버려!”

아크만.

“카니나! 너는 할 수 있다!”

엘란.

모두의 염원이 한데 모였다.

그렇게 셋은 누구랄 것도 없이 하나가 되어 자신의 소환물에게 혼을 담아 외쳤다.

“가라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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