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1화
‘자칭’ 정보와 분석의 천재.
에이미는 오늘을 위해 준비해둔 자료를 펼치며 도수가 없는 안경을 치켜 올렸다.
“자 여러분! 모두 집중! 누구보다 똑똑한 제가 이미 아일랜드랑 독일의 분석을 끝냈습니다!”
파티장인 신유성과 세이지.
그리고 참가자인 잇신과 사쿠라, 이시우와 스미레까지. 이번 브리핑의 관람자는 총 6명이었다.
“진짜 그 짧은 시간에 전부 분석 했다고?”
물론 정작 참가자인 이시우는 못 미더운 눈치였지만 에이미는 검지를 흔들며 당당함을 표시했다.
“두 팀이 가진 컬러와 특성! 그리고 최근에 사용한 전략에 이르기까지! 전부 분석했단 말씀!”
짝짝짜짝-!
“에이미 씨! 정말 대단하세요!”
“대단해 에이미.”
스미레의 나 홀로 박수에 신유성도 동조하자 에이미는 슬슬 흥이 오르는 모양이었다.
“자자, 일단 독일의 뮌헨 아카데미 팀은 대 테러와 대 빌런 교육을 받는 특수부대 파티야! 대 능력자 전투의 스페셜리스트들이지!”
특이한 일이었다.
단순히 던전을 공략하거나 아카데미 교육을 졸업하기 위한 게 아닌 실전에 투입되고 빌런들의 제압을 전문적으로 교육 받는 파티라니. 이건 헌터보단 흔히 말하는 시티가드의 업무에 가까웠다.
“그 때문인지 지금까지 태그전은 무려 0패야. 파티장부터 팀원까지 전부 승리만 한 거야!”
에이미의 설명처럼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컸다. 대 빌런 교육을 받은 독일 팀은 능력을 뛰어넘는 전략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까다롭긴 하겠네. 뭐, 대 빌런 교육은 나도 어릴 때 받은 적이 있긴 하지만.”
“그럼 우린 시우만 믿으면 되겠네? 잘됐다~!”
장난기가 돋은 사쿠라가 놀려주기 위해 한 말이었지만 이시우는 꽤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지금 시티가드와 대 빌런 부대가 사용하는 전략은 대부분이 한참 전부터 교재로 완성되어 있어. 중요한 건 상황이나 돌발 상황에 따른 지휘관의 응용력이지.”
적극적인 이시우의 태도에 파티장인 신유성은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역시 시우도 변하고 있구나.’
처음만 해도 이시우는 시티가드에 관한 이야기는 최대한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어린 시절과 관련된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았다. 그게 실력이든 경험이든 무엇이 됐든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에 배운 총이 아닌 활을 사용한 것도 그에 따른 반발.
‘사쿠라 덕분인가? 이젠 완벽히 극복한 모양이야.’
신유성이 흐뭇한 얼굴로 웃고 있는 그 순간. 에이미는 다시 검지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아일랜드의 블린 아카데미! 여긴 그야말로 정예 중의 정예! 이번 국가대항전을 위해 여러 아카데미의 에이스 출신을 합친 곳이야!”
국가대항전이 워낙 큰 대회이니만큼 학생들 간 아카데미 이동은 흔한 일이었다. 아델라가 이탈리아의 비앙카 아카데미로 입학한 것도 같은 맥락.
차악-!
“그리고 참가자 4명의 특성은!”
에이미는 검지로 천장을 찌르는 거창한 몸짓으로 모두를 주목시켰다. 평소보다 관심을 많이 받는 탓에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 * *
질겅질겅.
푸우- 푸우- 팡!
커다랗게 부푼 풍선껌이 큰소리를 내며 터지자 베르단디는 혀로 입 주변에 묻은 풍선껌을 떼어내며 씩- 웃었다.
“퉤- 라키온. 혹시 모래랑 타조 이야기 알아?”
대 테러 부대의 대부분은 눈에 띄지 않는 겉모습을 추구했지만 베르단디는 달랐다.
화려한 귀걸이와 여러 치장을 한 용모. 밝은색의 긴 생머리까지 그녀의 개성은 제복을 입고 있어도 감춰지지 않았다.
거기다 또 장난기는 어찌나 심한지 팀원인 라키온은 베르단디와 활동할 때면 진이 다 빠졌다.
“베르단디. 작전 중이다. 진지하게 임하지 않으면 팀장님이…….”
하지만.
“……음? 나 지금 완전 진지한데.”
장난을 받아주지 않으면 바로 삐져 버리는 게 베르단디의 성격.
“아, 임무인데 장난치는 것처럼 보였나? 그래 나는 뭐 그냥 매일 장난치는 사람이긴 하지. 아~ 내가 나쁘네~”
라키온은 머리가 아픈지 이마에 손을 짚었지만 베르단디의 비아냥은 멈추지 않았다.
“할 말이 있어서 그런 건데 안해야겠다! 그냥 입 닫고 조용히 총이나 쏴야지.”
심통이 난 베르단디가 누가 봐도 불만이라는 얼굴로 계속 투덜거리자 한숨을 쉬며 라키온은 이번에도 져주었다.
“……모래랑 타조가 왜?”
그제야 베르단디는 훗- 하고 승리의 미소를 짓고서 저격총의 스코프로 건물을 조준했다.
“타조는 말이야. 얼마나 멍청한지 사냥꾼을 만나면 모래에 머리를 숨긴대.”
기다란 총열의 저격총은 들기도 버거워보였지만 베르단디는 익숙했다. 반동을 줄이기 위해 양각대를 땅과 연결해 두었고 총열과 몸을 일자로 맞춘 상태였다.
다만 입구부터 바리케이드를 구축하고 건물 안에 숨은 빌런들을 건물 밖에서 저격하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베르단디는 그런 평범한 이들의 생각을 비웃듯 말했다.
“자기 눈에 안 보이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어때 꼭 저 빌런들이랑 닮지 않았어?”
“확실히 그렇군.”
라키온은 베르단디의 비유에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러자 구릿빛 피부와 대비되는 너무나 환한 치아가 드러났다.
마탄의 사수라 불리는 베르단디의 특성을 알고 있다면 그건 아주 적절한 비유였다.
“아무리 숨어도 저렇게 마나를 펑펑 뿜어내고 있으면 절대 안전한 게 아닌데 말이야.”
“그럼. 이 지구에 베르단디 너보다 유능한 저격수는 없을 거다.”
의기양양해진 베르단디가 눈썹을 위아래로 움직이자. 라키온은 익숙한 솜씨로 비위를 맞춰주었다.
삑!
- 베르단디. 결계를 펼친 빌런의 위치를 알아냈다. 좌표를 확인 하고 ‘마탄 사냥개’로 처리해.
호출음과 함께 울려 퍼지는 파티장의 목소리. 베르단디는 웃으며 손가락을 집게처럼 만들고.
“Ziel(표적)…….”
아주 작게 읊조렸다.
“Verstanden(확보).”
그러자 베르단디의 집게손가락에 하나의 탄환이 쥐어졌다.
철컥!
베르단디는 능숙한 볼트액션으로 방금 만들어낸 마탄을 장전했다. 베르단디가 사용하는 스코프는 배율 확대가 아닌, 마나의 흐름을 시각화 하는 스코프.
상대의 위치를 파악한 베르단디는 드디어 방아쇠를 당겨 선고를 내렸다.
타앙!
상대는 건물 안에 있었지만 상관 없었다. 베르단디의 마탄에 사각은 없었다.
쐐액-! 쨍그랑!
마나로 만들어진 결계를 뚫고.
벽이 있다면 물리법칙을 무시한 채 커브를 틀고. 겹겹이 쌓인 장애물 따윈 가뿐히 지나쳐 어떻게든 상대를 맞춘다.
베르단디의 마탄은 피 냄새를 맡은 사냥개처럼. 마나의 흔적을 쫓는 사냥개였다.
타앙!
파티장의 명령대로 타겟에 적중한 베르단디의 마탄. 주변을 둘러싼 푸른 결계가 깨어졌다. 베르단디는 비산하는 마나의 파편들을 보며 씩- 웃었다.
“훗, 처리완료!”
- 라키온은 결계를 제거했으니 1층의 인질들을 보호하도록.
파티장의 명령에 라키온은 파티장의 명령에 흙으로 변하더니 건물과 융화되며 사라졌다.
스으으-
그리고 결계사가 사라진 지금.
흙으로 변했던 라키온은 순식간에 1층 로비의 빌런들을 덮쳤다.
콰아앙!
“습격이다!”
“어, 어디지? 먼지 때문에 도통 시야가…….”
먼지와 함께 솟아난 흙들은 덩굴처럼 빌런들의 다리를 옭아맸다.
“큭 다리가!”
“그냥 너흰 내 쪽으로 붙어! 총을 갈겨 버릴 테니까!”
“꺄아악!”
“제발! 살려주세요!”
라키온은 빌런들의 목소리와 인질들의 비명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차분하게 사람들을 안정시켰다.
“진정하세요. 저희들이 왔습니다.”
그리곤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자.
[흙의 요람]
스으윽!
땅에서 일어난 흙더미는 인질들을 안전한 구체 형태의 흙벽으로 보호했다.
타다다당-!
여섯이 넘는 빌런들이 라키온을 향해 기관총으로 셀 수 없는 총알을 발사했지만 닿는 건 없었다.
흙의 요람을 사용한 라키온에게 기관총 같은 건 무의미한 반항. 총알 따위로 라키온의 흙벽을 뚫을 순 없었다.
“대장. 인질 확보를 끝냈습니다.”
- 알겠다. 시티가드를 투입할 테니 베르단디 지원사격을 부탁한다.
- 오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