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0화
이탈리아의 자랑인 영웅의 손녀이자. 얼음 여제로 불리던 아델라의 귀환은 비앙카 아카데미는 물론 이탈리아 전체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물론 그들 중에서도 아델라의 귀환을 가장 반긴 건 레온 에스테. 비앙카 아카데미는 팀전이라는 서브 게임을 앞뒀음에도 파티장인 아델라가 없었기에 제대로 된 회의조차 하지 못한 상태였다.
‘제시간에 맞춰서 돌아온 건 다행이지만.’
덕분에 국가대항전을 위한 전략회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건만 레오는 쉽사리 아델라에게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저 분위기에는…… 도저히 말을 걸 수가 없겠군.’
사색에 잠겨 굳게 다문 입.
무슨 일인지 평소보다 힘없이 처진 눈매와 호수처럼 깊어 보이는 눈망울.
‘……그래. 국가대항전을 앞둔 지금. 아델라 양도 긴장을 하는 게 당연하지.’
레온은 그런 아델라의 기분을 긴장한 증거 정도로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델라는 긴장 따위를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국가 대항전이 아닌, 전혀 다른 주제로 생각에 빠져 있었다.
[캬항~ 아델라 엄마 손 차가워서 기분 좋아! 벨벳 몸은 항상 뜨거운데!]
그건 예를 들자면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어주면 좋다며 머리를 들이밀던 벨벳이라거나.
[나~ 졸려…….]
포근하다며 아델라의 무릎 위에서 잠들던 벨벳에 관한 그리움이 대부분이었다.
‘벨벳…….’
꼭 돌아오라며 울던 벨벳을 가온에 두고 자신 혼자 비앙카로 떠나오다니. 아델라는 당장이라도 가온에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국가 대항전이 끝나면. 꼭 돌아가겠습니다. 벨벳…….’
아델라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짐을 하는 순간. 아델라의 옆에 다가온 레온은 환한 미소와 함께 말을 걸었다.
“……아델라 양? 이해합니다. 긴장되시겠죠. 하지만 국가대항전을 앞에 둔 지금. 걱정이 깊어진 건 아델라 양만이 아니랍니다.”
까딱.
고개를 돌린 아델라가 무표정한 얼굴로 레온을 바라보자. 오히려 불이 붙은 듯 레온은 멋있는 대사와 함께 척! 하고 악수를 건넸다.
“지금은 오히려 모두 함께 힘을 모으는 게 최선이겠죠-! 안 그런가요. 소피아?”
이토록 밝은 성격.
그리고 특유의 리더쉽은 레온이 비앙카 아카데미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게 된 이유였지만 소피아나 아델라는 별 반응이 없었다.
“……네 뭐 그렇겠죠.”
소피아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여전히 책에 시선을 고정한 상태로 대답했다. 거기다 아델라는 청한 악수를 가볍게 무시했다.
하지만 레온은 자신이 고민을 맞췄다고 생각한 건지 오히려 더욱 힘을 얻었다.
“아델라 양. 좀 더 자신감을 가지세요! 아덴 님과 아델라 님은 그야말로 이탈리아의 자랑…….”
그렇게 레온은 일장연설과 함께 힘을 내라며 진심을 담은 위로를 건넸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당신은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아델라에겐 레온의 위로가 기억에 있던 장면과 묘하게 겹쳐보였다는 것이었다.
[아델라 엄마는 정말 대단해!]
그렇게 벨벳의 말과 레온의 위로가 묘하게 겹쳐 들리자. 아델라가 눈썹을 움찔- 하고 떨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이 지구 전체에서 가장 귀여운 벨벳과 이 지나치게 수다스러운 남자가 겹쳐 보이다니 세상에 이런 불경한 일이 있을까?
아델라가 피곤을 탓하며 이마에 손을 짚은 순간. 레온은 다 안다는 얼굴로 하핫- 하고 웃더니 그윽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아델라 양……. 그렇게 감동 받으실 필요 없습니다. 아델라 양과 소피아. 그리고 저는 이제 한 팀이니까요.”
그렇게 말한 레온은 자연스럽게 아델라의 손을 잡았다. 레온에겐 상대의 호감을 사기 위한 익숙한 행동이었지만 아델라는 옅게 미간을 찌푸렸다.
[……이 앞에 무엇이 있든. 결과를 확인하려면 네가 직접 문을 열 수밖에 없어.]
타인을 위로 한다는 건 타인을 이해해야 가능한 행위. 루인 성에서 아델라가 신유성에게 느꼈던 온기란 이런 게 아니었다.
“그러니 고민이 있다면 언제든 저희에게……. 윽!”
사람 좋은 얼굴로 환하게 웃어주던 레온은 뜨거운 물에 닿은 것처럼 다급하게 손을 빼며 뒤로 물러났다.
사아아-
“……다시는.”
냉기로 인해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아델라의 손. 하지만 아델라의 목소리는 그 냉기보다도 더욱 차가웠다.
“제 몸에 손대지 마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아델라는 손을 타고 흐르던 냉기를 거두었다. 이건 아델라가 정해둔 선을 멋대로 넘지 말라는 경고의 표시였다.
* * *
학원 도시의 어느 카페.
들뜬 학생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떠드는 이 곳에서도 가온과 쵸텐은 단연 돋보였다.
“모두 오랜만인걸! 이렇게 팀이 될 줄이야! 너희들과 한 편이 되니 엄청 든든한데?”
물론 그건 혼자서 ‘열혈’의 분위기를 펄펄 풍겨내는 세이지의 공이 컸다.
잇신은 그런 세이지가 맘에 안 드는지 쯧- 하고 혀를 찬 후 신유성에게 물었다.
“……그것보다. 그쪽은 누가 참전하지? 우리는 다른 멤버가 없어서 나와 사쿠라의 참전이 확정이다.”
잇신은 큰 관심이 없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지만 시선은 힐끗 힐끗 스미레를 향했다.
은근히 스미레가 참전하는 지 아닌지가 궁금했던 모양. 하지만 잇신의 질문은 신유성이 아닌, 세이지가 가로챘다.
“아 참고로! 이시우가 나온다는 이야기는 사쿠라에게 들었어! 나머지 한 명은 역시?”
그렇게 말한 세이지가 웃으며 신유성 옆에 앉은 스미레를 바라보자. 신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다른 나머지 한 명은 스미레로 생각하고 있어.”
“그, 두 분 모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옆에 있던 스미레가 꾸벅 인사를 하자. 세이지는 표정이 밝아졌다.
“스미레? 요새 엄청 강하잖아! 우리야 대환영이지! 그래도 상대에 하필 아일랜드가 있어서 고민이 많았겠는데?”
후르릅-
스무디를 빨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세이지의 지적은 제법 예리했다.
[A팀-가온 아카데미(한국)]
[A팀-쵸텐 아카데미(일본)]
VS
[B팀-블린 아카데미(아일랜드)]
[B팀-뮌헨 아카데미(독일)]
일본과 한국.
아일랜드와 독일의 매치업이 성사된 지금 가장 큰 변수는 참가자 간의 ‘상성’이었다.
문제는 에이미가 가져다준 자료에 적힌 아일랜드의 멤버들.
“맞아. 아일랜드에는 청의 사제와 흙속성의 특성자가 있었으니까.”
언데드를 다루는 스미레의 천적인 청의 사제와 전기를 다루는 김은아의 상성인 흙속성의 특성은 신유성을 깊게 고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래도 전기로 흙을 공략하는 것보단. 스미레 쪽이 승률이 높다고 생각했어. 물량전은 언제나 전략적 가치가 높으니까.”
김은아의 전기로 단단한 흙벽을 무너트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상성이었다. 혹시나 김은아와 흙속성 특성자만 남을 최악의 가능성을 대비한다면 변수를 창출해낼 수 있는 스미레의 참전이 좋았다.
“좋아! 그럼 참가자도 정해졌으니 신청서를 넣으러 가자. 파티장, 아니지…… 동료로서!”
자기가 말했음에도 머쓱한지 웃음을 흘리는 세이지. 신유성은 세이지의 동료라는 말에 기쁜 모습을 보였다.
“응, 좋아!”
동료라는 이름으로 묶인 신유성과 세이지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훈훈했다.
“그럼 유성이랑 나는 다녀 올 테니! 둘이 이야기 좀 하고 있어. 전략도 짜두면 더 좋고~!”
사이좋게 카페를 떠나는 신유성과 세이지. 스미레는 그런 둘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어색하게 시선을 테이블로 옮겼다.
하지만 파티장들이 사라지고 나니 정말이지 어색한 둘의 분위기. 결국 음료를 홀짝이며 무의미한 정적만 흐르자 잇신은 먼저 말을 뱉었다.
“……오랜만이군.”
“아, 네……. 국가대항전에서 뵌 게 마지막이네요.”
하지만 긴장한 스미레와 붙임성이 좋지 않은 잇신의 말은 길게 이어지질 않았다.
홀짝.
어색한 분위기에 애꿎은 음료만 홀짝이던 잇신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다시 용기를 냈다.
“그…… 일본에서의 일은. 내가 사과하고 싶군.”
“네? 어떤?”
갑작스런 잇신의 사과에 스미레는 그저 의아했다.
“여러모로……겠지. 쵸텐에선 너에게 꽤나 심한 말을 했으니.”
“네? 아니 정말 괜찮아요! 처음부터 제 잘못이기도 하고!”
스미레는 잇신의 진지한 사과에 다급히 손을 저었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스미레의 말은 악의가 담기지 않았음에도 잇신에게 데미지를 넣었다.
“그 뒤, 유성 씨가 엄청 위로해 주셨으니까 마음에 남겨두는 일 같은 건…….”
“아, 신유성. 그래. 다행이군…….”
잇신은 담담한 척 대답했지만 스미레의 입에서 나온 신유성의 이름에 묘하게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 역시 학원 도시 근처는 커피도 맛있네요! 카페가 많기 때문일까요?”
점점 더 어색해지는 분위기에 스미레가 주제를 돌리자.
“응, 그래. 참 맛이 좋군.”
잇신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스미레의 눈치를 보곤 결심한 얼굴로 또 용기를 냈다.
“그리고……. 배신자라고 했던 말도 사과하고 싶군. 네가 그 일이 있은 후, 파티장으로서 네게 관심을 줬다면…….”
“그건 아니에요! 아무리 힘들어도 전 말없이 떠난 거고. 그리고…….”
스미레는 잘못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잇신의 사과를 받는 게 오히려 불편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미레의 위안이 되는 건.
“……이곳에 온 덕분에 유성 씨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신유성의 존재.
스미레가 신유성의 이름을 말하며 너무나 행복한 표정을 짓자. 잇신은 다급하게 시선을 피했다.
“어, 그……. 그래.”
분명 스미레에게 사과하고 용서 받았음에도 이 찝찝한 기분은 뭘까? 아니면 설마 지금까지 스미레가 떠오른 이유가 미안함 때문이 아닌 걸까?
그리고 스미레의 입에서 신유성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하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이유는?
하지만 잇신이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는 와중에 스미레는 신유성이라는 주제에 말문이 트인 모양이었다.
“늘 같이 있지만 유성 씨는 정말 대단하신 거 같아요. 무척 강하신데도 상냥하시고……. 그렇게 자상한 분은 처음이에요. 물론 저 같은 건 오히려 짐이 될 정도로 배울 점도 많고…….”
스미레의 진심이 담긴 한 마디 한마디에 세이지는 각목으로 두드려 맞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이지 정신을 잃지 않은 자신을 칭찬 또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
“그리고 무척이나…….”
하지만 스미레의 입에서 지옥같은 칭찬이 끝없이 이어지려고 하자 잇신은 재빨리 말을 끊었다.
“그, 그래서 말인데!”
그 다음 꺼낸 건 역 앞에서만 살 수 있는 명물. 우유맛 당고와 꿀이 발린 당고. 간장으로 구운 당고를 포함한 6종 당고 세트였다.
“네게 미안해서 산 선물이다. 작은 성의니 받아줬으면 좋겠다.”
잇신의 입에서 나온 건 너무나 담백하고 용기 있는 말. 스미레는 그런 잇신에게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순순히 당고를 받아들었다.
“……잇신 씨. 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기뻐 보이는 스미레의 얼굴에 안도하는 잇신. 하지만 그 순간 절차를 끝낸 2인조가 카페로 들어왔다.
“유성이 너 진짜 대단하잖아! 프리패스라니!”
“내가 대단한 게 아니라. 협회장님이 신경 써주셨을 뿐이야.”
“그게 대단한 거야!”
거의 절친이 되어버린 신유성과 세이지가 화기애애하게 테이블로 다가오자. 스미레는 당연하다는 듯이 당고를 하나 꺼냈다.
“유성 씨! 유성 씨가 좋아하셨던 꿀 당고에요!”
“스미레 이건?”
“맞아요! 역 앞에서 먹었던 그!
상상도 못한 디저트를 만난 신유성은 엄청 기뻐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걸 잇신의 눈앞에서 직접 신유성에게 먹여주는 스미레.
“헤헤……, 맛있으세요?”
옆에 있던 세이지까지 눈을 빛내며 당고를 바라보자.
“뭐야! 이거!?”
스미레는 기꺼이 잇신이 준 당고를 권했다.
“세이지 씨도 하나 드실래요?”
“좋지!”
“전부 잇신 씨가 사주신 거에요!”
“가온을 만난다고 직접 선물도 준비했다고? 어이! 잇신 너 제법이잖아!”
와그작- 와그작- 기꺼이 당고를 먹어대는 세이지와 그 광경을 보며 말없이 멍한 얼굴로 입을 벌리고 있는 잇신.
스미레는 그런 잇신에게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잇신 씨. 당고 정말 감사해요. 그리고…… 전 이제 정말 괜찮으니까. 걱정 안 해주셔도 되요!”
물론 잇신은 대답 대신 혼이 나간 얼굴로 그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