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07화 (207/434)

제207화

인류 중 탑의 가장 높은 곳에 도달했던 파티의 일원으로서.

최고의 헌터로서.

그리고 권왕 유원학의 동료로서 강유찬은 미지라 불릴 일을 수 없이 경험해 보았다.

덕분에 강유찬은 자신의 인생에서 놀라움이란 감정은 묻어둔 지 오래였다.

그런데 이 보고서는 무엇이란 말인가?

“메이린 비서. 이 보고서가 사실인가? 정말 이 아이가 알에서 부화한 드래곤이란 말인가?”

강유찬이 벨벳을 홀로그램으로 보며 놀라워하자. 메이린은 홀로그램으로 새로운 정보를 띄웠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사실입니다. 심지어 감식 결과. 이번에 부화한 드래곤은 최근에 공략했던 사도닉스와 같은 개체입니다.”

하나씩 하나씩 말없이 홀로그램을 넘겨보던 강유찬은 좀처럼 마음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메이린 비서. 올해로 현역 경력이 몇 년이지?”

“협회에서 인정받은 기간으론 총 9년입니다.”

마치 섬세한 비단을 다루듯 하나씩 정보를 넘긴 강유찬은 모든 정보를 확인하고 나서야 홀로그램을 껐다.

“……껄껄, 나는 40년도 훌쩍 넘었네. 헌터 생활에 내 인생 전체를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저도 존경하고 있습니다. 협회장님께선 저희에게 전설 같은 분이십니다.”

메이린이 사무적으로 존경을 표하자. 강유찬은 됐다며 한 손을 휘휘 저었다.

“아아, 오해 말게. 나는 그런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야. 그저 이 정도로 시간을 보내면 놀랄 일이 적어진다는 말을 하고 싶었네.”

반백 년에 가까운 시간.

“난 헌터 생활을 하며 용암의 바다를 본 적도. 수천 년을 잠든 괴수와 그 위에 문명을 이룩한 기계 문명도 본 적이 있었네.”

하지만 신유성의 일은 그런 강유찬에게도 논외였다.

“그러나 이런 일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일세. 자의(自意)로 시공간을 붕괴시키던 드래곤을 스스로 사라지게 만들다니?”

리벨리온의 대장 네임리스의 손에 로쟈가 당한 순간. 사실 사도닉스의 처치는 불가능에 가까웠었다.

드래곤 중에서도 재능만으로 일족의 칭송을 받았던 그녀는 6급 헌터들의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신유성은 그런 사도닉스를 혼자서 처치. 아니 처리했다.

“그리고 부산물에 불과했던 알에서 진정 드래곤을 부화시키다니?”

하나만으로 전례가 없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그 중심에 있는 건 당연히 권왕의 제자인 신유성.

“그러니 유성이가 보여준 공략은 헌터들의 새 지평이 될 수도 있을 걸세. 알에서 부화한 드래곤은 그 증거이자 우리의 보물이지.”

메이린은 역시 유능했다.

그녀는 일반적인 찬사로 보이던 강유찬의 말에서 보물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강유찬의 진의를 파악했다. 보스를 전투로 처치하는 것만이 아닌 또 다른 방식의 공략은 신유성만이 보여준 길이었으니까.

“……보물. 알겠습니다. 그럼 협회에서 고유 번호를 발급하도록 하고. 가온의 파티에는 합당한 보상금을 최대한 기관으로 이송하는 방향을 최대한 고려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메이린이 깍듯한 인사를 올리며 자리를 마무리하려고 하자, 창가를 보던 강유찬은 당부의 말을 건넸다.

“좋네. 하지만 마지막으로 처우에 대해서 묻도록 하게.”

“드래곤의 처우라 하시면…… 어차피 학생들이니 기관을 통하지 않으면 드래곤을 관리하는 건 힘들 것입니다.”

메이린의 말은 현실을 고려한 너무나도 합당한 의견이었지만 강유찬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렇지. ……하지만 유성이가 보여줄 기적이 여기서 끝이 아닐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저 추측에 불과하지만 강유찬은 신유성과 사도닉스. 그리고 벨벳의 연관성을 짚은 듯 보였다.

그건 일개 지부장에 불과한 자신을 볼 수 없는 협회장의 큰 그림.

“네. 그럼 가온을 약속한 일정대로 곧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사무실을 나온 메이린은 비서가 아닌 6급 헌터. 그리고 사도닉스 공략의 일원으로서 생각했다.

‘……그때 전투도 치르지 않고 사도닉스가 사라진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하지만 그건 사도닉스의 전생과 마음을 알지 못한다면 좀처럼 닿을 수 없는 미지의 문제였다.

*     *      *

이번 결정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김은아였지만 강유찬을 비롯한 가족들은 얼이 나간 얼굴로 뉴페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흥흥~♪”

6살? 어쩌면 7살?

어린 나이에도 신유성을 묘하게 닮은 귀여운 외모와 머리에 난 뿔이 난 벨벳의 모습은 김은아의 가족들을 수근거리게 만들었다.

“저, 저 아이는 대체?”

당황한 김석한은 눈까지 동그랗게 변하며 좀처럼 보기 힘든 반응을 보여주었다.

“이 아이는?”

“정말 귀엽긴 한데……. 은아야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니?”

어머니인 김윤하와 아버지인 김성한도 놀라긴 마찬가지. 벨벳은 예의가 바른 건지 아닌 건지 애매한 말투로 둘의 앞에서 퍼뜩- 고개를 숙였다.

“안녕 할아버지. 안녕 할머니.”

당황한 가족들이 아무리 궁금한 눈빛을 보내도 신유성은 벨벳의 곁에서 하하 하고 웃을 뿐. 유일하게 벨벳이 누군지 눈치를 챈 건 김준혁이 유일했다.

“아, 알겠다. 설마…… 공략으로 얻었다던 그 알에서!?”

“뭐!? 알이라면 드래곤?”

“뭬야! 이 아이가 드래곤!? 드래곤이라고!?”

김윤하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김석한이 떠억- 입을 벌렸지만 신유성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벨벳의 곁에서 웃을 뿐이었다.

정작 발표의 주인공이었던 김은아는 자신이 뒷전이 되어버린 상황에 한숨을 쉬었다.

“아니 대체 얜 어떻게 찾아오는 거야?”

“벨벳은 드래곤이야! 드래곤은 아빠가 있는 곳은 어디든 찾아갈 수 있어!”

신유성이 있는 장소라면 공간이동 정도는 쉽다는 벨벳의 말. 보통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드래곤의 스케일에 감탄할 만도 했지만 김윤하는 그저 ‘아빠’라는 단어에 꽂혀 버렸다.

“아니 아, 아빠? 이제 학생인 신유성 학생에게 아빠라니…….”

“그 오리처럼 처음 본 사람을 부모로 따르는 그런 거 아닐까요?”

애써 김준혁이 상황을 무마하려고 했지만 김성한은 안경을 만지며 인상을 썼다.

“아무리 그래도 드래곤이 인간을 따른다고? 정말이지…… 상식을 벗어나도 너무 벗어났구나.”

벨벳의 존재는 철혈의 김석한은 물론이고 도도한 김윤하와 인텔리의 표본인 김성한을 모두 동물원에 처음 놀러 온 아이처럼 만들어버렸다.

그 와중에 벨벳은 자신을 향한 관심이 기쁜지 허리춤에 손을 얹고 당당한 포즈가 일품이었다.

“캬항-! 맞아! 벨벳은 드래곤이야! 벨벳은 대단해!”

시시각각 표정이 썩어가던 김은아는 이렇게 두면 끝이 없겠다는 생각에 벨벳을 잡아끌었다.

“이제 그만! 내가 이야기할 차례니까 다들 나한테 집중해.”

하지만 그렇게 말한 것치곤 김은아는 순순히 잡혀 온 벨벳 앞에 케이크 접시를 놓아주며 은근히 챙겨주었다.

“넌 이거나 먹고 있고.”

“캬항~!”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한다 한들 이런 놀라운 이슈를 순순히 넘어갈 사람은 없었다.

“……으, 은아야? 너 설마 저 아이를 학교에서 키우는 건 아니겠지?”

손녀 바보인 김석한도 그건 아니라며 말까지 더듬으며 물었지만 김은아는 귀찮다는 얼굴로 귀를 만지작거리며 덤덤하게 답했다.

“아직 몰라. 협회가 데려갈 수도 있고. 결과가 나와 봐야 알아.”

쨍그랑!

갑자기 케이크를 퍼먹던 숟가락을 떨어트린 벨벳.

“흐에엑-”

벨벳은 협회가 자신을 데리고 갈 수 있다는 말이 여간 충격이었는지 입을 동그랗게 벌린 채로 김은아와 신유성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깜박깜박.

벨벳은 굳은 채로 말없이 눈을 껌벅였다. 벨벳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놀란 표정만으로 마음을 읽을 수 있을 지경이었다.

엄마? 아빠? 정말로? 어떻게 나를!?

“아니 뭐,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어.”

결국 페이스에 휘말린 김은아가 뒤늦게 무마를 하자 이리저리 눈치를 보던 벨벳은 슬금슬금 다시 숟가락을 잡았다.

“……하여간. 내 이야기를 하자면 나도 어제 엄마 이야기를 듣고 깊이 생각을 해봤어.”

김은아가 운을 떼자 순식간에 가족들의 분위기가 변했다. 특히 김성한은 굳어진 표정으로 누구보다 진지하게 김은아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엄청 미웠지만. 나도 바보는 아니야. 가족들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정도는…… 알게 됐어.”

굳은 표정으로 말을 잇는 김은아의 모습에 또 다시 케이크를 퍼먹던 벨벳이 숟가락질을 멈췄다.

동료이자 파티장.

‘……은아야.’

그리고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로서 신유성은 지금 내뱉고 싶은 말이 산더미 같았다.

하지만 김은아의 결정을 존중하고 가만히 지켜볼 뿐 그 이상의 행동은 할 수 없었다.

“솔직히. 뭐, 나도 처음부터 이렇게 진심으로 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좀 변덕 같기도 하고……. 까놓고 말해서 아카데미에서 짱 먹으면 졸업이나 할 생각이었거든.”

가족들의 뜻을 따르겠다는 건지 신유성과 함께 파티에 남겠다는 건지 도저히 아리송한 김은아의 말에 긴장한 김윤하는 입술을 질끈 물었다.

“응. 맞아. 역시 나였어도 말릴 거야. 오빠가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가족들을 걱정시키면서까지 해야 할 소중한 일은…… 역시 없어.”

당당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던 김은아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이젠 혼잣말처럼 읊조리고 있었다.

그렇게 엄중한 분위기에 김석한과 가족들은 따로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표정이 밝아진 게 눈에 띄게 보였다.

“……근데 말이야.”

그러나 김은아의 이야기는 가족들이 원하는 방향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이젠 생각이 바뀌었어. 위험하더라도 얘들이랑 강해지고 하루하루 새로운 일을 겪는 게 엄청 재밌어. 그리고 이 녀석. 카페도 혼자 못 가는 바보라서 혼자 두고 싶지도 않고…….”

김은아가 내뱉는 말은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직은. 응…… 역시 유성이 파티에서 계속 남고 싶어!”

언제나처럼 김은아는 참 솔직하지 못했다. 기쁜 마음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건 물론이고, 괜히 울고 싶어지는 슬픈 날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강한 척을 했다.

그렇기에 적어도 가족들은 알 수 있었다. 지금의 짧은 발표를 위해 김은아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신유성의 파티에서 지낸 짧은 시간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은아야.”

표정이 굳은 김윤하는 결국 시선을 떨어트리고. 김석한은 복잡해진 표정으로 침음을 내었다.

“으음…….”

누구 하나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는 무거운 분위기. 하지만 그것도 잠시.

꾸욱-

말없이 옆에서 지켜보던 신유성은 김은아의 손에 꽈악- 깍지를 껴주었다.

“……고마워. 은아야.”

물론 신유성이 끝이 아니었다.

이젠 옆에 있던 벨벳까지 김은아를 껴안으며 합세했다.

“캬흐앙- 엄마!”

그러나 엄마라고 부르며 안기는 벨벳의 반응에도 오히려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응하는 김은아의 모습은 여러모로 가족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으, 은아야…….”

“아무리 그래도 엄마라니…….”

여러모로 충격을 받은 가족들이 말을 잇지 못하는 찰나 신유성에게서 손을 빼낸 김은아는 부끄러움을 참고 입을 열었다.

“하, 하여튼…… 이게 내 선택이야. 그리고 나 이제 이건 필요 없어.”

그러나 혼돈에 빠트릴 김은아의 발언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툭-

김은아는 테이블에 무언가를 놓았다. 너무나 익숙한 모양과 색깔의 카드는 오직 신성그룹의 일원에게만 허락되는 카드였다.

심지어 이건 김은아가 5살이 된 순간부터 함께한 카드이자 김은아가 돈의 개념이란 걸 완벽히 상실하게 만들어준 그 카드였다.

“가족들한테 도움받으면서 말로만 해낼 수 있다고 말하는 건 멋이 없으니까. 나도 혼자서 독립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게. 뭐, 그래야…… 다들 마음이 놓일 테니까.”

김은아는 담담히 이유를 말했지만 사실 이미 김성한과 김윤하. 그리고 김석한은 패닉 상태였다.

“그러니까…… 모두 기다려줘. 나 자랑스러운 한 명의 헌터가 되어서 올 테니까.”

하지만 김은아는 이 혼돈의 상황을 만들어 놓은 주제에 세상 누구보다 당당히 저택을 걸어 나갔다.

“은아야! 은아야-! 그, 그게 무슨 말이니 은아야! 네가 이 카드도 없이 살겠다니?”

기겁한 김윤하가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고. 김성한은 유리컵을 잡은 손을 부르르- 떨었다.

“은아가 카드를? ……이 무슨.”

“아니 이건 안 될 일이야! 우리 은아가 돈이 없어 밥이라도 굶고 대중교통이라도 이용한다는 말인가? 금지옥엽으로 살아온 아이가 어찌 그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고? 이건 아니야!”

패닉이 온 김석한이 분개하며 소리쳤지만, 가족들의 혼란에도 상관없이 김은아는 저 멀리 로비에서 신유성과 벨벳을 불렀다.

“야 너희 빨리 안 와?”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일은 벌어진 상황. 신유성은 멋쩍게 웃으며 벨벳의 손을 잡아주었다.

“가자 벨벳.”

“캬항~”

그렇게 김은아는 물론이고 신유성까지 떠나려고 하자 어머니인 김윤하는 다급하게 달려와 무언가를 손에 쥐여 주었다.

“시, 신유성 학생! 잠깐! 혹시! 혹시 모를 일이니……. 일단 이 카드. 신유성 학생이 가지고 있어 주겠어요?”

“하지만 은아가…….”

좋게 거절하려는 신유성의 대답에도 김윤하는 너무나 간절했다.

“은아의 어머니로서 마지막 부탁이에요!”

“저…… 만일을 대비해서 나쁠 건 없잖아? 나도 은아의 오빠로서 부탁할게.”

지금까지 은근히 신유성과 김은아의 편에 서주었던 김준혁까지 부탁을 하자, 신유성은 어쩔 수 없이 카드를 받아들었다.

“네. 알겠습니다. 만일을 대비해서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신유성 학생!”

한도가 없는 카드를 챙겨주며 오히려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하는 기이한 모습. 신유성은 묘한 웃음을 지었다.

‘하나 해결인가.’

그리곤 벨벳의 손을 잡은 신유성은 카드를 꽉 쥐며 당당하게 저택의 현관을 걸어 나갔다.

정말이지 화창한 오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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