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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화 (205/434)

제205화

노란색 조명이 은은한 테라스.

저 멀리 끝이 보이지 않도록 펼쳐진 자연의 바다와 인조적인 불빛이 밤을 몰아내는 도시의 야경은 마치….

자신이 좋아하는 세상의 모습을 한 조각 한 조각 오려 붙인 것 같아서 김은아가 정말 사랑하는 풍경 중 하나였다.

“……여긴 꼭 너한테 보여주고 싶었던 곳인데. 가족들 때문에 눈에 들어오지도 않네.”

비단 테라스의 풍경만이 아니었다. 김은아는 신유성과 함께 근방의 도시를 돌아다니고 싶었다. 가족과 오빠를 제외하면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신유성이 처음이었으니까.

그러니 새로운 일들을 함께하면 분명 이전과는 다르게 즐거울 것 같다고 확신했었다.

“……다 망쳤어. 하도 부탁해서 불렀더니 저런 말이나 하고…….”

김은아는 주황색 의자 위에서 무릎을 끌어안은 채 잔뜩 삐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엄마는 저번에 다 이야기 끝난 것처럼 말하더니…….”

한 번.

“미리 말하면 안 데려올 거 아니까. 속이기나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

“……생각해보니까 화나네? 왜 내가 하겠다는데. ……자기들이 정하려고 해?

화가 난 얼굴로 세 번.

완전히 삐쳐버린 김은아의 투정이 계속 되는데도 신유성은 말없이 밤의 풍경만을 바라보았다.

‘……그렇구나.’

신유성은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말을 하던 김은아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준혁이를 구해준 대가로 파티원이 되어달라고 말이야. 물론 은아가 보답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신성은 절대로 은혜를 잊지 않으니까. 하지만…….]

신성그룹의 부회장 김성한.

김은아의 아버지는 겉모습만으론 마음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무표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임에도 김성한이 김은아를 얼마나 아끼는지는 신유성도 알 수 있었다.

김성한만이 아니겠지.

언제나 김은아를 응원하던 김준혁도 가족들의 편에서 말을 하지 않았던 건. 헌터들의 세계를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일 거다.

각성제를 사용하지 않고선 따라 잡을 수 없었던 재능의 격차. 목숨이 걸린 전투들.

단언컨대 그건 절대로 신성그룹이 김은아에게 바란 일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김은아를 가온에 보낸 이유는 좋은 성적으로 아카데미를 졸업하여 명문 출신의 명찰을 얻길 원했을 뿐이다.

특성을 지녀 헌터가 된다고 모두 위험한 일에 종사하는 건 아니니까.

그래, 생각해보면 모두 같았다.

[갑자기 신유성 학생에게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지만. 애당초 우리가 은아를 가온 아카데미에 보낸 건. 정말 위험한 곳에 나서는 헌터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화를 내는 김은아를 어머니인 김윤하가 무시하고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한 이유도.

[내가 가족들을 대표해 부탁하지. 준혁이를 구해준 보상은 톡톡히 해줄 테니. 은아는 이제 파티에서 빼주게.]

재계의 정점인 김석한이 일개 학생에 불과한 자신에게 직접 부탁을 한 이유도.

“어쩔 수 없지. 모두 은아 너를 위해서……. 하신 말씀들이니까.”

결국 신유성이 평소보다 굳은 얼굴로 생각을 뱉어내자. 김은아는 끌어안은 자신의 무릎에 푹- 얼굴을 숨겼다.

“……그럼. 그럼 너는?”

떨리는 김은아의 목소리는 화가 난 건지 슬픈 건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지금 신유성이 알 수 있는 건 김은아가 무언가를 참고 있다는 정도뿐.

그러나 생각과 달리 다음에 입을 연 김은아의 목소리는 의외로 차분했다.

“……너는 내가 엄마 말대로. 파티를 그만둬도. 진짜 너랑 친구로만 남아도…….”

김은아가 고개를 들어 신유성을 바라봤다. 눈이 붉었지만 울지는 않았다. 김은아의 눈에서 느껴지는 건 크나큰 실망감과 약간의 원망.

“……넌 진짜 아무렇지 않아?”

김은아는 애써 담담하게 물었지만 신유성은 담담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김은아가 파티를 그만둔다니 그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자신이 살아온 17년 중.

가온에 입학한 이후의 시간은 짧지만 각별했다. 다른 모든 시간을 합친 것보다 많은 친구를 사귀었고 많은 일을 겪었다.

김은아는 그중에서도 각별했다.

자신과 함께 기쁨도 위기도 같이 겪은 파티원이었고, 그리고…….

“……은아야 난.”

신유성이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자 김은아는 짧은 한마디로 말을 끊었다.

“난. 엄청 슬플 거야.”

김은아는 오빠인 김준혁이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누구보다 슬퍼했던 당사자였다. 김은아도 가족들이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너희랑 헤어지면. 파티를 나가면……. 물론…… 뭐, 가끔은 보겠지만. 그래도…….”

푹-

김은아가 다시 무릎에 고개를 묻었다. 표정조차 보이지 않는 그 틈 사이에서 흘러나온 건 자신감 없게 중얼거리는 작은 목소리였다.

“……난, 엄청, 슬플 거 같아.”

밤바람이 싸늘했다.

여전히 의자 위에서 쭈그린 채 감정을 삭이는 김은아의 모습을 보자. 신유성은 아름답게만 느껴지던 이 곳의 풍경이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도시의 사람들과 동떨어진 채, 이 성과 같은 저택에서 김은아는 얼마나 오랜 시간 이 풍경을 바라보았을까?

분명 겪어본 경험이다.

도시와 동떨어진 산속에서 우두커니 선 채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바라본 건.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신유성은 그때의 감정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알 수 있어.’

하나둘 꺼져가는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며 신유성은 생각했다. 그 외로움 속에선 이 풍경도 그리 아름답지 않았을 것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제 자신과 김은아는 너무나 가까워졌다.

그런 상대와 이런 식으로 멀어져야 한다니. 분명 김은아는 앞에선 아무렇게 강한 척하더라도 자신의 말처럼 엄청 슬퍼할 것이다.

그리고.

혼자 남게 된 어느 날은 이 아름답기만 한 풍경을 보며 바보처럼 훌쩍일 것이다.

“……은아야.”

그런 김은아의 모습을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신유성은 어딘가 시린 기분이 들었다. 분명 찬바람 때문은 아니었다.

툭.

김은아는 주황색 의자에 앉아 검지를 꼼지락거리더니 신유성의 걱정이 담긴 목소리에 풋- 하고 웃었다.

“야, 나도 바보는 아니야.”

김은아는 착각하지 말라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가족들이 날 위해서. 이런다는 것 정도는 알아.”

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 강한 척 구는 건 김은아의 오랜 성정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었다.

“너랑 같은 파티가 된다는 게. 위험한 일이라는 것도 알고.”

오늘의 김은아는 신유성에게 솔직하게 말할 뿐이었다.

“……너랑 내가 다르단 것도 알아. 넌 꿈이 있잖아. ……그치?”

신유성에 대한 생각.

“그리고…… 가족들이 걱정한 대로 진짜 위험한 일을 당하면. 분명 엄청 후회하겠지.”

자신에 대한 생각.

김은아는 이야기가 너무 진지해졌다고 생각했는지 신유성을 보며 싱글싱글 웃었다.

“솔직히 나 다치고 싶지도 않고. 아픈 것도 더러운 것도 질색이고. 비 오는 날도 찝찝해서 싫고…….”

같은 헌터라도 신유성이 존경하는 권왕 같은 헌터와 김은아가 추구하던 길은 정반대였다.

“……뭐, 엄마도 잘 알겠지. 우리 파티에 나는 안 어울리는 사람일 수도 있고. 근데, 그, 너…… 크흠!”

김은아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도로 삼켰다. 이런 진지한 이야기가 민망한지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오늘이 아니라면 이런 이야기를 신유성에게 할 수 있을까?

자신이 무엇을 느꼈는지 무엇이 고마운지 말할 수 있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김은아는 피어오르는 민망함을 억누르고 솔직하게 말했다.

“……너, 너희들이랑 있는 게. 제일 좋은 걸 어떻게 해?”

김은아는 파티 생활을 통해, ‘무엇’을 하는지보다 ‘누구’와 함께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증거로 김은아는 헌터로서 강해지는 것이 너무 즐거워졌다.

새로운 위험을 이겨내고 파티원들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나눌 때가 너무나 즐거웠다.

“유성이 넌 어때?”

김은아는 아까와 같은 물음을 사뭇 다르게 물었다. 모든 걸 털어놓고 이젠 여유로움마저 느껴지는 김은아의 표정에 신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네가 떠난다면…….”

그리곤 신유성이 지어준 표정은 김은아와 같은 미소.

“은아 네 말처럼 분명…… 난 엄청 슬플 거야. 어떤 파티원이 들어와도 네 자린 누구도 대신 할 수 없을 거야.”

어느 때보다 확신을 가진 신유성의 대답에 김은아는 자연스럽게 야경을 바라보며 시선을 피했다.

“뭐, 그, 그건…… 그렇지!”

민망함에 큰소리를 치는 김은아의 손등 위에 누가 손을 겹쳤다. 차가웠던 밤의 공기와 다르게 따뜻한 손안에서 느껴지는 온기.

“……어?”

당황한 김은아는 화들짝- 신유성을 바라보았지만 신유성은 사람 좋게 웃고 있었다.

“어째, 넌 은근히 이런 거에 능숙한 것 같단 말이지.”

김은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신유성에게 몸을 기댔다. 둘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새카만 밤하늘에 아름답게 수 놓인 별들의 풍경은 차갑고도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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