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9화
스미레는 여기저기 널려 있는 병정들의 잔해들을 모아 모닥불을 만들었다. 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인지 활활 타오르는 병정들의 잔해.
화르르-
밤이 되어 싸늘하게 부는 바람에 파티원들은 하나둘 모닥불 앞에 옹기종기 모였다.
“……불이다.”
“우, 우와 직접 불을 피우다니. 역시 스미레…….”
어려진 아델라는 간단한 어휘로 짧은 말밖엔 뱉지 않았고. 어려진 에이미는 모닥불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나마 17살의 기억을 유지하고 있는 분은…….’
스미레가 이시우와 신유성을 바라봤다. 이시우는 세심하게 총을 닦고 있었고, 신유성은 진지한 눈으로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이시우 씨와 유성 씨!’
하지만 스미레의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졸리다.”
“……배고파.”
총을 닦다 하품을 하며 찔끔- 눈물을 흘리는 이시우와 불을 바라보며 검지를 입에 무는 신유성은 누가 봐도 7살의 어린아이였다.
‘이, 이럴 수가…….’
스미레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공략을 하는 동안 천천히 과거의 기억을 잃어 가는 게 토이월드가 가진 진짜 무서움이라는 걸.
스미레는 꽈악- 작은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어떻게든 내일 안으로 공략을 끝내야 해.’
그러니 토이월드를 공략하기 위해서 힘을 내야 하는 건, 그나마 17살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스미레 자신뿐이었다.
“그럼 여러분! 일단 식사부터 하실까요?”
하지만 공략이 아무리 중요해도 일단 식사가 먼저. 스미레는 배고파하는 신유성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식사? 좋아! 근데 괜찮아? 주위엔 장난감밖엔 없는데?”
에이미가 걱정스럽게 묻자, 스미레는 포켓에서 준비해둔 재료들을 꺼냈다.
“이럴 줄 알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게 반찬들을 담아 왔어요! 재료도 준비했으니 모닥불에 국만 끓이면 되겠네요.”
준비성이 철저한 스미레가 있는 이상, 파티가 굶을 일은 없었다. 탑에서 스미레는 전투력은 물론 언제나 든든한 요리사.
신유성은 기대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겠다. 고마워. 스미레.”
스미레는 그런 신유성의 모습에 괜스레 기분이 간질거렸다.
‘어려진 유성 씨……. 귀여워!’
다가가기 쉬운 상냥한 겉모습 때문인지 스미레는 어딜 가든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덕분에 지금까지 귀여운 아이들을 질릴 정도로 많이 봐왔지만 신유성은 차원이 달랐다.
귀여움이라는 단어를 인간의 형태로 빚어낸 모습이었다.
거기다 신유성은 오전까지만 해도 냉철함을 유지했지만 어린아이의 몸에 동화됐기 때문인지, 고개를 비스듬히 갸웃- 거리고 있었다.
‘기억이 동화되시면서 점점 귀여움이 돋보이고 있어…….’
솔직히 이곳이 탑만 아니라면 스미레는 어린 신유성을 좀 더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곳은 탑.
도리도리!
세차게 고개를 저은 스미레는 신유성의 마성을 떨쳐내려 애썼다.
하지만 17살의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스미레라 이 정도로 버티는 것이지, 이미 7살에 동화된 김은아와 아델라는 이야기가 달랐다.
“야. 너 여기! 내 옆에 앉아.”
오르카에 기댄 김은아는 어떻게든 자신의 옆자리에 신유성을 묶어두려고 했고. 아델라는 아까 주웠던 곰인형 대신 신유성의 팔을 인형 삼아 붙어 있었다.
“……따뜻해요.”
“너희 너무 붙어 있잖아! 유성이 너 빨리 내 옆에 와!”
아델라와 김은아는 그렇게 한동안 신유성을 두고 쟁탈을 벌이더니 결국 타협을 했다.
“……폭신해요.”
“흥. 왜 너까지.”
오르카를 베고 누워 있는 아델라와 김은아. 멍한 얼굴로 그 중간에 끼어 있는 신유성.
“빨리 스미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싶어.”
아델라는 뻥 뚫린 동굴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오르카의 푹신한 촉감과 모닥불의 따뜻함. 그리고 파티원들의 시끌벅적한 대화가 왠지 모르게 좋았다.
“……이 인형.”
기분이 좋아진 아델라는 오르카의 폭신한 털을 만지더니 김은아에게 물었다.
“이름.”
김은아는 아델라의 짧은 질문에 못 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곧잘 대답해주었다.
“이름은 오르카야. 인형이라고 부르지 마. 내 친구야!”
같은 7살이지만 아델라는 오르카를 인형이라고 부르고. 김은아는 오르카를 친구라고 부르고 있었다.
아마 이건 같은 7살이라도 김은아의 정신이 아델라보다 더욱 어리다는 증거였다.
좋게 보면 순수하다는 이야기였지만 어려진 김은아는 거기에 자신의 상상력과 꿈을 치덕치덕- 덧붙이고 있었다.
“난 언젠가 오르카를 타고 북극에 갈 거야! 그럼 거긴 펭귄이랑 북극곰도 있겠지.”
김은아의 목표를 들은 아델라는 고개만을 끄덕일 뿐 굳이 지적을 하지 않았다.
“……북극은 추워요.”
도리어 맞장구를 쳐주는 아델라.
어려졌기 때문인지 꽤나 후한 아델라의 반응에 흥이 오른 김은아는 더욱 눈을 빛냈다.
“그럼 태평양!”
“차라리… 아마존.”
“갑자기 아마존?”
“……아마존에는 핑크색 돌고래가 있어요.”
범고래가, 아니 오르카가 아마존을 갈 수 있을 리가 없었지만 어린 김은아는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오, 그건…… 좀 보고 싶네……. 좋아! 그럼 북극 갔다가 아마존!”
그렇게 김은아가 평생 지켜지지 않을 목표를 세우는 동안. 열심히 요리를 하는 스미레와 채찍으로 묘기를 부리는 에이미.
아델라는 따뜻한 분위기의 파티를 보며 생각했다.
‘여기…… 무척 좋아.’
7살의 아델라기에 떠올릴 수 있는 솔직한 생각. 협회의 던전 공략도 1인으로 통과했던 아델라였다. 당연히 17살의 아델라는 파티의 유무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와 여럿은 확실히 달랐다. 그저 전투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곳이 있고, 그곳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는 건 엄청나게 큰 차이였다. 그 차이를 알게 된 아델라에게 신유성의 파티는 계속 남아 있고 싶은 따뜻한 장소였다.
* * *
탑을 공략하는 건 어렵다.
특히 지금 공략 중인 10층처럼 특수한 페널티가 부여되는 층은 더욱 그렇다.
10층은 평범한 헌터라면 정신이 7살로 퇴행해 버린 채로 계속 토이월드를 떠돌다 결국 지쳐 쓰러져버릴 장소였다.
하지만 가온의 파티는 달랐다.
탈 7살의 전투력을 가진 신유성.
17살의 정신을 유지 중인 스미레.
토이월드의 미로를 꿰뚫는 이시우.
특성의 연산에 천재적인 아델라.
두려움을 극복하고 결국 전기를 쏘는 김은아.
그리고.
누구보다 매운 것을 잘 먹는 에이미까지.
이번 토이월드 공략대는 지금까지 토이킹이 상대한 다른 공략대와 차원이 달랐다.
“이런 망할! 7살 맞아? 대체 어디서 이런 놈들이!”
곰인형에 들어간 토이킹은 짧은 다리로 다다다- 도망을 갔지만 신유성을 비롯한 파티원들의 진격하는 속도가 더욱 빨랐다.
“나한테는 전부 보인다고.”
이 모든 건 천리안과 투시를 동시에 사용하는 이시우의 눈 덕분.
다다다다!
칼과 창을 든 장난감 병정들이 밀려들었지만 그건 개미핥기에게 덤비는 개미처럼 너무나도 무의미한 반항이었다.
파작! 퍽!
신유성은 간단한 동작으로.
나무로 된 병정들을 박살내버리고.
아델라는 날아오는 화살들을 허공에서 얼려버렸다.
‘보통은 아이로 변하면 겁을 먹기 마련인데…….’
토이킹의 눈에 핑크머리만 빼면 신유성의 파티는 한 명 한 명이 현역 헌터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탓탓탓!
순식간에 병정 3개의 목을 비틀어 떼어내며 다가오는 공포의 신유성.
탕-! 탕탕!
이시우가 쏜 총알로 다리에 구멍이 뚫리며 솜이 새어나오자. 토이킹은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이, 이러면 어쩔 수 없군…….”
얼마 만에 느껴보는 위기일까.
토이킹은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토이킹은 상대를 이기는 일이 쓰러트리는 게 전부는 아니라는 걸 알았다. 상대가 탑의 규칙이 적용되는 토이월드에 갇혀있는 이상.
시간을 끌수록 유리한 건 토이킹이었다.
‘결국 도망만 치면 되는 거야!’
화아악!
토이킹.
아니 이젠 평범한 장난감이 되어버린 곰인형의 몸이 쓰러졌다.
툭!
그리곤 이내 곰인형의 몸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 이건 장난감에 빙의를 할 수 있는 토이킹의 특성으로 흔히들 유체이탈이라고 부르는 현상이었다.
‘일단 도망가자. 그리곤 지금처럼 평범한 장난감의 몸에 숨어 있는 거야. 딱! 한 달! 한 달만 숨어 있으면 제 풀에 지치고 말거야!’
그렇게 나름의 작전을 짜며 도망치는 토이킹에게.
번쩍!
한줄기 빛이 작렬했다.
마치 번개가 내려친 것처럼 주위가 밝아졌고, 오르카로 토이킹의 영체를 휘둘러 친 김은아는 당당하게 외쳤다.
“빠샤-!”
김은아의 일격과 함께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 동시에 포켓도 푸른색의 홀로그램을 뿜어냈다.
[토이 왕국을 부수고. 토이킹의 영혼을 봉인 하셨습니다.]
[탑의 10층. 토이 월드를 클리어 하셨습니다.]
[참가자 중 무작위로 뽑힌 1명은 탑의 축복을 받습니다.]
[탑의 축복이 따르기를.]
데구르르-
갑자기 허공에서 생긴 슬롯 머신은 엄청난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르르르르르- 탁!
멈춰버린 슬롯 머신에 그려진 건 신유성의 얼굴.
[축복: 토이 월드의 규칙!]
[효과: 참가자가 원하는 순간. 페널티를 비롯한 탑의 규칙을 1회 무시할 수 있습니다.]
“이겼다!”
홀로그램을 확인한 에이미가 소리를 치고.
“다 끝난 거지!?”
흐뭇한 얼굴로 웃는 이시우와.
“이제 돌아갈 수 있어요!”
이제야 걱정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기뻐 보이는 스미레.
“내가 마지막에 처치한 거 알지?”
우쭐해진 김은아가 생색을 내며 모두가 기쁜 이 순간에.
상상도 못한 일이 닥쳤다.
김은아의 범고래 인형인 오르카가.
“뭐냐! 이 불편한 지느러미에. 괜히 덩치만 큰 바보 같은 몸은!”
살아서 말을 한 것이다.
아무래도 토이킹의 영혼이 오르카에 봉인된 모양이지만 어려진 김은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기쁜 얼굴로 소리쳤다.
“오, 오르카가……. 오르카가 살아 있써!”
때아니게 7살 김은아의 동심이 지켜진 순간에도 어려진 신유성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머리. 떼어내야 하나?’
하지만 오르카는 김은아가 아끼는 인형이고, 탑의 10층은 이미 공략한 상황. 신유성은 머리를 떼어내려던 손을 멈췄다.
‘그래도…… 은아가 좋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