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7화
토이왕국은 어린이들이 바라는 이상향 같은 장소였다. 그렇기에 장난감은 물론이고 대부분 아이들의 상상력과 관련된 장소가 많았다.
만약 장난감으로 된 왕국이 있다면 어떨까?
만약 드래곤이 사는 동굴이 있다면 어떨까?
만약 과자로 이루어진 숲이 있다면 어떨까?
“설마 이거…….”
에이미가 짧은 감탄을 뱉었다.
지금 에이미가 발견한 건, 천천히 아래를 향해 흐르는 갈색의 강물.
“……진짜로?”
에이미는 강물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주읍!
그리곤 갈색 강물에 넣었던 손가락을 핥았다. 은은하게 커지는 카카오의 향기와 너무나도 달콤한 맛.
에이미는 헤엑! 하고 감탄하며 눈을 크게 떴다.
“이거 진짜 초콜릿이야!”
“너 그러다 탈나. 그게 뭔 줄 알고 집어먹어?”
7살의 나이가 됐지만 이시우는 담담했다. 오히려 밝은 척 연기를 하던 첫 만남과 달리 7살의 이시우는 더 어른스러운 모습이었다.
“그, 그렇지. 아무리 신기해도 여긴 탑이니까. 정신 차려야지…….”
그러나 에이미는 말과는 달리 몸을 낮춰 입을 땅에 가져다댔다.
설마 이것도 과자인걸까?
7살이 되어버린 에이미는 자제력을 잃었는지 조심스레 혀로 초록색 풀을 핥아보았다.
탱글.
혀를 튕겨내는 말캉한 촉감.
이곳의 풀은 메론과 사과가 섞인 맛과 향기가 나는 달콤한 젤리였다.
“마, 맛있어…….”
사실 에이미가 보이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어린이라면 한 번쯤 꿈꿔봤을 간식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라니.
어린아이의 몸에 동화되고 있는 지금의 에이미에겐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러나 간식에 심취한 에이미가 한 가득 풀을 베어 물고 있을 때 이시우는 천천히 풀이 누워있는 방향을 살폈다.
‘젤리인데도 한쪽 방향으로 누워 있는 풀이 있고. 심한 곳은 으깨진 자국도 있군.’
오히려 평범하지 않은 건 에이미가 아닌 이시우 쪽이었다.
이시우는 7살의 지능에 맞춰지고 있는 와중에도 보여주는 행동들이 특수부대를 방불케 했다.
꽈악.
이시우는 너무도 익숙하게 얇은 젤리 풀을 들어 공중에서 흩뿌렸다.
사아아-
피부로도 느끼기 힘든 미약한 바람이지만 얇은 무게 탓에 한쪽으로 흩날리는 젤리풀.
‘바람의 방향은 우리가 이동하는 곳에서 북서. 그런데 젤리풀이 누워 있는 장소가 북동쪽으로 향하고 있군.’
이건 누군가 숲에 들어왔다는 발자취가 확실했다.
‘그런데도 돌아온 흔적은 없으니. 이 경우는 2가지 추측이 가능하겠군. 첫 번째는 누군가가 이 초콜릿 강을 건너. 다른 곳을 통해 나왔을 거라는 추측이고. 나머지는…….’
사악.
살짝 몸을 낮춘 이시우는 가늘어진 눈으로 숲의 북동쪽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남아 있다.’
어쩌면 자신들을 추격하기 위함일지도 모르는 일. 이시우는 포켓에서 작은 플라스크 병을 하나 꺼내 초콜릿을 담기 시작했다.
“시우. 너도 먹으려고 그러는 구나!? 그럼 이거 찍어 먹어봐! 나뭇가지가 비스킷이야!”
눈을 빛내며 비스킷 나뭇가지를 건내는 에이미. 하지만 이시우는 에이미의 강력한 추천도 무시하고 병에 담았다.
‘굳기 전에 빨리 뿌려야겠군.’
그리곤 이시우는 담아둔 초콜릿을 이용해 일부러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초콜릿을 흘리고 다닌 것처럼 자연스럽게 경로를 만드는 이시우.
‘이렇게 하면 추격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겠지.’
거기다 병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이시우는 일부러 흘려둔 초콜릿의 방향을 세 갈래로 만들어두었다.
하읍- 냠냠.
“여기 흙도 케이크야…….”
에이미는 숲 전체를 먹어버릴 기세로 시식을 하고 있었지만 이시우는 오히려 좋게 생각했다.
‘……이렇게 과자들을 먹어두면 상대도 흔적을 의심하지 않을 거야. 생각 없는 7살. 어린 아이들처럼 보일 테니까.’
마무리를 짓기 위해 각종 트랩까지 설치해둔 이시우는 짝짝- 고사리 같은 손을 털었다.
“이 정도면 됐어. 이제 숨자.”
“응응! 나도 진짜 다 먹었어.”
헤헤- 하며 나이에 맞게 티 없이 밝아 보이는 표정의 에이미와 7살의 얼굴로 너무나도 냉혹한 표정의 이시우.
퍼어엉!!
이시우가 추격자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폭탄을 터트리자, 에이미는 이시우를 따라 쫄래쫄래 나무 뒤로 숨었다.
“자, 따라와. 지금부턴 상대가 어디로 움직일지 예측하는 거야.”
“상대 움직임을?”
“흔적을 남겨둔 지금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 상대는 내 의도대로 추격을 시작할 테니까, ……남은 건 은폐의 기본만 알면 되는 일이야.”
이시우는 에이미에겐 알쏭한 이야기를 하더니 나무 하나를 가리켰다.
“아까 발자국의 흔적으로 보아. 상대는 많이 쳐도 9인 이하의 숫자야. 그런데 내가 지나간 흔적을 3갈래로 나누어 두었으니 상대는 몇 명으로 쪼개질까?”
“어려져도 내가 나누기는 할 줄 알지! 당연히 3명!”
정답을 맞춘 에이미가 자랑스럽게 손가락을 내밀자 이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가 처음 상대해야 할 인원은 최대 3명이겠지. 그래서 내가 나무가 많은 이곳을 택한 거야. 기물이 많으면 시야가 차단되고 움직임이 제한되거든.”
이시우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천천히 손바닥을 떼어내자 푸른색의 마나가 눈에서 아름답게 빛났다.
“좋아. 오고 있네.”
반면 이렇게 제한된 장소에서도 이시우는 천리안과 투시로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전략전술에 능한 이시우는 평범했던 장소를. 자신에게는 가장 유리한 장소로 만들 수 있었고, 상대에게는 가장 불리한 장소로 만들 수 있었다.
“문제는 저 장난감들이 뭘 원동력으로 움직이는지 코어를 알 수가 없는 건데. 어쩔 수 없지.”
탁. 철컥!
이시우는 어린이용으로 반동을 줄인 공기총에 탄창을 집어넣었다.
“……머리랑 심장에 총알을 박아 넣어 보는 수밖에. 아무리 그래도 그럼 멈추겠지.”
7살의 귀여운 목소리로 말하기엔 너무나 살벌한 이야기.
“저 녀석들 몸. 플라스틱이나 유리로 이루어진 거 같으니까. 파편이 튀는 거 조심하고.”
하지만 담담하게 말한 이시우는 천천히 몸을 은폐했다.
“나, 나두 그럼. 네가 신호를 주면 채찍으로 공격할게!”
하지만 에이미가 말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저벅. 슥. 저벅. 저벅.
장난감 병사들이 경계를 한 채, 젤리 수풀을 헤치며 다가오자 이시우는 아까 준비해둔 트랩을 당겼다.
싸아아악!
살벌한 소리를 내며 엄청난 속도로 되돌아가는 특수 소재의 줄.
사각!
장난감 병정들의 발목이었던 유리가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만약 상대가 살아 있는 생물이라면 상상만 해도 끔직한 광경이었다.
“오, 오우…….”
잔인한 광경에 놀랐는지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7살의 에이미. 반면 이시우는 장난감 병정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탕!
“으흐아…….”
에이미는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질색을 했지만 이시우는 아무렇지 않게 장난감 병정에게 다가갔다.
“이런 패밀리어들은 형태가 남으면 복구될 수도 있으니까.”
툭! 주르륵-!
그리곤 용해액이 담긴 플라스크를 던져 장난감 병정들의 몸을 흔적도 없이 녹여버렸다.
“흐이…….”
이시우의 완벽하면서도 잔인한 손속에 그저 감탄사만 연발하는 에이미. 이시우는 그런 에이미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야. 다음 구역으로 가자.”
* * *
툭!
“아얏!”
장난감 병정의 손에 거칠게 던져진 스미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 토이왕국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감옥의 시설도 생각보다 나쁘진 않았다.
바닥에 쟁반이 놓인 게 아쉽지만.
비스킷과 사탕.
그리고 음료가 담긴 간식거리들하며 푹신한 매트리스 같은 누워서 잘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은아 씨라면 혼자 남으셨어도 잘 하고 계시겠지.”
스미레는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도 김은아를 걱정을 하며 머리에 붙은 뾱뾱이 화살을 떼어냈다.
톡. 톡.
‘그래도 마나만 사용할 수 있으면. 여기서 나가는 것도…….’
하지만 철창의 안에서 스미레의 마나는 발휘되지 않았다.
[토이왕국의 규칙!]
[내용: 토이 왕국의 포로는 감옥을 탈출하기 전까지 마나를 사용 할 수 없습니다.]
눈앞에 떠오르는 홀로그램을 보아하니 마나를 사용하고 싶다면 일단 철창을 나가야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바깥에선 마나를 사용 할 수 있으니. 누군가 밖에서 철창을 부숴주기만 한다면…….’
감옥을 나가 포로를 벗어날 수도 있는 일. 팀원 중 누가 오더라도 마나만 있다면 이정도 철창은 부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
스미레의 간절한 바람이 닿은 덕분일까? 모퉁이에서 빼꼼- 김은아가 고개를 내밀었다.
“안녕. 스미레!”
당당한 김은아의 표정에 환해지는 스미레의 얼굴.
“은아 씨! 구해주러 오셨군요!”
하지만 김은아는 금방 시무룩한 얼굴로 변했다.
“아니…….”
저벅저벅.
그제야 장난감 병정은 오르카에 숨은 김은아를 들고 감옥 안으로 들어왔다.
“……나도 잡혀와써.”
시무룩해진 김은아는 흐잉- 소리를 내며 괜히 오르카의 지느러미를 파닥거렸다.
“오랜마네 쓰니까. 전기가 잘 안 나오더라구……. 그래서 도망치다가 오르카 안에 숨었는데. 잡혔어. 어떻게 아랐지…….”
스미레는 그저 웃고 있었지만 내심 속이 타들어갔다.
‘……갑자기 범고래가 있는데, 들키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스미레는 김은아가 멀쩡하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헤헤…. 그럴 수도 있죠. 쥬스 드실래요?”
결국 스미레가 멋쩍어하며 묻자.
오르카에 들어간 김은아는 못 이기는 척 지느러미를 팔랑거렸다.
“응……. 사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