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6화
음산해 보이는 동굴.
공포에 질린 김은아는 창백해진 얼굴로 스미레의 옷깃을 잡고 찰싹 붙어 있었다.
“야, 스미레. 나한테서 떠, 떠러지지 마……. 아랏지?”
겁을 먹은 김은아를 위로해주기 위해 스미레는 배시시 웃어주었다.
“헤헤, 그럼요! 은아 씨 곁에는 제가 있으니까요.”
“후우, 그래. 근데 나는 지짜로. 이해 할 수가 업네. 탑은 왜 사람을 7살로 만드는 거야?”
김은아는 이곳이 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건 김은아가 17살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
“그래도 다행스럽지 않나요? 저희들의 기억은 남겨뒀으니까요.”
스미레의 말처럼 공략을 위해선 좋은 신호였다. 하지만 김은아는 아니라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근데 먼가. 묘해……. 나 겁도 마나지구……. 손에서 전기도 안 나와…….”
김은아는 전기를 피워보려 애썼지만 금방 손끝에서 흩어지고 말았다.
‘이건 아마도…….’
그 모습을 지켜보는 스미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김은아는 17살의 기억은 가지고 있지만. 17살의 지능과 능력은 아니었다.
‘은아 씨의 행동만 봐도. 무척 귀여운 게 7살에 가까워……. 몸이 어려진 이상. 정신도 온전할 수는 없는 거겠지…….’
그 증거로 ‘정신간섭’을 막은 스미레는 7살이 되었지만 성격과 행동이 평소처럼 너무나도 멀쩡했다.
“으휴, 난 지짜 왜 이러케 바보 가트까 전기도 못 쏘고 흐우우…….”
반면 기억이 있음에도 완전히 어린 시절로 변해버린 김은아의 성격. 스미레는 자신의 옆에서 축- 어깨를 늘어트린 김은아를 보며 애써 표정 관리를 했다.
‘귀, 귀여워…….’
그러나 어려졌음에도 촉만은 여전한지 김은아는 웃음을 참는 스미레를 향해 찌릿- 눈빛을 보냈다.
“머지, 스미레 너. 표정 기분 나쁜데……. 나 비웃고 있지!”
“아, 아뇨! 아무 생각도 안했어요!”
“진짜? 아닌 거 같은데…….”
김은아는 흐음- 하고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이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었다.
“긍데. 넌 7살인데 해골 소환 할 수 있네?”
“전 보기보다 어렸을 때부터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거든요. 물론 보시다시피 강하진 않지만요.”
지금 스미레의 해골은 김은아를 들어 올리는 것도 무리. 기껏해야 7살이 된 스미레의 완력과 비슷한 정도였다.
“흐음, 아무래도. 어려지며 마나와 특성의 숙련도가 줄어든 탓이겠죠.”
“그래? 그럼 우리끼리 이길 수 잇으려나……. 유성이가 이써야 하는데……. 흐우움…….”
고민에 빠진 김은아가 턱을 괴고 앓는 소리를 내자. 스미레는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귀여우셔.’
평소처럼 강한 모습의 김은아와 달리 적어도 오늘의 김은아는 스미레가 지켜줘야 할 대상이었다.
“그럼 일단 동굴 밖으로 같이 나가볼까요? 아까 본 바로는 내부가 미로처럼 되어 있으니까…….”
탁.
“저처럼 이렇게 한쪽 벽을 따라서 움직여주세요!”
스미레는 어린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손바닥을 벽으로 짚어주며 말해주었다. 그러자 교육이 통했는지 김은아는 스미레를 따라 진지한 얼굴로 벽을 짚었다.
“이러케!?”
하지만 너무 강하게 짚었는지, 천장에서는 김은아를 향해 돌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은아 씨!”
스미레는 어떻게든 김은아를 지켜주려 손을 뻗었지만.
‘늦었다!’
톡!
돌 부스러기에 맞은 김은아는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으항!”
만약 17살이었다면 눈살을 찌푸리고 말 정도의 충격이었지만 기껏해야 꿀밤 정도의 타격이었지만. 7살의 김은아는 머리를 부여잡더니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은아 씨! 괜찮으세요?”
“안 갠차나, 스미레가 둘……. 하늘이 마구마구 도라…….”
스미레의 물음에도 충격 때문인지 헤롱해 보이는 김은아의 얼굴. 스미레는 넘어진 김은아를 보며 멋쩍은 미소를 흘렸다.
‘좀, 쉬다가 가야겠네…….’
* * *
탑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건 온통 노란색과 빨간색 장난감 블록으로 이루어진 세상. 신유성은 진지한 얼굴로 상황을 정비했다.
사아아.
일단 손에 피워 오르는 마나의 불꽃을 보니 7살에도 신유성의 능력은 충분했고.
‘탑에 관한 기억이 남아 있군.’
자신이 누구인지, 이곳이 어디인지, 왜 왔는지에 관한 기억까지도 신유성은 완벽하게 겸비하고 있었다.
다만 7살이 되며 짧아진 팔과 다리는 신유성에게도 불편하긴 했다.
‘키가 작아서 시야도 좁고. 평소처럼 감각도 예민하지 않아.’
하지만 자신에게 남아 있는 기억을 통해 전투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이상, 신유성에게 무서운 적은 없었다.
‘그래도 기억이 남은 이상, 팀원들의 백업만 있다면 3급까지는 충분히 처리할 수 있겠어…….’
거기다 신유성의 예민한 감각은 어려졌음에도 일반인을 훨씬 웃돌고 있었다.
스윽. 팟!
그 증거로 신유성이 고개를 돌린 곳에 장난감 병정들이 흡착판이 달린 아동용 화살을 신유성에게 겨누고 있었다.
신유성이 기척을 알아채자 팽팽하게 당긴 활시위를 놓아버리는 장난감 병정.
휴우웅-!
어려진 아델라는 아직 화살을 눈치 채지도 못한 상태였지만. 신유성은 날아오는 향해 자세를 잡았다.
그건.
지금은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7살의 신유성이라면 절대 사용할 수 없었던 기술의 자세였다.
탁.
‘오른발에 무게를 싣고.’
신유성은 발을 단단한 회전축으로 삼아 몸을 뒤틀었다.
‘충분히 힘이 실렸을 때 상응하는 마나를 불어 넣는다.’
신유성의 움직임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겨우 7살의 육체에 어린 시절에는 알지 못했던 오의를 담아내고 있었다.
‘마지막 문제는 마나다.’
신유성은 기술에 필요한 마나를 보충하기 위해 주변의 마나를 끌어다 사용했다. 대부분의 헌터는 자신의 체내에 잠재된 마나를 사용한다.
인간이 공기 중의 마나를 끌어다 쓰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
그러나 대기 중의 마나를 끌어다 쓰는 건 물론이고. 누군가와 하는 약속까지 마나의 힘이 깃드는 특별한 존재가 있었다.
[사도닉스의 편린-(화신 크루페오스의 조각)이 힘을 발휘합니다.]
[사도닉스의 편린-(사도닉스)의 힘이 발휘됩니다.]
[습득 스킬- 마나 변환]
[※주의: 사도닉스의 편린-(화신 이그니스의 조각)이 부족해 힘의 80%만 적용 됩니다.]
7살의 몸으로 발휘하는 드래곤의 힘. 신유성은 대기 중에 펼쳐진 마나를 끌어다 손 안에 모았다.
남은 건 폭풍처럼 몰아치는 이 힘을 바깥으로 뿜어내는 일.
파악!
몸을 회전시킨 신유성은 손바닥을 펼쳤다.
투신류 폭룡암쇄장(暴龍巖碎掌)
콰가가각!!
폭룡암쇄장의 거대한 마나폭풍은 장난감 화살은 물론이고. 자신이 지나간 곳에 있던 모든 물체를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
9살 때 사용했던 폭룡암쇄장보다도 몇 배나 강한 위력의 기술을 7살의 신체로 성공시킨 것이다.
“오…….”
그런 신유성을 보며 멍한 얼굴로 감탄을 하는 아델라. 신유성은 손등에 새겨진 점점 희미해지는 사도닉스의 성흔을 보며 생각했다.
‘……생각보다 쉽게 깨겠는걸?’
전투의 기억이 있는 신유성은.
이미 7살이 아니었다.
* * *
프슥. 팍.
자갈들을 밟고 걸어 나오는 어린 아이들의 발소리. 토이왕국의 보스인 토이킹은 동굴 앞에 숨어 상대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녀들이여. 나를 원망하지 마라. 원래 전투는 냉혹한 법이니까.’
저벅. 적.
“으후, 스미레. 나, 아까 머리가 핑핑 도랏서…….”
입구의 근처에서 김은아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30여 체의 장난감 병사들은 일제히 활의 시위를 당겼다.
상대는 냉철한 판단력과 자신이 가진 특성의 힘을 마스터한 가진 현역 헌터가 아닌, 7살로 변해버린 꼬마들.
‘생사가 걸린 탑의 공략에서 이렇게까지 무방비하다니…….’
저벅. 적. 도도도-
“햐! 스미레 저거 봐! 밖이다! 장난감도 엄청…….”
동굴을 빠져나온 게 기뻤는지 김은아가 짧은 다리로 종종거리며 잘도 동굴을 뛰쳐나오자.
토이킹은 지시를 내렸다.
“모두 쏴라!”
토이킹의 명령이 떨어지자 병정들은 시위를 놓았다.
슈우욱!
허공을 날며 빠른 속도로 김은아를 향해 쏟아지는 화살들.
“흐엑!”
김은아는 갑자기 닥친 상황에 무서웠는지 질끈 눈을 감았고.
“은아 씨-!”
귓가에는 스미레의 다급한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팡, 파파바방! 푝! 푝!
김은아는 스미레가 마나 배리어를 썼는지 튕겨 나가는 화살들의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내 자신을 감싼 따뜻한 온기에 김은아는 조심스레 눈을 떴다.
그제야 보이는 건, 평소처럼 웃고 있는 스미레의 모습.
“스, ……스미레?”
하지만 뭔가 달랐다.
자신만 아니었다면 이 정도 공격은 거뜬히 막아냈을 스미레의 몸에는 뾱뾱이 장난감 화살이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후후, 다행이다. …이번에는 늦지 않았네요.”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랐던 김은아는 너무나도 다정한 목소리에 그제야 울음이 터져 나왔다.
“스미레……. 네가 왜, 왜 나 대신에에에-! 흐끅! 등에 화살이…….”
하지만 스미레는 울고 있는 김은아를 달래는 대신. 처음 듣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신이 아니에요!”
“그럼 어째서어어……. 훌쩍.”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그친 김은아가 묻자. 스미레는 격해지려던 감정을 잠재우며 어린 아이를 타이르듯 말을 했다.
“그건! 그건…… 후회할 것 같기 때문이에요.”
“……후회?”
“네. 은아 씨는 제게 너무 소중한 동료니까요. 그러니까…….”
점점 7살의 몸에 동화된 김은아는 스미레의 어려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스미레는 김은아와 눈을 맞추고 너무나도 자상한 목소리로 설명해주었다.
“저는 동료의 위기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더 아프고 무서웠던 거예요!”
이제 7살의 나이에 동화되어버린 김은아도 스미레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스미레. 너, 흐끅…….”
하지만 김은아가 채, 감정을 추스르기도 전에 뾱뾱이 화살에 달린 밧줄이 스미레를 질질 끌고 가버렸다.
“스미레-!”
다급한 김은아의 목소리와.
“크하하! 잡았다!”
사악하게 웃는 토이킹의 목소리.
꽈악.
눈물을 닦아낸 김은아가 주먹을 움켜쥐자.
파짓-! 파지직!
김은아의 몸에서 지금까지 사용하지 못했던 전기가 피어올랐다.
지금까지는 전기라는 능력을 사용하는 게 두려웠기 때문에 사용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김은아는 이야기가 달랐다.
자신의 능력인 전기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소중한 동료인 스미레를 잃게 되는 것이 김은아는 더욱- 두려웠다.
“……후회하게 될 거야.”
파작, 파지지직!!
눈을 부릅뜬 김은아는 주위에 푸른 번개를 흩뿌리며 토이킹을 향해 쩌렁하게 외쳤다.
“너희들- 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