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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화 (194/434)

제194화

자신의 방에 신유성을 데려온 건 김은아 자신이었다. 하지만 막상 신유성이 자신의 침대에 앉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크흠! 흠! 그러니까……. 일단, 좀 덥지 않냐?”

김은아가 어색한 표정으로 눈을 흘기자. 신유성은 오히려 가까이 김은아를 향해 다가왔다.

“아니. 괜찮아. 편하게 이야기해 은아야.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지?”

“어, 그, 그렇지…….”

신유성은 김은아가 어떤 일이 있기에 자신을 따로 불렀을지 궁금했다. 자신을 이용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남과 거리를 두던 김은아는 좀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김은아에게 신유성은 ‘남’이 아니었다. 가장 소중한 사람 중 하나였다.

“뭐, 미리 걱정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나 7살 때, 물에 빠졌거든. 오빠가 구해주긴 했지만…….”

“물이라면……. 바다?”

“아니, 아니! 그냥 수영장 같은 곳. 지금은 별거 아닌데…….”

김은아는 어린 시절의 사건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센 척을 하는 것도 잠시.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신유성의 진지한 표정에 김은아는 결국 솔직하게 털어 놓고 말았다.

“……근데 어릴 때는 그게 좀 트라우마였나 봐. 물이 무서운 건 물론이고. 나, 엄청 겁이 많아졌거든. 만약 탑의 페널티가 어린 시절로 기억이 동화되는 거라면…….”

김은아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부끄러운지 검지로 살살- 침대를 긁었다. 그게 신유성과 둘만 남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김은아는 남들에겐 항상 강한 척을 했으면서 신유성에게만은 이상하게 솔직한 자신이 낯설었다.

“……난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어. 직접적인 전투는 물론이고. 상대에게 전기를 쓰는 것도 못 할 거야.”

김은아는 아직도 생생한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그러게 얕은 곳에서 놀랬잖아. 큰일 날 뻔했네.]

[끅! 흐윽! 이렇게…… 끅! 깊은지 끅! 몰랐단…… 말이야!]

자신은 머리까지 물이 차올라 계속해서 발버둥 쳤고. 김준혁은 그런 자신을 가까스로 구해줬다.

지금은 잊었다고 믿고 있었지만.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분명히 김은아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김은아는 막연하게 깊어 보이는 바다가 싫었고. 비 내리는 날 숨을 쉬고 있으면 느껴지는 특유에 습함이 싫었다.

별거 아니라고 치부했지만 그런 사소한 일에도 김은아는 무심코 물에 빠진 날을 떠올리곤 했다.

“하아…….”

이야기를 한 김은아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꽈악- 침대에 깔린 얇은 이불을 쥐었다.

정말 탑의 페널티가 기억이 동화 되는 쪽으로 적용된다면 김은아의 입장에선 너무 분한 일이었다.

7살부터 17살이 될 때까지, 김은아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노력해본 적이 없었다. 너무나도 많은 걸 가지고 태어났기에 이루고 싶은 목표 같은 건 없었으니까.

“난 왜 이렇게 잘해보려 하면. 자꾸 일이 꼬이는 거냐…….”

그런데 막상 파티를 위해 도움이 되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자. 운명은 김은아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던전 공략에서 국가대항전에서 이르기까지 김은아에게는 불리한 사건과 조건들만 주어졌다.

“나도 좀, 너희한테 도움이 되고. 멋지게 해내고 싶은데…….”

김은아 답지 않게 기가 죽은 목소리. 강해보이던 껍질이 벗겨진 김은아는 평범한 17살의 소녀였다.

그리고 그런 김은아의 솔직함은 신유성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은아야.”

속삭이듯 작은 신유성의 목소리.

그 진지하면서도 달콤한 음색에 고개를 숙였던 김은아는 신유성을 바라보았다.

“으, 으응?”

김은아는 긴장하고 말았다.

항상 따뜻하게 대해주던 신유성의 표정은 오늘따라 단호해보였다.

“은아 넌. ……네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있어.”

어쩐지 화가 난 듯한 신유성의 목소리에 김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변명을 시작했다.

“으, 으응? 아니! 당연히 우린 파티지! 네 활약이 곧 내 활약이고! 근데 그냥…….”

“속상해서 그렇지?”

방금 전에 보여주었던 단호함과 달리 묘할 정도로 달콤한 신유성의 목소리. 김은아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으응…….”

김은아는 기분이 이상했다.

많이 겪어본 반응일 텐데도 신유성이 공감을 해주면 다른 사람과 느낌이 달랐다.

어떻게 보면 무시무시한 무기였다.

조금은 무뚝뚝했던 신유성의 성격은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겪으며 바뀌고 있었고, 거기다 타고난 체질이 뿜어내는 분위기와 미모가 합쳐지자 간단하게 상대의 마음을 파고 들 수 있었다.

“국가대항전에서 네가 안젤라를 이기고. 로렐라이를 묶어주지 않았다면 우리가 이길 수 있었을까?”

신유성의 자상한 위로에.

“뭐, 그건. 그렇네…….”

김은아의 단단했던 가드가 순식간에 내려갔다.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김은아는 슬쩍 신유성을 떠보았다.

“근데 너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나, 아니…… 우리들 보고 싶었냐?”

은근 기대에 찬 김은아의 물음에 신유성은 싱긋 웃어주었다.

“당연하지. 빨리 너희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고 싶었는걸.”

기대했던 신유성의 대답에 참으려고 해도 김은아의 입꼬리는 슬쩍 움직이고 말았다.

“……그래?”

처음으로 마음을 연 이성.

자신은 모르지만 은근히 질투까지 하게 된 김은아에게 신유성의 행동 하나하나는 파괴력이 있었다.

“당연하지. 너흰 이제 나에게 파티원 이상의 존재니까.”

김은아는 바로 옆 자리에서 올곧게 자신을 바라보는 신유성의 시선에 그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알겠어. 그럼 됐고.”

늘 함께 했던 신유성이지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보는 건 이야기가 달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김은아는 신유성과 멀어지고 싶진 않았다. 평소보다 가까운 지금의 거리가 딱 좋았다.

“야, 내가 저번에 있었던 일 말해줄까?”

그 때문인지 김은아는 자연스럽게 또 이야기를 꺼냈다.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나가기보단 계속 신유성과 자신의 방에서 함께 머물고 싶었다.

“우리 저택에 신오가문 사람들이 왔더라? 그래서 내가 계약도 못 따게 하고. 한방 먹여줬어!”

김은아가 통쾌하다며 불끈 주먹을 쥐자. 신유성은 풋- 하고 웃었다.

신유성은 김은아가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나섰다는 게 신기했다.

하지만 그게 김은아의 성격이 바뀐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신유성은 김은아가 오빠를 위해 흘렸던 눈물을 기억하고 있었다.

‘역시 은아는 마음이 약해.’

그런 부분은 자신과 같았다.

김은아는 소중한 사람들이 상처 입는 걸 보지 못한다. 차라리 자신이 상처를 입고 말 정도로 마음을 연 상대를 아꼈다.

그건 어떻게 보면 약하고.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순수했다.

강해 보이던 딱딱한 껍질을 벗겨낸 김은아의 속살에는 누구보다 강한 애정을 가진 연약한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

“그건 날 위해서야?”

조용히 다가오며 묻는 신유성의 물음에 김은아는 조금은 굳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 사람들은 널 버렸잖아. 자기들이 뭐라고.”

김은아는 다시 검지로 침대를 긁적이더니 작아진 목소리로 신유성에게 말을 걸었다.

“야, ……유성아.”

무슨 말을 꺼내려는지 김은아는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가족은 뭘까?”

김은아는 더 이상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지한 표정으로 신유성의 눈을 바라보았다.

“원하던 능력이 없다고. 자기 마음대로 버리는 게 가족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만약 그냥 이유도 없이. 계속 잘해주고 싶은 게 가족이라면…….”

김은아는 숨을 고른 후에야 느릿하게 말을 덧붙였다.

“우리들도……. 가족인가?”

신유성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이미 흔들리고 있는 김은아의 눈.

김은아는 숨이 막혀오는 긴장감에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그저 서로 말을 하는 것뿐인데 왜 이렇게 가슴이 떨리는 걸까. 김은아는 몰려오는 긴장감에 발끝으로 힘을 모았다. 상대의 대답을 초조하게 기다릴 때, 어린 시절부터 따라온 김은아의 버릇이었다.

‘미치겠네. 나, 대낮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혼자 진지해져선…….’

가만히 신유성의 대답을 기다리는 김은아는 가슴이 빠르게 뛰는데도 온몸은 굳고 있었다.

마치 몸에 아니, 다리에 피가 안 통하는 기분이…….

“악!”

김은아는 물고기가 튀어 오르듯이 갑자기 침대 위로 누워버렸다.

“윽!, 윽헉! 나씨……. 학!”

다리에 너무 힘을 줬기 때문일까.

이런 중요한 순간에 김은아는 허벅지에 쥐가 나고 말았다.

“유성아! 나! 나! 나, 지나써! 쥐이이……

얼마나 아픈지 눈물이 고인채로 팡팡팡- 침대를 두드리는 김은아의 손.

“은아야! 괜찮아!?”

“흑! 안 갠차나! 다리! 아니! 허벅찌이! 빨리! 나 주것…….”

신유성은 김은아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재빨리 다리를 일자로 만들어주었다.

“은아야. 이럴 땐 다리에 힘을 빼고 발목을 발등으로…….”

“학, 아파서 못 하게써……. 좀만 살살 눌러봐!”

김은아가 비명이 옅은 울먹임으로 바뀐 그 순간. 슬그머니 김은아의 방문이 열렸다.

“어머……. 너희 뭐하니?”

익숙한 목소리와 싱글싱글 웃고 있는 얼굴의 주인공은 김은아의 어머너인 김윤하.

“바깥에도 소리가 들려서 와봤더니 정말이지……. 대낮부터 둘이 찰싹 붙어서는!”

“아니, 엄마! 나, 아냐! 그, 그런 거 아니야!”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김은아의 변명에 김윤하는 마치 다 안다는 얼굴로 호호호- 소리를 내어 웃었다.

“후후, 정말이지. 은아 넌 어떻게 하는 행동도 그이랑 나를 똑 닮았는지. 엄마 딸이 맞긴 맞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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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가 과거를 떠올리며 입을 가린 채 미소를 짓자. 김은아는 절대 아니라며 양손을 저었다.

“오해야! 그거 오해라고! 나, 유성이가 다리 마사지 해준 거야!”

“당연하지~ 엄마는 오해 안 해~ 다 알아~ 유성이가 다리 마사지를 해주고 있는 거지? 맞지?”

사실 생각해보면 침대 위에서 다리를 마사지 해준다는 전제 자체가 이상했다. 특히 지금 신유성과 김은아의 자세는 누가 봐도 오해를 살 만했다.

김윤하는 알면서도 속아준다는 듯 능글맞은 표정으로 흐으으음- 하고 소리를 내더니 방긋- 웃었다.

“그래 엄마는 알겠어! 근데 은아야? 근데 뭘 하든 항상 조심해야한다? 너흰 아직 학생이니까. 알겠지?”

그 말을 끝으로 툭하고 닫히는 문.

벙- 쪄버린 얼굴로 김은아가 신유성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자기 다시 방문이 열렸다.

“아, 마사지도 과하면 안 좋으니까. 너무 오래 하지 말고? 엄마는 은아를 믿어~!”

툭.

어머니인 김윤하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방문을 닫자. 김은아는 닫힌 문을 향해 크게 외쳤다.

“아아아! 엄마! 그거 아니라고!”

한편 신유성은 그런 김은아의 모습을 보며 그저 웃을 뿐이었다.

‘역시 재밌는 가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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