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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화 (193/434)

제193화

철퍽- 철퍽-

끝없이 펼쳐진 밤바다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신하윤은 미소를 지은 채 느긋하게 해변을 걸었다.

“이혁. 그거 알고 있어?”

신하윤은 들뜬 목소리로 이혁을 부르더니 그녀가 아주 기분이 좋은 날에만 꺼내는 이야기를 덧 붙였다.

“세상에는 말이야. 아주 극소수의 선택 받은 인간이 있대.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 있지 않아?”

이혁은 신하윤의 이야기에 되묻지도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혁은 알고 있었다. 이건 신하윤이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이건 그녀가 기분 좋은 날에 하는 혼잣말에 불과했다.

“만약, 넌 그 이야기를 믿어?”

하지만 끝까지 대답을 원하는 신하윤의 질문에 이혁은 손으로 턱을 만지며 짐짓 생각하는 척을 해보였다.

“……음, 그냥. 사람들이 좋아하는 흔한 이야기 아닐까. 어떤 시대에나 그렇게 신기한 이야기는 주목을 끌잖아?”

“후후.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어. 그럼 질문을 바꿔서 만약 신이든, 탑이든 미지의 존재가 그런 인간을 태어나게 했다면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신하윤의 난해한 질문에도 이혁은 하하- 하고 그저 웃어 넘겼다.

“글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인 걸. 신은 믿어본 적이 없어서 말이지.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걸 알아.”

“뭘?”

“세상에는 너처럼 특별히 뛰어난 이레귤러가 태어난다는 걸. 그리고 이 세계는 그런 소수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걸.”

이혁의 이야기에 신하윤은 입을 가린 채 웃음을 터트렸다.

“……푸훗, 설마 그거 내 비위를 맞추는 거야?”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진지한 목소리로 이혁이 말을 끝내자. 신하윤은 바다를 보며 한쪽 손을 들었다.

이곳은 인공적인 빛이라곤 한줄기도 보이지 않는 고요한 섬.

그 어디에도 신하윤을 지켜보는 눈은 없었다.

사아아아.

고오오오오-

지금까지와는 다른 거대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펼쳐진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이혁은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파아아-

파도 소리가 달라졌다.

고요했던 검은 색 밤바다는 네모난 거대한 관을 삽입한 듯 인위적으로 반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정말이지 넌…….”

이혁은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그저 능력이 강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기존의 헌터들이 가진 염동력 특성에는 명백한 단점이 있었다.’

특성을 사용하는 헌터의 마나가 늘어날지언정, 인간의 뇌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은 컴퓨터가 아니니까.

염동력은 그런 특성들 중에서도 유독 고도의 연산이 필요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지.’

움직이려는 물체의 위치.

움직이려는 물체의 무게.

움직이려는 물체와 자신의 거리.

자신이 사용할 마나량과 물체 간의 거리에 이르기까지 염동력에는 적게는 십수 개에서 수십 개까지 신경써야할 요소들이 존재한다.

거기에 현장의 마나 농도 같은 다양한 환경의 변수들이 더해지면 연산에 필요한 시뮬레이션은 제곱으로 불어나버린다.

하지만 신하윤은 그런 염동력의 단점을 비웃듯이 무지막지한 단위의 힘을 사용하면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쉽게 사용하고 있었다.

“전설처럼 정말 있었네. 해왕의 저주라는 거. 역시 이혁 네 정보력은 대단해.”

신하윤이 웃었다.

그녀의 시선이 머문 곳에선 물줄기들이 사라지며 섬과 해저를 향해 이어진 숨겨진 계단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싱긋 웃은 신하윤이 계단을 향해 걸어가려고 할 때, 우뚝 멈춰선 이혁은 신하윤을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어.”

“얼마든지 물어봐.”

“……너의 숨겨둔 힘을. 왜 나에게는 보여주는 거야?”

이건 이혁의 바람이었다.

누구에게도 열지 않는 신하윤이 자신에게는 특별한 대우를 해준 것이 아닐까? 자신은 특별한 존재인 것 아닐까?

이혁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신하윤의 대답은 너무나도 그녀다웠다.

“……넌 학교의 누구보다 유능하고. 계산이 빠르잖아?”

이혁은 신하윤의 유능하다는 말이 마치 겁이 많다는 말처럼 들렸다.

정말 자신을 칭찬하는 게 아닌.

똑똑하기에 계산이 빠르기에 너는 나를 배신 할 수 없어. 난 그걸 알고 있어. 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물론 모두. 사실이지만.’

신하윤과 자신은 그저 기브 앤 테이크의 관계. 악어와 악어새처럼 필요성 의해 서로를 이용하는 공생의 관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입가에 감도는 씁쓸함은 어쩔 수 없었다.

“이혁? 얼른 가자. 해왕의 저주를 수거해야지?”

앞에서 들려오는 신하윤의 목소리에 이혁은 발걸음을 옮겼다.

*     *      *

신성그룹의 화려한 대저택.

확실히 이곳은 없는 게 없다는 말이 어울렸다.

[탑 10층 공략 회의!]

스미레는 김은아가 회의 장소를 정한 것까지는 알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을 시켜 현수막까지 준비해가며 꾸며둘 줄은 상상도 못했다.

“우와……. 이거 정말…… 본격적이네요.”

비교적 참가에 늦은 스미레와 아델라가 회의실에 들어가자. 준비해둔 듯이 회의실에 불이 꺼졌다.

그리곤 어둠에서 걸어나오는 파티장 신유성의 모습.

“그럼 설명을 시작할게.”

신유성이 손을 움직이자. 어두운 강연장의 벽면에 홀로그램이 빛을 비췄다.

[10층은 파티 퀘스트가 존재하는 층입니다.]

[퀘스트 이름: 동심의 세계! 토이 왕국을 지켜라!]

[최소 참여 인원 6명]

[페널티: 도전자의 나이가 전부 7살로 어려집니다.]

“이번 공략에서 가장 중요한 건 페널티야.”

설명만 들으면 귀여워 보여도 탑의 10층은 적어도 5급은 넘어야 무난하게 공략할 수 있는 단계. 방심 할 순 없었기에 파티원들은 모두 진지한 얼굴로 집중했다

“우리들의 능력이 7살을 기점으로 바뀌게 되는 지. 아니면 지금을 기준으로 탑이 정한 ‘평균 값’에 의해 낮아지는지 우리는 입장하기 전가지 알 수가 없어.”

탑의 페널티는 참가자들을 딱 맞춰 7살의 시계로 두거나. 아니면 자기만의 기준으로 능력을 깎아버리거나 둘 중 하나였다.

“페널티가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는지에 따라. 파티원 중 누구의 전투력이 강해지는지가 달라질 거야.”

“그럼 7살이 기점이면 누가 강해지는데?”

김은아의 진지한 질문에 신유성은 짧은 고민 끝에 대답을 내놓았다.

“아마. 어린 시절부터 수련에 들어간 시우와 나. 그리고 아델라 정도일거야. 반면 후자의 경우는 스미레와 은아. 그리고 나와 아델라가 유력하지.”

5살부터 타고난 능력을 발휘했던 아델라는 어떤 경우에도 포함이 되었다.

반면, 비교적 평범한 유년기를 보냈던 김은아와 스미레는 전자와 후자에 따라 큰 차이가 두드러졌다.

“은아와 스미레는 정말, 최악의 경우에는. 특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어.”

“확실히. 7살이라면 우린 특성을 제외하면 ……전투 능력이 제로니까. 몸을 지키는 것도 곤란하겠네.”

김은아의 이야기에 동조하는 듯 스미레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특성이 없다면 전투에는 자신이…… 없네요.

둘의 경우에는 어떻게든 후자의 경우가 나오는 게 베스트였다. 파티원들이 이해를 끝내자 신유성은 다음으로 중요한 문제를 꺼냈다.

“그 다음은 지능과 생각이야. 이 경우에는 3가지 가능성 정도를 추리하고 있어.”

팟!

신유성이 홀로그램을 가리키자. 별표와 하트가 남발된 에이미의 PPT가 등장했다.

[이거 완전 중요!]

[별:★★★★★]

[1-지능과 기억이 7살이 된다!]

[ps. 이.. 이게 맞으면 우린 망했으니 팝콘이나 뜯어야 해 ㅠㅠ]

[2-지능과 기억이 유지된다!]

[ps. 모두 축포를 터트려라! 10분 만에 끝내 버리자고!]

[3-기억과 지능을 유지한 채로 시작하지만 천천히 7살의 나이에 동화된다. 된다.]

[ps. 뭔가 이득인지 손해인지도 애매하지만……. 밸런스 상 이게 맞을지도?]

에이미는 자신의 작업물이 나오자 머쓱한 표정으로 헤헤- 하고 웃어보였다.

“……이 경우는 대처법은 없으니. 2번이 되면 좋겠군요.”

아델라의 말처럼 기억과 지능에 관한 부분은 마땅히 나온 대처법이 없었다. 아직까지는 그저 가능성을 염두 해두는 상태에서 그쳤다.

발표를 듣던 이시우는 갑자기 손을 들었다.

“……근데 나. 7살이 되면 반동이 강해서 실제 총은 못 쏜다?”

이시우가 생각도 하지 못한 문제를 거론하자. 김은아는 의아한 얼굴로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어릴 때 사격 연습은 뭐로 했는데?”

그러자 이시우는 당연하다는 얼굴로 포켓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당연히 이거지.”

이시우가 꺼낸 건, 장난감보단 나은 수준의 공기총이었다. 가면 갈수록 난관이 닥쳐오는 토이왕국 공략. 김은아는 머리가 아파오는지 이마를 짚었다.

“……어?”

그때 김은아의 머리에 문득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돌아가는 나이가 7살이라면 김은아에게는 잊어선 안 될 커다란 일이 있었다.

“……야. 유성아. ……나랑 이야기 좀 해.”

김은아가 회의 도중 창백해진 얼굴로 이야기를 꺼내자. 심각해진 분위기를 눈치를 챈 스미레가 급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그럼! 회의는 여기까지 하고. 모두 잠시 쉬고 내용을 정리할까요?”

“그래! 그래! 은아네 집 엄청 넓더라! 여기 목욕탕도 있고 골프장도 있어! 조금만 구경하자!”

옆에 있던 에이미까지 맞장구치며 분위기가 풀어지자. 신유성은 김은아의 손에 어딘가로 끌려갔다.

*     *      *

그렇게 김은아가 신유성을 데려온 곳은 김은아 자신의 방. 지금까지 누구도 데려오지 않은 장소였지만 그렇기에 비밀을 나누기엔 가장 적합했다.

“야, 유성아. 나. 그…… 할 말이 있는데…….”

하지만 막상 자신의 방에 신유성을 데려오자 김은아는 민망했는지 헛기침을 했다.

그리곤 김은아는.

톡톡.

“일단 앉아봐.”

자신의 침대를 두드리며 말했다.

“좀, 긴 이야기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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