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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화 (192/434)

제192화

블루 드래곤 시오스는 비록 사도닉스에겐 패배했지만 7급의 강함을 가진 제왕종이다.

비록 사령술사에 의해 본 드래곤으로 소환되는 경우엔 생전에 가진 마법의 힘을 대부분 잃게 되지만 다른 강점을 가지게 된다.

바로 그건 드래곤 하트의 원동력만 남아 있다면 사령술사에 의해 다시 부활할 수 있는 새로운 ‘신체’였다.

[……소환까지 현재 진행율 50%]

[‘신체’의 조건을 만족하셨습니다.]

[소환식을 50% 이상으로 진행하기 위해선 드래곤 하트에 상응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신유성은 스미레의 홀로그램을 읽으며 진지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정말 엄청난데.”

“그, 그런가요?”

“개체마다 다르긴 하지만 본 드래곤 정도면 6급 보스몹에 해당하는 사역마야. 물론 아직은 드래곤 하트에 해당하는 본 드래곤의 코어를 구해야겠지만…….”

라플라스의 편린을 얻고 나서 끝없이 올라가는 스미레의 전투력. 정작 면담의 주인공인 스미레는 아직도 불안한지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신유성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 그래도……. 드래곤의 뼈는 무척 귀한 재료고……. 유성 씨가 솔로 레이드로 얻으신 엄청난 물건이잖아요. 그런 걸 제가 아무 대가도 없이 받을 수는……. 저, 그래서 생각해 봤어요.”

세븐넘버가 된 이후, 스미레는 일본에 있는 본가로 돈을 보내며 남는 돈을 저축까지 하고 있었다.

아무리 헌터를 지망해도 평범한 학생은 힘든 일이지만 국가대항전의 지원금과 빠지지 않고 던전 공략에 참가한 스미레는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통장에 저축한 스미레의 돈은 약 3천만 원. 본 드래곤의 가치에 비해선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금액이었다.

“아, 아직은 부족하지만 이렇게 천천히…….”

스미레가 포켓을 이용해 통장의 잔고를 홀로그램으로 띄우자. 신유성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스미레. 어차피, 드래곤 뼈는 파티원의 전력증강에 사용하려고 했어. 물론 소환식의 재료로 사용하게 될지는 몰랐지만…….”

어차피 헌터 용품이 필요 없던 신유성에게는 드래곤의 뼈가 어떤 식으로 사용되든 파티원만 강해진다면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스미레에겐 늘 도움 받고 있는 걸. 언제나 우리를 위해 요리를 해주잖아? 그거면 충분해.”

신유성의 이야기에 스미레는 어쩐지 감동 받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요리…….”

자신에게 해주는 요리면 충분하다.

신유성의 이야기는 스미레의 요리가 50억을 호가하는 드래곤 본과 비등한 가치가 있다는 말이었다.

“제 요리를 그렇게나…….”

신유성이 자신의 요리를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스미레는 새삼스럽게 다시 감동이 몰려왔다.

“그래. 난 스미레의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걸로 충분해.”

‘…내가 유성 씨에게 진 빚을 요리로?’

스미레가 평균적으로 도시락 1인분을 준비할 때 사용하는 돈은 5,200원 정도.

50억은 스미레가 도시락을 961,538번을 만들고도 남는 돈이었다.

만약 하루 3끼를 스미레가 전부 준비한다면 일수로는 320,512일.

년 수로는 878년.

아무리 호화스러운 식사를 준비해도 200년은 넉넉하게 준비 할 수 있는 액수의 금액이었다.

“저, 그럼 드래곤 뼈를 대신해서 유성 씨에게 요리를 해드릴게요! 그, 그건 괜찮겠죠?”

용기를 낸 스미레가 ‘자신이 식사 준비를 하겠다고 강력하게 어필을 하자. 신유성은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려 신유성의 드래곤 본과 스미레의 요리 시식권이 교환되는 극적인 장면. 신유성은 마지막으로 스미레에게 당부했다.

“스미레. 그럼 탑을 공략할 때까진 아델라를 잘 부탁할게. 함께 기숙사에서 잘 지내줘.”

김은아가 아델라와 신유성의 남녀 합숙에 적극 반대한 덕분에 아델라는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 스미레의 기숙사에서 지내게 되었다.

‘……분명 스미레라면.’

생각해보면 닫혀 있던 김은아의 마음을 연 것도. 김은아가 파티에 진정으로 머물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도. 신유성만큼이나 스미레의 공이 컸다.

신유성은 이전과 달리 친화력이 높은 스미레라면 분명 아델라와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맡겨만 주세요!”

스미레가 힘찬 대답과 함께 배시시 웃자 신유성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부탁할게.”

스미레가 방을 나가고.

신유성은 햇살이 쏟아지는 가온 아카데미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이제 슬슬…….’

탑을 공략할 파티를 만들기부터 자신의 꿈을 쟁취할 만큼 힘을 쌓아나가기까지 신유성의 준비는 차근차근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때가 온 걸까.’

모두의 전력이 배로 오른 지금.

마침 신유성에겐 넘어야 할 벽이 있었다.

*     *      *

처음 아카데미에서 제공한 대로 잘 정리된 스미레의 기숙사. 손님으로 들어온 아델라는 느릿하게 좌우를 둘러보곤 입을 열었다.

“……깔끔한 방이군요. 무척이나 좋은 향기가 납니다.”

스미레의 방에서 은은하게 풍겨오는 향기의 정체는 흰색 제비꽃 모형의 스틱이 꽂힌 디퓨저였다.

아끼는 디퓨저가 칭찬을 받자 스미레는 뿌듯한 얼굴로 헤헤- 하고 웃었다.

“그, 그런가요? 그럼 아델라 씨! 모쪼록…… 본인의 집이라고 생각하시고 편안히 지내주세요!”

스미레의 허락과 함께 방에 들어온 아델라는 다소곳이 소파에 정좌를 하고 앉아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스미레는 방을 정리하고 갈아입을 옷을 꺼낸 후에야 그런 아델라를 확인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어색한 시선.

“이곳의 주인은 당신이니까요. 당신이 씻으면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아아…….”

동성 친구와의 버킷리스트로 [2. 같이 목욕하기]를 적어왔던 김은아와 달리. 아델라는 따로 욕실을 사용할 생각으로 보였다.

여울룡을 공략하며 함께 긴 시간을 보냈던 김은아와 달리 아델라는 초면이나 다름없는 상대.

스미레가 같이 입욕을 권유할 만큼 아델라는 친밀한 관계가 아니었다.

[스미레. 그럼 탑을 공략할 때까진 아델라를 잘 부탁할게. 함께 기숙사에서 잘 지내줘.]

하지만 문득 아까 전에 들었던 신유성의 부탁이 떠오르자. 스미레의 가슴에선 용기가 솟아올랐다.

“저기 그럼, 아델라 씨! 혼자서 기다리시는 것보단. 같이 씻으시는 건 어떨까요?”

“……같이?”

아델라는 스미레의 제안이 의아한지 고개를 조금 갸웃- 거렸다.

“네! 그렇게 큰 욕조는 아니지만 둘 정도는 함께 들어갈 수 있는 크기에요!”

아델라는 짧은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남과 함께 욕실에 들어가는 건 처음이지만. ……저는 상관없습니다.”

*     *      *

스미레의 제안으로 들어온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욕조. 비교적 샤워를 자주하는 ‘샤워파’인 아델라와 달리 일본식 문화를 지낸 스미레는 샤워보단 따뜻한 욕조에 몸을 녹이는 ‘목욕파’였다.

“후후, 온도는 어떠세요?”

싱글싱글 웃으며 물어오는 스미레의 질문에 아델라는 목욕의 참맛을 인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피로가 풀리는 기분……. 공략을 다녀온 후에는, 확실히 샤워기보단 욕조를 사용하는 게 좋겠군요.”

이야기가 끝나자 묘한 어색함이 감도는 욕실. 멀뚱멀뚱 서로를 바라보던 와중에 스미레는 입을 열었다.

후후- 하고 웃은 스미레는 아델라의 몸을 빤히 바라보았다.

“와……. 아델라 씨는 피부가 무척 좋으시네요. 잡티 하나 없이 하얗고…….”

순수하게 감탄한 스미레는 장난스럽게 양손으로 아델라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비볐다.

“거기다 보들보들~”

친해지고 싶었던 스미레의 장난.

아델라는 간지러웠는지 핏- 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읏, 앗…….”

하얀 피부 탓인지 아델라는 조금만 붉어져도 금방 얼굴에 드러났다.

“……헉, 아델라 씨가 부끄러워하시는 모습은 처음 봐요.”

최근 유독 감정적 변화를 겪으며 다양해진 아델라의 반응. 스미레는 그런 아델라를 놀리는 게  제법 재밌었다.

“저희 좀 있다. 서로 거품 칠 해줄까요? 물론 아델라 씨가 괜찮으시다면 이지만…….”

스미레는 아델라와의 친밀도를 쌓아나가기 위해 조금씩 요구를 늘려갔다.

“……조금 부끄럽긴 합니다만. 전 괜찮습니다. 좋은 경험이 될 것 같군요.”

그렇게 말을 한 아델라는 스윽- 눈을 제외한 얼굴을 물속으로 잠구었다. 스미레는 김은아와 욕조에 들어갔을 때 이와 비슷한 광경을 본적이 있었다.

욕실은 신기한 곳이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당당한 김은아와 아델라도 왜 이곳에서는 평소보다 부끄러움을 타는 걸까.

‘보기보다 귀여우실지도…….’

그 덕분인지 무섭고 차갑다고 생각했던 스미레가 가진 아델라의 이미지는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     *      *

목욕을 끝낸 스미레와 아델라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잠들기 전에 함께하기에는 이거보다 좋은 게 없어요!”

물론 그건 모두 꼭 공포 영화 시청을 해야 한다는 스미레의 적극적인 어필 덕분이었다.

사실 스미레의 집에서 하는 공포 영화 시청은 유서가 깊었다.

[3. 과자 먹으며 공포영화 시청]

김은아의 버킷 리스트 중 3번이자.

김은아와 스미레를 친밀한 관계로 만들어준 1등 공신 중 하나였다.

그중에서도 당당하게 3번을 차지한 건 영화시청이었다. 재벌의 후계자라기엔 소박한 목표. 하지만 김은아가 정말 믿을 수 있는 동성 친구를 사귄 건 스미레가 처음이었다.

“이거 일본에서 무척 인기 있는 공포영화래요. 귀신이 TV에서 나와 저주를 한다는…….”

약간의 줄거리만 소개해준 스미레가 영화를 틀었다.

“그렇군요.”

그러나 영화가 시작할 때까지도 아델라는 큰 관심이 없어보였다.

딱히 영화 시청 같은 것에 흥미를 둔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직, 지지직!]

[크그그극…….]

하지만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TV에서 귀신이 걸어 나오고. 기다란 일본식 검을 들자.

“오…….”

아델라는 감탄을 터트렸다.

“어? 어라? 귀신이 왜 검을 들고 있지…….”

반면 갑작스러운 내용 전개에 당황하는 스미레. 하지만 영화의 막장 전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취이익! 취에에에!]

검은색 외계생물이 나와 산성 침을 뱉어대자. 스미레가 가진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이 영화 뭔가 이상한대요!?”

스미레는 그제야 영화의 제목을 확인했다.

[우주 최강 외계생물 VS 사무라이 검술의 저주 귀신!]

분명 스미레가 보려고 했던 건 티비의 저주 같은 그런 이름의 영화. 하지만 스미레는 실수로 그 밑에 있던 삼류 패러디 물을 틀어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삼다코. 준 코너. 너를 지키기 위해 미래에서 TV를 통해 건너왔다.]

그렇게 말한 귀신이 검을 꺼내자.

지이잉.

어느 영화에서 본 듯 푸른색 광선이 일본도에서 빛을 발했다.

“오, 오오…….”

하지만 정작 아델라는 삼류 패러디 영화를 너무나 진지하고 재밌게 보고 있었다.

“분명, 에얄리언은 우주를 정복할 정도로 강한 몬스터지만. 저 강철도 베어버리는 광선 무기라면.  분명……. 승산이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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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영화에 몰입했는지 아델라는 나름 분석까지 하고 있었다.

“그렇군요. 이제야 알겠습니다. 삼다코가 미래로 간 이유…….”

“……준 코너를 지키기 위해. 삼다코는 에얄리언의 우주 외피를 뚫을 미래 기술이 필요했던 거군요.”

아델라는 아무래도 좋은 삼류 영화의 억지 설정에 진심으로 감동하고 있었다. 영화를 잘못 틀었던 스미레는 그런 아델라를 보며 머쓱하게 웃었다.

‘……그래도 아델라 씨가 재밌게 봐주시니. 상관없으려나요.’

아델라와 보내는 기숙사의 밤은 생각보다 훨씬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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