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1화
멋쩍어하면서도 팔짱을 낀 이시우와 깨를 쏟아내는 사쿠라의 모습에 김은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눈을 가늘게 떴다.
“……역시 이상하긴 했어. 뭔 주말만 되면 자꾸 일본으로 간다고.”
사쿠라는 그런 김은아의 추궁에 오히려 기름을 붓고 있었다.
“맞아~ 맞아! 활이든 총이든 한국에서도 쏠 수 있는데~ 굳이 자꾸 일본까지 찾아오더라니까?”
사쿠라는 이시우에게 눈을 흘기더니 입을 가리고 여우처럼 쿄쿄쿄- 웃었다.
“그, 그건……. 너희 도장이 집중하는 기분도 들고. 사람도 많고…….”
이시우가 애써 변명을 할수록 사쿠라는 오히려 가소롭다는 듯 능글맞은 표정을 지어주었다.
“흐응~ 그래?”
“야, 일단 부원들이 보니까. 이거부터 좀 놓고 이야기해…….”
“어라? 내기에서 졌으면서 약속을 어기는 거야? 오늘은 하루 종일 이러고 있을 거야.”
사쿠라는 이시우의 반항에도 오히려 팔에 얼굴을 부비며 달려들었다. 그런 둘의 눈꼴 시리다는 얼굴로 으으- 하고 질색을 하는 김은아.
“놀고 있네. 이제 와서 부끄러울 건 뭐야? 장난 치냐?”
“그렇지? 시우는 정말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물론 그런 부분이 또 귀엽긴 해.”
사쿠라는 김은아의 공격을 물 흐르듯이 잘도 받아 넘겼다. 그리곤 스미레를 발견하자 에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오랜만인데도 스미레는 낯설지가 않네. 잇신 녀석 때문인가…….”
뜬금없이 잇신의 이름이 나오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스미레. 이번에는 무언가를 떠올린 사쿠라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녀석…… 비운의 남주인공 같은 표정으로 네가 나오는 영상을 엄청 돌려보더라고…….”
“이, 잇신 씨가 제 영상을요?”
“응, K채널이 보석섬에서 찍은 시험 영상부터, 국가대항전까지 골고루도 보더라……. 혹시 만나게 되면 인사라도 살갑게 해줘. 물론 그래도 불쌍할 뿐이지만…….”
사쿠라의 이야기를 들은 에이미는 스미레를 보며 능글맞게 눈썹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후후, 역시 스미레야. 너도 나처럼 보통은 아닌걸.”
“잇신 씨는 그저 제가 걱정되신 거 아닐까요? 그래도 예전에는 저희도 같은 파티였으니까.”
말을 끝낸 스미레는 슬쩍 신유성을 보더니 배시시 웃었다.
“물론 지금의 전……, 신유성 씨의 파티지만요.”
신유성을 향해 신뢰와 애정이 가득 담긴 스미레의 눈빛. 잇신에게 연민을 느낀 사쿠라는 말없이 한숨을 쉬었다.
‘이건 끝이네. 이제 포기해 잇신.’
사쿠라는 스미레가 신유성에게 푹 빠졌다는 사실을 눈빛만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게 일본에 있을 때나 잘할 것이지…….’
후회해도 기차는 이미 떠나버렸다. 신유성을 향한 스미레의 미소는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근데 그럼……. 탑으로 출발하기 전까진 아델라 씨는 한국에서 지내시는 건가요?”
거처를 묻는 스미레의 질문을 듣고 나서야 김은아는 이상한 점을 눈치 차리게 되었다.
“근데 아카데미를 비앙카로 옮겼잖아. 아델라는 가온에 숙소가 없는 거 아니야?”
숙소도 없는 아델라는 도대체 어디서 지내게 된다는 걸까?
혹시나 하는 얼굴로 묻는 김은아의 질문에 아델라는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그건 괜찮습니다.”
마치 숙소를 준비해둔 듯 자연스러운 대답. 아델라는 신유성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개인 숙소까진 바라지 않습니다. 다른 이와 함께 사용해도 상관없습니다.”
아델라는 노골적일 정도로 신유성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은 신유성과 함께 있겠다는 강력한 의사 표명.
“아니 그, 그걸 왜 유성이를 보면서 말해!? 나, 남녀가 같은 숙소에서 자겠다는 거야? 이상하잖아!”
하지만 김은아는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남녀가 유별하다고 배워온 김은아에게 아델라와 신유성이 동침한다는 건 상식 밖의 일이었다.
“이상할 것도 불편할 것도 없습니다. 저 스미레란 학생도 이미 전례가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전 함께 침대를 사용해도. 바닥에서 자도 상관없습니다.”
아무렇지 않다는 아델라의 말에도 김은아는 본인이 고개를 저었다.
“야!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그럼 무엇이 문제입니까?”
도리어 물어오는 아델라의 질문에 김은아는 생각에 빠졌다. 그리곤 무엇을 상상했는지 화악- 얼굴이 붉어졌다.
“그, 그건…….”
평소와 달리 기어들어가는 김은아의 목소리. 의아해 보이는 아델라의 얼굴과 순수해 보이는 신유성의 얼굴을 보니.
김은아는 도저히 남녀가 합숙을 하면 안 되는 ‘문제’에 대해 설명 할 수가 없었다.
김은아가 골머리를 썩히는 와중에 스미레가 번쩍- 손을 들었다.
“그럼 저랑 같이 주무시는 건 어떨까요? 저도 세븐넘버라 기숙사는 무척 넓으니까요.”
“상관없습니다.”
극적으로 타결된 아델라의 숙소. 김은아는 그제야 한숨 놓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데? 스미레라면 괜찮지. 아주 안전해.”
스미레와 아델라가 같은 숙소에서 잠을 자는 건 가드가 단단한 김은아도 OK인 모양. 상황이 일단락되자 신유성은 다시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다음 아티팩트는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고 있는 물건이야.”
사아아.
신유성이 꺼낸 건 다름 아닌 거대한 드래곤의 머리뼈였다.
“뭐야 이거…….”
“모두 포켓을 가져다대봐. 감식이 끝났으니. 이제 포켓으로 정보를 볼 수 있을 거야.”
<드래곤의 머리뼈> 유니크
정보 - 벨란 협곡의 지배자. 블루 드래곤 시오스의 머리뼈입니다. 폭주한 사도닉스의 손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상세 - 드래곤 본. 그 중에서도 머리에는 생전에 드래곤이 가졌던 힘의 일부가 담겨 있습니다.
※감식이 끝난 블루 드래곤 시오스의 힘은 아래와 같습니다.
*마나를 사용한 공격에 내성
(방어구 형 헌터 장비로 가공하면 마나 배리어의 효과 증강과 안티 매직 방어구의 재료로 사용됩니다.)
*수(水)속성 친화력
(특정 아티팩트에 상급 수속성 정령의 힘을 부여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수속성 특성을 가진 헌터는 능력이 강화됩니다.)
*마나 급속 충전
(옥의 형태로 가공할 시, 상당량의 마나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매직 보석의 마나 환급율 50%
-드래곤 본의 마나 환급율 80%
*마나 숙련도 마스터리
(옥의 형태로 가공할 시, 마나로 사용하는 스킬의 숙련도와 적중률을 대폭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유니크 재료답게 드래곤의 머리뼈가 가진 효과들은 일개 재료라기에는 상상을 초월했다.
“역시 드래곤인가……. 그 귀하다는 안티 매직이 기본 옵션으로 붙어버리네.”
포켓으로 정보를 확인한 이시우는 진심으로 감탄했고.
“이거 효과 하나하나가 완전 다 사기잖아. 특히 숙련도랑 적중률 증가는 나도 처음 보는데?”
김은아는 자신의 단점을 보완 해줄 수 있는 머리뼈의 효과를 은근히 탐내는 눈치였다.
“……수속성 친화력이라면. 직계는 아니지만 제 얼음 능력도 포함 되는군요.”
아덴의 밑에서 여러 아티팩트를 본 아델라마저 사로잡은 유니크 재료의 엄청난 효과. 스미레는 차마 머리뼈에 다가가지 못한 채, 멀찍이 서서 감탄을 터트렸다.
“와아…….”
“이런 건 얼마 정도나 하려나.”
이시우가 흘리듯 중얼거린 이야기에 아티팩트의 시세에 빠삭한 김은아는 즉각 답했다.
“기본이 50억? 비싸지만 사실 돈을 줘도 못 구하는 물건이니까.”
“……유니크 등급 중에서도 귀하다는 드래곤의 부산물. 확실히 헌터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재료군요.”
알을 껴안은 아델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자. 사쿠라는 헤에- 소리를 내며 머리뼈를 만져보았다.
“와, 이게 그렇게 비싸?”
“흐익! 5, 50억요!?”
50억.
카라아게를 만들기 위한 6900원짜리 1kg 튀김가루를 724637 봉지를 사고도 잔돈이 남는 금액.
너무나도 큰 금액에 스미레가 놀라자. 김은아는 풋- 하고 웃었다.
“놀랄 것도 없어. 이런 물건은 프리미엄이 붙고 경쟁이 치열해지면 그 정도는 껌 값이야. 제일 낮게 부른 게 50억이라고.”
“그 정도 가격이라는 걸 알게 되니까. 뭔가 만지는 것만으로 강해지는 기분이…….”
이시우도 사쿠라를 따라 머리뼈를 만지기 시작하자. 무감했던 아델라도 흥미를 보였다.
“……머리뼈가 이정도 크기라면. 드래곤 폼을 한 본체는 건물보다 거대했겠군요.”
김은아는 다이아몬드보다 단단하다는 드래곤의 뼈가 자신이 한 손으로 들 수 있을 만큼 가볍다는 사실에 감탄하고 있었다.
“근데 이거 이렇게 큰데도 엄청 가볍다? 힘을 주면 들릴 정도야.”
마른 편인 김은아가 한 손으로 자신보다 거대한 머리뼈를 들어 올리는 신기한 광경.
“와아…….”
스미레는 그 모습을 보자 직접 머리뼈를 들어보고 싶어졌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슬금슬금 책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신기하네. 진짜 가볍긴 하다.”
이시우.
“야, 에이미 너도 만져봐.”
김은아.
“나? 으, 으응. 전부터 궁금하긴 했어…….”
에이미까지 부실에 있는 모든 사람이 만져도 멀쩡했던 드래곤의 머리뼈는.
‘이렇게 큰데 정말 가벼울까?’
호기심과 기대로 가득 찬 표정의 스미레가 손을 뻗자.
툭.
파앗! 사아아!
보라색 입자로 흩어지더니 한줄기 빛으로 모여 스미레의 손등으로 빨려 들어갔다.
지이잉!
그와 동시에 마나가 공명하며 스미레의 손등에서 빛을 내는 라플라스의 문양.
“으, 으응?”
무언가 잘못된 걸 직감한 스미레는 입을 벌린 채, 벙쪄버린 얼굴이 되었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일행들은 돌처럼 굳고 말았다.
“어, ……어라아?”
그러나 지금 벌어진 건 명확한 현실이었다. 그 증거로 스미레의 눈앞에는 익숙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애니메이트 데드를 사용합니다.]
[첫 번째 권능: 애니메이트 데드]
[효과: 사자(死者)의 힘으로 사역마를 만들어냅니다.]
죽은 괴수를 망자의 힘으로 일으켜내는 애니메이트 데드의 힘을 스미레는 자신도 모르게 사용했다.
하지만 스미레가 건드린 건 다름 아닌 드래곤의 뼈. 그러니 되살려 내는 언데드 몬스터도 절대로 평범하지 않았다.
[계약 완료]
[사역마: 본 드래곤]
[……소환까지 현재 진행율 5%]
최강종의 언데드인 ‘본 드래곤’과 계약해버린 스미레는 기쁨이 아닌, 울상이 된 얼굴로.
“죄, 죄송해요. 유성 씨……. 히끅, 어, 어떻게든 갚겠습니다!”
딸꾹질까지 하며 읊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