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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9화 (189/434)

제189화

자신이 원할 때마다 교장을 부실에 불러올 수 있는 학생이 몇 명이나 있을까?

학생회장인 신하윤 정도의 권력은 있어야 가능할 법한 일.

하지만 스폰서 겸 후원사인 신성그룹의 후계자이자, ‘이사장의 손녀’라는 절대갑의 칭호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교장 선생님! 여기요! 여기!”

웬일인지 김은아는 평소의 도도함은 온데간데 없이, 잔뜩 신이 난 얼굴로 구석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다가 포탈을 설치해줘요!”

교장은 불러놓고 난데없이 부실에 포탈을 설치하라니. 상식을 벗어난 김은아의 부탁에 진병철은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닦으며 웃었다.

“하하……. 은아 양. 아무리 그래도 포탈이 에어컨도 아니고……. 그렇게 쉽게 설치 할 수 있는 게…….”

이사장의 손녀만 아니었다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라고 일갈하며 분노의 꿀밤으로 응징했으련만 오늘은 상대가 나빴다.

‘크으, 오늘처럼 바쁜 날…….’

몇 십억 단위의 시험 장소까지 기꺼이 빌려준 신성그룹의 은혜를 떠올리며 진병철은 그저 사람 좋게 웃었다.

“은아 양. 포탈은 장비만 구비한다고 전부가 아니랍니다. 포탈을 작동시키려면 시설도 준비해야 하고. 그런 시공은 몇 주가 넘게 시간이 필요한…….”

진병철이 곤란한 얼굴로 허허 웃자. 김은아는 풋- 하고 웃으며 우쭐거렸다.

“그런 건 알고 있어요. 이미 엄마한테 말해서 포탈도 하나 준비해뒀고.”

“아, 아니! 포탈을 받아뒀다고? 기관의 허락이 있어야 제공 받을 수 있을 텐데……. 무슨 포탈을 김치 냉장고도 받듯이…….”

진병철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변하자 김은아는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다며 잰척했다.

“그러니까 시공비도 제가 낼게요. 얼마나 드는데요?”

김은아가 포탈까지 준비해 왔다고 말하자 진병철은 어쩔 수 없이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엄지를 접은 채, 손가락 4개를 김은아에게 보여주었다.

“40억?”

“……아니, 4억 정도면 될 거 같구나. 이 정도 거리면 포탈존의 설비를 당겨오기만 하면 되니…….”

“오, 생각보다 싸네. 그럼 당장해주세요!”

블랙 카드를 내미는 김은아와 참을 인을 새기며 어른의 미소로 웃고 있는 진병철.

“그, 그래. 은아 양. 내가 오늘 중으로 알아보마…….”

4억이니 40억이니 듣기 만해도 머리가 복잡해지는 액수의 금액. 스미레는 김은아와 진병철을 둘을 번갈아보았다.

‘역시, 이럴 때는…….’

그리곤 아무 말 없이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며 웃었다.

‘조용히 있어야겠어요!’

그렇게 김은아의 진두지휘 아래에 신유성의 부실에는 개인 포탈존 설치라는 상상도 못할 시공이 진행되고 있었다.

*     *      *

발을 삐끗해 넘어지는 아델라를 공주님처럼 들어 올린 신유성.

아델라는 자신의 몸에 닿은 신유성의 손이 따뜻함을 넘어 뜨거워지는 착각마저 들었다.

[당신을 보면 무척 가슴이 빠르게 뛰어요. ……그건 왜일까요?]

아델라는 그런 자신의 감정을 이상하다여기고 신유성에게 물었다.

당신을 보면 왜 가슴이 빠르게 뛰는 걸까?

그저 안긴 것만으로 몸 전체가 뜨거워지는 걸까?

지금 아델라는 가온의 정점이었던 얼음여제가 아니었다.

그저 처음 겪는 감정에 곤란해 하며 볼이 붉어진 평범한 소녀였다.

“그리고 이렇게 안겨 있으니…….”

그 증거로 아델라는 담담하지만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무척이나 부끄러운 기분이 듭니다.”

신기한 건 부끄럼을 타는 와중에도 시선을 여전히 신유성의 눈에 고정되어 있었다.

“미안. 걱정이 돼서 그래.”

아델라를 놓아준 신유성은 키를 맞추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극심하게 빨라진 헌터의 심장박동은 보통 현기증을 동반하거든.”

전투를 치룬 헌터들에게는 흔한 증상이었다. 마나를 한계까지 소모하는 건 대부분 극한의 상황. 전투를 반복한 헌터들은 마나가 줄어들면 신경전달물질인 아드레날린이 빠르게 분비되며 몸에 위험신호를 보내곤 했다.

‘역시 아델라는 무리했던 거구나.’

신유성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아델라를 바라보았다. 감정이 격해진 상황에서 마나소모까지 겹쳤으니 몸에 무리가 갈만도 했다.

“열도 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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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 된 신유성은 아델라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확실히 열이 느껴지네.’

신유성의 얼굴이 심각한 표정으로 변하고 있을 때, 빤히 바라보는 신유성의 시선 때문인지 아델라의 볼은 점점 붉게 물들고 있었다.

“읏…….”

아델라는 쥐고 있던 알을 들어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가렸다.

자신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왜 이마에선 열이 오르고 얼굴이 붉어지는지 아델라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지금의 아델라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신유성. ……당신은 잘생겼군요?”

가까이서 본 신유성의 모습은 무감했던 아델라조차 당황하게 만들만큼 잘생겼다는 것. 아델라는 그 사실을 오늘이 되어서야 새삼 느끼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아델라의 칭찬에 신유성은 멋쩍게 웃었다.

“아델라 ……이번 일은 잊지 않을게.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말해줘.”

아델라와 아덴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신유성은 사도닉스의 알을 지켜낼 수 없었을 것이다.

사도닉스의 알은 유니크 아티팩트이자, 국가급 보물. 신유성은 아델라 덕분에 엄청난 손해를 막아냈다.

진지한 신유성의 이야기에 알에서 숨겼던 얼굴을 빼꼼 내미는 아델라.

“그렇군요. ……하지만 부탁은 약속대로 탑의 10층을 함께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어느새 평소의 목소리로 돌아온 아델라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한 파티로 클리어하기엔 10층은 인원수가 모자라니까요.”

“그렇지만 그건 두 파티에게 모두 필요한 일이니까. 부탁이라고 할 순 없지 않아?”

신유성의 이야기에 아델라는 여느 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이번 사건을 통해 아델라는 신유성에게 일종의 빚을 받아둔 셈. 아델라는 신유성을 올려다보며 옅게 웃었다.

“그럼 저희 둘은. 서로에게 빚이 있는 셈이군요?”

보기 드문 아델라의 미소.

그건 아덴이 그토록 원하고 원했던 모습이었지만 정작 그 미소를 독차지한 건, 신유성이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금방 의아한 표정으로 변했다.

“아델라가 나에게 빚을?”

이번 일로 자신에게 도움을 준 건 어디까지나 아델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로에게 빚이라니?

아델라는 그런 신유성의 모습에 작아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벌써 잊은 것입니까. 당신이 울고 싶은 날에는 제가 곁을 지켜드리겠다고. ……약속 하지 않았습니까.?”

여전히 아델라는 무표정했지만 신유성은 어쩐지 아델라의 기분을 읽을 수 있었다.

“다음에는 잊지 마세요. 신유성. 당신이 슬픈 날에는 ……꼭 절 불러 주시는 겁니다.”

생각보다 귀여운 아델라의 반응.

“응. 약속할게 아델라. 그런 날은 꼭 내 곁을 지켜줘.”

아델라와 분명히 가까워진 거리감은 신유성도 기분이 좋았다.

그저 사도닉스 레이드를 함께한 파티원이 아닌, 마음을 공유한 진정한 동료라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 돌아가 보죠.”

방금 전까지 당황했던 모습은 온데 간데 사라진 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걷기 시작하는 아델라.

“저기, 신유성 당신에게 부탁이 있습니다만.”

아델라는 걷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너무나 담담한 목소리로 신유성에게 말했다.

“……문득 신유성 당신과 손을 잡고 싶은 기분이 드는군요. 괜찮겠습니까?”

손을 잡고 싶다는 이야기를 너무나도 솔직하고 진지하게 부탁하는 아델라. 신유성은 사도닉스의 알을 구해준 아델라라면 그 정도 부탁은 기꺼이 들어줄 수 있었다.

“괜찮아. 얼마든지.”

아델라는 신유성의 손을 깍지까지 끼며 꽈악- 붙잡았다.

냉기를 사용하느라 차가워진 손이 신유성의 손과 맞닿자. 아델라는 온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어쩌면 아델라가 따뜻한 핫팩을 좋아했던 건, 손이 시리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지도 몰랐다. 그 증거로 10년 전 차갑게 얼었던 아델라의 감정은 오늘이 되어서야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었다.

‘……핫팩. 오늘은 필요 없겠네.’

어쩐지 신유성과 하고 싶은 게 늘어날 것만 같은 기분. 부드럽게 알을 끌어안은 아델라는 신유성의 손을 잡은 나머지 한쪽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럼 다음에도 부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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