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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화 (188/434)

제188화

짹, 짹짹짹!

새들이 지저귀는 초록의 숲.

추위에 떨었던 얼음성과 달리 햇살은 나뭇잎을 비집고 따사롭게 아델라를 비춰주었다.

“못 볼 꼴을 보였군요.”

아까처럼 담담한 아델라의 목소리.

하지만 신유성을 보며 옅게 웃어주는 아델라의 미소에는 처음과 다른 따뜻함이 있었다.

“……몰랐던 사실입니다. 제가 이렇게 눈물이 많았다니.”

아델라는 담담한 척 말하지만 평소보다 아주 옅게 볼이 붉어져 있었다. 남 앞에서 펑펑 우는 모습을 보인 게, 창피한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아델라가 누군가의 앞에서 눈물을 흘린 건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까.

신유성은 그런 아델라를 보며 한결 안도한 모습으로 웃어주었다.

“괜찮아. 누구나 그런 순간이 있는 걸?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울고 싶어지는 순간이…….”

말을 멈춘 신유성은 아델라에게 눈을 마주쳤다. 그리곤 짐짓 진지해진 목소리로 낮게 읊조렸다.

“강한 사람이라고. ……항상 강할 순 없으니까.”

강한 사람이라고.

항상 강할 순 없다.

누구나 약해지는 순간은 온다.

눈물을 흘리고 소리 내어 울고 싶은 날이 있다. 아델라는 그 간단한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

그건 자연스럽지 않았다.

십여 년 전에 고장 난 시계는 지금까지 멈춰있었다.

“……그렇군요.”

아델라는 초록의 숲을 바라보며 다시 미소 지었다. 코끝이 아플 정도로 시큰했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저 난 울고 싶었던 거구나.’

하고 담담히 자신의 기분을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아델라는 문득 옆에 앉은 신유성의 눈을 바라보았다.

신유성이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숲을 바라보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예상과 달리 신유성의 눈은 아델라를 향하고 있었다.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가슴이 간지러운 이상한 기분.

아델라는 고요하지만 따뜻한 적막 속에서 입을 열었다.

“오늘 일은 ……정말 감사합니다.”

서로의 눈을 바라본 채 하는 감사.

신유성이 자신의 곁을 지켜주었기에 아델라는 스스로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당신이 있었기에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그분들을 좋아했는지…….”

말을 하고 있던 아델라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문득 신유성과의 거리가 가깝게 느껴졌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 심장이 빠르게 뛰지만 이전에 느꼈던 감각이 아니었다. 처음 느껴보는 야릇한 기분.

하지만 도저히 알 수 없는 이 기분이 아델라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신유성과 함께 앉아 있는 지금의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말. 이상해.’

어쩌면 아직도 자신은 망가져 있는 게 아닐까? 고쳐지지 않은 게 아닐까?

하지만 아델라는 자신의 감정을 신유성에게 털어 놓지 않았다. 지금 알고 싶은 건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어떤 것?”

자신을 보며 웃어주는 신유성의 다정한 미소. 아델라는 담담한 목소리로 신유성에게 물었다.

“당신도…… 있나요? 모든 걸 내려놓고 울고 싶은 순간이?”

아무리 강한 사람도 항상 강할 수 없다는 건 신유성의 말이었다.

그 때문일까.

아델라는 신유성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는지 궁금했다.

“응. 나도 있어.”

생각보다 너무나 흔쾌히 답변을 들려주는 신유성. 아델라는 다시 시선을 숲으로 옮기고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럼 그때는……. 신유성. 당신이 절 불러주세요.”

아델라는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전의 아델라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

“당신이 울고 있는 제 곁을 지켜준 것처럼, 저도 울고 있는 당신 곁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아델라는 오해를 살만한 말을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역시 좋은 생각인 거 같습니다. 그 편이 계산이 맞겠죠.”

자신의 해답에 만족한 듯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아델라. 신유성은 같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응. 그땐 잘 부탁할게.”

*     *      *

가온 아카데미의 부실.

평일을 맞이해 깨끗하게 대청소를 시작한 스미레.

“春に為ったら~ 花見!(봄이 되면~ 꽃놀이!)”

이젠 익숙해질 지경인 동요를 일본어로 흥얼거리며 스미레가 청소에 열중하고 있을 때, 김은아는 뚱한 얼굴로 소파에 누워 있었다.

“왜. 대체 ……왜 안 오는 거지?”

김은아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은 신유성의 행방에 꽂혀 있었다.

팔랑팔랑.

김은아가 뚱해져 있건 말건 붓과 같은 청소도구로 먼지를 터는 스미레. 김은아는 그런 스미레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스미레 넌 궁금하지도 않아? 너도 여기 있고. 나도 여기 있는데. 유성이는 왜 빨리 안 오는 건데.”

스미레는 김은아의 물음에 헤실헤실 웃었다.

“그렇지만 유성 씨는 무척 바쁘시니 까요. 또 새로운 일이 생기신 게 아닐까요?”

“그럼 부실에 들렀다가 우리를 보고 다시가도 되잖아…….”

스미레의 이야기에도 뚱- 한 표정을 짓던 김은아는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아! 그렇지! 차라리 부실에 포탈을 사둘까? 그럼 되겠네.”

천문학적인 금액의 포탈을 부실에 장만하겠다니. 김은아는 일반인의 상식으론 불가능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신성그룹의 후계자인 김은아가 말을 하니 스미레는 농담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네? 포, 포탈을…… 부실에요?”

“그래. 설치비야 좀 나오겠지만 한번 사두면 오래 쓰잖아.”

수십, 어쩌면 수백억이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설치비야 좀 나오겠지만.’으로 넘어가다니.

‘여, 역시 은아 씨의 금전 감각은 따라갈 수가 없어…….’

어린 시절 돈을 아끼기 위해 8호 크기의 닭과 9호 크기의 닭 중 구매를 고민했던 스미레로선 김은아의 이야기를 따라 갈 수가 없었다.

스미레는 그저 어머니처럼 인자한 눈으로 김은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은아 씨. ……후훗, 많이 변하셨단 말이야.’

파티원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저렇게까지 표현하다니. 요즘은 자신이 변했다는 자각조차 없어보였다.

완벽하게 김은아가 파티의 동료로서 스며들었다는 증거. 스미레는 자신과 신유성이 김은아의 소중한 사람이 됐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너 왜 날 그런 표정으로 보냐?”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김은아가 눈을 가늘게 뜨고 스미레를 바라보자. 스미레는 배시시 웃었다.

“그냥 궁금해서요! 은아 씨는 제가 말도 없이 며칠 간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당연히 찾으러 다니겠지. 넌 내 동료니까.”

김은아는 당연하다며 그렇게 말했지만 스미레는 그 이야기에 새삼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그게 당연한 거군요?”

어쩐지 위로 받는 기분.

김은아는 감동에 빠진 스미레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러니까, 바보 같은 소리 말고. 나 홍차나 타줘. 청소는 그 정도면 됐잖아.”

까칠한 척 말하지만 스미레의 몫까지 디저트를 꺼내고 있는 김은아의 모습. 스미레는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은아 씨는…… 솔직하지 못하셔서. 더 귀여워…….’

*     *      *

아델라는 특성을 이용해 장소의 냉기에 마나를 합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특별한 냉매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사아아.

아델라와 동상의 사이에서 푸른빛이 영글었다. 동상에서 뽑아내진 냉기는 어느새 구체의 형태로 뭉쳐지고 있었다.

사악!

이건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동상에 담겨 있던 냉기를 조금은 줄여주고 싶었던 아델라의 배려.

스으윽!

아델라는 압축된 구체에 자신의 마나를 더해 더욱 압축시켰다.

화아악!

마나가 튕겨져 나오며 밀폐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돌풍. 아델라는 눈을 찌푸리며 한계까지 냉매를 응축시켰다.

파아앙!

“큭!”

얼마나 마나를 쥐어짜냈는지 인상을 찡그리는 아델라. 하지만 냉기의 축복을 걸기 위해선 아직 단계가 남아 있었다.

“알을. 제게 안겨주시겠습니까?”

식은땀을 흘리는 아델라의 부탁에 신유성은 즉시 드래곤의 알을 아델라의 품에 안겨다주었다.

아델라의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1분 1초가 급한 상황. 아델라는 알을 부여잡은 손에 천천히 마나를 불어 넣었다.

사아아아!

냉기를 사물에 인챈트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아델라가 하고 있는 건 특성의 힘으로 자신의 스킬을 물질에 새겨 넣는 행위. 즉 드래곤들의 마법과 맥락이 비슷한 일이었다.

“후우, 하아…….”

그 힘겨운 과정을 끝낸 아델라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몸에 담긴 모든 마나를 짜냈더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제 자리에 서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끝났습니다. 이정도의 냉매면 부화하기까지……. 아!?”

얼음에 발목을 삐끗한 아델라의 몸이 기울어졌다. 당황한 와중에도 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알을 움켜 안는 아델라.

꽈악.

다음 상황을 직감한 아델라는 눈을 감았지만.

탓.

신유성은 빨랐다.

아델라의 몸이 바닥에 닿기 전에 부드럽게 아델라의 몸을 안아 올린 것이다.

“……아.”

아델라는 신유성의 품에 안긴 채, 숨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신유성을 올려다보았다.

“괜찮아?”

어느 때처럼 자상한 표정.

아델라에게 신유성은 참 신기한 사람이었다. 신유성의 곁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언제나 의지가 되는 사람.’

아델라는 신유성의 온기를 느끼며, 품 안의 알을 부드럽게 껴안았다. 알의 온도는 이전과 달리 기분 좋게 따스했다.

두근. 두근.

아델라가 숨을 참았다.

차가웠던 몸이 뜨거워지며 아까처럼 가슴이 간질거렸다.

“……기분이 이상합니다.”

도저히 알 수 없는 기분에 입을 여는 아델라. 자신을 바라보는 신유성의 눈에 초점을 맞춘 채.

“당신을 보면 무척 가슴이 빠르게 뛰어요. ……그건 왜일까요?”

아델라는 이전에 묻지 못했던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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