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87화 (187/434)

제187화

제자리에서 멈춰선 아델라는 자신의 팔뚝을 감싸 안았다.

사아아아-

뼛속 깊이 스며드는 눈보라.

눈앞에 펼쳐지는 새하얀 눈밭.

아델라는 정처 없이 길을 걸었던 5살의 지옥을 기억했다.

[아델라. 금방 돌아올게 알았지?]

평소처럼 웃어주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아버지의 모습.

[딱, 3일만. 3일만 혼자서 기다리는 거야. 응?]

그리고 떠나기 전 자신을 꽉- 안아주었던 어머니의 품을 기억했다.

하지만 어느새 그런 기억들은 점점 희미해져버렸다.

‘난…….’

하루가 지나 차가운 스프를 먹었을 때도. 곰인형을 껴안은 채 이틀이 지났을 때도. 약속한 사흘이 지났을 때도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자신의 목소리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때, 아델라의 내면에선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다시 한 달.

아델라는 더 이상 부모님이 그립지 않았다. 사흘을 기다리며 먹었던 콩 스프의 맛도 기억나지 않았다.

어머니의 얼굴도 아버지의 얼굴도 무엇도 기억나지 않았다.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

[……미안하구나. 아델라. 내가 이탈리아에 남아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그 때문일까.

자신의 할아버지가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릴 때도. 아델라는 부모를 잃은 5살이라기엔 너무나 담담한 눈으로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요. 할아버지.]

그 사건 이후, 아델라는 급속도로 말이 적어졌다.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리고 부모님의 기일 날. 창가에 꽃병을 두며 10살이 된 아델라는 아덴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힘이 없는 목소리로 아델라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저, 사실 슬프지 않아요. 사진을 봐도 아무런 기분도 들지 않아요.]

그렇게 말한 아델라는 꽃병의 옆자리. 창가에 앉아 있는 낡은 곰인형을 만지작거렸다.

[그래서 제가 너무 싫어요.]

아덴에게 남은 유일한 보물.

무표정한 아델라의 이야기에 아덴의 가슴은 가라앉을 듯 무거워졌다.

[아델라…….]

아델라는 아덴의 슬픈 표정에도 무감한 얼굴로 곰인형의 팔을 만지작거렸다.

[할아버지. ……살아있다는 건 뭘까요? 전, 살아있는 걸까요?]

아덴은 아델라에게 말없이 다가와 꼬옥- 가녀린 두 손을 잡아주었다.

[아델라.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마. 넌 살아있단다. 더 큰 세상으로 나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가슴 뛰는 일을 겪으며.]

맞잡은 아덴의 손은 따뜻했다.

어렸던 아델라는 그 온기에 꽝꽝 얼었던 자신의 손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넌 소중한 사람이 생기게 될 것이란다. 네가 기쁠 땐 같이 웃어주고, 슬픈 일을 겪으면 같이 울어주고. 외로운 날에는 조용히 곁을 지켜주겠지.]

[그러니……. 지금 너의 기분을. 한계를…… 섣불리 단정 짓지 마려무나. 그러니 누군가의 대답에 기대지 말고. 그때가 올 때까지 천천히 기다보렴.]

[그 순간이 오면 스스로에게 물어 보는 거란다.]

살아있음이 무엇인지.

자신이 살아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라. 그 순간이 올 때까지 기다려보아라.

어렸던 아델라는 아덴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덴이 말한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그 순간’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잿빛으로 얼어버린 세상에서 무감함을 느끼며 지루하게 살아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쿵쿵!

바로 지금.

아델라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었다. 공포와도 비슷한, 하지만 전혀 종잡을 수 없는 자신의 감정에 아델라는 혼란했다.

스윽.

아델라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빠르게 뛰는 박동은 포식자에게 쫒기는 초식 동물의 그것과 같았다.

자신은 두려워하는 걸까?

그렇다면 무엇을 보기 두려워하는 걸까?

발을 얼어붙게 만들고.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공포는 무엇일까.

얼어붙은 아델라의 모습에 신유성은 천천히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거대한 문에 손을 짚으며 아델라에게 말했다.

“……이 앞에 무엇이 있든. 결과를 확인하려면 네가 직접 문을 열 수밖에 없어.”

다른 누군가가 문을 열 순 있다.

선택을 대신 해줄 순 없다. 외면했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 필요한 건 오직 본인의 선택.

저벅저벅.

아델라는 느린 걸음으로 문 앞을 향해 걸어갔다.

문을 열기 전 아델라를 막아서는 약간의 망설임. 하지만 아델라는 꾸욱- 입을 다물며 양손으로 얼음문을 밀어냈다.

고오오-

문이 열리고.

얼음성의 안에선 혹한의 겨울과 같은 차가운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아델라는 방금 전과 달리 드문드문 놓인 얼음동상들이 눈에 보였다.

루이스의 왕좌에 가까이 갈수록 줄어드는 동상의 숫자들.

알 수 없는 긴장감 속에서 아델라는 무표정한 얼굴로 느릿하게 길의 끝을 향해 걸어갔다.

저벅저벅.

아델라는 옆에 놓인 동상들에게 단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고. 마치 정답을 본 것처럼 오롯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 끝에 놓인 건, 익숙하면서도 너무나도 이질적인 2명의 동상. 아델라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동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특성인 결계를 사용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손을 펼치고 있었고. 아버지는 주먹을 쥔 채, 무언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야.’

어머니와 아버지는 루이스와 전투를 치렀고, 패배했다. 지금 얼어붙어 있는 동상은 그 결과에 불과했다.

이 동상은 얼음덩어리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동상 앞에서 슬퍼한들,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아델라의 정신은 너무나 이성적이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동상을 향해 뻗으려고 해도 아델라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도저히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어째서…….’

아델라는 인상을 찡그리며 자신의 떨고 있는 오른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신유성이 그런 아델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당연한 거야. 아델라.”

아델라는 처음 느끼는 자신의 감정이 이상하다는 듯 행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알고 있었다.

아델라가 느끼는 감정은 이상하지 않다는 걸,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걸. 그렇기에 신유성은 떨리는 아델라의 손을 잡아주었다.

“……당연하다?”

손을 타고 전해지는 신유성의 온기. 아델라는 마치 아덴이 자신의 손을 잡아주었을 때처럼 잊어버렸던 따스함을 느끼고 있었다.

신유성은 자신을 바라보는 아델라에게 웃어주었다.

“응. 이런 상황이 된다면 슬픈 것도……. 울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도 당연해. 아델라.”

아델라는 멍한 표정으로 동상을 바라봤다. 아델라의 시간은 10여년도 지났지만 얼어버린 동상의 시간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아델라는 투명한 얼음 뒤에 비친 아버지의 눈을 바라봤다.

[아델라. 엄마와 나는 헌터란다.]

잊었던 기억 속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

[헌터는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 열심히 싸우는 사람이야.]

아버지는 그 과정에서 설령 죽게 되더라도.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아빠는 내가 보고 싶지 않아? 죽으면 못 보는데.]

4살이 채 되지 않은 아델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을 때, 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이 보고 싶기 때문에 싸우는 거란다.]

이제야 기억이 났다.

잊은 게 아니었다. 그건 너무나도 바보 같은 이야기. 이런 기억을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델라는 자신을 속여 온 것이었다. 자신이 정말 부모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더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버리는 건 너무 괴로웠으니까.

감당할 수 없었으니까.

아무렇지 않다고 자신을 속인 것이다. 더 이상은 망가지고 싶지 않았기에 스스로 자신을 망가트려버린 것이다.

뚝. 뚝뚝.

아델라가 동상의 얼어붙은 손을 부여잡았다. 얼어붙은 동상에서 온기가 느껴질 리 없었다.

얼어붙은 동상이 자신의 온기를 느낄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아델라는 바보 같다고 치부한 일을 스스로 자처하고 있었다.

“저는…….”

동상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아델라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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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 모두……. 가지 않았으면 했어요.”

뚝. 뚝뚝.

아델라는 그 흔한 흐느낌조차 없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냥, 옆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혼자 있기에 자신의 집은 너무나 넓고. 너무나 추우니까.

그렇기에 그녀는.

“무척, 보고 싶었어요…….”

두 사람이 보고 싶었다.

두 사람을 잊은 게 아니었다. 두 사람의 선택이 싫은 것도 아니었다. 함께 보냈던 시간이 기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더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포기했을 뿐이었다.

10년을 넘는 시간이 지나고 얼어붙은 부모님의 동상을 보고나서야 마주한 잔인한 진실.

“……돌아가고 싶어.”

신유성은 아덴의 바람처럼 얼굴을 숙인 채, 흐느끼는 아델라의 곁을 말없이 지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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