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5화
사도닉스 레이드의 성공이 대중들에게 알려지자. 신유성의 이름은 거대하게 대서특필 됐다.
그건 사도닉스 공략을 혼자서 성공시킨 활약 때문.
하지만 신유성이 어떤 방식으로 사도닉스를 공략했는지에 대해선 적혀있지 않았다.
“둘러대느라. 고생을 좀 했습니다. 저희야…… 사도닉스가 사라지는 걸 직접 봤지만. 현장에 없던 사람들은 이야기를 들어도 절대 납득을 하지 않을 테니까요.”
메이린은 이탈리아의 헌터 협회 지부에서 마치 자신의 사무실처럼 능숙하게 보석함을 꺼냈다.
“그리고 레이드에서 드랍된 아티팩트의 조사와 등록 절차도 모두 끝났습니다. 한번 열어보시겠습니까?”
신유성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검지로 툭 보석함을 건드리자. 작은 보석함이 빛을 뿜었다.
사아아!
보석함의 정체는 소형 포켓.
책상에는 거대한 괴수의 머리뼈와 붉은색 알이 꺼내져 있었다.
“정체불명의 알은 사도닉스 공략에서 나온 아티팩트. 나머지 하나는 로쟈님의 선물입니다. 거듭 감사를 표하시더군요.”
아벤티노로 변장한 리벨리온.
그의 습격에 로쟈는 상처를 입었다. 사실상 2명의 7급 헌터가 리타이어가 된 상태. 신유성은 그런 와중에도 공략을 시켜 로쟈의 짐을 덜어준 것이다.
‘이 뼈가 그 보답인가.’
사도닉스가 사라지며 나온 2개의 아티팩트는 규정대로라면 가장 뛰어난 활약을 한 신유성과 7급 헌터인 로쟈가 나눠야 했다.
하지만 로쟈는 아티팩트의 권리를 신유성에게 선물했다.
“감식 결과. 이 뼈는 시오스라는 블루드래곤의 것으로 보입니다. 사도닉스에게 패배해 목숨을 잃었죠. 이 머리뼈는 그때의 전리품으로 보입니다.”
블루 드래곤의 머리뼈라니.
수십에서 수백억.
어쩌면 그 이상으로 천문학적인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이 알은…….”
책상에 놓인 알을 보며 메이린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협회에서도 감식에 실패했습니다.”
한국과 이탈리아.
두 국가의 헌터협회에서 모두 감식에 실패하다니. 정체불명의 알은 보통 아티팩트가 아닌 게 분명했다.
“그렇군요.”
신유성은 알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정체불명의 알에선 따뜻하다 못해,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사도닉스가 남긴 알이라.’
신유성이 곤란한 표정으로 알을 바라보고 있자. 메이린은 그녀답지 않게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대신, 감식 분야에서 이탈리아 최고의 전문가가 협조 해주시기로 했습니다. 조사가 끝나면 알려드리려고 했지만. 역시 직접 만나시는 게 좋을 거 같네요.”
지이잉.
메이린의 설명이 끝나자 자동이 문이 열렸다. 협회조차 실패한 아티팩트를 감식해줄 최고의 전문가는.
“안녕하신가. 유성 학생!”
유원학의 동료이자 은빛 바람이라 불린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헌터. 아덴이었다.
* * *
밀폐된 실내에서 불어오는 은은한 바람. 신유성을 바라보는 아덴의 눈은 엄청난 신뢰가 담겨 있었다.
“신유성 학생. 공략에서 우리 아델라는 어땠나? 서로 의지가 좀 되었나? 아, 당연히 그랬겠지. ……헌터에게 동료는 그런 것이니 말일세.”
아덴은 근엄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알의 정체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델라는 신유성 학생에게 패배한 후, 진심으로 기뻐했었네. 이탈리아에서 국가대항전을 출전한다고 하질 않나……. 그렇게 주도적인 모습은 처음이었지.”
신유성은 아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물끄러미 알을 바라보았다.
아델라의 이야기도 좋지만 알의 정체가 궁금하다는 제스처. 그러나 아덴의 이야기는 오직 아델라였다.
“……신유성 학생. 사람은 누구나 목표를 위해 살아간다고 생각하네. 그것이 크든 작든 말일세. 하지만 우리 아델라에게는 목표가 없었다네.”
하지만 화제를 바꾸기에는 아덴의 태도가 너무 진지했다. 아덴은 마치 은인이라도 되는 듯 신유성의 두 손을 꼭 부여잡으며 말했다.
“그러나 이젠 다르네. 아델라에겐 신유성 학생을 이긴다는 목표가 생겼으니 말일세. 절대 우리 손녀에게 지지 말게나. 부탁이네. 아주 그냥 압도적으로! 크흠…….”
아덴은 말실수를 했다는 듯 헛기침을 했다. 그리곤 이내 전문가로서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무 말이 길었군. 그래도 걱정 말게. 이 알은 레드드래곤의 것이고. 난 레드드래곤의 알을 이미 다룬 적이 있으니 말일세.”
“……역시 레드드래곤의 알이었군요.”
알의 정체는 레드드래곤.
사도닉스가 남긴 아티팩트이니 어쩌면 사도닉스의 환생이라고 믿을 수도, 사도닉스의 자식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아덴 님. 드래곤의 알을 인간이 부화시킬 수 있습니까?”
신유성이 진지한 질문에 아덴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한 일이지……. 준비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말일세.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둔다면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알을 만져본 아덴의 표정은 심상치 않게 변하고 있었다.
“첫 번째로 드래곤이 부화하는데 필요한 건, 마나네. 알에는 이미 엄청난 마나가 담겨 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불어넣는다면 드래곤이 아닌 헌터들도 충분히 해낼 수 있지. 문제는 알의 온도일세.”
아덴은 알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에 손을 퍼뜩 떼어냈다.
“원래 레드 드래곤들은 갓 낳은 알의 껍데기에 냉기 마법을 걸어주지. 그런데 이 알은 그 과정이 없었으니, 이대로 두면 껍질이 부서지고 말걸세.”
충분히 알이 자라기 전에 껍데기가 부서진다면 결과는 뻔했다.
“……냉기 마법? 그럼 헌터들에겐 불가능한 일입니까?”
“방법이 없는 건 아닐세. 다른 방법이 3개 정도가 더 있지.”
아덴은 자신이 알고 있는 방법을 하나하나 친절하게 신유성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냉기 능력을 가진 헌터에게 도움을 받는 방법! 냉기 마법이 담긴 아티팩트를 이용하는 방법! 냉매를 이용하는 방법!”
방법을 전부 나열한 아덴은 신유성을 보며 웃었다.
“원하는 아티팩트를 구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 하지만 나머지 방법은 전부 실현가능한 일이네. 우리 아델라의 특성과 내가 알려주는 지역의 냉매를 구한다면 말일세.”
사도닉스가 남긴 알은 마지막 편린을 얻을 유일한 힌트였다. 아덴의 정보는 신유성에겐 그야말로 마지막 기회.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덴 님.”
고개를 숙이며 신유성이 진지하게 부탁을 하자. 아덴은 당황한 얼굴로 신유성의 몸을 일으켰다. 결국 신유성이 고개를 들자. 아덴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그러지 말게! 부탁을 할 쪽은 오히려 내 쪽이니 말일세!”
* * *
바다의 파도 소리가 들리는 가파른 절벽 위. 비앙카 아카데미의 위치는 마치 천혜의 요새 같았다.
그 지리적 요건 때문일까, 바앙카 아카데미는 학원도시의 아카데미들과 다르게 지나치게 폐쇄적이었다.
비앙카 아카데미에 손님이 오는 건 극히 드문 일.
“근데 신유성. 그 학생이 왔다고?”
“네. 지금 학생회에 있어요.”
“왜?
“아델라 님을 만나러 왔다고 하던데요. 아델라 님은 가온의 학생이셨으니까. 한국에서 직접 되찾으러 온 것 아닐까요? ……그렇게 보면 참, 로맨틱하네요.”
푹 빠진 금발 여학생의 표정. 반면 금발 남학생의 표정은 어딘가 떨떠름해 보였다.
“우리 아, 아델라 님을?”
“뭔가 부탁을 하러 오셨다는데. 두 분 사이에 다른 부탁이 있겠어요?”
약간의 오해를 더해.
비앙카를 찾은 신유성의 소식은 아카데미 전체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하지만 학생들의 기대와 다르게 아델라를 찾은 신유성의 부탁은 그리 로맨틱하지 않았다.
“아델라. 이게 아덴 님이 말씀하신 냉기를 부여해야 할 대상이야.”
그 한마디와 함께 신유성이 붉은색의 알을 꺼내자. 아델라는 의아한 얼굴로 알을 지켜보았다.
“……이 알은?”
아델라도 신유성이 레이드로 아티팩트를 얻은 건 알았다. 하지만 정확한 정체까지는 알지 못했다.
“레드 드래곤의 알이야.”
이제야 알게 된 충격적인 정체.
아델라는 눈앞에 있는 알이 드래곤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무감한 표정의 아델라도 알에 흥미를 보였다.
“냉기를 부여해야 할 대상이 레드 드래곤의 알이었다니…….”
신유성에게 알을 받아들자 아델라는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사아아!
아델라가 손등에서 푸른빛을 내뿜자. 냉기가 스며들며 차갑게 식어가는 알의 껍데기.
“성공했지만 지속시간은 3시간 정도입니다. 매번 능력을 반복할 순 없을 테니 계속 알의 온도를 떨어트리려면…….”
“냉매가 있어야 하는 거지?”
신유성의 말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아델라.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대상이 레드 드래곤의 알인 이상, 평범한 냉매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러나 만약 냉매가 아직까지도 녹고 있지 않는 겨울의 마녀의 힘이라면?
[……마녀 루이스가 죽으며 볼테라의 추위는 씻은 듯 사라졌지. 하지만 루인 산맥은 접근 불가 지역이 되었네.]
[그건 루이스가 공략 되었음에도 겨울 마녀의 성은 아직 루인에 남아 있기 때문일세.]
신유성은 지금 아덴이 말한 볼테라로 향할 생각이었다.
“루이스의 냉매면 충분하겠지?”
하지만 겨울의 마녀. 루이스의 이름에 아델라의 표정이 변했다.
“……루이스?”
겨울의 마녀. 볼테라의 재앙.
아델라에게 퇴색이 되어버릴지언정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이름.
“루인 산맥에는 아직 루이스의 성이 남아 있거든.”
신유성의 말에 아델라는 표정이 굳었다. 루인 산맥에 마녀가 있다는 건 아직 아덴이 알려주지 않은.
아니, 숨겨온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