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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3화 (183/434)

제183화

드래곤은 손이 귀하다.

수백 년 많게는 일천 년에 걸쳐서 헤츨링이 태어나지 않는 경우도 흔할 정도다.

대신 제왕이라 불리는 종족답게 드래곤은 길었던 시간만큼 완벽함을 추구한다.

쩍. 쩌저적.

자신의 세상이었던 알을 부수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 순간, 다른 종족들과 달리 드래곤은 이미 모든 게 완성되어 있었다.

쩌어어억.

‘……빛이다.’

처음 보는 감각.

하지만 알 속에서 지내는 동안 빛이라는 게 무엇인지, 눈이 부시다는 게 어떤 감각인지 드래곤들은 자연스럽게 모든 정보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도닉스는 그런 드래곤들 중에서도 독보적이었다.

*     *      *

“우리에게 마나란 공기와 같다. 주변의 공기를 들이쉬듯이 마나를 흡수하고, 자신의 것으로 손쉽게 사용이 가능하지.”

레드 일족의 장로가 어린 해츨링들을 교육하는 현장.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를 한 장로는 자신의 수염을 이리저리 쓰다듬으며 말했다.

“용언이란 들이쉰 마나를 담아 말을 하는 것과 같다. 우리들의 말에는 힘이 담겨 있고, 그 자체만으로 마법이 되곤 하지.”

장로는 사도닉스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주의를 주었다.

“그러니 절대! 드래곤은 헛된 약속을 하면 안 된다!”

장로는 사도닉스를 보며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서로가 맺은 맹약은! 지키지 못한 약속은! 드래곤에게 무엇보다 치명적인 독이 되기 때문이지! 드래곤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그렇다!”

족장은 마치 무언가라도 본 사람처럼 사도닉스에게 당부했다.

“그런 거, 안 해.”

고위급 마법사나 사용 가능하다는 5서클 마법. 대마법사나 사용 가능다는 6서클 마법. 드래곤들 중에서도 강자들만이 사용 가능하다는 7서클 마법.

그런데도 사도닉스는 헤츨링의 나이로 겨우 10살이 되었을 때 7서클 마법을 통달해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사도닉스는 알게 되었다.

‘지루해.’

드래곤들의 삶은 지루하다.

지상 최강의 생물이기에 그저 군림할 뿐 분쟁이 없고. 알에서 태어난 순간 이미 완벽하기에 이루고 싶은 목표도 없다. 그저 영생에 가까운 수명으로 지루한 시간을 살아간다.

식사를 하고.

마법을 배우고.

레어에 보물들을 담아두고.

사도닉스는 이 모든 과정이 의미 없이 느껴졌다. 드래곤의 삶에 회의를 가진 것이다.

“……결국 사도닉스. 네가 새로운 로드가 되었구나. 레드 일족을 잘 부탁한다.”

드래곤 로드.

레드 일족의 족장이 되었을 때도 모두의 존경을 받았을 때도 사도닉스는 무감하게 받아 들였다.

‘이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지?’

사도닉스는 직감했다.

지금부터 보낼 1년도. 100년도. 1000년도. 앞으로 살아갈 자신의 모든 인생이 치열하지 않을 거라고.

그저 남들에게 군림하며 목표도 없이 흘러 갈 거라고.

문득 사도닉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드래곤은 모든 걸 가졌기에, 아무것도 소중하지 않은 게 아닐까?

그래서 택했던 인간 세계의 유희.

지상 최강의 드래곤 사도닉스는 겨우 지루하다는 이유로 연약한 인간 소녀로서의 두 번째 삶을 택했다.

변덕으로 시작했기에 몇 년이 될지 알 수 없는 유희였지만 모든 게 새로웠다.

“이 아이라네……. 산적들에게 부모를 잃었다는 군…….”

사도닉스는 노모가 데려다 준 낡은 집도 새로웠고.

“산적이라니. 많이…… 무서웠지?”

자신을 대하는 인간 여성의 반응도 새로웠다.

“이제부턴 우리가 널 지켜줄 거란다. ……넌 이름이 뭐니?”

겨우 나약한 인간 주제에 자신을 지켜주겠다니. 사도닉스는 여성이 우스웠다. 하지만 그것마저 새로웠으니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그런 건 없어.”

“이름이 없다고? 그럼! 레피나! 레피나는 어떠니?”

그렇게 시작한 두 번째 삶.

모든 것에 능통한 드래곤이 어린 인간을 흉내 내는 건 어려웠다.

인간들은 미숙하고.

약하고 멍청하다.

“너 레피나 맞지? 난 타루야!”

자신을 타루라고 소개한 남자 아이가 딱 그랬다.

인간 치고 얼굴을 반반하지만 바보처럼 하루 종일 공터에서 나무 작대기나 휘둘렀다.

숲에서 나타나는 멧돼지도 이기지 못하면서. 저런 수련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타루는 사도닉스가 바보 같다고 치부해버린 삶을 치열하게 살았다.

온 몸에서 땀을 흘리며 사도닉스의 어떤 순간보다 열정적이게 살아가고 있었다.

‘저 녀석…….’

처음에는 바보 같다고 생각했고.

‘……오늘도?’

나중에는 부럽다고 생각했다.

하루하루 모든 걸 쏟아내는 삶이라니 사도닉스가 단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삶이었다.

“레피나. 안녕!”

인사를 한 뒤, 목도를 들고 뒤뚱뒤뚱 걸어가는 어린 타루. 사도닉스는 무슨 변덕인지 타루를 불러세웠다.

“야. 검 그렇게 다루는 거 아니야.”

레어에서 초급 교술서를 본 게 전부지만. 드래곤 로드인 사도닉스의 가르침은 제국의 기사보다 훨씬 뛰어났다.

시간이 지나고 마나 연공을 모르는 타루가 벽에 가로 막히자. 사도닉스는 비약도 먹어 본적도 없는 타루에게 아티팩트급 영약을 먹였다.

“야. 이거 먹어.”

“응! 헥! 으으, 엄청 써…….”

“남기지 마라.”

“응! 알았어! 레피나가 준 거니까.”

사도닉스는 레어에 넘치는 게 아티팩트니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행동들은 이제 변덕이 아니었다.

“야, 타루!”

사도닉스는 자기가 먼저 타루를 찾았고.

“얼른 일어나! 헤인다 아주머니가 빨리 밥 먹으러 오래! 이번 스프는 고기도 많다고 빨리 오라고 했어.”

어느새 누구보다 타루의 꿈을 응원하고 있었다.

“……레피나. 나, 기사가 될 수 있을까?”

“당연하지.”

“제국의 기사들은 엄청 강하대!”

“날 믿어.”

처음은 작은 소 동물을 키우는 기분이었지만 이젠 아니었다.

“넌 누구보다 강한 기사가 될 수 있어. 어떤 전쟁도 승리할 거야.”

드래곤에겐 찰나에 불과한 시간 동안. 사도닉스에게 타루는 레어의 어떤 아티팩트보다 소중한 보물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보물이 전쟁을 하러 가던 날. 결국 사도닉스는 맹약을 맺었다.

“진짜 ‘약속’ 한 거다? 돌아오기로. 나에게 ……맹세한 거야. 알겠지?”

드래곤의 맹약은 절대적이다.

드래곤 로드의 맹약은 더욱 절대적이다. 사도닉스 정도의 드래곤이라면 맹약에 담긴 언령의 힘만으로 전쟁의 판도를 뒤바꿀 힘이 있었다.

“응. 레피나. 맹세할게.”

하지만 사도닉스는 맹약을 맺었다.

타루를 볼 수 있다면. 자신이 응원하는 인간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면 드래곤들의 규칙도 사도닉스는 어길 수 있었다.

하지만 둘의 시계는 달랐으니.

언젠가는 이 만남을 멈춰야 했다.

17살의 나이로 전쟁에서 승리한 타루가 복귀 했을 때도 사도닉스는 기회가 있었고.

2년이 지나 타루와 결혼을 하기 전에도 기회가 있었다.

타루와 만난 지 30년이 지났을 때도. 타루의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되었을 때도 기회가 있었다.

“……타루.”

“긴 시간. 계속 내 곁을 지켜줘서 고마워……. 레피나.”

70살의 나이가 되어 임종을 맞이했을 때도 늦지 않았다.

“아니. ……사도닉스라고 불러야할까? 내가 없으면……. 넌 훌쩍 떠나고 말테니 말이야……. 정말 고마웠어. 레피나.”

드래곤과 인간의 시간은 똑같지 않으니 드래곤과 인간의 사랑은 영원 할 수 없다.

그 간단한 진리를 어기지만 않으면 사도닉스의 유희는 성공이었다.

하지만 타루와 함께한 60여 년은.

무감했던 사도닉스의 수천 년의 시간보다 소중한 보물이 되어 버렸다.

타루에게 70년의 시간이 주어진 전부였듯. 사도닉스에게도 그 시간이 전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니. 떠나지 않아. 난…… 널 찾을 거야.”

사도닉스가 눈물을 흘렸다.

드래곤이 눈물을 흘리는 건 드문 광경이었다. 고결한 절대자들은 어떤 순간에도 쉽사리 울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도닉스는 아이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맹세할게. 렌델의 사람들은 환생을 한다지?”

사도닉스의 눈물은 뺨을 타고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든. 어떤 모습이든. 타루……. 난 널 찾아낼 거야.”

사도닉스는 맹약을 맺었고, 그녀의 격해진 감정은 상상할 수 없는 마나를 맹약에 불어 넣었다.

“내가 몇 번의 유희를 반복해서라도. 꼭…….”

모든 게 어긋났다.

“찾아갈게.”

이젠 돌이킬 수 없었다.

*     *      *

크구구구구궁!!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지며 화신들의 힘이 한 곳에 뭉쳤다.

‘……여긴 어디지?’

사도닉스의 인격이 깨어났다는 건, 크루페오스를 포함한 화신의 인격이 사라졌다는 걸 의미했다.

아니 그 이전에 분명 자신은 토벌 당했을 텐데 어떻게 살아있는 걸까?

모든 게 불분명한 상황.

즈즈즈즈!!

하지만 그럼에도 마법진은 엄청난 소리를 내며 전성기의 사도닉스를 카스텔라나 동굴에 소환해냈다.

뻥 뚫린 천장에선 마나의 여파로 돌들이 하나 둘 떨어지고, 바닥에는 마나의 여파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것이 재앙이라 불린 드래곤 로드 사도닉스의 소환식.

즈즉! 즈으으윽!

붉은색의 마법진이 찢어지며 그 반대편의 암흑에서 사도닉스가 걸어 나왔다. 지금은 드래곤 폼이 아닌 붉은 머리칼의 평범한 소녀였지만.

사도닉스가 뿜어내는 마나는 평범한 인간들의 수천, 수만 배에 해당했다.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수준.

사도닉스는 무감한 표정으로 눈을 감은 채 생각했다.

‘상관없나.’

어차피 무슨 일이 벌어지든.

어떤 세상에 떨어지든.

자신의 목표는 타루를 찾는 것 하나였다.

‘타루를 찾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을 저질러도 상관없어.’

사도닉스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을 한 곳으로 모을 생각이었다. 반박은 없었다. 자신에게 반항하거나, 막는 사람이 있다면 그 대가를 치루 게 할 뿐이었다.

설령 영원의 시간이 걸리게 되더라도. 타루를 찾을 수만 있다면 상관없었다.

스윽.

고귀한 드래곤 로드가 눈을 떴다.

“사도닉스가 소환됐습니다!”

사도닉스는 자신을 막으려는 주힘찬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법 강한 인간이군.’

자신의 세계로 따지자면 개개인의 능력이 용사 정도. 하지만 주힘찬은 기껏해야 6급 헌터. 7급 헌터가 아닌 이상, 사도닉스의 위협이 되진 못했다.

사도닉스는 하나, 둘 천천히 상대를 훑었다.

“사도닉스가 마법을 사용할 때까지 섣불리 나서지 마세요!”

긴장한 얼굴로 악을 쓰는 메이린이 보였고.

“시간을 끄는데 집중해라. 범위에서 벗어나지 마라.”

안대를 차고 검을 든 쇼이치가 보였다. 그 외에도 난생 처음 보는 슈트를 입은 울트라와 레이피어를 든 엘리자.

‘간단하겠군.’

특성을 사용하기 위해 손을 뻗고 있는 아델라에 이르기까지 사도닉스의 시선은 무관심하게 지나쳤다.

하지만 시선이 끝에 달한 순간.

사도닉스의 움직임이 멈췄다.

“……너, 넌.”

사도닉스가 중얼거렸다. 차림새는 다르지만 수천 년을 기다린 상대. 절대 잘못 볼 리가 없었다.

파앙!

사도닉스는 마나를 모아 엄청난 속력으로 신유성에게 달려들었다.

와락!

“타루!”

사도닉스는 신유성을 껴안더니 펑펑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흑, 흐어엉! 내가…… 내가 찾는다고 했지? 찾는다고 했지?”

7급 네임드 보스가 공략인원을 껴안고 우는 진귀한 장면.

“이 무슨…….”

얼이 나간 메이린은 물론.

난데없는 광경에 모든 헌터들이 전의를 상실한 상황. 신유성이 슬쩍 물러서려고 하자. 사도닉스는 더욱 신유성의 몸을 움켜쥐었다.

“이제 흑, 흐윽……. 안 놓쳐. 절대로 안 놓쳐…….”

사도닉스 레이드는 공략대원이 보스를 사로잡은 최초의 공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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