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81화 (181/434)

제181화

자신의 본체.

가여운 절대자 사도닉스를 위하여 크루페오스는 기꺼이 신유성에게 고개를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사도닉스. 그녀를 구원해주세요.”

지성이 없는 몬스터들은 단순히 영역을 침범하거나, 들짐승처럼 배고픔 정도로 인간을 공격하지만. 지성이 있는 보스급 몬스터들에겐 대부분 전투를 하는 목적이 있다.

크루페오스의 목표는 주인을 지켜내고 언약의 저주를 깨트리는 것.

“……오직.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신유성의 모습을 본 크루페오스는 더 이상 전투의지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정중하게 부탁을 하며 지금까지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스윽.

신유성은 그런 크루페오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몬스터들과 싸웠지만 전투를 원하지 않는 상대는 처음이었다.

“미안하지만……. 난 너희가 찾는 남자가 아니야.”

신유성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이 아무리 타루라는 기사와 닮았든, 그런 기억이 없는 신유성에게 사도닉스는 그저 보스몹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저 7급 레이드를 클리어 하기 위해서 공략을 하고 처리해야 할 상대였다.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크루페오스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당신이 그녀를 알지 못해도. 진짜 타루가 아니라도.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언약의 힘은 드래곤에게서 온다.

지금 사도닉스를 괴롭히는 독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악감 때문이었다.

“당신은 타루의 외모를 닮았고. 그처럼 맑은 영혼을 가졌습니다. 사도닉스가 당신을 보고 타루를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겠죠…….”

고개를 든 크루페오스는 신유성을 향해 점점 다가왔다.

“전 알 수 있어요. 당신을 만난 것만으로……. 그녀는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크루페오스는 양손으로 신유성의 손을 잡았다.

사아아-

크루페오스에게 손을 붙잡히자 그녀의 절박한 감정이 신유성에게 새어 들어왔다. 하지만 신유성은 애써 그 감정들을 막지 않았다.

‘이건, 어쩌면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공략의 가능성…….’

크루페오스의 손이 빛났다.

처음에는 푸른색의 빛이나 마치 강물 같았고, 그녀의 머리칼처럼 밤바다의 색으로 천천히 잠식됐다.

“저도 드래곤이자. 그녀의 일부로서 언약을. ……맹세를 하겠습니다. 저에게 남아 있는 모든 힘을 드릴 테니……. 부디…….”

사아아!

어두웠던 몽환의 세상에 수없이 많은 푸른빛과 보랏빛의 반딧불이가 짝을 맞춰 춤을 췄다.

손에서 퍼져 나간 빛이.

온 세상을 감싸고 봄의 벚꽃처럼 아름답게 흩날린다.

“그녀를 구해주세요.”

파앗-

그 말을 끝으로 마치 물거품처럼 푸른빛의 반딧불이로 변해 사라지는 크루페오스.

신유성은 약간의 욱신거리는 통증에 손등을 바라봤다. 손등에는 알 수 없는 문양의 표식이 빛을 내더니 천천히 사라졌다.

“이건…….”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신유성.

하지만 놀라기는 일렀다.

[사도닉스의 편린-(화신 크루페오스의 조각)을 흡수하셨습니다.]

포켓의 홀로그램이 뿜어져 나오며 설명을 시작했다. 방금 전 손등에 새겨진 건 사도닉스의 편린. 무려 7급 네임드 보스의 힘이었다.

‘이런 곳에서……. 편린의 힘을 얻다니.’

[사도닉스의 편린에 담긴 힘이 각성자의 능력을 인식 중입니다.]

[동화율 계산 중…….]

그러나 흡수했다고 끝이 아니다.

최종 동화율이 50%를 넘지 못하면 편린은 흡수자를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편린이 흡수자의 동화율을 계산하는 건 총 5개의 항목.

[레드 드래곤 사도닉스와 신유성의 동화율은 아래와 같습니다.]

[1-정보를 표기할 수 없습니다.]

포켓의 메시지와 함께 동화율의 체크가 시작되자. 신유성은 표정이 굳었다. 레드 드래곤인 사도닉스와 자신의 공통점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2-기준 성격과 성향]

[2번 항목에 의거해 동화율이 25% 떨어집니다.]

성격과 성향이 정 반대인 건 물론이고.

[3-능력]

[3번 항목에 의거해 동화율이 25% 떨어집니다.]

마법을 사용하던 사도닉스와 집중력과 신체를 갈고 닦은 신유성의 능력이 비슷 할리도 없었다.

[4-마나]

[4번 항목에 의거해 동화율이 25% 떨어집니다.]

방대한 드래곤의 마나에게 인간인 신유성의 마나를 비교하는 것도 우스운 일.

[5-신체와 외형]

[5번 항목에 의거해 동화율이 25% 떨어집니다.]

거기다 사도닉스는 대부분의 모습을 드래곤 폼이나 여성체로 폴리모프를 유지했다. 인간 남성인 신유성과 신체적 혹은 외형적인 접점이 있을 리가 없었다.

[최종 동화율 0%]

[부적합자로 판정되었습니다.]

결국 모처럼 얻은 사도닉스의 편린은 흡수가 불가능해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 신유성의 손등이 푸른빛을 뿜었다.

[1-편린의 조각 크루페오스가 언약의 힘으로 새로운 규칙을 적용합니다.]

편린의 흡수에 새로운 규칙을 더하다니. 그렇게 세상의 규칙을 바꾸는 건, 상상도 못할 엄청난 마나가 필요했다. 하지만 크루페오스는 자신이 소멸되는 걸 알면서도 모든 마나를 소모해 기꺼이 예외의 규칙을 적용시켰다.

[지금부터 편린의 동화율은 레드 드래곤 사도닉스가 아닌, 역전의 기사 타루와 동화율을 계산합니다.]

이건 크루페오스의 약속.

그녀가 자신의 힘을 바치며 남긴 소원은 사도닉스와 닮은 후계자를 찾는 게 아니라 사도닉스를 구원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힘을 넘겨주는 것도, 사도닉스를 닮은 흡수자가 아닌. 사도닉스를 언약의 힘에서 구원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절박해야 할 수 있는 희생일까?

신유성은 담담하게 자신의 손등을 바라봤다.

자신이 타루라는 남자와 얼마나 닮았는지. 그 평가를 편린에게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2-기준 성격과 성향]

[2번 항목에 의거해 동화율이 20% 올라갑니다.]

처음부터 올라간 동화율이 20%

타루와 신유성은 둘 다 자신만의 정의를 관철하는 올곧은 성품을 가졌다.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든 앞으로 헤쳐 나가는 성격마저 같았다.

[3-능력]

[3번 항목에 의거해 동화율이 10% 떨어집니다.]

하지만 둘의 능력은 전혀 비슷하지 않았다. 타루는 평범한 인간. 드래곤의 언약으로 전쟁에서 커다란 공을 거뒀지만 헌터인 신유성과는 태생이 달랐다.

[4-마나]

[4번 항목에 의거해 동화율이 10% 올라갑니다.]

4번 항목에서 타루와 신유성이 비슷하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신유성과 타루는 같은 인간이지만 마나의 양이 같을 리는 없었다.

즉 편린이 비슷하다고 평가한 건, 마나의 성질. 전투에서 실질적인 차이는 없지만 사람의 성격처럼 마나는 미묘하게 다른 고유의 성질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성질이 비슷하다는 건 같은 모양의 지문을 발견하는 것처럼 드문 이야기.

[5-신체와 외형]

[5번 항목에 의거해 동화율이 23% 올라갑니다.]

[최종 동화율 93%]

[적합자로 판정되었습니다.]

[사도닉스의 편린-(화신 크루페오스의 조각)을 얻으셨습니다.]

[사도닉스의 편린에 담긴 힘에 비례해 마나가 증가하고 신체 능력이 강화됩니다.]

주르르륵-

신유성의 눈앞에 포켓의 홀로그램으로 수많은 정보가 펼쳐졌다. 하지만 포켓의 설명처럼 마나가 증가되고 신체능력이 강화되진 않았다.

‘그건 아직…….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언약의 힘이 발동하는 건 어디까지나 약속이 이루어진 순간. 사도닉스의 편린을 사용하기 위해선 신유성은 크루페오스의 부탁처럼 사도닉스를 구원해야 했다.

쿵. 쿠웅. 쿵!

주변의 세상이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암흑 속을 떠돌아다니던 반딧불들이 신유성의 주위를 감싸 안았다.

*     *      *

크루페오스가 사라지고 공략이 끝나자. 수정동굴의 입구에 전이된 주힘찬과 신유성.

“아니 헉! 허억! 대, 대체 여긴!?”

주힘찬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거친 숨을 쉬었다.

“신유성 학생도 저와 똑같은 일을 겪었습니까!?”

“네?”

“1시간 가까이 온통 새카만 바다를 헤엄치고 또 헤엄치고……. 갑자기 뿔이 달린 돌고래 떼가 나타나더니. 거대한 흰 수염고래가…….”

주힘찬이 혼이 나간 얼굴로 횡설수설하자. 신유성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크루페오스 공략은 끝났습니다.”

“제가 환각에 빠진 동안 시, 신유성 학생 혼자서 처치한 겁니까? 현역 헌터란 인간이 이렇게 쓸모없을 수가!”

놀란 주힘찬은 크윽- 하고 분한 표정을 짓더니 포켓을 확인했다.

“역시 던전이 크다 싶었습니다. 이미 중국. 일본. 이탈리아. 미국은 공략이 끝난 상태군요.”

던전에서 바로 전투에 돌입하는 대신, 수정동굴을 헤매고 크루페오스의 이야기를 들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아무리 가장 강한 화신을 맡았어도. 7급분들의 공략이 끝나지 않은 건 의외군요. 그분들이 애를 먹을 정도로 강한 건지…….”

주힘찬의 말처럼 화신은 로쟈와 아벤티노에게 힘든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로쟈와 아벤티노는 아직까지 공략을 성공시키지 못한 상황.

“그럼 일단 다른 헌터 분들과 합류하기 위해서 임시 대피소로 이동하겠습니다.”

만일 로쟈와 아벤티노의 지원 요청이 들어온다면 모르겠지만 공략중인 던전에 무작정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레이드 파티의 보고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 주힘찬은 신유성과 함께 임시 대피소로 이동했다.

*     *      *

임시 대피소는 협회가 이번 공략을 위해 만들어낸 첨단 시설이었다.

관계자들이 설치해둔 카메라로 던전의 입구를 모니터링 할 수 있었고, 작전 중에도 사령탑의 지휘를 받으며 비상시에는 포탈로 지원 요청을 신청 할 수도 있었다.

“이탈리아는 겨우 공략 한번을 위해 이런 곳을 짓다니 신기하네.”

웨이린의 말처럼 1번의 공략을 위해서 지은 것치고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과한 시설이었다.

“그만큼 7급 레이드가 대단하단 거겠지. 화신을 잡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시간이 끌렸잖아?”

콜트가 카우보이 모자를 눌러쓰며 폼을 잡자. 웨이린은 인상을 썼다.

‘……비위생적이게 저 수염은 뭐야. 진짜 나랑 같은 학생 맞아?’

그렇게 한숨을 쉬던 와중.

공략을 끝낸 신유성이 들어오자. 웨이린은 눈을 빛냈다.

“오~ 끝났나 보네? 어때 아티팩트 좀 먹었니?”

신유성은 대답 없이 대기실로 걸어 들어왔고. 아델라는 말없이 그 광경을 바라봤다.

‘……저기 아닌데.’

지금 웨이린의 옆자리에는 콜트와 잇신이 앉아 있었지만 아델라의 옆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건 테스트를 통과한 사도닉스 공략조와 통과하지 못한 화신 공략조로 멘티를 나누었기 때문.

그런데 웨이린은 콜트를 밀어내고 자신의 옆자리를 두드리며 신유성을 부르고 있었다.

“어디 이리 와서 공략 이야기 좀 해줘~ 크루페오스는 얼마나 센지 궁금하던데. 같은 헌터끼리 정보 공유 좀 하자~”

신유성은 자신과 같은 사도닉스 공략조였고. 자신의 옆에 앉아야하는 헌터. 아델라는 못 마땅한 얼굴로 웨이린을 바라봤다.

아델라는 적어도 이곳에서 신유성과 함께 앉을 자격이 있는 건, 라이벌인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스윽.

지금까지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있던 아델라가 일어섰다. 그리곤 자신의 라이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기꺼이 성큼성큼 어울리지 않는 발걸음으로 신유성에게 다가갔다.

꾹.

신유성의 옷깃을 잡는 아델라.

“……아델라?”

신유성이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자. 아델라는 가늘어진 눈을 한 채, 검지로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 자리는…… 여기에요.”

다른 사람에겐 상상도 못할 태도.

아델라는 신유성과 함께 시험을 통과한 동료이자 라이벌로서 정당한 권리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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