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9화
이탈리아 카스텔라나 동굴.
원래는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며 관광명소로 유명한 장소가 오늘은 어딘가 모습이 달랐다.
고오오오-
지금의 카스텔라나 동굴은 무시무시한 열기를 내뿜으며 용암이 들끓는 작열 지옥.
놀랍게도 이것은 사도닉스의 레이드가 시작된다는 전조였다. 7급 보스몹이 마나로 전개한 일종의 필드.
몇몇 레이드에선 보스몹들의 이런 필드 전개(Field deployment)를 막기 위해 아티팩트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사도닉스를 상대로 그런 임시방편은 통하지 않았다.
이렇게 큰 규모의 필드 전개를 막고 원래의 풍경으로 되돌리는 방법은 오직 보스를 처치하는 것뿐.
7급 헌터인 로쟈는 책임자로서 모두에게 크게 소리쳤다.
“아까도 말했지만 학생들을 위해서 다시 말하지. 화신의 위치는 머리가 1시. 거기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정해진다.”
마찬가지로 7급 헌터인 청의 사도 아벤티노는 인자한 목소리로 공략대에게 일렀다.
“화신을 처리하시는 대로. 필드의 중심지인 이곳에 다시 모여 주십시오. 화신을 모두 처리하면 이곳에 사도닉스가 군림할 것입니다.”
“방심하면 안 되겠지만……. 진정한 공략은 그때부터 시작이군요!”
주힘찬이 힘차게 소리치자.
“……미리 말하지만 시간 안에 화신을 못 잡는다면.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화신의 공략이 길어질수록, 부활하는 사도닉스의 힘은 점점 강해지니까요.”
메이린은 학생들에게 이건 연습이 아니라며 경각심을 줬다.
“저희들이 공략이 늦어지고 실패한다면. 그 피해는 이탈리아의 일반 시민들이 지게 됩니다. 모든 멘티분들은 전력을 다해 진지하게 임해주세요.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으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메이린은 자신들이 맡은 방향을 향해 웨이린을 데리고 이동을 시작했다.
로쟈와 아벤티노는 입구에서부터 12시 쪽 필드.
신유성과 주힘찬은 2시.
아델라와 레이나는 3시.
메이린과 웨이린은 7시.
울트라와 콜트는 9시.
쇼이치와 잇신은 11시.
지금은 필드의 형태가 용암지역으로 비슷해 보이지만 화신이 나타나는 젠 장소로 이동하면 이야기가 달랐다. 거기선 화신의 성질에 따른 새로운 필드가 전개 된다.
멘티들은 화신과 필드의 성지에 따라 헌터 용품을 준비해온 상황.
그러니 준비물들을 백분 활용하려면 화신이 나타나기 전에 빨리 움직이는 게 중요했다.
이야기가 끝나자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헌터들.
반면 주힘찬은 이동하기 전 신유성에게 진지한 태도로 일렀다.
“신유성 학생. 만약 공략 중 좋은 의견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 해주십시오!”
대부분의 멘티들은 화신을 처리하고 포탈을 사용해 협회로 복귀를 명받았지만 탑의 기록을 통과한 신유성과 아델라는 사도닉스의 공략까지 참여자격을 얻었다.
즉 신유성과 아델라는 현역인 멘토들과 어느 정도 동등한 관계.
주힘찬은 신유성을 멘티가 아닌 공략의 동료로서 존중하고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신유성은 주힘찬의 그런 모습에 옅게 미소를 지었다. 실력만 있다면 학생조차 겸허하게 동료로 인정 할 수 있다니 주힘찬은 여러 의미로 믿음직한 사람이었다.
‘다만 걸리는 게 있다면…….’
오직 초감각을 가진 신유성만 느낄 수 있는 민감한 차이. 신유성은 아까부터 심기가 거슬릴 정도로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진 그저 이질감에 불과했다. 이상하다는 감각은 들지만 확신이 없는 상태.
신유성은 멀어지는 로쟈와 아벤티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일단 지금은 공략에 집중해야겠군.’
* * *
12시는 불의 상징인 화신이 젠 되는 장소. 아벤티노와 로쟈는 굽이 진 용암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타다다다!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는 와중에도 오랜 시간 파트너를 맞췄기 때문인지 달리는 속도가 일정한 둘.
아벤티노는 신부복의 옷자락을 휘날리며 로쟈에게 물었다.
“본 레이드에 2명이나 통과하다니. 이번. 루키들은 거물이 많던 걸?”
“네가 학생들한테 관심을 보이고 별일이네. 며칠 전만해도 레이드에 학생들을 데리고 오는 게 마음에 안 든다더니?”
“생각이 바뀌었어. 그래도 탑의 기록을 통과한 천재들이잖아?”
아벤티노는 속도를 줄이더니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리곤 포켓에서 준비해둔 스크롤을 꺼내 찢었다.
사아아!
방금 아벤티노가 사용한 건 일정시간 착용자의 주위에 물속성 실드를 부여하는 스크롤.
희귀성 때문에 1장이 수억을 호가하는 고급 헌터용품이었다.
로쟈는 그런 아벤티노를 보며 킥킥킥- 소리 내어 웃었다.
“너 설마 쟤들이 탐나? 신부가 될 것 같진 않던데.”
아벤티노는 장난스런 로쟈의 말에 조용히 중얼거렸다.
“글쎄……. 그건 모를 일이지.”
그리곤 평소처럼 인자한 표정으로 웃어주는 아벤티노. 로쟈는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그 웃음을 보자 괜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 * *
탑에서 어떤 스테이지가 걸릴지는 로테이션을 따른 랜덤이지만 헌터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10층. 20층 30층. 40층……. 탑은 10층마다 공략의 난이도가 확확 뛴 다는 게 일반반적인 평가였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푸른색의 홀로그램.
탑의 메시지를 확인하며 김은아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10층은 파티 퀘스트가 존재하는 층입니다.]
[퀘스트 이름: 동심의 세계! 토이 왕국을 지켜라!]
[최소 참여 인원 6명]
[페널티: 도전자의 나이가 전부 7살로 어려집니다.]
“대체 페널티로 10살이나 어려지면 퀘스트는 어떻게 깨라는 거야.”
김은아가 이해가 안 된다며 투정을 부리자. 스미레도 맞장구를 치며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어렵겠네요! 거기다 너무 특이한 페널티 같아요.”
반면 에이미는 방금 전의 활약 때문인지 마냥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래도 은아야! 제목을 보면 쉬울 거 같지 않아? 이름도 토이 왕국이라니 뭔가 하찮잖아. 페널티가 있는 만큼 난이도도 낮을 걸?”
“야. 아무리 난이도가 낮아져도 10년 전으로 돌아가면. 나이가 7살이야. 7살들이 모여서 뭘 해.”
“하긴…….”
쉽게 수긍해버리는 에이미.
스미레는 재밌는 생각이 난 듯 옆에서 헤헤 웃었다.
“그래도 전부 7살들이 된다면 무척 귀엽겠네요!”
‘모두 7살이 된다라…….’
김은아는 턱에 손가락을 얹은 채 흐음- 하고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파티원들의 어린 시절 모습이라니. 어쩐지 연상하는 것만으로 벌써 이미지가 떠오르는 듯 했다.
‘……유성이는 뭔가 먹을 걸 좋아하는 바보 느낌. 스미레는 소극적이지만 착한 아이 느낌일 거 같고. 에이미는 깨발랄?’
확실히 김은아도 파티원들의 어린 시절 모습이 보고 싶긴 했다. 특히 신유성의 어린 시절은 꼭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확실히 귀엽긴 하겠네…….’
결국 귀가 솔깃해진 김은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번에는 에이미가 직접 상황을 정리했다.
“일단 그럼 은아야. 10층은 파티장님이 돌아오면 생각하고. 이제 아카데미로 복귀하자!”
아카데미라는 단어가 이렇게 반가운 울림으로 들리다니. 확실히 탑을 오르며 고생을 하긴 한 모양.
“벌써 복귀라니…… 저희 정말 빠르게 9층까지 왔네요.”
스미레의 말처럼 첫 공략 도전부터 막히지 않고 9층에 도착한 건, 훌륭한 실력. 김은아는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훗, 하긴…….”
김은아가 들었던 신유성의 목표는 1학년이 끝나기 전에 20층을 공략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벌써 10층이라니. 김은아는 목표까지 반절은 왔다는 사실에 당당한 포즈로 큰 소리를 쳤다.
“솔직히 우리만 한 파티원도 없지!”
대인전은 물론 다수를 상대로도 막강한 전력을 뽐내고, 무한에 가까운 금전으로 동아리를 지원해주는 김은아.
언데드와 사역마 군세를 다루는 사령술사이자, 탑에서도 맛있는 요리를 전담해주는 스미레.
거기다 말이 많은 에이미까지.
누가 봐도 쟁쟁한 스펙에 김은아가 자부심을 가질 법도 했다.
“고럼! 고럼! 모두 고생해써!”
상쾌한 얼굴로 외치는 에이미.
김은아는 피식 웃으며 복귀하는 포탈을 열었다.
사아아!
승자들을 환영하듯 보기 좋은 푸른빛으로 일렁이는 포탈의 물결.
‘……유성 씨는 잘 계시려나.’
스미레는 멋쩍게 웃으며 신유성을 걱정했고.
‘이렇게 고생을 시켰으니. 신유성 오기만 해!’
김은아는 신유성과의 스케줄을 생각하며 의지를 다졌다.
‘……나. 돌아가면 치즈케이크 먹을 거야!’
그리고 요상한 다짐을 하는 에이미까지. 3인방은 나름의 모험을 끝마치고 무사히 가온으로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