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77화 (177/434)

제177화

‘일단 그건, 다음에 생각할까…….’

기습적으로 닥쳐온 스미레의 엄청난 포용력에 잠을 못 이루던 김은아는 금방 잠이 들었다.

*     *      *

부우웅-!

머리 위로 스치는 드래곤의 거대한 앞발. 대부분 드래곤들을 처음 맞이하는 자들은 모두 위압감에 몸을 움츠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 도전자는…….’

아슬란은 놀란 눈으로 신유성을 지켜봤다.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기까지 수없이 많은 원정대와 모험을 떠났지만 드래곤을 처음 상대하면서 움직임에 망설임이 없는 건 신유성이 처음이었다.

다리. 무릎. 허벅지.

마나의 흐름은 탄력받은 고무줄처럼 신체를 타고 흘렀고, 강화된 신유성의 몸이 화살처럼 드래곤을 향해 쏘아졌다.

파앗!

손을 뻗기 전, 일촉즉발의 상황.

‘그렇지만 어떻게 할 셈이지? 마나 강화만으로 드래곤의 배리어를 부술 순 없거늘…….’

아슬란의 걱정은 기우였다.

차앙-!

신유성의 손이 닿자. 마나 배리어는 유리조각처럼 푸른빛을 반사하며 산산이 부서졌다.

‘저건!’

아슬란은 알 수 있었다.

신유성이 흘려보낸 건 파동이었다.

연못에 던져진 조약돌처럼 잔잔하고 평화로운 파동은 상대와 공명하는 순간 성질이 바뀐다.

파동은 파장이 되고, 난폭하게 대상을 찢어발긴다.

‘마나가. 마나를…… 흔들고 있다!’

아슬란은 난생 처음 보는 현상에 당황했지만 신유성은 담담했다.

마나 공명은 헌터들이 일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현상이지만. 지금 발생한 마나 공명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다.

툭.

신유성은 실드가 부서지자 뻗었던 손을 뒤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부서진 실드에선 콸콸- 쏟아지는 폭포처럼 마나가 분출됐다.

투신류 5장 파류공명(波流共鳴)

몸에 손조차 닿지 않았지만 드래곤은 역류하는 마나에 치명타를 입고 있었다.

드래곤에게 마나란 혈액보다 중요한 것. 공명 현상으로 역류된 마나는 드래곤에겐 혈액에 퍼진 독과 같았다.

쩌억-

입을 크게 벌린 드래곤이 신유성을 향해 포효를 내뿜었다.

대상에게 공포심을 심는 드래곤 피어라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쩌렁한 외침에 뒤로 밀려날지언정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역시 마나 공명은 먹힌다.’

오히려 신유성은 포효하는 드래곤의 입을 향해 손을 뻗었다.

‘차이가 있다면 방대한 마나의 양.’

무리한 행동이 아니었다.

신유성이 노리고 있는 건 드래곤의 쩌억- 벌어진 입에서 뿜어낼 다음 공격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동일한 마나의 양을 예측하는 거야.’

마나의 주인이라 불리는 드래곤에게 마나 공명은 치명적인 무기. 역류된 마나는 분명 치명상을 입히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역류된 마나는 드래곤의 방대한 마나에 희석되고 만다.

‘그러나.’

희석될 수 없는 마나.

가령 자신의 마나가 역류한다면?

고오오오-

레드 드래곤이 상체를 부풀렸다.

주변에서 모인 마나의 입자는 푸른색에서 붉은색으로 변해 드래곤의 몸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레드 드래곤의 상징이자.

100년을 타오르며 절대 꺼지지 않는다고 일컬어지는 공포의 불꽃.

드래곤 브레스(Dragon breath)

이미 아슬란은 흥미진진한 눈으로 신유성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탑의 기록에서 지금까지 수많은 도전자들을 가르쳤지만 공명 현상으로 마나 실드를 부수고 드래곤 브레스를 정면에서 맞서다니. 이렇게 가슴이 뛰는 전투를 지켜보는 건 아슬란도 처음이었다.

쿵. 쿵.

앞발을 든 드래곤이 상체를 들어 입에서 불을 내뿜었다.

화르르르륵!

신유성의 가속되는 사고와 함께 멈춰버린 시간. 드래곤 브레스의 뜨거운 불길은 신유성의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지금이다.’

초감각을 각성한 지금.

신유성은 눈앞의 상황을 순식간에 해석 할 수 있었다. 마치 정답이 정해진 길을 걸어가는 기분.

눈앞의 마나 덩어리가 얼마나 강력한지. 그걸 받아치기 위해선, 얼마만큼의 마나를 내뿜어야 할지. 어떤 각도로 손을 움직여야 할지.

모든 것이 명확했다.

자신이 해야 하는 건, 그저 보이는 정답을 따라가는 것.

[……투신류는 나의 신체에 맞추어 만들어 낸 무술. 5장부터는 너의 재능에 맞게 길을 새로이 개척해야 한다.]

명확해진 길을 바라보며 신유성은 유원학의 말을 떠올렸다.

스승인 유원학은 자신만의 교육으로 신유성을 키워냈지만. 그렇다고 스승인 자신의 길을 신유성이 따라 걷길 원하진 않았다.

[너는 더욱 뛰어난 체질을 타고 났는데 겨우 이것밖에 못하느냐!]

머리는 어느 때보다 냉정하고 차가워졌음에도. 영문 모를 기분에 가슴이 뜨겁다.

[내가 제자를 기르는 이유?]

[당연한 걸 묻는구나! 나를 뛰어넘는 인류 최강의 헌터를 키우기 위함이지!]

[물론 지금은 한참 멀고도 멀었지만 말이다!]

지금의 길을 보고 나서야 신유성은 유원학의 가르침을 진정으로 이해한 것만 같았다.

‘스승님이……. 나에게. 투신류의 5장을 전수해주시지 않으신 건…….’

처음에는 유원학의 투신류가 자신에게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무엇보다 존경하는 스승님의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유원학 정도의 고수라면 그런 차이는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다.

유원학이 새로운 투신류를 만들어내라고 한 진짜 이유는.

‘내가 스승님과 다른 길을 걷길 원하신 거야.’

유원학의 투신류가 아닌.

신유성 자신의 투신류로.

권왕의 제자가 아닌, 신유성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이 역사를 새기길 원한 것이다.

그건 유원학이 권왕으로서 세운 업적을 신유성이 뛰어넘을 수 있다고 믿었기에 가능한 판단이었다.

지금 신유성이 보고 있는 건, 그 믿음으로 만들어낸 길.

모든 것이 명확할 수밖에 없었다.

사아.

신유성의 손에 푸른 기운이 감돌았다. 후욱- 손바닥을 뻗자. 강물처럼 잔잔했던 마나는 이제 파도처럼 몰아쳤다.

창룡승천파(蒼龍昇天波)

콰앙-!

물과 불처럼.

서로를 삼키려는 난폭한 마나가 맞부딪쳤다. 마나로 마나의 주인인 드래곤을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

하지만 창룡승천파는 상대의 마나를 역이용하는 기술. 서로를 밀어내는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기술의 위력은 더욱 강해졌다.

그러니 신유성이 원하는 건 드래곤의 마나를 이기려고 하는 게 아니었다. 진짜로 원하는 건 마나가 몰아치는 방향을 바꾸는 것.

콰아아!

창룡승천파와 브레스는 결국 한곳에 뒤섞였고. 성질이 바뀐 마나는 신유성이 아닌 드래곤을 향해 몰아쳤다.

파장창!

다시 한번 간단히 부서지는 드래곤의 마나 실드. 이번에는 마나 공명이 아닌 순수한 기술의 힘으로 실드를 부숴버렸다.

“크오오오!”

드래곤이 다시 포효를 내지르며 상체를 들었다. 마나가 통하지 않으니 앞발을 휘둘러 강철보다 단단한 발톱을 이용할 셈이었다.

하지만 마나가 아닌, 무력을 사용해 덤빈다면 신유성에게 드래곤은 덩치 큰 도마뱀에 불과했다.

탓!

가벼운 도약.

신유성은 손에 마나를 모았다.

드래곤과의 전투에 종지부를 찍으려면 마나 공명과 창룡승천파를 모두 성공시킨 지금이 기회.

‘이번 공격에 모든 걸 담는다.’

무슨 기술을 사용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만의 투신류.’

사아아!

손끝에서 모이는 범상치 않은 마나. 지금까지 수없이 사용해본 기술이지만 이번에는 해석이 달랐다.

유원학의 폭룡암쇄장은 상대를 분쇄하는 거대한 믹서기에 가깝다.

반면 신유성이 사용하려는 투신류는 그 마나를 최대한 한 점에 모아 응축시키는 방식.

그그그극!

푸른빛의 마나는 이미 금빛을 내며 신유성의 왼손에 모여 있었다.

투신류 폭룡암쇄장(暴龍巖碎掌)

16594425520152.jpg 

신유성이 왼손바닥을 뻗었고.

콰앙!

금빛의 마나가 드래곤의 몸에 작렬했다.

파아아앙!

방대한 마나는 주변에 돌풍을 몰아쳤고. 아슬란은 팔을 교차시켜 머리를 보호했지만 그 여파로 한참을 물러났다.

“큿!”

돌풍의 여파가 사라지자마자 아슬란은 곧바로 눈을 떴다.

프스스.

드래곤의 몸은 입자 형태의 마나로 변해 바람을 타고 흩날리고 있었다.

“드래곤을……. 이렇게 쉽게…….”

지금까지 아슬란은 탑의 기록에서 수없이 많은 도전자들을 가르쳐왔다. 비록 진짜가 아닌 더미 데이터에 불과하지만 자신이 드래곤 슬레이어의 경험을 가졌다는 자부심만은 진짜였다.

하지만 아슬란은 오래전에 잊었던 기사도의 이름으로. 기꺼이 신유성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탑의 기록으로서 정보를 전해주는 게 나의 일이지만. 당신에게는 가르칠 게 없군. 나의 모자람을 용서해주시게.”

아슬란의 인정과 함께 매겨지는 이번 테스트의 등급.

[탑의 기록을 성공적으로 시청하셨습니다.]

[정보 분류 : 보스]

[No5661 : 레드드래곤 사도닉스]

[수강 완료]

[담당자:드래곤 슬레이어 아슬란]

[평가:S]

신유성은 드래곤을 잡는 법을 단 한 번의 도전으로. 혼자서 깨우쳐버린 천재. 담당자인 아슬란의 평가는 7급 헌터도 받지 못한 S등급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