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75화 (175/434)

제175화

[탑의 기록에 접속하셨습니다.]

[정보 분류 : 보스]

[No5661 : 레드드래곤 사도닉스]

마치 우주를 떠오르게 하는 검은색 공간에 둥둥 띄워져 있는 푸른색 홀로그램.

“목차를 설명해줘.”

신유성이 로쟈에게 배웠던 대로 질문을 던지자.

[사도닉스에겐 2가지 목차가 있습니다.]

[1. 레드 드래곤 사도닉스 일대기]

[2. 드래곤의 약점]

탑의 기록에 적힌 사도닉스의 일대기는 보스몹의 ‘배경’이었다.

그러니 대부분의 내용은 사도닉스가 어떤 드래곤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였다.

신유성은 이번 공략을 위해 직접 서재까지 찾으며 시간을 들였다.

‘이미 어느 정도는 공부를 해왔지.’

사도닉스가 넘어온 차원에서 드래곤은 인간들이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사도닉스는 그런 레드 일족 중에서도 전대미문의 천재.

100살이었던 드래곤 해츨링 시기에 이미 성체 드래곤과 마나의 량이 맞먹었으며, 종류를 불문하고 모든 마법에 융통했다.

촉망 받는 일족의 천재.

하지만 책에는 그 정도 이야기가 전부. 드래곤의 특징과 공략법은 적혀 있지 않았다.

“2번. 드래곤의 약점이 듣고 싶습니다.”

신유성이 2번 목차를 선택하자 어두운 공간이 일렁이더니 금방 풍경이 바뀌었다.

[2번 목차의 담당자는 빌헬름 왕국의 드래곤 슬레이어 아슬란입니다.]

*     *      *

로쟈가 탑의 기록으로 멘티들을 시험하는 동안 멘토들은 대기실에 모여 있었다.

“……이번 시험. 몇 명이나 통과할까요?”

메이린이 말했다.

로쟈는 단순히 공략숙지 정도로 이야기 했지만 학생들을 모아둔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한 명이라도 나오면 다행이죠. 공략 숙지 정도는 정보만 줘도 충분할 텐데. 탑의 기록에 직접 접촉하라고 하시다니…….”

주힘찬이 크흠- 하고 골머리를 썩이자. 옆에 있던 레이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1명이라도 통과하면 다행이겠죠.”

“그래도 당연한 일이겠지. 화신을 잡는 것 정도는 학생들도 참가할 수 있겠지만……. 상대가 사도닉스라면 이야기가 다르니까.”

쇼이치의 말은 대기실에 있는 모든 헌터를 침묵시켰다.

지속되는 정적.

이탈리아 출신인 레이나는 살짝 눈이 가늘어졌다.

“그래도 아덴 님의 지시입니다. 그분을 의심하시는 건 아니겠죠?”

레이드가 계획될 당시부터 아덴은 자격이 있는 학생은 화신이 아닌, 사도닉스 본체를 공략하는 데까지 참여시키라 지시했다.

실력만 있다면 학생이어도 상관없다는 파격적인 인사.

레이나의 입에서 전설이라 불리는 아덴의 이름이 나오자 헌터들은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래도 공략에 참여할 자격을 얻는다면 대단하긴 하겠군요. 7급 레이드에 참여하다니……. 만약 아티팩트라도 얻는다면…….”

주힘찬의 말처럼 학생이 시험에 통과하고, 7급 보스인 사도닉스를 잡아 아티팩트까지 얻는다면 그건 인류 역사상 최초의 일.

쇼이치는 그 학생이 자신의 멘티가 되길 기대하는 헌터 중 하나였다.

“희망적인 이야기지만. 확실히 그렇지……. 사도닉스라면 최소가 유니크. 운이 좋으면 레전드리급 아티팩트가 나올 테니 말이야.”

정말 성공하기만 한다면 쇼이치는 자신의 멘티인 잇신을 이탈리아의 아덴처럼 전설로 만들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영약. 부산물. 헌터용품에서 속성석까지! 뭐가 됐든 사도닉스의 것이라면 줍기만 해도 대박이니 말일세!”

호탕하게 소리친 울트라는 그 뒤에 말을 덧붙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공략에 성공했을 때의 이야기. 7급 보스가 상대라면 목숨을 부지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 일이지.”

대가에는 위험이 따른다는 간단한 이야기. 결국 헌터들은 시험에 통과한 학생이 자신의 멘티이길 바라며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      *

불이 켜진 제단.

신유성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시야가 닿는 곳마다 널린 보석과 황금으로 된 보물들.

“신기한가? 드래곤을 잡으려면 드래곤 레어로 들어가야 하는 법. 놈들의 약점을 배우기에 이곳보다 좋은 장소는 없지.”

신유성은 노쇠한 목소리에 뒤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있는 건 낡은 가죽옷을 입고 있는 기사였다.

[드래곤 슬레이어 아슬란을 마주했습니다.]

[아슬란에게 직접 드래곤의 약점을 배우십시오.]

딱딱 맞아떨어져 가는 아귀.

신유성은 얕게 고개를 끄덕였다.

‘……탑의 기록을 읽는다는 게. 이런 방식이었다니.’

생각해보면 이상했다.

탑의 기록이 그저 단순한 책에 불과하다면 접촉에 제한을 둘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탑의 기록에 담긴 방대한 내용을 정리하려면 인력을 더 투입하는 게 맞았다.

그러나 ‘탑의 기록’이 그 자체로 아티팩트라면 이야기는 달랐다.

이건 이미 협회의 시험이다.

‘……정리된 정보를 읽는 게 아니라. 직접 경험을 통해 배우라는 이야기인가.’

협회는 탑의 기록을 통해 사도닉스 레이드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있었다.

“굳어 있지 말게. 어차피 더미에 불과하니까 말이야. 원한다면 몇 번이든 도전할 수 있지.”

지금 말하고 있는 아슬란도 데이터 더미로 구현해낸 NPC에 불과한 존재. 아슬란은 다시 보물 더미에 앉더니 무감한 얼굴로 말했다.

“약점을 가르쳐 주겠다고는 했지만 사실 대부분의 드래곤들은 약점 같은 게 없네. 그들은 완전무결한 존재지. 이유는 간단하네.”

터덜터덜.

드래곤 슬레이어 아슬란이 일어났다. 헌터들의 기준으로 따지자면 7급 헌터에 비교되는 실력의 고수. 그는 마른 나뭇가지를 들어 검처럼 쥐었다.

“첫째는 그놈의 비늘.”

그 다음 손을 들어 보물을 찌르자 마른 나뭇가지는 툭- 하고 힘없이 부러졌다.

“드래곤의 비늘은 강철보다 단단해서 웬만한 검은 먹히질 않거든.”

단순한 검술로는 괴수를 제압하기 힘들다. 이건 어디나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드래곤만의 특징은 아닌 셈. 하지만 헌터들의 천적으로 불리는 이유가 있었다.

“거기다 이놈들은 저항력이 높아. 마법사들의 마법도 마검사들의 강화도 효과가 절감되지.”

물리 공격을 막는 두꺼운 비늘.

마나효율을 반감하는 마법저항력.

드래곤의 약점을 모른다면 유의미한 데미지를 입힐 수 없었다.

“……물론. 드래곤들에게도 약점은 있네. 그들에겐 독이라 불리는 언령의 힘. 맹세를 지키지 못했을 때 새겨지는 흉터가 있단 말일세.”

설명을 끝낸 아슬란이 나뭇가지로 툭- 허공을 건드리자.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마나 덩어리가 드래곤의 형상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백번 말로 듣는 것보단 실제로 상대를 해보는 게 좋겠지.”

아슬란은 신유성을 보며 짓궂게 미소를 지었다. 자신은 탑의 기록으로 구현해낸 더미 데이터에 불과하지만 영웅 아슬란의 기억을 가진 존재. 아직 자신이 인정하지 않은 신유성에게 지식을 전수할 생각은 없었다.

“보통 30번 정도는 죽어야 감을 잡더군. 현실에선 다치지 않으니, 걱정 말고 드래곤의 약점을 찾아보게. 물론 언제든 포기해도 좋네.”

구궁. 쿵!

어느새 전부 소환이 된 레드 드래곤은 땅을 앞발로 디디며 활짝 날개를 펼쳤다. 레드 일족의 로드(Lord)였던 사도닉스에 비하면 갓 에이션트가 된 약체지만 엄연한 드래곤이었다.

“─!”

머리를 쳐들며 외치는 드래곤의 포효에 신유성은 정신이 아찔했다. 마나의 제왕이라 불리는 드래곤은 포효마저도 마법에 필적했다.

아슬란은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신유성을 보며 흡족한 표정으로 웃었다.

“드래곤 로어를 처음 들으면서 기절하지 않았다니 기본은 된 모양이군. ……하지만 드래곤을 상대하는 건 쉽지 않을 걸세.”

신유성은 담담하게 드래곤을 올려다보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강적들을 만나왔지만 이런 상대는 처음이었다.

‘마나의 양으로만 따진다면 헌터들은 비교가 되지 않는군.’

드래곤이 보유한 마나는 약 인간의 100배에서 1000배. 이 세상의 어떤 헌터도 마나 보유량으로 드래곤에 견줄 수는 없었다.

마나에 의존하는 헌터들이라면 드래곤이 까다로운 이유.

‘하지만…….’

신유성은 오히려 그 덕분에 드래곤의 약점을 알 수 있었다. 그건 아슬란이 말한 언령으로 생긴 제약이 아닌, 오직 신유성만이 볼 수 있는 드래곤의 구조적 약점이었다.

‘이 방대한 마나 때문에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어.’

눈앞에는 6급 보스인 레드 드래곤이 서 있었지만 신유성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여유롭게 웃었다.

‘드래곤도 스킬을 발동하기 전에는 헌터처럼 체내의 마나를 발현한다. 결국 구조는 같아. 그렇다면…….’

신유성은 담담하게 자세를 잡았다.

“어디 그럼 실력을 확인해볼까?”

담당자인 아슬란의 손짓과 함께 레드 드래곤은 거대한 앞발을 들었지만 두렵지 않았다.

‘확실해…….’

자신의 예상이 옳다면 화신을 쓰러트리는 건 물론. 사도닉스를 처치하는 것도 가능할지 몰랐다. 제왕종이라 불리는 드래곤들은 ‘마나의 주인’이었지만 신유성은 마나의 명백한 카운터. 생각을 마친 신유성의 몸이 사라졌다.

국가대항전에서 겪은 실전과 수련으로 더욱 빨라진 속력은 이미 6급 헌터의 경지를 초월하고 있었다.

‘드래곤에게도. 마나 공명은 먹힌다.’

이젠 그 결과를 확인할 차례였다.

*     *      *

[7층 입장 조건: 보스 몬스터 3마리를 처치하십시오.]

[숲의 맹호 폰타 0/1]

[창공의 매 리폰 0/1]

[강의 주인 클라피스 0/1]

탑에서 나오는 보스는 3급에서 4급 보스 수준이었다. 일반 학생들에겐 절망적인 난이도였지만 이미 전력을 올린 신유성의 파티원에겐 너무나 쉬운 난이도.

[크어엉!]

[숲의 맹호 폰타 1/1]

폰타는 끝없이 쏟아지는 스미레의 언데드 군대에 무참하게 사냥 당해 버렸고.

[키에엑!]

리폰은 채찍을 이용한 에이미와 릴리스의 합동 공격에 간단하게 쓰러졌다.

[창공의 매 리폰 1/1]

이제 남은 건 강의 주인 클라피스.

지금까지 최악의 대진 운을 자랑하며 상성만 만났던 김은아가 처음으로 물속성 보스를 만난 것이다.

“은아 씨! 힘내세요!”

“은아야! 화려하게 보여줘!”

파티원들의 응원을 들으며 김은아는 몸 안의 전기를 끌어 올렸다.

“충전!”

김은아의 주변에 고출력의 전류가 일렁였다. 일반인은 닿는 것만으로 전기구이가 되어버릴 전력을 김은아는 아무렇지 않게 뿜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김은아의 스킬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쿠릉-! 쿠르르릉!

먹구름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머리 위에 드리우자. 김은아는 익숙한 이름을 외쳤다.

“오르카!”

사아아!

자신이 떠올리기 가장 쉬운 모양새. 범고래의 형상은 김은아의 손에 낙하하며 검지에 응축됐다.

크러러러-!

클라피스는 그런 김은아를 거대한 입을 벌리며 위협을 하더니 육중한 두 다리로 달려들었다.

쿵쿵쿵!!!

보는 것만으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징그러운 이족보행 물고기. 하지만 물 속성 보스라 그런지 김은아는 공포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롭게 웃으며 검지를 권총처럼 클라피스에게 겨누었다.

파작- 파자작!!

전력의 힘이 한계치에 달하자 김은아의 주위가 새하얗게 점멸했고. 김은아가 오른발을 디딘 땅은 마나의 힘으로 갈라지며 크랙을 만들었다.

김은아가 스킬을 발동하기 전에 오히려 더욱 속도를 높여 달려오는 클라피스.

“꿰뚫어라-!”

그러나 물고기 따위가 김은아의 전기보다 빠를 순 없었다.

파앙-!

김은아가 쏘아낸 빛의 창은 순식간에 머리부터 꼬리를 꿰뚫었다. 유성처럼 꼬리를 만들며 시야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푸른빛.

쿠우우웅!

머리를 꿰뚫린 클라피스는 단말마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푸스스스-

김은아가 뿜어내는 전기의 힘 앞에 강을 호령하던 클라피스는 노릇하게 구워진 생선구이로 변해버렸다.

“이겼다!”

“은아 씨! 최고에요! 정말 멋있었어요!”

응원을 하던 에이미와 스미레가 달려와 칭찬을 쏟아내자. 뿌듯해진 김은아는 스윽- 코를 닦았다.

“물속성 보스? 훗, 별 거 아니지! 너희들은 구경만 해도 충분했어.”

“헤헤, 맞아! 은아 앞에선 그냥 전기구이지!”

[8층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퀘스트 클리어를 인정하며 나오는 탑의 안내. 하지만 스미레는 수락 버튼을 누르지 않고 노릇하게 구워진 클라피스를 콕콕- 검지로 찌르고 있었다.

“……이거, 되게 맛있다고 하는데요?”

[정보:클라피스의 고기는 맛이 매우 뛰어납니다.]

[정보2:클라피스의 껍질을 구워 먹으면 미용에 매우 좋습니다.]

클라피스 고기의 시식을 권장하는 포켓의 홀로그램 정보들. 하지만 에이미는 떨떠름한 얼굴로 김은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비싸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긴 했는데. 그래도 ……은아가 전투로 잡은 걸, 먹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

하지만 윤기 있게 흐르는 기름과 코를 자극하는 냄새. 부드러우면서도 검지를 튕겨내는 고기의 탄력. 요리 실력이 뛰어난 스미레는 직감하고 있었다.

‘……클라피스는 최고의 식재료야.’

결국 스미레의 강력한 주장으로 7층에선 급조된 바비큐 캠핑이 시작됐다. 바비큐의 주메뉴는 당연히 클라피스의 고기.

양념을 끝내고 스미레가 직접 맛있게 구워내자, 확실히 클라피스 바베큐에선 황홀한 냄새가 풍겨왔다.

의심과 기대. 그리고 확신 속에서 고기를 집어 든 3인방.

마치 합이라도 맞춘 듯, 한 몸처럼 입에 고기를 넣자.

“마, 맛있다!”

“진짜. 최고에요오……”

“이베서 샬샬 뇨가…….”

입맛이 까다로운 김은아.

요리가 뛰어난 스미레.

그냥 잘 먹는 에이미.

현역들도 힘들어하는 탑의 7층에서 3인방은 황홀한 표정으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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