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70화 (170/434)

제170화

한국의 시티가드 총장. 이성환.

이시우의 아버지인 그는 홀로그램으로 이루어진 뉴스 기사를 무심한 얼굴로 훑어 내리고 있었다.

“메트로시티 건은 신오가문이 맡으리라 생각했건만. 이탈리아의 길드가 맡게 되다니. 특이한 일이군.”

“덕분에 시티가드로 협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장남인 이시혁은 아버지인 이성환에게도 깍듯하게 말했다. 그건 부자(父子)의 모습보다는 상급자와 하급자에 가까운 관계로 보였다.

“메트로시티에……. 신성그룹의 협조 요청이라. 그래. 두말 할 것 없이 당연히 도와야겠지. 엘리트로 잔뜩 모아서 보내도록 해”

“알겠습니다.”

보고를 끝낸 이시혁이 사무실을 나가려고 하자.

“잠깐.”

이성환이 이시혁을 불러 세웠다.

“시혁이 넌. 시우의 출국 기록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

이성환의 질문에 이시혁은 곤란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이시우는 이성환이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 관심을 보일 건 알고 있었지만 아직 1학년이 불과한데도 출국 기록까지 감시 할 줄은 몰랐다.

“일본행 포탈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시우가 어디로 가는지도 알고 있겠지?”

이성환의 질문에 이시혁은 곤란함은 극에 달했다. 항상 이시우의 출국을 도와준 건 이시혁 자신. 목적지를 모를 리가 없었다.

“아마…… 궁술 도장일겁니다.”

“……궁술 도장?”

“그 지역의 시티가드들에게 훈련장소로 선발된 곳 중 하나입니다. 선정에는 제가 도움을 주었습니다.”

어차피 총장인 이성환에게 거짓말을 하는 건 의미가 없는 일. 이시혁은 순순히 모든 걸 털어 놓았다.

이성환은 여전히 뉴스 기사에 시선을 고정 한 채로 질문을 던졌다.

“……물어볼 것도 없이. 시우의 부탁이겠지.”

이시혁이 대답이 없자. 이성환은 근엄한 얼굴로 창가를 바라보았다.

도시에는 온갖 장소에 배치된 시티가드들의 모습이 보였다. 치안을 담당하는 시티가드들은 도시의 질서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필수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누군가를 지키는 일에는 강한 힘이 필요하다.

시티가드들이 처리하기 힘든 강한 빌런이나 괴수들이 나오면 자신들은 그저 헌터 협회의 들러리에 불과해 졌다.

그래서 이성환은 직접 자신의 아들인 이시우에게 사격을 가르쳤다.

어린 아이에겐 가혹할지라도 상관없었다. 누군가를 지키는 것엔 강한 힘이 필요했고, 이성환은 최고의 무기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일본이라.’

이성환은 일본에서 벌어지는 일 따위 궁금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만들 걸작이 이상한 것에 물들어 가는 건 곤란했다.

“시혁아. 내가 왜 지금까지 시우를 가만히 두었지 아느냐?”

평소와 같은 중저음의 목소리.

하지만 이시혁은 등줄기가 오싹했다. 말을 하고 있는 이성환의 얼굴은 유독 즐거워보였기 때문이었다.

“모, 모르겠습니다.”

눈앞의 남자는 자신의 아버지임에도 한줄기 식은땀이 떨어졌다.

“그 녀석에겐 지킬 게 없었기 때문이다.”

이성환의 미소는 이시혁을 칭찬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앙칼진 고양이라도 지키고 싶은 게 생기면. 순한 양처럼 변하기 마련이지.”

목표도. 욕심도. 지키고 싶은 것도 없기에 컨트롤 할 수 없었던 것뿐. 이시우가 무언가에 정을 들이고 지키고 싶은 게 생겼다면.

그리고 그 존재가 자신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다면 이시우를 요리하는 건 이성환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고맙다. 시우에게 그 도장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만. 아주 재밌게 되었어. 시혁이 넌 가 보거라.”

이미 생각을 마친 이성환.

“아, 아버…….”

“내게 더 보고할 말이 있느냐?”

차가운 이성환의 목소리에 이시혁은 무언가를 말하려던 입을 멈췄다.

“……아닙니다.”

어디서부터인가 꼬여버린 상황.

사무실을 빠져 나오는 이시혁의 발걸음은 유독 무거웠다.

*     *      *

[하나사키 사쿠라!]

[벚꽃 소녀가 다녔던 그 도장!]

사쿠라는 지역에 걸린 현수막을 창피하다며 부끄러워했지만 국가대항전에서 사쿠라가 보여준 활약으로 궁술도장은 지역에서 유명한 명소가 되었다.

거기다 이시우의 도움으로 시티가드들의 훈련지로 선정까지 된 덕분에 도장에는 활기가 돌았다.

파앙-! 팟!

파앙! 휘익! 팟!

단원들이 활시위를 놓고.

화살이 공기를 가르는 기분 좋은 소리.

“화살에는 쏘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기 마련입니다. 자신감 없이 겁을 먹고 움츠리면. 그 망설임이 화살에도 깃들기 마련이죠.”

단원들을 가르치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사쿠라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파앙-! 쐐액! 탁!

사쿠라는 과녁의 정중앙에 화살을 맞추더니 옅게 미소를 지었다.

“한 발.”

파앙! 탁!

“두 발.”

화살의 끝에 화살이 겹쳐지는 묘기. 사쿠라는 여전히 여유로운 얼굴로 다시 화살을 쏘았다.

타악!

“세 발.”

화살의 뒤편에 화살이 꽂히며 완벽히 쪼개진 화살. 묘기를 끝낸 사쿠라는 이시우를 보며 물었다.

“넌 안 쏴?”

“어. 난 오늘은 안 쏴.”

“그냥 주말이기도 하고. 나도 이런 날은 좀 쉬어야지”

이시우는 아무 생각 없이 뱉은 말이지만 사쿠라는 건수를 잡았다는 듯이 큭- 하고 웃고 있었다.

“아~ 주말이라 쉰다고? 그렇지. 주말에는 쉴 만하지~”

“뭐. 왜 웃는데.”

이시우가 사쿠라의 웃음에 눈을 가늘게 뜨고 묻자. 사쿠라는 어깨를 으쓱 올렸다.

“나? 딱히? 그냥~ 네 말을 들으니 궁금한 게 생겨서.”

“그러니까 뭐가 궁금하신데.”

이시우가 탁상에 누운 채로 하품을 하자. 사쿠라는 짓궂은 얼굴로 이시우에게 말했다.

“그냥 귀여워서. 너 방금 자백했잖아. 쉬려고 일본까지 왔다고.”

이시우는 그제야 자신이 한 말실수를 눈치 챘다. 하지만 짓궂은 사쿠라는 절대 쉽사리 넘어가지 않았다.

“편안한~ 한국을 두고. 왜 여기까지 와서 쉬실까?”

정곡을 찔린 이시우는 애써 사쿠라를 무시했다. 포켓을 바라보지만 매섭게 머리를 회전시키는 이시우.

“……그, 그냥 이제 도장. 잘 되나 해서. 그거 보러 왔지.”

나름 괜찮은 이시우의 변명.

사쿠라는 더 물고 늘어질 수 있었지만 이번만은 넘어가주었다.

“잘 돼. 이제 단원도 늘고. 어제도 아버지가 엄청 기뻐하셨으니까. 시우. ……네 덕분이지.”

사쿠라는 싱글 웃더니 이시우를 보았다.

“……봄에 왔으면 좋을 텐데. 봄이 되면 우리 도장 뒤편에 벚꽃나무가 활짝 피어서 엄청 아름답거든.”

사쿠라는 짐짓 아쉬운 얼굴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꼭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시우는 그런 사쿠라의 모습에 포켓에 시선을 고정한 채 투덜거렸다.

“……뭐가 문젠데. 보러오면 되지.”

사쿠라는 표정 관리를 하며 애써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쉬고 싶은 주말에도 일본까지 찾아오고, 조금만 약한 모습을 보이자 내년에도 도장을 오겠다는 약속을 하는 남자.

‘엄청 착한 주제에. 까칠한 척 굴고. 훗, 귀엽긴…….’

이시우를 보며 능글능글 웃고 있는 사쿠라.

“뭔데 그 표정.”

이시우가 의문을 표하는 순간.

“시우군~ 점심 먹으렴!”

멀리서 사쿠라의 어머니에 목소리가 다가왔다. 누워있던 이시우는 그 목소리에 후다닥- 자리를 잡고 예의바르게 일어섰다.

“아, 감사합니다! 어머니!”

“어머~ 앉아 있어도 돼. 후훗~ 예의바르기도 하지! 사쿠라. 오늘 나랑 그이는 외식이니까. 시우랑 먼저 먹고 있으렴?”

“네에~”

아무렇지 않게 이시우의 손을 잡고 식탁으로 데려가는 사쿠라.

“자. 얼른 많이 들어.”

“누가 보면 네가 차린 줄 알겠다.”

“다음에 차려주지 뭐~”

달그락.

사쿠라와 먹는 식사는 이시우가 가족들과 했던 식사와 다른 분위기 였다. 어딘가 따뜻한 느낌이 드는 가정식.

한참 식사에 집중했을 때, 사쿠라는 이시우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시우야.”

“왜?”

“나도. 네 가족 보러가도 괜찮아?”

사쿠라의 질문에 이시우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평소와 비슷해보이지만 어딘가 어두워진 이시우의 표정. 사쿠라는 그런 작은 신호만으로도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시우야. 우리 집. 언제든 와도 괜찮아. 정말 언제든 ……괜찮아.”

밥그릇에 시선을 고정 한 채 말없이 젓가락질을 하는 이시우.

“……고맙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을 연 이시우가 씁쓸하게 웃자. 사쿠라는 한숨을 쉬더니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으며 성큼성큼 이시우에게 다가왔다.

“시우야.”

그리곤 이시우의 얼굴을 부드럽게 손으로 감싸며 입술 옆에 붙은 밥풀을 혀로 핥아주는 사쿠라.

“냠~”

“으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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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이시우가 기겁을 하며 도망가자. 사쿠라는 입을 가리고 여우처럼 쿄쿄쿄- 웃었다.

“야! 너, 너너!”

당황한 이시우가 붉어진 얼굴로 손가락질을 했지만 사쿠라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장난스럽게 말했다.

“바보~ 뭘 그렇게 묻히고 먹어~”

이시우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한. 사쿠라 나름의 장난. 이시우의 얼굴은 이미 홍당무가 되어 있었다.

“너, 너는 진짜…….”

아카데미도. 국가도.

무엇하나 공통점이 없었지만 사쿠라와 이시우는 서로가 점점 소중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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