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9화
“여기 길드마크가 예쁜 거 같아. 파도모양이잖아. 바다도 생각나고.”
어이없는 김은아의 이유에 신강윤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 무슨…….”
신오가문의 가주. 신강윤.
자타공인 신성그룹의 귀염둥이. 김은아.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봤다.
기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 * *
신오가문은 손꼽히는 헌터 명가.
가주인 신강윤은 7급 헌터였고, 대형 길드를 가지고 있는 유수가문의 유민서와 결혼을 하며 부와 권력을 가진 헌터계의 유명인사였다.
그런데 겨우 17살의 꼬마가 자신에게 도전을 하다니?
인상을 쓴 신강윤은 애써 김은아를 무시하고 김성한 부회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차라리 관계자들을 모아. 다시 자리를 만드는 편이 좋을 거 같군요.”
김은아를 떼어 놓고 없는 곳에서 다시 계약 이야기를 하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김은아는 신강윤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우리 아빠 바쁜데.”
‘……정말 말 하나하나가 신경을 거스르는 재주가 있군.’
하지만 김은아를 어린애 취급하고 쉽게 본 건 신강윤의 미스였다. 장난치듯이 말을 해도 김은아는 어린 시절부터 개인 교사들에게 후계자 교육을 받아온 엘리트였다.
“아빠. 잘 생각해봐. 신오가문이랑 저기 파도 어쩌고 랑은 단가가 한 2배 정도 차이나지 않아?”
김은아의 사격지원이 펼쳐지자. 테리안은 황금색의 눈을 빛내며 곧바로 어필을 시작했다.
“맞습니다! 이미 저희는 현지에 길드원들의 숙소를 마련해두었기 때문에 더 줄이는 것도 가능합니다. 공략이 끝나는 일주일을 모두…….”
“그, 메트로시티 수중 괴물들. 바다로 통하는 게이트는 닫힌 거죠?”
“확인된 5급 괴수들은 14체 정도고. 기준치 이상의 마나는 검출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딱 봐도 보스도 없고. 6급 3명이면 떡을 칠 거 같은데. 신오가문까지 부를 이유가 있어?”
이번 계약을 전담한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눠도 밀리지 않는 김은아의 모습.
점점 기세가 테리안이 있는 밤의 파도 쪽으로 흘러가자. 신강윤도 평소의 페이스를 유지 할 수 없었다.
“김성한 부회장님.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건 시민들과 도시의 안전을 돈으로 저울질 하는 일입니다.”
“그건…….”
김성한이 안경을 만지며 침음을 흘리자. 김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하- 하고 소리를 냈다.
“아니, 아빠. 돈을 아끼자는 게 아니라. 잘 쓰자는 거지. 차라리 그 돈으로 시티가드에 협조 공문 보내서 주변 지역에 인솔 지원을 요청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저번 도시 순찰을 맡으며 실전까지 겸비한 김은아는 신강윤의 생각보다 훨씬 강적이었다.
“메트로시티 전속 시티가드들은 이미 도시랑도 우리 그룹이랑도 계약되어 있잖아. 외주 받은 의뢰라도 1명당 위로금 명목으로 일당이 30만 원 급이고. 지하…… 아니지. 거기 게이트랑 연결된 수문이 몇 개에요?”
말을 하던 김은아가 정확한 정보를 알기 위해 묻자. 테리안은 싱글싱글 웃으며 대답했다.
“1킬로미터 반경으로 총 4개입니다. 바다로 흘러가는 것만 통제하고. 주변 지역은 500미터 정도만 통제하면 되니. 추가 인원은 40명이면 충분할겁니다.”
“걍 까놓고. 단가 차이 절반이라고 한 게. 얼마 차이에요?”
“잠깐! 그건!”
금전이 관련된 건 모두에게 예민한 부분의 질문. 당혹감을 내비치며 신강윤이 말리려 했지만 테리안은 그렇지 않았다.
“120억입니다!”
마치 김은아에게 일러바치는 모양새. 테리안은 이미 김은아가 자신의 편이라는 걸 확신한 모양이었다.
“와. 120억을 1200만 원으로 퉁 칠 수 있었네. 시민들이 안전하기도 이쪽이 더 안전한 거 같은데.”
김은아는 약지로 귀를 긁적거리더니 신강윤이 들으라는 듯 쯧- 하고 소리를 냈다.
“역시 요새는 프리미엄만 붙이면 바가지가 너무 심하다니까.”
그렇게 말을 한 김은아는 김성한을 보며 일침을 날렸다.
“아빠. 아무리 우리가 돈이 썩어 넘쳐도. 유명인사 고용한 거 자랑하려고 120억이나 쓸 필요가 있어?”
메트로시티는 엄청난 인원이 밀집한 도시였고, 신성그룹이 메트로시티를 위해 명가인 신오가문을 고용했다는 건 일종의 마케팅이 된다.
하지만 김은아는 회의적인 얼굴로 말했다.
“그런 마케팅……. 뭐라 해야지. 좀 낡은 거 같은데. 세련되지 못한다고 해야 하나.”
‘세련된 일처리’를 모토로 살고 있는 김성한에게 낡았다는 말은 결정타였다.
“그, 그러니?”
“내 생각은 그렇다는 거지~ 난 차라리 저기~ 밤의 파도 길드한테 단가 절반으로 맡기고. 시티가드에 협조 요청 및 지원을 한 다음, 남는 돈으로 도시 복구에 보탤 거 같아.”
“아, 아가씨 말씀이 맞습니다! 확실히 처리할 테니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힘차게 소리치는 테리안과 고민에 빠진 김성한.
그 결정에 쐐기를 박은 건, 신성그룹의 회장인 김석한이었다.
“하하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은아의 말도 일리가 있구나!”
“아버지!”
“회, 회장님!”
놀란 김성한과 꾸벅 고개를 숙이는 테리안. 회장인 김석한은 신강윤을 보더니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메트로시티 토벌에 신오가문 같은 명가를 부르는 건. 닭 잡는 일에 소 잡는 칼을 쓰는 격 같소. 이 노인은 기회가 있다면…… 더욱 큰일이 닥쳤을 때, 신오가문이 힘을 써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알겠습니다.”
겸손을 떨었지만 신성그룹에서 회장인 김석한의 말은 절대적이다. 그가 의견을 낸 순간 이미 상황은 결정이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역시 우리 은아는 할아버지를 닮아. 아주 똑똑하단 말이지! 껄껄!”
기분이 좋아진 김석한이 호쾌하게 웃으며 김은아의 머리를 쓰다듬자. 김은아는 웃음을 참으며 신강윤에게 승자의 미소를 날렸다.
‘어때?’
마치 자신이 이정도 라는 듯 의기양양한 모습의 김은아. 신강윤은 무표정한 얼굴로 노려보더니 자리를 떠났다.
* * *
방금 전 신강윤을 상대로 따낸 통쾌한 승리. 신이 난 김은아는 휴대폰을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흥흥흥~”
몸까지 들썩이는 게, 보통 기분이 좋은 게 아닌 모양.
“하~ 진짜, 유성이가 이걸 봤어야 하는데. 내가 이렇게 신경써주는 것도 모르고~”
굳이 앞에서 생색을 내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들썩이는 김은아의 입꼬리.
“아가씨.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그런 김은아를 향해 다가온 건, 테리안이었다. 김은아는 듣는 둥 마는 둥 테리안에게 큰 대꾸가 없었지만. 테리안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감사를 표했다.
“방금 전 일. 정말 감사합니다. 계약을 따낸 건 모두 아가씨 덕분입니다. 어찌 감사를 드려야 할지…….”
“그냥. 돈 받은 만큼. 토벌 열심히 해주시면 되죠.”
“하하, 맞습니다! 하지만 언제 한번 이탈리아로 오시면 식사 정도는 대접하고 싶군요. 제 동생도 함께 말입니다.”
테리안은 그렇게 말을 하며 포켓으로 누군가의 사진을 비췄다. 사진에 서 있는 건 비앙카 아카데미의 세븐넘버인 레온.
“제 동생을 직접 칭찬 하는 게 창피하지만. 그래도 정말 성실하고 뛰어난 인재입니다.”
“어, 어어!?”
김은아가 놀란 얼굴로 사진을 가리키자. 레온은 새삼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들어보셨군요? 레온은 이탈리아의 명문인 비앙카의 세븐넘버니까요.”
하지만 김은아가 가리킨 건 레온이 아니었다. 웃고 있는 레온의 옆에 서있는 무표정한 얼굴의 아델라.
‘전’ 라이벌을 본 김은아는 얼빠진 얼굴로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얘가 왜 여기 있냐!?”
* * *
일본의 한 궁술 도장.
단정하게 차려 입은 사쿠라는 간식과 찻잔이 담긴 쟁반을 이시우의 옆에 내려놓았다.
“녹차 잎을 많이 우려서. 좀 쓸 수 있어. 그래서 디저트는 양갱으로 준비한 거지만.”
“그 말투랑 옷차림. 진짜 적응 안 되네.”
스윽-
이시우가 투덜거리며 양갱을 집자. 사쿠라는 여우처럼 헤실 웃으며 이시우의 옆에 슬쩍 앉았다.
“나쁘다는 말이야?”
“그건 아니고……. 그냥 평소랑 달라 보인다고.”
이시우는 가까워진 거리에 새삼 시선을 피했다. 사쿠라는 그런 이시우를 놀리는데 꽤나 재미가 들린 모양이었다.
“예쁘다는 말로 알아들어도 될까?”
“맘대로 생각하셔.”
그렇게 말한 이시우가 한 입에 양갱을 넣고 씹자. 장난기가 돋은 사쿠라는 자신도 양갱을 하나 집었다.
“그거 그렇게 먹는 거 아닌데.”
사쿠라는 일부러 이시우를 향해 몸을 들이밀더니. 자신의 양갱에 그어진 선을 가리켰다.
“이 양갱. 이 빗금만큼만 베어 먹는 거야. 잘 봐. 양갱 색깔이 다르지? 모두 맛이 다르거든.”
사쿠라는 직접 양갱을 집어서 이시우의 입에 넣어주었다.
“어때?”
의식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오히려 진다고 생각했는지 별다른 반항 없이 곧이곧대로 받아먹는 이시우.
“……뭐, 맛있네.”
평소와 달리 당황하는 이시우의 반응은 사쿠라의 장난기를 더욱 북돋게 만들었다.
“근데 얼굴은 왜 빨개? 혹시 열?”
사쿠라는 걱정된다는 얼굴로 이시우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댔다.
“여, 열은 무슨! 괜찮으니까 얼른 나가! 해도 졌는데 무슨 짓을 할지 알고 남자 방에 들어와? 내가 무섭지도 않냐?”
사쿠라는 한숨을 쉬었다.
매일 느끼게 되는 거지만 이시우는 이상한 부분에서 고지식한 성향이 있었다. 하지만 그 부분이 오히려 놀려주는 맛을 살리긴 했다.
“무슨 짓을 하는데?”
사쿠라의 물음에 헛기침을 하고 이불에 윽- 하고 소리를 내며 묵묵부답인 이시우. 사쿠라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뭐…… 시우 넌 보기보다 남자답고. 같이 있으면 재밌고. 성실하니까.”
그렇게 말을 끝낸 사쿠라는 이시우의 귓가에 속삭였다.
“……무슨 짓을 당해도. 난 상관없을 거 같은데.”
일순간에 화악- 붉어지는 이시우의 얼굴.
“야! 무슨!”
휙- 하고 멀어진 사쿠라는 헤헤- 하고 눈웃음을 날리며 능글맞게 말했다.
“장난이야~ 장난.”
주말이 되면 직접 일본에 찾아올 정도로. 이시우와 사쿠라. 둘은 친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