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66화 (166/434)

제166화

가온의 주말.

아덴은 마주앉은 신유성을 바라보며 빙긋빙긋 웃고 있었다.

[그럼……. 한 자리를 더 부탁 드려도 되겠습니까?]

이야기의 시작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의 부탁. 아델라는 아덴이 초대한 제왕종 레드 드래곤 사도닉스의 레이드에 신유성과 함께 참전하길 원했다.

‘아델라가…… 유성이를 라이벌로 의식한다는 증거겠지.’

아덴은 미소를 유지하며 신유성에게 물었다.

“유성아 이미 교장에게 설명은 들은 걸로 안다만. 다시 물으마. 이번 이탈리아 행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재앙이라 불리는 네임드 7급 보스.

그것도 보기 드문 드래곤을 눈앞에서 볼 기회. 신유성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마침 시험을 끝낸 신유성에겐 시간적 여유도 있으니 절호의 기회였다.

“저도 참전하고 싶습니다.”

“허허, 좋구나. 그럼 기한이 됐을 때 직접 안내인을 보내마. 현역 중에 너를 탐내는 사람이 워낙 많아야 말이지……. 사심이 없는 사람으로 고르는 것도 일이란다. 하하!”

아덴은 호쾌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개를 돌린 아덴의 입가에 머무는 씁쓸한 미소.

아덴은 자신의 손녀가 신유성에게 품은 관심이 그저 라이벌로 끝나길 원하지 않았다.

5살.

아덴은 ‘그 사건’ 이후 아델라가 품고 있던 차가운 짐을 누군가 덜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델라가 관심을 가진 신유성은 닮으면서 너무나 다른 존재. 이유는 다르지만 신유성과 아델라는 5살의 나이에 큰 아픔을 겪었다.

그래서일까 근거 없는 믿음이지만 아덴은 신유성이라면 아델라의 차갑게 굳어버린 마음을 녹일 힘이 있다고 믿었다.

‘무리한 생각이겠지.’

모두가 행복했던 시절.

아델라의 밝았던 모습은 바라지도 않았다. 아덴은 그저 편해지고 싶을 뿐이었다. 볼테라의 겨울로 변해버린 손녀를 볼 때면 죄가 없음에도 마음이 옥죄어 왔다.

그러니 아덴은 아주 조금의 변화라도 보고 싶었다.

아덴은 자신의 손녀가 긴 시간을 외롭게 보내길 바라지 않았다.

혼자 있음에도 외로움을 알아채지 못하는 건 더더욱 바라지 않았다.

그러니 자신을 위해서. 아델라를 위해서.

‘하지만 이 아이라면…….’

아덴은 이번 기회를 통해 신유성에게 자신의 손녀를 맡겼다.

*     *      *

시험이 끝난 주말은 각별하다.

김은아처럼 외출권으로 오랜만에 가족들을 보러 가는 학생들도 있었고, 이시우처럼 포탈을 사용해 짧은 시간이나마 일본 같은 외국으로 여행을 가는 학생도 있었다.

물론 에이미는 평일보다 주말이 더 바쁜 특이한 케이스였지만 대부분의 학생에게 주말은 소중한 것.

‘식사를 하신 지 제법 되셨으니까. 심심하지 않도록 간식을…….’

하지만 스미레는 신유성과 함께 있을 수 있는 학교가 좋았다. 특히 스미레가 좋아하는 건 신유성에게 음식을 만들어주는 이 순간.

‘마침…… 떡볶이 떡도 남았으니까. 튀긴 다음 양념을 바르면 되겠다!’

신유성은 자신만의 사정으로.

스미레는 너무 멀다는 이유로 어지간하면 주말에 가족을 만나러간 적이 없었고.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오늘처럼 단둘이 식사를 만들어줄 시간이 있는 건, 스미레에게 너무나 행복한 일이었다.

“유성 씨 여기, 완성됐습니다!”

그리고 신유성에게도 스미레의 식사를 맛보는 시간은 행복한 순간이 분명했다.

‘……유성 씨.’

하지만 최근 신유성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며 스미레가 느끼는 기분은 차츰 변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자신이 공들인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게 기뻤다.

단순하면서도 일차적인 마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단둘이 남은 부실.

자신의 음식을 먹는 신유성.

주말 아침부터 잠든 신유성을 깨우러가는 스미레 자신.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신유성과 반복했던 행동들은 동료보다는 부부의 일상과 비슷했다

“……스미레. 무슨 일 있어?”

먹던 간식을 내려놓으며 신유성이 말했다. 신유성은 무신산에서 살았던 탓에 상식에 대해선 어두우면서도 다른 사람의 감정은 놀랄 정도로 잘 캐치해냈다.

“네!? 아, 아뇨 그냥. 조금 생각을 하느라…….”

“무슨 생각?”

의아한 얼굴로 묻는 신유성.

스미레는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멋쩍게 웃었다.

“그냥. 조금 기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스미레는 뒷말을 차마 뱉지 못했다. 동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연인도 아닌 관계. 스미레가 행복해 하는 일상은 너무 아슬아슬했다.

“이번에…… 이탈리아로 가시니까. 당분간은 못 보겠다. 싶어서요.”

이렇게 나름 용기를 내서 말을 꺼내도. 신유성이 받아들이는 관계는 어디까지나 동료였다.

“나도 보고 싶을 거야. 스미레. 그래도 중요한 기회니까.”

이상할 건 없었다.

원래 스미레가 알던 신유성은 이런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나 자상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나아가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동경하게 되는 존재.

처음에는 자신을 믿어준 신유성에게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역시 너를 공략에 참여시키길 잘했어.]

풀죽은 스미레를 위로해주던 다정한 신유성의 목소리. 자신을 지켜주던 든든한 등.

[2위! 제가 2위에요! 신유성 씨!]

신유성을 만나고 기뻐했던 순간.

[더 이상. 스미레를 향한 무례는 파티장인 내가 용납하지 않아.]

신유성과 함께 했던 기억들을 떠올리자. 스미레는 절로 가슴이 죄어왔다. 겁쟁이가 아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진 스미레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신유성에게 품고 있는 마음은…….

“유, 유성 씨! 오늘 주, 주말이니까. 같이 학원 도시에 가시지 않을래요?”

욕심인 걸 알지만 스미레는 신유성과 더 각별한 사이가 되고 싶었다.

*     *      *

학원도시 지부의 관리자. 메이린.

그녀는 투명한 유리로 학원도시를 내려다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지원금이 늘긴 했군.’

학원도시는 헌터협회에서도 엘리트들이 맡게 되는 지부였다. 사소한 아카데미의 이벤트부터 여러 국가가 얽힌 외교 문제까지 처리해야하기 때문. 그러나 그렇게 일이 많음에도 학원도시는 전투와 큰 관계가 없는 최후방이다.

위험한 지부보다 협회의 지원금이 눈에 띄게 적었다. 메이린은 아슬아슬한 지원금으로 줄다리기를 하던 게 엊그제 같았건 만, 어느 순간 흐름이 바뀌었다.

그건 협회장인 강유찬의 눈에 들었기 때문.

‘시작은 신유성 덕분이었지.’

업무는 늘었지만 메이린의 입장에선 나쁠 게 없었다.

“내가 관리하는 중에 한국이 대항전을 우승을 한다면……. 바랄 게 없을 텐데 말이야.”

비록 강유찬의 명령 때문이었지만 메이린이 신유성을 서포팅을 한 건 사실. 그러니 신유성이 우승을 한다면 그림을 좀 멋있게 그릴 수가 있었다.

‘그 정도면 아예 관리직을 벗어나서. 차기 협회장을 맡는 것도 어렵지 않을 텐데 말이야.’

메이린은 강유찬에게 신임을 받고 있으며 6급 헌터라는 명찰까지 붙어 있으니 가능성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신유성이 우승을 했을 때의 이야기.

아무리 고속 승진을 밟아온 메이린이라도 성과 없이 차기 협회장을 받는 건 무리였다.

‘소문으론 대단한 수련광이라던데 정말 우승이 가능할지도…….’

미리 김칫국을 마시던 메이린의 눈앞에 익숙한 누군가가 포착됐다.

그건 다름 아닌 사이좋게 나란히 걷고 있는 신유성과 스미레.

심지어 스미레는 거대한 솜사탕을 손으로 뜯어 신유성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데이트?”

국가대항전을 앞두고 학원도시에서 데이트라니.

“……그릇이 크긴 크군.”

수련을 하고 있으리라 짐작했던 메이린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     *      *

잉어들이 사는 거대한 연못과 깊은 산 부럽지 않은 푸른빛의 향연. 학원도시의 공원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지만 일반인에겐 개방되지 않는 학원도시의 특성상. 지금처럼 주말의 오후에는 공원에 있는 사람이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무척, 한적하고. 예쁜 공원이네요.”

학원도시는 가온 아카데미가 속한 가장 가까운 도시. 아카데미에서 운용하는 스쿨버스로도 금방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네. 학원도시에 이런 공원이 있다니.”

아직 신유성에겐 학원 도시의 첨단화된 시설보단 녹음이 가득한 공원이 익숙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모르는 게 정말 많았던 거 같아요.”

이건 비단 학원도시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비가 오는 날. 신유성이 창밖을 보며 깊이 생각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면 스미레는 궁금했다.

‘……지금 유성 씨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그러나 묻지 않았다.

지금의 관계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데 더 가까이 가려고 하는 건, 욕심이라고 여겼다.

자신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던 과거는 있었으니까.

그런 일들은 묻어두는 게 옳다고 믿으며 피해왔다. 하지만 스미레도 알고 있었다. 그건 그저 두려웠을 뿐이었다. 실수는 받아들이는 것보다 도망치는 게 편했으니까.

이게 편하다며 스스로를 속였을 뿐이었다.

“……저어, 유, 유성 씨는 무서워하시는 게 있으신가요?”

신유성에게 두려운 존재는 계속 바뀌었다. 처음에는 자신을 버린 부모님의 뒷모습이 무서웠고, 그 다음은 한 순간에 바뀌어버린 낯선 세계가 무서웠으며, 그 다음도 마찬가지였다. 멧돼지와 괴수. 추위와 배고픔.

정면에서 두려운 존재들과 맞선 덕분에 신유성에게 두려움은 이제 희미해진 감각이었다.

“전……. 있어요.”

하지만 스미레가 무서워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뭐가 무서워?”

신유성이 시선을 연못에 둔 채 묻자. 스미레는 옅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 것……. 일까요?”

스미레는 짧게 심호흡을 하더니 한결 긴장이 풀린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라도 미움 받을까봐. 싫은 일도 거절하지 못한 적이 많았거든요. 실은 하고 싶은 말들이 엄청 많았는데도…….”

톡톡.

스미레는 벤치에 앉아 발장구를 치더니 신유성을 보며 평소처럼 멋쩍게 웃었다. 굳이 떠올리려 애쓰지 않아도 너무나 많은 기억들이 흘러갔다.

[아 진짜 못한다! 스미레가 또 쓰러트려써!]

[그래도 가치 놀아주자~ 스미레는 착하자나.]

스미레의 가장 큰 두려움은 미움을 받는 것, 그 때문일까. 스미레는 배려라는 이름으로 미숙했던 자신을 포장했다.

[……전 괜찮아요! 다음에 하면 되니까요.]

[역시 양보도 하고 스미레는 착하네~]

[남을 잘 배려한다니까. 그럼 부탁한다?]

눈에 띄지 않으면.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미움 받을 일도 없다. 그렇게 트러블을 피하며 자신을 지키는 게 스미레의 천성이었다.

“계속 참고……. 미움 받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언데드 던전의 폭주사건.

사령술 가진 스미레의 특성이 폭주하자 언데드들은 광폭 상태에 돌입했다. 비록 사상자는 없었지만 중학생에 불과했던 스미레에게 그 사건은 악몽이었다.

[꺄아아악! 도망쳐!]

[으악! 서, 선생님이!]

혼잡한 던전의 상황.

주변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물론 진짜 악몽은 사건이 끝난 이후부터였다.

[……스미레! 너 때문에!]

[진짜, 기분 나빠…….]

스미레는 바뀌어버린 사람들의 태도와 미움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인 자신. 평소와 달리 길게 느껴지는 복도.

스미레는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더 이상 스미레는 학교로 돌아갈 수 없었다. 미움 받을 장소로 직접 걸어 갈 용기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스미레는 한국으로 왔다

자신을 모르는 곳이라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으니까. 책임감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손발이 굳는 두려움보다는 자기혐오가 나았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근데 이젠 바뀌고 싶어요.”

스미레는 조심스럽게 신유성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 자연스러운 자세에도 어딘가 몸이 뻣뻣했고, 긴장한 탓인지 맞닿은 살이 뜨거웠다.

“……조금 더 용기를 내고. 욕심도 부리고 싶어요.”

그리고 그 순간, 마치 붉어진 얼굴의 스미레를 식혀주려는 듯.

탁. 타탁-

타다닥- 탁.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연못에 퍼져나가는 파장.

발을 간질이는 빗물의 촉감.

빗방울이 퍼지며 내는 맑은 소리.

쏴아아아-

빗물에 씻긴 녹음의 향이 코를 간질이며 진동했다. 스미레는 눈을 감고 신유성의 어깨에 기댄 채 용기를 내어 속삭였다.

“……유성 씨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어요. ……계속 함께 같이 있고 싶어요.”

둘만의 시간.

비가 내리는 공원.

스미레는 이대로 모든 게 멈췄으면 좋겠다고 하고 생각했다. 그 마음을 아는지 스미레에게 어깨를 내어준 채 미소를 지어주는 신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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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동료라기엔 너무도 깊고.

애정이라기엔 너무나 순수한 관계.

하지만 스미레를 응원하는 편린의 주인은 그 애매한 거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 ……나의 아이야.

그때.

스미레의 머릿속에 울리는 라플라스의 목소리.

- 그렇게 다짐을 해놓고. 겨우 이 정도로 관계로 만족하다니. 욕심이 없어도 정도가 있건만.

라플라스의 목소리에 스미레가 어? 하고 얼빠진 표정으로 당황한 순간.

“유성 씨. 오늘은 같이 있어주세요.”

스미레의 입에서 엄한 말이 튀어나왔다.

-후후, 그래. 욕심이라면 이 정돈 되어야지.

괜히 자신이 흐뭇해하는 라플라스.

“아, 유, 유성 씨! 방금 건, 그!”

당황한 스미레가 수습을 하려고 할 때 신유성은 시선을 맞춘 채 웃어주었다.

“응. 그럴게. 스미레.”

스미레는 말을 멈추고 꾹- 입을 닫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움찔거리는 입 꼬리는 참을 수가 없었다.

‘해, 행복해요…….’

토요일 내내 데이트를 하고 다음날까지 같이 있을 수 있다니. 행복에 겨운 스미레는 이미 마음속으로 라플라스에게 감사를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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