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62화 (162/434)

제162화

9개의 흐름이 있는 곳.

[구류섬]

한국에 있는 구류섬은 신화 속에 있는 ‘구류섬 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인공 섬이었다.

벽사의 동굴.

수신의 강.

풍사의 들판.

운사의 정상.

그 외의 몇몇을 합해 구류섬에는 총 9개의 점령지가 있었다.

“그러니까……. 이 9개 중에 하나를 먹으면 상위권!”

에이미의 열띤 설명에 김은아는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9개의 파티.

27명의 인원.

많은 숫자 같아도 200명이 넘는 1학년의 인원수를 생각하면 점령지를 가질 수 있는 학생의 숫자는 적다.

“그리고 여기서 신물! 흔히 말하는 오브젝트를 많이 챙기면 보너스 점수를 받는다는 거지!”

신물은 시험에서 총 30여 개가 있다. 섬의 다양한 장소에 퍼져 있으며 마지막까지 지킨다면 하나에 10점. 점령지의 점수가 100점인 걸 감안하면 서브 퀘스트에 해당하는 존재였다.

“그럼 점령지를 지키면서 신물도 뺏어야 하는 거야?”

김은아의 말이 맞았다.

이 인원분배야말로 바로 기말시험인 점령전의 어려운 이유.

점령지를 차지하더라도 지키는 쪽을 택한다면 신물을 얻는 게 힘들어지고. 신물을 뺏으려고 인원을 보내면 점령지를 지키는 게 힘들어진다.

“그렇지. 점령지를 차지한다고 끝이 아니니까. 그런 면에서 스미레는 부럽다. 엄청 유리하겠네…….”

에이미가 스미레의 능력을 콕 짚어 부러워한 이유는 사령술이라는 특이한 특성 때문이었다.

학생들이 부르는 이번 시험의 이름은 ‘공성전’. 어떤 시대든 공성전에서 인원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 시험에서 스미레의 특성은 공수전환이 자유로운 1인 군대.

“그냥 사역마만 주위에 뿌려도. 어지간한 애들은 못 오는 거 아냐? 상대할 애들은 진짜~ 힘들겠다.”

에이미의 말처럼 공성전에서 스미레의 능력은 더욱 빛을 발했다.

“적이면 확실히 까다롭긴 하겠네.”

마치 스미레와 싸울 일이 없다는 어투로 말을 하는 김은아와 에이미. 레니아는 둘의 눈치를 보며 땀을 삐질- 흘렸다.

‘……왜! 내 파티원은 2명이나 A반이야!?’

거기다 김은아는 신유성과 함께 국가대항전에서 활약한 파티원. 아카데미는 물론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학생들이었다.

‘엄청 부담돼! 너무 잘나가는 애들이잖아!’

긴장한 레니아가 눈을 흘기고 있을 때, 에이미는 그런 레니아를 보며 어-! 하고 소리를 냈다.

“너! 운동장에서 테러했던 걔지! 영상도 봤어!”

“테, 테러!? 아하하…… 테러까진 아니고! 그냥 너희 승리를 축하하는 축포 정도!?”

레니아가 겸손 아닌 겸손을 떨자. 에이미는 흐뭇한 얼굴로 웃었다.

“후후후, 너무 긴장하지 마. 우린 이미 순위권이 정해져 있거든.”

자신감 넘치는 에이미의 말.

하지만 레니아의 눈에는 그 자신감이 실력보다는 뭔가 꿍꿍이가 있는 느낌이었다.

“……이미 정해졌다고?”

레니아가 궁금함을 못 참고 묻자. 에이미는 쿡쿡거리며 웃더니 비밀이라는 듯 레니아의 귀에 속삭였다.

“……실은, 우리 파티는 파티원끼리 공격 안 해. 암호가 있거든.”

시험 중에는 포켓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게, 금지됐지만 파티원끼리 서로의 방해하지 않도록 암호를 정해두었다는 이야기.

흔들흔들.

“너한텐 익숙할지도 모르는 물건이겠네~”

에이미는 폭죽처럼 생긴 무언가를 쥐고 흔들었다.

“이건…….”

레니아는 에이미가 쥔 물건을 알고 있었다. 헌터용품보다는 구조용품에 가까운 물건의 이름은.

조명탄(Flares)

밝은 섬광이나, 연기를 내뿜어 시민들의 구조부터 시티가드의 전략까지 다양한 용도로 광범위하게 쓰이는 물건이었다.

“알겠다! 이 연기가 뿜어진 곳은 파티원이 있는 거구나!?”

눈치를 챈 레니아가 놀란 얼굴로 말을 하자. 에이미는 근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우리 파티원들은 서로 공격할 일이 없단 말씀!”

당당하게 외치는 에이미를 보며 레니아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거 담합이잖아!?’

하지만 규칙에 어긋나진 않으니 반칙은 아닌 상황. 레니아는 속마음을 꿀꺽 삼켜 버리고 현실에 순응했다.

‘이기면 됐지!’

*     *      *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스미레는 가시방석 같은 분위기에 삐질 식은땀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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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 무슨 말이 안 통하냐? 이런 시험에선 빨리 쳐들어가서 많이 점수 따는 게 중요하다니까?” 

점령전이 시작하자마자 적극적으로 활동하려는 주하진.

“잘됐네. 그렇게 생각도 없이 들이받으니 조기 탈락은 따둔 당상이겠네. 얼른 탈락하고~ 크루즈에서 기다리고 있어.”

안전을 확보하고 천천히 점령지를 점거할 생각인 이시우.

“이 새끼 비꼬는 거 봐라?”

“성격 건드리지 마. 요새는 건드리면 그냥 안 넘어가니까.”

“그래? 그 성격을 어떻게 지금까지 죽이고 살았다냐?”

자존심 강한 두 학생의 기 싸움.

둘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팽팽하게 맞섰다. 이대로 두면 이시우와 주하진은 밑도 끝도 없는 말싸움만 이어갈 게 뻔했다.

“저, 그…….”

중간에 앉은 스미레가 손을 들었다. 유약한 스미레의 성격은 이런 둘의 분위기에 너무나도 취약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가만히 있는 건, 예전의 이야기.

“저도 의견을…… 말씀드려도 괜찮을까요?”

가만히 있던 스미레가 의견을 말하려고 하자. 주하진과 이시우도 관심을 보였다.

“뭐? ……네 의견? 들어나 보자.”

“말해봐 스미레. 저 멍청이의 자살이나 다름없는 작전만 아니면 난 다 괜찮으니까.”

둘은 끝까지 신경전을 벌였지만 스미레는 신경 쓰지 않고 소신을 밝혔다.

“저 그게……. 주하진 씨는 성적이 30위권 근처고. 시우 씨도 정말 강하시고 큰 활약을 보여주셨지만 저어…… 세븐넘버는 아니시니까.”

스미레가 처음 무기로 꺼낸 건 자신의 세븐넘버라는 성적. 하지만 스미레는 금방 평소처럼 상냥한 얼굴로 돌아와 싱긋 웃었다.

“학교의 규칙처럼 성적이 6위인 제가 작전을 맡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상상도 못한 스미레의 의견에 주하진은 헛기침을 했다.

“……크흠!”

실력지상주의인 가온에서 성적은 곧 계급. 성격이 만만해 보이는 스미레라서 무시한 것이지. 학년 성적이 6위인 스미레의 발언은 가온에서 무거운 가치를 지녔다.

“어? 어어 그, 그렇긴 하지…….”

같은 이유로 이시우도 당황한 내색을 비쳤다. 아무리 영국전에서 활약을 보였어도 라플라스의 편린을 가진 스미레의 전투력은 측정이 힘들었다.

실력이든 성적이든 모두 스미레가 둘을 앞서는 상황. 스미레는 조심스럽게 조곤조곤 설명을 했다.

“제 특성인 사령술은 사역마에게 명령을 내리는 일이 빈번하고……. 다인의 팀원으로 작전을 구상하는 건 필수적인 덕목이니까요. 시우씨는 대단한 작전도 혼자 수행하실 수 있으시지만. 그래도! 다인전에서 명령을 하달하는 건 제 쪽이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냥 성적만 들이미는 것도 아니었다. 스미레는 이시우와 주하진에게 자신이 리더를 맡아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밝혔다.

“그러니까, 두 분 모두 저에게 작전을 맡겨주실 수 있을까요?”

잠깐의 침묵.

주하진은 무언가 반박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논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신유성과 함께한 이후로 스미레는 일반 학생들에겐 범접할 수 없는 단계까지 올라가 버렸다.

‘거기다 소문으론…… 스미레 이 녀석. 신유성이랑 거의 부부 수준이라던데…….’

신유성과 스미레의 사이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많았다. 물론 그중 대부분은.

아침에 찾아가서 밥을 해주니.

점심에는 전용 도시락을 싸주니.

주말은 늦은 시각에도 직접 장을 보고 찾아가서 저녁을 해주니.

따위의 이야기.

‘신유성 그 녀석. 일본에 갔을 땐, 아예 집까지 찾아갔다던데…….’

가까운 거리도 아닌 무려 일본.

그렇게 먼 곳까지 가서 스미레의 부모님을 만나다니. 주하진의 짐작으로 보건데, 그건 아무리 봐도 상견례였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주하진의 눈에는 점점 스미레가 다르게 보였다.

스미레는 겉으론 얌전하게 보이지만 그 신유성마저 휘어잡아버린 수완가.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상냥한 스미레의 미소도 속셈이 숨어 있는 듯 보였다.

‘괜히 이 녀석한테 밉보여서. 신유성한테 척을 질 필요는 없지.’

지금은 여러 가지 활약을 통해 모두가 알고 있지만. 주하진은 신유성의 강함을 아카데미에서 첫 번째로 맛본 인물이었다.

주하진에게 신유성은 괴물중의 괴물. 절대 척을 지고 싶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래. 좋아. 저 겁쟁이보다야 낫겠지. 음침녀. 네가 맡도록 해.”

마치 자신이 허락하는 양 마지막 자존심을 챙기는 주하진. 스미레는 둘을 보며 싱글싱글 웃었다.

“그럼! 다 같이 열심히 해봐요!”

신유성과 함께 있으며 이전과는 너무 변해버린 스미레.

“그, 그래. 스미레. 열심히 하자.”

“뭐……, 그런 말 안 해도 이건 시험이니까…….”

이젠 이시우와 주하진이 스미레가 지었던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역시 스미레는.

여러 의미로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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