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60화 (160/434)

제160화

소피아는 관찰을 좋아했다.

하지만 관찰보다 재밌는 건 알게 된 사실로 대상을 분류하는 것.

항상 무감각해 보이는 아델라의 표정에도 사실 감정의 단계가 있다.

먼저 1단계.

살짝 움직이는 눈썹.

만약 아델라의 눈썹이 조금이라도 위로 움직인다면 그건 기분이 아주 좋다는 이야기였다.

반대로 눈썹을 내린다?

‘……그건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 있다는 뜻이지.’

오늘의 아델라는 눈썹이 위로 향하고 있었다. 아주- 아주- 미묘한 차이지만 입술의 끝이 살짝 올라가 있었다.

‘저건 굉장히 기분이 좋다는 신호!’

하지만 아델라가 보내는 가장 큰 신호는 그게 아니었다.

찻잔을 쥐고 있는 기다랗고 하얀 손가락. 소피아가 주목한 건 그 중에서도 아델라의 새끼손가락이었다.

‘……오늘은 새끼손가락까지 들고 계셔!’

아델라가 찻잔을 들며 새끼손가락을 든다는 건 기분이 좋다는 신호 중에서도 최상급 표현이었다.

그 아델라를 이렇게까지 기뻐하도록 만든 건 도대체 무슨 일일까?

똑똑똑.

그때 누군가 부실의 문을 두드렸다. 손님을 확인하기 위해 문을 여는 소피아.

“오! 네가 소피아구나.”

키가 작은 소피아는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올렸다. 눈앞에 서 있는 건 아델라와 같은 은빛 머리카락을 가진 거구의 남자.

이탈리아의 전설.

은빛 바람. 아덴 오르텐시아.

“안녕. 꼬마 아가씨. 하하, 네가 우리 아델라의 파티원이구나?”

“아, 아, 덴님!”

안경 사이로 비친 소피아의 눈이 커졌다. 탑의 전설이라 불리는 헌터 중 한명과 마주보게 되다니.

아직 현역도 되지 못한 학생에겐 더없는 영광이었다.

“오, 나를 알고 있나 보구나?”

“아, 아덴 오르텐시아. 생일은 1965년 3월 1일로 밀라노 출신. 현역 초기에는 은발의 성기사라고 불렸지만. 탑의 40층을 공략하며 은빛바람이라는 이명을 획득……. 별자리는…….”

소피아가 눈을 빛내며 숨도 쉬지 않고 줄줄 정보를 뱉어내자. 아덴은 머쓱한지 자신의 뒷머리를 만지며 허허- 하고 웃었다.

“그렇게 자세하게 알 줄이야……. 나도 네 얘기는 많이 들었단다. 레온 맞지?”

“파티장님이. 제 이야기를요? 그리고 제 이름은 소피아인데요…….”

“……그렇구나.”

아덴은 머쓱한지 시선을 피했다.

‘……파티장님.’

대체 어떻게 헤야 갈색머리에 키가 160도 안 되는 자신과 금발에 180이 넘는 레온을 착각하실 수 있는 걸까. 애당초 레온은 남자고 자신은 여자인데 말이다.

‘정말. 우리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하셨구나.’

관심이 없어 보이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라니. 소피아는 나름 충격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안으로……. 참고로 방안의 온도는 22도. 습도는 50%를 유지중입니다. 혹시 불편하시면…….”

“아니! 아니! 고맙구나. 그거면 충분하단다.”

아덴이 웃어주며 아델라에게 걸어갔다.

“아델라. 오랜만이구나.”

아덴과 아델라가 마주보며 테이블에 앉았다.

“……그렇군요.”

아델라가 평소와 달리 기뻐 보였던 모두 이것 때문. 소피아는 구석 자리에서 수첩을 꺼냈다.

관찰을 좋아하는 소피아에게 이보다 최고의 대상은 없었다.

전설의 헌터 아덴과 최고의 유망주 아델라의 만남이라니!

‘……하지만 공식석상이 아닌 이곳에선! 그저…… 한 명의 할아버지와 손녀!’

아덴 님은 과연 손녀에겐 어떤 모습을 보여주실까? 역시, 전설의 헌터도 손녀의 앞에선 평범하고 자상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이실까?

‘무엇보다 궁금한 건. 아델라 님!’

아덴은 아델라의 유일한 가족.

설마 최근의 힘들었던 일들을 털어 놓으며 처음으로 약한 모습을 보여주실까?

‘최근은 전투가 몰려있어서. 힘들긴 했어.’

아델라가 처음으로 약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소피아는 얼마든 이해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소피아의 기대는 아델라의 말 한마디에 와장창 깨져버렸다.

“……소피아? 잠시 나가 있어주세요.”

“네?! 하지만! 대항전을 앞두고 두 분의 마음을 털어 놓는 역사적인 순간인데요!?”

아델라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소피아를 바라보았다. 둘의 눈이 마주치자. 아델라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눈썹을 아래로 움직였다.

“아……, 알겠습니다.”

서운함이 가득 담긴 소피아의 목소리. 아델라는 관찰을 좋아하는 소피아도 기분을 알아챌 수 없는 신비의 소녀. 관찰을 좋아하는 소피아에게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었다.

스윽. 터벅터벅.

하지만 역시 아델라는 무서웠는지 소피아는 순순히 걸어 나갔다.

‘아쉽네. 무슨 대화를 하시려나?’

*     *      *

“하하! 정말 재밌는 아이구나.”

소피아가 나가고 아덴이 웃자.

아델라는 다시 찻잔을 들어 홀짝였다. 찻잔을 드는 아델라는 새끼손가락을 여전히 올리고 있었다.

“……오늘 찾아오신 건, 카스텔라나 동굴의 이야기인가요?”

“바로 본론이라니. 너도 소문을 들은 모양이구나. 물론 대외적으론 유물 발굴로 표명된 모양이다만…….”

아델라도 이탈리아 협회에서 카스텔라나 동굴로 갈 헌터들을 모집하는 공고를 보았다.

물론 그 대상자는 최소 6급.

그건 이탈리아가 아닌, 전 세계로 규모를 넓혀도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었다.

“잘 들으렴. 이건 아주 극소수의 헌터만 아는 이야기란다.”

탁!

아덴이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내자, 은빛의 마나가 전 방향으로 스르르르- 시원하게 불어 닥쳤다. 높은 밀도의 마나로 소리를 차단하는 기술이었다.

물론, 특성을 활용한 것도 아닌 단순히 마나를 움직인 것에 불과했다.

평범한 헌터들의 대화에 쓰기엔 사치스러운 테크닉이었지만 전설이라 불린 아덴에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카스텔라나 동굴에 헌터들이 모이는 건, 레이드 때문이란다.”

레이드.

수십 단위의 헌터들이 모여 던전을 공략하거나 보스를 잡는 행위.

영국에 나타난 킹즈오라처럼 7급 이상의 보스는 이런 정부 단위의 공략이 이루어진다.

“……그럼. 카스텔라나 동굴에.”

“거기다 이번에 나오는 건, 보통 보스가 아니란다.”

아덴은 흥미를 보이는 아델라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신유성에게 패배한 이후, 아델라는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에 매몰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 레이드 파티의 창설은 아델라가 꼭 관심을 보일 주제였다.

이번 레이드의 보스는 7급 중에서도 무려 ‘네임드’니까.

“제왕종 레드 드래곤. 사도닉스.”

마왕종의 이름이 붙은 보스들은 모두 최소 전투력이 6급에서 시작을 한다. 하지만 같은 종이라고 해도 격의 차이가 있다.

마계 서열 72위. 6급 보스.

마왕 안드로말리우스.

그리고.

마계 서열 1위. 8급 보스.

마왕 아몬.

둘의 전투력 차이는 감히 측정조차 할 수 없었다.

“……사도닉스.”

아델라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평범한 드래곤은 6급 보스에 불과하지만 사도닉스는 평범한 드래곤이 아니다. 다른 차원에서 레드 일족을 이끌던 수장.

레드 드래곤들의 로드였다.

헌터들의 상성이라 불리는 ‘마나의 주인’들 중에서도 가장 위협적인 상대.

“아델라. 너도 7급 보스의 공략을 직접 보고 싶지 않느냐?”

아덴이 웃으며 말했다..

7급 보스의 공략이라면 지켜보는 것만으로 좋은 기회였지만 아델라는 생각에 빠졌다. 아델라에겐 자신이 강해지는 만큼. 강해지길 바라는 상대가 있었다.

최고의 실력.

그리고 최고의 컨디션으로 모든 걸 맞부딪히고 싶은 상대였다.

“그럼……. 한 자리를 더 부탁 드려도 되겠습니까?”

아델라가 내민 의외의 제안에 아덴은 그저 빙긋이 웃었다.

*     *      *

가온 아카데미의 주말.

이시우는 부실을 둘러보며 신유성에게 말을 걸었다.

“진짜, 유성아. 역시 주말이 최고다. 그치?”

스미레가 만든 맛있는 음식.

어디서 배웠는지 재주를 부리고 묘기까지 보여주며 음식을 나르는 에이미. 이렇게 파티원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다보면 묵었던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신유성에겐 더할 나위 없는 행복.

“와아, 엄청 많이 했는데…… 모두 깔끔하게 드셨네요.”

거의 10인분에 가까운 음식이 모두 동이 난 상황. 스미레는 그 많았던 음식을 모조리 비워준 신유성을 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유성 씨는…… 어떤 음식이 제일 입맛에 맞으셨나요?”

스미레는 마치 토끼처럼 귀를 쫑긋거리며 대답을 경청했다.

신유성이 택한 음식은 꼭 한 번 더 해줘야겠다는 마음과 칭찬을 받고 싶다는 마음에 던진 질문.

신유성은 잠깐 고민하더니 솔직하게 답했다.

“전부. 정말 전부 맛있었어.”

스미레에겐 행복 그 자체인 대답.

“네? 저, 전부요?”

슬슬 올라가는 입 꼬리를 참고 있자. 신유성은 거기에 쐐기를 박았다.

“스미레가 해주는 건, 무슨 음식이든 항상 맛있어.”

“카, 카라아게도요?”

“응.”

“그, 그럼! ……배달치킨 보다 더 맛있으신가요?”

그게 마음에 걸렸었는지 스미레가 눈을 빛내며 묻자. 신유성은 입을 여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다 더해진 기분 좋은 웃음

화아아-

스미레가 진정으로 행복과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 때, 누군가 자연스럽게 부실의 문을 열렸다.

“이게 뭐여.”

목소리의 주인은 김은아.

시간이 지나며 로렐라이의 스킬이 풀렸는지 김은아는 원래의 몸으로 돌아와 있었다.

“어! 은아 씨!?”

“언제 돌아왔대. 오늘 못 오는 줄 알았더니.”

“헉! 은아야!”

스미레. 에이미. 이시우.

각자 나름의 반응으로 김은아를 반겼지만 주변을 둘러본 김은아의 표정은 어딘가 뚱- 해져 있었다.

“뭐여, 그걸 못 기다리고. 나만 빼놓고. 다 먹었네.”

어려졌던 김은아가 돌아올 줄은 누구도 몰랐던 상황. 스미레는 김은아가 삐지기 전에 다급하게 의자에 앉혔다.

“저! 재료도 많고! 은아 씨를 위해서 스페셜 메뉴도 생각해뒀어요!”

“……올 줄도 몰랐던 사람인데. 그냥 놔둬. 난 냉장고에서 아무거나 꺼내 먹으면 돼.”

김은아가 흥- 하고 새침하게 고개를 피하자. 스미레는 김은아의 기분을 풀어주려 만지작- 만지작-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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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그러지 마시고요! 정말 맛있는 스페셜 메뉴라니까요?”

“……뭐, 그럼. 가져와 보던지.”

이젠 김은아를 다루는 법도 마스터해버린 스미레.

‘은아를 위한. 스페셜 메뉴…….’

신유성은 그런 둘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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