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59화 (159/434)

제159화

불이 꺼진 방.

여러 모니터에서 새어나오는 불빛.

타닥! 타다다닥!

치트는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무언가를 입력했다.

[Success!]

[……Loding 11%]

[55%]

[100%]

[Location: Italy]

[Grotte di Castellana]

빌런 단체 리벨리온의 멤버.

그 중에서도 해킹이 특기인 치트에게 추적 장치의 위치를 확인하는 건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었다.

“흠, 이탈리아라~?”

빙글.

치트는 앉아 있는 의자를 빙그르르르- 장난스럽게 돌렸다.

“어지러~”

툭.

클로는 치트의 어깨를을 붙잡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난치지 마라. 중요한 사항이다.”

“난 지금 진지해. ……아마도?”

타다다다!

엄청난 키보드 소리를 내며 치트는 다시 추적을 시작했다.

그리곤 화면에 밝은 빛을 바라보며 씨익- 상어처럼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는 치트.

“흐응~ 근데 역시 대장이 대단하긴 대단해~ 도마뱀이 진짜 나오긴 하나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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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카스텔라나 동굴.

그곳의 대기를 가득 채운 마나는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었다.

“여기 주변. 전체적으로 마나 밀도가 엄청 높아. 저번에 봤던 숲속도 높은 편이었는데 그 150배?”

“……그렇군.”

등장하지 않았는데도 주변의 마나 밀도를 150배나 만들어 버리다니. 역시 카스텔라나 동굴에서 실체화 되고 있는 던전은 ‘마나의 주인’이라고 불리는 존재의 것이 분명했다.

“근데 이거…….”

하지만 예측이 맞았음에도 치트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화면을 확대했다.

“협회 놈들도 냄새를 맡았나본데?”

화면에 보이는 건 한국의 협회장 강유찬을 비롯한 이탈리아의 6급 헌터들. 이런 쟁쟁한 헌터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면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레이드인가.”

‘재앙의 마녀’라 불린 라플라스를 비롯해 대부분의 7급 보스들은 이명이 붙는다.

곧 이탈리아에 강림할 7급 보스에게 붙은 이명은 ‘제왕종’.

모든 종족의 위에 군림하는 고고한 존재이자. 마나의 주인이라 불리는 초월의 종에 대한 예우였다.

“요즘 같은 시대에 7급 던전이 실체화 한다는 것도 충격인데……. 한국과 이탈리아의 합동? 밥그릇 싸움이나 할 줄 알았더니. 시대가 바뀌었어. 참 다들 멋있네~ 멋있어~”

치트는 비꼬는 말투로 중얼거렸지만 클로는 짚이는 곳이 있었다.

‘……은빛바람 아덴. 그 사람이 손을 쓴 건가?’

아덴의 동료들을 떠올린다면 7급 보스의 공략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국가 단위의 테러도 일삼는 리벨리온이지만 권왕을 비롯한 ‘탑의 전설’들은 클로도 피하고 싶은 상대였다.

“역시…… 그 방법밖에는 없나.”

*     *      *

탑 20층 공략.

1학년의 꽃. 평가시험.

국가대항전의 준결승 경기.

1학년을 마치기 전에 신유성이 해야 할 스케줄은 마치 산더미 같았다.

게다가 여기에 신유성이 지금까지 보여준 활약을 합친다면 그 어떤 헌터도 1년 간 해내지 못한 성취라고 볼 수 있었다.

‘……가장 기한이 촉박한 건 평가시험이지만.’

모든 일에 신중과 최선을 다하는 신유성이지만 따로 시험에 시간을 쓸 생각은 없었다.

이제 학교 시험을 준비하기엔 신유성과 파티원은 너무 강했다.

마치 작은 연못에 투입된 거대 가물치처럼 생태계를 파괴하는 존재.

한 명 한 명이 시험의 판도를 바꿀 실력을 가졌다. 물론 신유성의 실력은 그 중에서도 논외.

‘역시 지금 문제는 탑과 국가대항전이겠지.’

탑은 각 층마다 개별적인 생태계를 가진, 미지의 구조물이었다.

헌터들은 ‘탑’이라는 단어로 부르고 있지만 실상은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모르는 아공간.

그런 탑을 20층이나 오른다는 건, 어떤 지역이 나올지도 모르는 무모한 모험을 20번이나 성공적으로 끝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10층과 20층.’

탑에서 10번째 층들은 흔히 보스 스테이지라 부르는 층이었다.

이전의 층과는 차원이 다른 난이도의 퀘스트를 자랑하는 장소.

‘10층에 도착하기 전에 팀플레이를 맞춰볼 필요가 있겠어.’

파티의 힘이란 각각의 파티원이 강하다고 끝이 아니었다.

파티의 진면모는 3명의 인원이 10명의 시너지를 내는 것. 서로가 합이 안 맞은 채 각자 움직인다면 그건 파티를 맺을 의미가 없었다.

‘다들 이번 등반에서 배우는 게 많겠는걸.’

마지막으로 남은 건 국가대항전의 준결승이었다. 신유성을 고민하게 만든 건 준결승의 규칙. 지금까지는 국가대 국가의 형태로 1대1을 유지했지만 준결승부터는 아니었다.

준결승은 지금까지 살아남은 팀을 한데 모아 펼치는 생존 서바이벌.

그 안에서 어떤 정치와 전략이 펼쳐질지는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제일 위협이 되는 건 ……유럽 지역이지.’

스페인.

독일.

그리고 아델라가 속한 이탈리아까지 유럽 국가는 준결승까지 무려 3개의 팀이 살아남았다.

일본이 탈락하며 한국과 중국.

2명의 팀만이 남은 동아시아의 국가에 비해 고무적인 성과였다.

특히 헌터 강국인 동아시아는 유럽 쪽 국가들에게 견제의 대상.

‘……분명 숫자가 많은 유럽 쪽에선 힘을 모으자는 움직임이 벌어질 거야.’

물론 신유성이 생각하는 건 최악의 경우. 그런 작전을 펼치려면 각 파티를 한데 모을 압도적인 리더가 필요했다.

만약 그런 리더의 재목이 없었다면 신유성도 유럽을 견제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지금 유럽의 이탈리아에는.

‘아델라가 있다.’

나태의 천재.

뼈를 깎는 연습 같은 건 해본 적이 없음에도 헌터 강국인 한국에서 학년 1위를 유지한 소녀.

아델라 오르텐시아.

그러나 최근의 아델라는 달라졌다.

신유성이라는 라이벌을 꺾기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을 수련에 힘 쏟고 있었다.

나태의 천재가 노력의 이유를 찾은 것이다.

‘정말 유럽 팀들이 손을 잡는다면 아델라는 엄청 까다로운 상대가 될 거야.’

그 외에도 참가한 팀은 있지만 신유성은 유럽과 동아시아를 위주로 경기가 진행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신유성은 평소처럼 여유롭게 웃었다. 상대의 혹시 모를 전략에 대비하기 위해 신유성은 아직 보여주지 않은 카드를 쥐고 있었다.

*     *      *

웅성웅성.

S반은 학생들이 떠드는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뭐야, 이게 말이 되냐?”

“상급반이랑 하급반을 섞는다고?”

“대체 누구 생각이야. 기말 평가 시험은 다 작년이랑 똑같이 가는 거 아니었어?”

이름부터 ‘상급’과 ‘하급’으로 나뉜 것 만보아도 사실 특성의 등급 분류는 아카데미에서 일종의 신분이었다. 전투력이나 성적이 낮더라도 S급을 비롯한 상급 특성들은 그 특별함으로 훨씬 헌터계에 공헌 할 수 있다는 게, 협회의 지론.

하지만 적어도 가온에서 아카데미에선 그 공식이 파괴됐다.

안젤라와 세바스찬. 시계탑 아카데미의 파티원 2명을 혼자서 날려버린 이시우.

듀라한과 서큐버스를 사역에 성공하며 진정한 사령술사로 각성한 스미레.

최강의 1학년이자, 이레귤러로 불리는 신유성까지.

S반보다 강한 학생들이 F반에 존재하는 이상 가온 아카데미의 분류는 의미가 없어졌다.

“우리 1학년 시험만 이렇게 적용이 된 걸 보면. 누구 때문인지는 뻔하잖아?”

이채현이 못 마땅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자. 민성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하지만 이런 식으로 상급반과 하급반의 위계가 무너지는 건, 나도 원치 않아.”

S반의 반장이 된 민성혁마저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자. 여학생 중 한명이 냉큼 민성혁에게 다가섰다.

“하, 그러니까 말이야! 차라리 F반 애들 중 몇 명만 위로 올리던지. 다른 반까지 다 합쳐서 질 떨어지게 이게 뭐야?”

여학생이 속사포처럼 불만을 털어놓는 순간, 복도에서 S반의 학생이 큰 소리로 외쳤다.

“야! 게시판에 명단 올라왔대!”

그제야 휴대폰을 켜 뚱한 얼굴로 명단을 확인하는 이채현과 민성혁.

[파트너 멤버 명단]

No.12 [민성혁] [이채현] [신유성]

민성혁과 이채현은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를 바라봤다. 학년은 물론 1학년 중 가장 강하다고 평가 받는 신유성과 파트너가 된 상황.

“생각해보니. 교수님들도 생각이 있어서 규칙을 바꾸셨을 텐데. 우리가 왈가왈부하는 건…….”

민성혁이 운을 띄우자.

“맞아 그건 너무 선 넘는 거 같다. 이번에는 그냥 가지?”

이채현은 날렵하게 말을 받았다.

갑작스럽게 변해버린 둘의 태도에 어리둥절한 얼굴의 여학생. 민성혁과 이채현은 민망한지 서로 시선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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