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화
“아델라와 류진. 그리고 유성이를 같이 탑에 보내는 게 어떻겠는가? 이미 유원학과는 끝난 이야기야.”
카페에 울려 퍼지는 저음의 목소리. 아덴의 진지한 표정에 검신은 뽑았던 검을 집어넣었다.
“……너희들의 제자와 류진을 같이 탑에 보내라? ……참으로 의외의 제안이로군.”
“우리들은 세상이 인정하는 최고의 파티였지. 검신 자네도 제자들의 시너지가 보고 싶지 않은가? 만약, 거절한다 해도 난 아델라를 유성이와 탑에 보낼 생각이네.”
아덴은 검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의 ‘검신’이라는 이명을 부를 뿐, 어쩔 수 없었다. 검신은 지독하리만치 자신의 이름을 싫어했다.
“……그래? 네 녀석치고는 제법 강하게 나오는군.”
자연스럽게 손을 입에 가져다대던 검신은 파이프가 없음을 눈치 챘다. 결국 쯧- 하고 혀를 차더니 검신은 소파에 등을 붙였다.
“상관은 없다. 류진이 강해지기만 한다면 말이지.”
“자네. 역시……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건가?”
“……포기? 지금 포기라고 했나?”
화악!
검신이 검에 손을 가져다대자.
미약한 소리가 들렸다. 마치 들판에 부는 바람 같은 소리.
서걱! 쿵!
반으로 잘려진 테이블이 땅에 떨어졌다. 초췌해 보였던 검신의 눈동자는 아덴을 향해 불길을 이글거리고 있었다.
“내 검술의 완성은! 평생의 업적이고 소원이다! ……그런데 내가 포기라고?”
일반인이라면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릴 살기. 하지만 아덴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소파에 앉은 채 검신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자네는 그 업적을 제자에게 맡기지 않았는가.”
검신의 표정이 굳었다.
몸이 탑의 정체 모를 보상으로 변화해버린 이후, 그의 검술은 날이 갈수록 쇠퇴했다. 짧아진 팔. 달라진 보폭. 약해진 근력. 신체의 변화는 급작스러웠고 이런 몸으론 그가 평생을 염원한 ‘검술의 극의’에 닿을 수 없었다.
그가 갈고 닦은 천하패검은 사소한 동작부터 오롯이 그의 신체에 초점이 맞춰진 검술이었다.
바뀌어버린 몸과는 근본부터 맞지 않는 검술. 검신은 이제 절대로 천하패검을 완성 할 수 없었다.
아덴은 검신을 바라보며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류진이 자네가 아니듯이. 설령 제자가 자네의 천하패검을 완성한다고 해도.”
아덴의 말은 동료로서 전하는 지독한 현실이었다.
“그건 절대로 검신 자네의 천하패검이 아니네. ……알고 있겠지?”
예전의 검신이라면 절망했을 이야기. 하지만 검신은 담담하게 알 수 없는 눈으로 아덴을 바라보았다.
“알고 있다. 그러나 상관없다. 나는 그저 극의에 닿은 검술을…… 보고 싶을 뿐이야.”
자신은 이제 이루지 못할 천하패검의 극의.
“좋아. 자네 뜻이 그렇다면 ……그거면 됐네!”
검신의 진심을 들었기 때문일까, 아덴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인자하게 웃고 있었다.
“그나저나, 정말 아깝군…. 모처럼 젊은 처자가 됐는데 침울한 표정과 머리도 빗지 않은 꾀죄죄한 꼴이라니. 어때! 오랜 친구에게 맡겨보겠나?”
아덴은 아델라의 어린 시절부터 머리를 빗어주었기에 꽤나 자신이 있었다.
검신은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검을 뽑아냈다.
* * *
아카데미 최고 명예인 국가대항전에서 준결승 진출이라는 쾌거. 1학년들은 모두 신유성과 파티원들의 귀환을 반겼다.
“왕이 돌아오셨다!”
“왕은 무슨! 가온 아카데미의 신! 투신이 돌아오셨다!”
“어허, 다들 뭐해 모두 레드 카펫을 깔지 않고.”
분주한 레니아의 주도하에 아카데미의 중앙 복도에는 정말 레드카펫이 깔렸다.
돌돌돌!
“뭐야 이건.”
이시우가 떨떠름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을 때, 레니아는 넙죽 고개를 숙였다.
“아니, 이게 누구실까. 원 샷. 투 킬. 가온의 폭탄마 이시우 님! 아니시옵나이까!”
레니아가 헉- 하고 입을 가리며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이시우는 인상을 썼다.
“아니 또 폭탄마는 뭐야.”
“그, 그게…… 대항전에서 보여주신 임팩트가 좀 컸었나 봐요. 인터넷에 이시우 씨 사진이…… 잔뜩 올라왔던데요?”
스미레가 헤헤- 웃으며 말을 하자. 에이미는 중간에 끼어들며 말을 낚아챘다.
“함 볼래? 이건데!”
퍼어엉!!
화려한 폭발을 등지고 걸어 나오는 이시우의 동영상.
“무슨, 별……. 난 유성이가 믿어줬으니까. 내 몫을 해낸 걸로 족해.”
그렇게 말은 해도 이시우는 관심을 받는다는 사실이 기분 나빠 보이진 않았다.
스미레는 파티원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더니 기분 좋게 웃었다.
“후후, 이제 정말…… 1년이 저물어 가네요.”
“뭐, 아직 시험도 남았고. 국가대항전도 남았고. 할 일이 많지만.”
이시우가 뒷목에 깍지를 끼며 중얼거리는 순간.
누군가 앞을 막았다.
신유성과 닮은 색의 머리카락. 언제나 여유롭게 웃고 있는 미소.
“안녕?”
갑작스러운 신하윤의 등장에 신유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런 신유성의 불편한 기색을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는 신하윤.
“너무 그러지 마~ 학생회장으로서 축하를 하러온 거니까.”
한 번 이야기를 나눠봤던 에이미는 오- 하고 신하윤에게 손을 흔들었다.
“학생회장님이다!”
“아, 우리 한 번 봤지? 그래. 에이미. 준결승에 국가대항전의 우승후보까지 되다니. 너희 파티장님은 정말 대단하시구나.”
신하윤은 그렇게 에이미를 보며 웃더니 말을 덧붙였다.
“……학생회장으로서 너희 파티가 정말 자랑스럽단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영락없는 축하의 말. 하지만 신유성의 표정은 내내 굳어 있었다.
자신이 아는 신하윤은 절대로 아무 목적도 없이 타인을 축하할 사람이 아니었다.
“아, 그리고 파티장인 신유성 학생은……. 내가 익숙한 얼굴과 함께 찾아갈 테니. 시간 좀 마련해줘?”
신하윤이 보기 좋게 웃자. 신유성은 담담하게 답했다.
“……10분 정도는 내드릴 수 있습니다.”
과거의 이야기를 정리하기 위함.
신하윤이 말한 ‘익숙한 얼굴’이 누군지는 뻔했다. 다만, 신유성도 그들이 어떻게 나오는지는 궁금한 찰나였다.
“좋아. 그거면 됐어. 그럼 모두 다음에 보자.”
신하윤이 떠나자. 이혁은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이혁은 가온의 회장이자, 헌터부 동아리의 회장인 신하윤의 매니저. 학생이면서도 개인명함을 사용할 정도로 사업적 만남이 잦았다.
“역시. 학생회장님! 뭔가 멋있네요! 잘 보면 파티장님과 닮은 거 같기도 해요.”
에이미가 곰곰이 신유성의 얼굴을 살펴보자. 이시우는 피식 웃었다.
“뭐가 닮아. 성씨만 같구만.”
아직 신유성과 신하윤이 같은 신오가문의 출신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적었다.
그저 신유성의 대외적인 이야기는 고아원의 출신이라는 것뿐.
에이미는 헤- 하고 웃더니 신유성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내 착각인가? 닮은 거 같기도 한데…… 아! 근데 파티장님! 이렇게 좋은 날 은아는 어디 있나요?”
로렐라이의 스킬로 3일 동안 영락없이 7살로 어려진 김은아. 지금 김은아는 아카데미에 있지 않았다.
* * *
평소의 신성그룹의 대저택은 품위를 때문인지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신성그룹 일가는 어려진 김은아를 둘러싸고 저마다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있었다.
“아이고. 우리 은아는 만화가 그렇게 재밌니? 아무리 그래도 좋아하는 간식부터 먹지 않으련?”
어려진 김은아에게 준비했던 간식을 건네는 김석한. 그러다 머리에 손이 닿자. 김은아는 찌릿- 하고 김석한을 노려봤다.
“아 지짜, 하라버지. 만화 본다니까……. 간식도 기차나!”
오르카를 베개 삼은 김은아가 못 마땅한 얼굴로 볼을 부풀리자. 김석한은 세상 인자한 얼굴로 허허허- 웃고 있었다.
“어우 그래! 미안하구나! 허허, 내가 우리 은아를 방해를 했어! 그건 안 돼! 안될 노릇이야!”
7살로 돌아간 김은아는 귀여움의 정수였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마치 농축시켜둔 귀여움을 인간으로 바꾼 느낌.
손녀 바보인 김석한을 녹여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역시 은아는 7살 때가 제일 귀여웠다니까요!”
오빠인 김준혁도 김은아를 보며 하하 웃자. 김은아는 인상을 썼다.
“아씨……. 만화 소리 안 들려. 다들 너무 시끄러…….”
다시 한 번 가족들을 보며 눈을 가늘게 뜨는 김은아. 그러나 김은아의 행동은 평소처럼 위협적이지 않았다. 만약 위협적이 된다면 그건 가족들의 심장이었다.
“정말. 은아는 내 딸이지만……. 최고중의 최고야.”
어미니인 김윤하가 가슴에 손을 올리며 자랑스럽게 말을 하자. 아버지인 김성한은 흐뭇한 표정으로 스윽- 코를 닦았다.
“우리 둘의 우수한 유전자 덕분 아니겠어?”
“흐응? 그래? 그럼 그 우수한 유전자로 3세 계획도 만들어 볼까?”
갑자기 달달하게 흘러가는 둘의 분위기. 그러나 공처가인 김성한은 느끼하게 눈썹을 들썩였다.
“……of course.”
정말 개판 일보직전인 대저택의 상황. 김은아는 어른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한숨을 쉬었다.
“지쨔~ 다들 못 말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