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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화 (154/434)

제154화

퍼어엉-!

건물의 잔해를 흩뿌리며 화면을 뒤덮는 폭발. 대기실에 있던 스미레는 탄성을 터트렸다.

“이겼다! 시우 씨가 두 분 모두 탈락시켰어요!”

그야말로 엄청난 활약.

건물을 무너트리며 두 학생을 탈락시킨 이시우가 폭발을 뒤로 한 채 유유히 걸어 나오자. 어디선가 물기를 머금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흑, 지짜?”

목소리의 주인공은 7살이 되어버린 김은아. 김은아는 가상 포탈 밖으로 퇴출됐지만 원래의 나이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건 로렐라이의 힘이 단순히 마나로 상대에게 영향을 주는 게 아닌, ‘다른 힘’의 적용을 받기 때문.

72시간.

설령 가상포탈에서 벌어진 일이라도 3일의 시간이 지나지 않으면 상대의 나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덕분에 한바탕 곤욕을 치룬 건, 밖에 있던 스미레였다.

‘은아 씨. 엄청 풀이 죽으셨네…….’

스미레는 애잔한 눈으로 어려진 김은아를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김은아는 입을 삐죽거리고 있었다.

“다행이다아……. 우으으, 나 때무네 지는 줄 아랏서……. 흐유…….”

오르카의 뱃속에서 김은아가 글썽거리자. 스미레는 땀을 삐질 흘리며 김은아를 아니, 정확히는 오르카를 안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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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절대 아니에요! 지금 저희 팀이 이기고 있는 건, 저어어언~ 부! 은아 씨 덕분인데요?”

스미레가 동생들을 다뤘던 경험을 토대로 김은아를 위로 해주자.

“훌쩍……, 지짜?”

“네 진짜!”

스미레가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끄덕거리자. 김은아는 입을 꾹 다물더니 스미레를 흘겼다.

“생각해보니카……. 나 좀 멋있어! 전기도 뿜고, 변신도 하고!”

오르카 속에서 눈을 빛내는 김은아를 보며 스미레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꿈틀거렸다.

‘귀, 귀여워…….’

평소에는 자존심과 자기주장이 강한 김은아가 오늘은 품안에 들어오는 크기로 스미레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이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귀여움.

스미레가 정신을 못 차리고 헤실헤실 웃자. 어려진 김은아는 미간을 좁혔다.

찌릿!

의심의 눈빛과 함께 김은아의 주변에서 튀기는 정전기.

“……너 먼가 표정 이상한데.”

“에!?”

“나 진짜 도움 댄 거 마자!?”

“그럼요! 저희 파티는 은아씨가 없으면 돌아가질 않는 걸요?”

“……구래? 훔, 믿고 잇겠어.”

끄덕끄덕.

고개를 움직이는 김은아.

스미레는 그런 김은아를 살포시 소파에 놓아주며 물었다.

“근데, 인형…… 아니, 그! 오르카 속에 있으시면 답답하지 않으세요?”

“아냐 오히려 조아…… 푹신하고 따뜻해. 나 유성이 경기 여기서 볼래…….”

걱정스러워하는 스미레의 물음에도 김은아는 녹아내린 얼굴로 헤헤 웃고 있었다.

“흐흐~ 그럼 우리~ 다 같이 유성이 응원하쟈?”

포근한 표정하며 탱탱해 보이는 볼 살. 스미레가 홀린 듯 김은아에게 대답하자.

“네!”

빼꼼!

김은아는 오르카 안에서 삐죽- 손을 뻗었다.

“오예~! 유성이 이겨라!”

‘어려진. 은아 씨…… 최고야.’

그런 김은아를 보며 배시시 웃는 스미레. 로렐라이의 능력 덕분에 스미레는 17살에 불과한 나이로 무럭무럭 모성애를 꽃 피우는 중이었다.

*     *      *

한쪽 어깨에는 영국의 희망.

다른 한쪽 어깨에는 스승의 믿음.

로렐라이는 작은 체구에도 너무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바라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쉽지 않은 일.

파아아아- 찻-

로렐라이의 금빛 파도는.

마치 밤바다의 물결처럼 오싹한 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파도는 자리를 멈추고 달을 품은 강물처럼 아름다운 빛을 내뿜으며 고요하게 일렁거렸다,

어쩌면 몽환적이기도 풍경.

로렐라이는 자신도 모르게 등 뒤를 달리는 소름에 표정이 굳었다.

“전 운명을 믿지 않습니다.”

진심이었다.

로렐라이는 누구보다 많은 책을 읽으며 지식을 쌓았다. 누구보다 동화속의 운명적인 사랑을 좋아했지만. 로렐라이는 운명이라는 단어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을 본 순간. 비슷한 걸 느꼈습니다. 우리는 운명이 점지해준 적. 상대를 꺾기 전에는 만족하지 못하겠죠.”

로렐라의 말에 신유성이 천천히 고개를 들자. 로렐라이는 그 아름다운 미모에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본 어떤 상대보다 강한 적이 알 수 없는 무기로 자신을 뒤흔들고 있었다.

언제나 꿈꿔왔던 이상형의 왕자님.

그러나 지금 신유성에게 느껴지는 건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섬뜩한 공포였다.

탁! 사아아-!

대답 대신 자세를 잡고 정돈된 마나를 뿜어내는 신유성. 로렐라이는 밤하늘을 등진 채 조용히 읊조렸다.

“내 손에 비틀린 운명을.”

작은 읊조림은 빛을 몰아왔다.

반딧물처럼 작게 일렁이던 빛은 로렐라이의 오른손을 향해 모였고. 이내 하나의 창으로 변했다.

풀네임.

Lance of Longinus(롱기누스)

무기 중에서도 엄청나게 유명한 이 창은 헌터 아카데미에선 교과서에 기록될 만큼 유명했다.

물론 로렐라이가 그 원본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논외의 지식을 통해 같은 성질의 마나를 가공. 비슷한 형태로 투영 할 수 있었다.

이건 현역 헌터 중에서도 오직 마녀 아리스만 사용 할 수 있었던 능력. 그러나 시련을 통과한 로렐라이는 그걸 간단하게 사용해냈다.

지이이잉!!

아티팩트 중에는 능력을 백분 활용하기 위해 시동어를 가진 물건이 있다. 헌터들이 특성을 위해 외우는 영창과 같은 맥락.

롱기누스의 창은 레플리카라곤 해도 성창(聖槍)이라 불리며 탑이 아닌 고대급 ‘유물형’ 아티팩트였다.

“……성자의 피로써.”

그러니 예측할 수 없는 파괴력.

로렐라이의 목소리에 황금빛이었던 롱기누스의 창이 붉게 물들었다.

‘이게 바로 마나 투영…….’

공격에 대비해 몸 안 구석 마나를 보내며 준비를 하는 신유성. 비록 로렐라이의 능력은 처음 보는 형태였지만 신유성은 당황하지 않았다.

만능으로 불리는 마나 투영.

신유성이 보건데 로렐라이의 능력은 재료가 지식이며, 한계는 상상력이었다.

‘하지만 빈틈이 느껴져. 결국 저 공격은 가짜일 뿐이야.’

신유성이 진지한 얼굴로 자세를 잡는 순간.

“모두에게.”

영창을 외우며 로렐라이는 손바닥을 폈다. 손에서 멀어진 붉은색의 창은 생명을 가진 듯 정확하게 신유성의 옆구리를 조준했다.

유독 역사와 고증에 얽매이는 것이 유물형 아티팩트의 특징. 그러나 창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마나는 너무나도 위협적이었다.

“순교를 증명하라.”

사형선고와 같은 마지막 영창.

쐐애액!

붉은 성창이 심판을 위해 쏘아졌다. 목표가 된 신유성은 도망가지 않았다. 오히려 정면으로 맞섰다.

그리고 그건 목표물을 놓치지 않는 성창을 상대론 최고의 정답이었다.

하지만 창의 파괴력을 상쇄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

츠즈즈즈즛-!

초감각을 배운 신유성에게 감각을 활성화 하는 건 숨을 쉬는 일만큼 쉬웠다.

‘이거군.’

성창을 모방한 마나덩어리의 빈틈.

레플리카는 절대 원본의 모든 부분을 따라 할 순 없다. 설령 원본의 파괴력을 모방하더라도 진짜에는 닿지 못할 구조적 결함이 있다.

그 결함이 신유성에겐.

‘보인다.’

너무나 또렷이 보였다.

화악-!

창룡승천파(蒼龍昇天波)

신유성이 유성처럼 쏘아진 붉은 창에 손바닥을 적중시키자.

콰아아앙!!

손바닥에서 뿜어진 푸른 파동이 빛의 창을 감싸며 밀어냈다. 로렐라이가 마나를 투영해 특성 없이 스킬을 구현한다면, 신유성은 갈고 닦은 투신류를 이용해 스킬급 공격을 퍼부었다. 둘 모두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 헌터계의 이레귤러.

“……역시 이런 공격은. 통하지 않으시는군요.”

넘실거리는 파도 위에서 로렐라이는 땅을 향해 뛰어내렸다.

탓.

높은 위치에서도 너무나도 가벼운 착지. 주인을 내려놓은 금빛 파도는 신유성을 향해 거세게 몰아쳤다.

콰르으응!

로렐라이의 공격은 시계탑을 일순간 밤바다로 변해버렸다. 잠잠했던 바다가 돌연 거세지며 파도로 배를 집어삼키듯. 거대한 금빛 파도 앞에서 신유성의 크기는 보잘 것 없이 작아보였다.

그러나.

탓!

월영보법(月影步法)

일순간 몸이 사라진 신유성이 파도를 제치고 로렐라이의 앞에서 나타났다.

얼굴이 또렷이 보이는 둘의 거리.

로렐라이의 몸은 주먹에 닿자 잔상이 되어 사라졌다.

퍼엉!

그리고 로렐라이를 대신해 자리에 남아 있는 건, 짚 인형. 초라해보여도 짚 인형은 아리스가 직접 만든 호신용품이었다.

물론 횟수는 어디까지나 1회용.

“이, 이번 건 놀랐습니다. ……그렇게 가까이 오시다니…….”

두근. 두근.

가슴에서 느껴지는 심장박동.

로렐라이는 심각한 위기에도 오히려 붉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더 잘생겼어…….’

가슴이 뛴다는 건.

집중력이 흐트러진다는 이야기.

메르헨 속 로맨스에 푹 빠진 로렐라이에게 신유성의 미모는 치명적인 무기였다.

덕분에 로렐라이는 작전을 바꿨다. 원래 로렐라이가 강자들을 상대로 사용하는 전략은 소모전이었다.

다양한 마나투영 스킬을 통해 데미지를 쌓고, 김은아에게 사용한 ‘시간 되돌리기’ 같은 몇몇 결정타를 넣어 대전을 끝냈다.

그러나 상대는 너무 잘생겼다.

‘나에겐 영국의 기대가…… 아리스 님이…….’

로렐라이는 바보처럼 입술을 꾸물거렸다. 날카로웠던 집중력이 시시각각 흐트러지는 게 느껴졌다.

방금 가까이서 본 신유성의 모습이 결정타인 모양이었다.

고속이동으로 흩날리는 머리카락.

손을 파동으로 뻗어내며 평소와 달리 굳은 표정.

‘이건……. 위험해…….’

신유성의 본의 아닌 술수에 당한 로렐라이는 작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곤 평소처럼 냉정해진 표정으로 손바닥에 마나를 모았다.

‘이 힘은 사용하지 않고 이기고 싶었지만…….’

역시 그건 억지일 뿐이다.

눈앞의 남자를 이기려면 모든 수단을 사용해야한다. 설령 그게 ‘편린의 힘’이 되었더라도.

사아아!

로렐라이의 굳은 결심과 함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색의 빛.

논외의 존재와 교감하기 위해. 세상이 일순간 멈췄다.

물론 이 모든 건 로렐라이에게 닥친 일종의 착각.

탁. 타닥.

모닥불이 타는 소리와 함께.

- ……대가는 알고 계시겠죠?

로렐라이의 귓가에 청아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텔레파시와 같은 음성에 로렐라이는 익숙한 듯 대답했다.

“1분당. ……하루의 수명.”

곧 편린의 주인은 재미있다며 웃더니 다시금 물었다.

- 좋아요. 필요한 시간은?

“10분.”

로렐라이의 칼 같은 대답.

-그럼, 열흘이군요. 아무리 다른 사람보다 긴 수명을 받았어도. 그건 좀 아까운 시간이네요…….

상대는 잠깐 고민하더니 묵은 제안을 다시 꺼냈다.

- 아직도 생각은 바뀌지 않았나요? 전, 시간의 여신. 크로노아. 제 신도가 된다면 얼마든 제 힘을 빌려드릴 수 있는데요?

‘여신’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상.

크로노아는 탑에서도 7급 이상의, 아니 8급에 버금가는 논외의 존재. 물론 로렐라이에게 제안하는 건 본체의 파편에 불과했지만, 엄청난 힘을 가진 건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로렐라이는 크로노아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필요한 건 10분입니다.’

타닥타닥.

다시 모닥불이 타는 소리와 함께 크로노아는 입맛을 다셨다.

-그건 참…… 아쉽네요.

화아아악!

계약이 끝나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세상. 로렐라이는 뻗었던 손을 꽈악- 움켜쥐었다.

영국의 부흥을 위해 로렐라이는 논외의 존재에게 얻은 힘을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증명할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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