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화
김은아의 탈락.
이제 임무로는 따라 잡을 수 없는 점수. 파티장의 기본은 자신이 유리한 것과 불리한 것을 구분하고 냉정하게 작전을 내리는 일.
로렐라이는 결단을 내렸다.
“……안젤라. 지금 당장 발전기로 가주세요.”
안젤라는 로렐라이의 명령을 듣자마자 작전의 의미를 바로 알아챘다.
“알겠습니다!”
이번 김은아를 상대한 것처럼 안젤라가 세바스찬에게 합류하면 발전기를 향했을 1명을 노리는 게 가능했다. 거기다 로렐라이는 입구로 다가가 나머지 두 팀원의 합류를 막을 생각이었다.
‘아직 세바스찬에게 문제가 없는 걸 보아. 입구 쪽에서 시작하는 사람이 ……신유성. 그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
경기를 이기기 위해선 어떻게든 자신이 막아내야 한다.
스그그그-!
생각을 끝낸 로렐라이가 한쪽 손을 들자. 바닥에서 금빛 파도가 넘실거리며 일어났다.
‘……아리스 님과 날 믿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이겨야 해.’
로렐라이는 금빛 파도를 타고 어두워진 밤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 * *
시계탑의 발전소.
총 4층으로 발전기는 이루어진 건물의 옥상에 있었다. 신유성의 명령대로 옥상에 도착한 이시우.
‘저것만 파괴하면 끝이란 말이지.’
단순히 발전기를 파괴하는 게 목표라면 어려울 건 없었다.
‘하지만 그건 의미가 없지.’
[파티원 중 한 명이 퇴출됐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몰라도.
김은아가 탈락했다. 팀원의 인원수가 모자라게 되었으면 바로 되갚아주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시작은 이게 좋겠지.’
이시우는 포켓에서 바주카포 형태의 헌터용품을 꺼냈다.
그리곤 톡- 하고 자신의 미간 사이를 검지로 건드렸다.
사아아-
그와 동시에 이시우의 양쪽 눈에서 퍼져나가는 화려한 푸른빛. 그러자 마치 적외선 카메라를 킨 듯 일렁이는 형체가 보이더니. 곧 망원경으로 확대시킨 듯 시야가 뚜렷해졌다.
이게 바로 이시우가 새롭게 얻은 스킬 [투시].
‘……저기 숨어 있었네.’
이시우는 피식- 하고 웃었다.
옥상의 문 뒤에서 카드를 들고 있는 세바스 찬을 보니 모르는 척 들어 가주고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럴 순 없지.’
이시우는 바주카포처럼 생긴 헌터 용품을 들더니 발전소를 겨누고 발사했다.
슈우웅-! 쾅!
포탄이 엄청난 폭음을 내며 터져버리고 연기가 흩어지자. 세바스찬은 이시우를 바라보며 눈을 번뜩였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역시 멀쩡한 건가.’
연기가 흩어지고 배리어처럼 펼쳐진 카드가 잿더미로 변해 땅바닥으로 부서져 내렸다.
이건 세바스찬의 스킬인 카드 배리어로 일종의 실드였다.
하지만 이시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오히려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아 기다렸어? 왜? 날 잡으려고?”
“외람된 말이오나. 외부에서 당신의 평가를 모르시진 않을 텐데요?”
세바스찬의 뼈를 때리는 직구에 이시우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시우는 다른 파티원처럼 활약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세븐 넘버도 아니었으며, 시티가드의 특수부대 훈련을 받은 사실도 공개 되지 않았다.
김은아나 스미레는 물론 어떻게 보면 에이미보다도 가장 약하다고 평가되는 최약체 멤버.
“너희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난 신경 안 써.”
“좋은 마음가짐이군요.”
세바스찬의 칭찬에 이시우는 피식 웃더니 찬찬히 다시 한 번 지형지물을 살폈다.
통로가 하나인 4층의 구조는 어떻게든 세바스찬을 쓰러트리지 않으면 발전기로 갈 수조차 없었다.
‘물론. 내 손으로 쓰러트릴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이시우는 피식 웃더니 뒤를 돌아보며 달리기 시작했다.
“……추하군요. 적에게 등을 보이고 도망입니까? 적어도 정정당한 승부를 기대했습니다만!”
그러나 세바스찬은 이시우를 상회하는 속도로 따라왔다.
그저 달리기만 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세바스찬에게 잡히는 상황. 이시우는 그런데도 웃고 있었다.
‘일단 여기서 하나.’
건물의 구석을 향해 동전만한 장치를 던져 넣는 이시우.
“잡았다!”
어느새 뒤까지 다가온 세바스찬이 손을 뻗자. 이시우는 교복 위에 무언가를 둘렀다.
“그래~ 잡아라.”
파악! 치지지지직-!!
이시우가 두른 건, 다름 아닌 전류가 흐르는 망토.
“커거거걱!”
전기에 당한 세바스찬이 재빨리 손을 떼자. 이시우는 신발에 달린 버튼을 눌렀다.
사아앗-!
스피드 러너.
이시우가 차고 있는 운동화는 헌터용품 중 하나인 가속 신발이었다.
“이런!”
세바스찬은 다잡은 이시우를 놓치게 생긴 상황에 어떻게든 속도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타다다다닥!!
빨라도 너무 빠른 스피드 러너의 속도. 이시우는 엄청난 속도로 매섭게 복도를 치고 나가더니 코너를 돌게 되자. 다시 아까 전 동전만한 장치를 구석에 던져 넣었다.
탓! 툭!
‘번거롭게 건물의 기둥이 이렇게나 많다니.’
세바스찬의 추격 속에서 이시우는 3층으로 내려갔다.
이번에는 도주하는 중 통로에다가 트랩까지 설치해버렸다.
“크하아악!”
아니나 다를까, 자로 잰 듯 정확한 타이밍에 세바스찬의 비명이 들리더니. 세바스찬은 절그럭거리며 덫을 풀어내고 이제는 쩔뚝거리며 이시우에게 달려왔다.
“성스러운 전투에서! 이딴! 이, 따위 큭! 비겁한 짓을!”
이시우는 세바스찬의 외침을 무시하고 2층을 향해 달렸다.
팟, 파르르!
충전된 마나가 다 닳았는지 꺼져버리는 스피드 러너.
‘제법 비싼 건데도. 3분 이상은 어쩔 수 없나.’
4층을 제외한 모든 층은 이미 이시우가 작업을 완료해둔 상태였다. 사실 굳이 4층까지 올라가 작업을 한 것도 이시우가 완벽을 추구했기 때문이었다.
‘만일을 위해서.’
이번 전투에선 절대 일말의 가능성도 남기지 않겠다는 생각. 이시우는 이상한 기척에 다시 중지로 미간을 건드려 투시를 사용했다.
화아아악!
느껴진 기척은 2층이 아니었다.
기척의 정체는 이시우의 바로 밑인 1층. 안젤라는 그곳에서 독안에든 이시우를 잡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체크메이트! 이 건물에 들어온 이상 당신은 빠져 나갈 수 없습니다!”
위층에선 세바스찬이 목이 터져라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마저 생각했다는 듯 이시우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웃기고 있네. 출구가 얼마나 많은데.’
이시우는 2층 창문을 바라보았다.
아래까지 제법 높이가 높았지만 헌터가 다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이건 선물이다. 새끼들아.”
자신의 마나를 묻혀둔 손수건과 함께 무전기를 놓아두는 이시우.
타타탓! 쨍그랑!
이시우는 2층 창문을 깨고 아래를 향해 추락했다.
팟! 타닥!
그리곤 그림 같은 낙법과 함께 자세를 잡았다. 이런 기초 동작 정도는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낙인처럼 이시우의 몸 깊은 곳에 배어 있었다.
“그럼 어디…….”
이시우는 여유롭게 웃었다.
비록 부서진 유리조각 따위나 널브러져 있었지만 이곳은 바보들의 최후를 보기에 너무나도 안락한 장소였다.
“아, 아아 들리냐? 너무 아날로그 장치라 사용하는 법도 모르려나?”
이시우가 무전기를 쥐고 말을 하자. 10초즘 지났을 때 세바스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당신! 한국을 대표하는 헌터라는 사람이! 쥐새끼처럼 도망만 가는군요!
- 적어도, 대표답게 정정당당한 승부를…….
격양된 세바스찬의 목소리에 이시우는 쯧- 혀를 찼다.
“몰라.”
- 당신, 무슨…….
“난 그런 거 모른다고. 나에게 전투 놀이가 아니야. 모든 수단을 써서라도 이겨야 하는 전쟁이라고. 예를 들어…….”
이시우는 무전기를 쥔 채 미소를 지었다.
“무전기 옆의 기계 장치가 보여?”
- 스윽.
상대방이 무언가를 줍는 소리가 들렸다. 이시우는 싱긋 웃더니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건. 내가 만든 사제폭탄이야. 헌터 용품이 아니라서 대회에서 개수 제한도 없지. 난 말이야.”
철그럭-
이시우가 다시 바주카포를 장전했다. 아무리 헌터용품이라도 포탄 한 발에 건물을 무너트릴 파괴력 같은 건 없었다.
그러나 건물 안에 여러 개의 사제 폭탄이. 그것도 기둥을 위주로 깔려 있다면 이야기는 달랐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상대를 건물 째로 묻어버릴 수도 있어.”
슈우웅! 콰아아앙-!
포탄이 닿자 엄청난 폭발과 함께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건물. 이시우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다시 포켓에 바주카포를 집어넣었다.
[현재 스코어]
가온 아카데미 : 25P
시계탑 아카데미 : -5P
[상대 팀을 탈락시켜 10점을 얻습니다.]
[상대 팀을 탈락시켜 10점을 얻습니다.]
이시우에게 실수는 한 번이면 족했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의 망설임은 없었다. 폭발을 뒤로한 채 유유히 걸어 나오는 이시우의 머릿속은 어느 때보다 맑아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