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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화 (151/434)

제151화

김은아의 승리에 환호하는 신성일가의 분위기.

“이겼다! 은아가 이겼어요!”

오빠인 김준혁이 진심으로 기뻐해주고, 어머니인 김윤하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호호호- 웃었다.

“아니 대표 팀도 이길 정도면 우리 은아가 대체 얼마나 센 거야?”

적어도 오늘만큼은 김윤하도 신성그룹의 임원이 아닌, 한 아이의 엄마. 체면도 잊고 김윤하는 꺄르륵- 거리며 웃고 있었다.

신성그룹의 일가가 모두 지켜보고 있던 경기. 방송에는 안젤라의 대사가 잡히지 않은 게, 정말이지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조용히 속삭인 덕분에 방송에서 말이 검열된 안젤라와 달리 김은아는 그렇지 않았다.

안젤라를 도발하기 위한 낯부끄러운 외침이 적나라하게 방송을 타버린 상황.

“큼…….”

김석한은 인상까지 찡그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김석한은 그리움이 담긴 얼굴로 중얼거렸다.

“헌터라…….”

김석한이 본 김은아는 바보 같이 순진하지만 영특한 면이 있는 아이였다. 그런 김은아가 따른다는 건, 신유성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 물론 이해를 해도 자신의 손녀와 가까운 신유성이 싫은 건 어쩔 수 없었다.

‘도둑고양이 같은 녀석! 저런 얌전한 얼굴로…….’

김석한은 표정을 풀며 한숨을 쉬었다. 손녀를 빼앗긴 기분에 밉긴 하지만 신유성은 다름 아닌 김은아의 파티장이었다.

‘그래도……. 은아를 봐서라도 내가 신경을 써줘야겠군.’

그렇다고 김석한은 거창한 도움 같은 건 줄 생각이 없었다. 기껏해야 약간의 물질적인 지원 정도.

물론 김석한에게 그 ‘약간’의 범주는 일반인의 상식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     *      *

파짓! 파지짓!

온몸에 넘치는 힘.

전기의 힘으로 신체를 강화시킨 김은아는 새롭게 태어난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런 강한 힘을 가지고도 김은아는 안젤라처럼 방심하지 않았다.

“그럼 잘 가라.”

오히려 상황을 끝내기 위해 재빠르게 주먹을 뻗었다.

파앗!

남은 1%의 배리어 정도는 간단하게 부술 일격. 다시 한 번 김은아의 푸른 섬광이 안젤라를 꿰뚫었다.

[배리어가 0% 남았습니다!]

[잔여 데미지 100%]

[누적 데미지가 100%를 채워 포탈 밖으로 퇴출됩니다!]

그렇게 최후의 일격으로 안젤라의 탈락이 확정된 순간.

파앙! 파르르르르-!!!

엄청난 폭음과 함께 벽이 부서지더니. 수만 마리의 철새가 날아오는 것처럼 틈새에서 종이들이 펄럭이며 날아왔다.

“뭐야? 이 종이?”

당황한 김은아가 소리쳤지만 종이들은 안젤라를 향했다. 종이가 덕지덕지 빈틈없이 몸에 달라붙었지만 안젤라는 아무런 반항도 없었다.

오히려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영문 모를 말을 내뱉었다.

“나 때문에 ‘기회’를 사용하게 만들다니 이거…… 로렐라이 님께서 큰 실망을 하시겠네.”

그 말과 함께 안젤라의 모든 신체는 종이에 뒤덮였다.

[배리어가 20% 남았습니다!]

[잔여 배리어가 남아 ‘안젤라’ 학생의 탈락이 취소됩니다.]

………

[배리어가 50% 남았습니다!]

[배리어가 70% 남았습니다!]

종이에 가려져 오직 안젤라만이 볼 수 있는 홀로그램의 상황. 김은아는 직감적으로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콰앙!

시계탑의 2층에 해일과 같은 거대한 금빛 파도가 몰아쳤다.

쿠궁!

벽 전체가 파도에 무너지고.

파도의 여파로 시계탑의 2층 전체가 휘말렸다.

콰아앙! 펑!

뻥- 뚫려버린 건물 벽.

푸른색의 달빛이 새어 들어오는 와중에 아름다운 금빛 물결을 타고 시계탑의 오라클이 강림했다.

“……역시 한국인가요. 정말 대단하군요.”

로렐라이 코넷.

마녀의 제자이자 영국의 모든 기대를 짊어진 단 하나의 희망.

파스스스-

로렐라이의 손짓에 안젤라에게 붙은 종이들이 풍화되어 사라졌다.

“반면 ……안젤라. 당신에겐 너무 실망했습니다.”

로렐라이가 담담한 표정으로 조곤조곤하 말을 함에도 안젤라는 식은땀까지 흘리며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로렐라이님.”

로렐라이의 담담했던 눈초리가 조금 가늘어졌다. 어지간해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로렐라이도 기분이 몹시 불편해졌다는 증거.

“……전기 특성을 대비해서 아티팩트까지 준비했는데도. 전투에서 패배하시다니. 변명의 여지가 없군요.”

고요하면서도 칼 같이 예리한 로렐라이의 추궁. 분명히 견제했다고 생각한 김은아의 활약과 안젤라의 패배 때문에 영국 팀은 너무 많은 걸 잃었다.

‘……골렘 연성식을 포기했으니. -5점이 처리되고, 얻어야 할 포인트를 못 얻었으니 도합 10점. 골렘이 없으니 추후 이어질 임무도 포기해야 해.’

한 번의 패배로 경기의 시작이 너무 망가져버렸다. 심지어 제일 큰 문제는 안젤라가 ‘기회’라고 불렀던 로렐라이의 스킬 유무였다.

[시간의 책갈피]

로렐라이의 특성인 [시간의 여신]이 가진 힘 중 하나. 로렐라이는 1주일에 단 1회. 누군가의 시간을 하루 되돌려 신체를 회복시킬 수 있었다. 이건 최악의 상황에 사용하기 위해 로렐라이가 아껴둔 스킬.

하지만 로렐라이는 그 스킬을 경기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안젤라를 구하는 데 쓰고 말았다.

로렐라이의 작전과 예측이 모두 박살난 것이다.

팟!- 파지직!

김은아는 2대1인 상황에도 꿇리지 않고 몸에 전기를 피워내며 기선제압을 했다.

“……2대1이라도 내가 쉽게 져줄 거 같아?”

“지금의 당신이라면 상대하는 게 힘들겠죠. 거기다…… 팀원들이 언제 오실지도 모르니까요.”

로렐라이의 말에 김은아는 자세를 잡았다. 김은아는 누구를 먼저 어떻게 공격할지 치밀히 계산하고 있었다. 소극적인 로렐라이의 태도는 자신에게 압도되었다는 증거.

김은아가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로렐라이는 영문 모를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10년 전의 당신이라면 어떨까요?”

말이 끝나자마자 앞을 향해 손을 내미는 로렐라이.

화악-!

금빛 물결이 넘실거리며 쏘아지자.

세상의 시간이 멈췄다. 아니, 정확히는 오직 김은아의 시간이 멈췄다.

“어?”

당황한 김은아의 단말마.

뇌룡강신을 사용한 김은아를 상대로 로렐라이가 속도를 앞서 나간다는 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로렐라이는 이미 김은아의 배에 손을 얹고 있었다.

언제, 어떻게?

김은아의 머릿속에는 의문만이 가능했다.

“시간을……, 멈췄어?”

김은아의 말은 틀렸다.

아무리 로렐라이라도 시간 그 자체를 멈출 순 없었다. 세계를 멈출 정도의 규모는 특성의 영역이 아닌, 마법의 영역이었으니까. 하지만 ‘상대의 시간’을 정확히는 ‘감각’을 망가트릴 순 있었다.

‘……시간은 상대적.’

예를 들어 대상을 ‘김은아’에 한정되어 체감되는 시간이 멈춘 듯 느끼게 하는 것 정도는. 로렐라이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당신은 이유조차 알 수 없겠지.’

로렐라이는 특성인 [시간의 여신]을 이용해 김은아에게 정체불명의 마나를 불어넣었다.

“돌아가라.”

사아아!!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금빛이 손바닥에서 퍼져 나왔다.

“윽!”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는 김은아.

스으으-

빛이 사라지고 주변의 풍경이 드러나자. 김은아는 무언가 이상함을 직감했다.

오밀조밀 작아진 자신의 손.

“어, 어랴아!?”

커져버린 로렐라이와 주변의 건물들. 김은아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이게 머야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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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렐라이의 스킬.

‘시간 역행’의 힘.

김은아는 지금부터 10년 전 7살의 나이로 어려졌다. 너무 어린 탓에 옷은 헐렁했고, 키는 로렐라이보다도 작아진 상태.

“야! 씨이! 쥬글래! 날! 어떠케 한 거야!”

어려진 김은아가 투닥거리며- 로렐라이에게 덤벼들자. 안젤라는 김은아의 뒷덜미를 덥썩- 한손으로 잡고 들어버렸다.

대롱- 대롱-

“야! 주글래! 이거 나! 너 지짜! 이거 안나아!?”

김은아는 마치 진자운동을 하는 시계추처럼 이리저리 격하게 버둥거렸다. 하지만 7살의 신체로 김은아가 아무리 반항을 해도 안젤라를 뿌리칠 순 없었다.

휘휘-

오히려 안젤라가 김은아를 잡고 이리저리 털어버리자.

“어지러어어…….”

어려진 김은아는 머리를 데굴데굴 흔들더니 풀썩 자리에 쓰러졌다. 얼마나 덩치가 작아졌는지 이불처럼 김은아에게 덮어진 교복.

탁-

안젤라는 김은아의 포켓을 뺏어버렸다.

[정말 기권하시겠습니까?]

[/아니오]

“안대에~ 돌려죠!”

교복에 파묻힌 김은아가 허우적거렸지만 안젤라는 돌려주지 않았다.

“그럼 기권 처리 시키겠습니다.”

삑!

“안대에에~~ 사라진다!”

안젤라가 버튼을 눌러버리자 푸른빛의 입자 쪼가리로 변해 사라지는 김은아.

[현재 스코어]

가온 아카데미 : 5P

시계탑 아카데미 : -15P

[상대 팀을 탈락시켜 10점을 얻습니다.]

[현재 스코어]

가온 아카데미 : 5P

시계탑 아카데미 : -5P

시계탑은 김은아의 탈락으로 10점을 얻었지만 골렘 연성식을 비롯해, 이어지는 메인 임무를 실패했기 때문인지 오히려 점수가 더 낮았다.

만약 가온 아카데미가 무난하게 임무를 해결한다면 한 명 더 탈락시키더라도 점수를 따라잡기 어려운 상황. 로렐라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김은아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었다.

‘……안젤라가 패배한 건, 제 계산 밖의 일. 이렇게 되면 전투로 승부수를 던질 수밖에 없겠죠.’

불리해진 상황을 뒤엎기 위해 로렐라이는 신유성과의 정면승부라는 파격적인 선택지를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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