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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화 (150/434)

제150화

운동선수들에게 레슬링의 실전성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증명 되어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헌터는 레슬링은 물론 신체의 단련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경우가 많았다.

신체를 연마할 시간에 차라리 마나 연공법에 투자를 하고, 특성을 연습하는 시간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이야기. 그리고 그건 틀린 말이 아니었다.

-괴수 대응 무기 사용 비율-

총 72%

주문 제작 헌터용품 10%

검 2%

활 0.15%

창 5%

등등등…

시티가드들만 하더라도 총을 드는 게 일반적인 상황. 헌터용품과 특성에 의지하는 건 쉽지만 신체와 무술을 단련하는 건 너무나도 어렵고. 시간이 많이 들어간다.

그런데도 안젤라는 레슬링을 연습했다. 자신이 가진 ‘놓치지 않는 손’에 무엇보다 어울리는 무술이니까.

비록 괴수들에게는 사용할 수 없지만 고도로 체계화된 그래플링은 대인전만큼은 최강이었다.

손으로 붙잡기만 한다면 안젤라는 어떤 헌터든 빌런이든 박살을 낼 자신이 있었다.

‘……그런 내 손에 붙잡히다니.’

콰아아앙-!

안젤라의 수플렉스가 김은아에게 작렬했다.

[배리어가 52% 남았습니다!]

[잔여 데미지 25%]

[누적 데미지가 100%를 채울 시 포탈 밖으로 퇴출됩니다!]

김은아는 자신의 홀로그램을 보지 못했다. 이미 김은아의 눈앞은 수플렉스의 충격으로 하얗게 변해 있었다.

퉁!

김은아의 몸이 힘없이 바닥에서 튀겼다. 낙법을 펼치지 못하고 등으로 착지한 탓에 몸 전체를 꿰뚫는 아찔한 고통이 밀려왔다.

“컥!”

김은아의 표정이 굳었다.

평소의 활발하고 여유로운 김은아가 아니었다. 김은아는 지금 안젤라에게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너! 컥, 크흑 너!”

가상포탈에선 통각 센서를 절반만 적용 시키는데도 이 정도 고통이라니. 김은아는 괴로운 얼굴로 숨을 뱉어냈다.

찔끔 눈물을 흘리면서도 죽일 듯 노려보는 김은아의 표정에 안젤라는 만족하고 있었다.

스으윽-

안젤라가 뱀처럼 김은아의 몸에 엉겨 붙었다. 그리곤 방송에 잡히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맞아. 그 표정…… 부서질 것 같으면서도. 자존심을 세우는 그, 그거……. 난 그걸 원했어.”

착 달라붙은 안젤라가 만족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김은아는 이를 꽉 깨물며 주먹을 휘둘렀다.

“닥쳐!”

흥분했지만 제법 정돈된 동작.

날카롭게 질러진 김은아의 주먹을 안젤라는 간단하게 손바닥으로 막아냈다.

팍!

“어라…… 제법이네?”

이건 의외라는 표정.

안젤라는 김은아의 마나만 봉인하면 간단하게 요리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 잡았다고 생각한 물고기의 반항이 제법 거칠었다.

꽈아악-!

안젤라는 김은아의 주먹을 손바닥으로 붙잡으며 싱긋 웃었다.

“주먹질은…… 예상외인데? 부잣집 아가씨 주제에 나랑 찐득한 싸움이 하고 싶은 거야?”

“윽, 큭!”

안젤라의 악력이 얼마나 센지 김은아는 주먹이 으스러지는 기분이 들었다.

꾸욱!

안젤라는 김은아의 등에 올라타더니 양손으로 어깨를 눌러 간단하게 깔아뭉갰다.

“예쁜이. 저기 보여?”

안젤라는 김은아의 머리를 돌려 2층 광장을 턱 끝으로 가리켰다.

“큭!”

반항적인 눈으로 광장을 바라보는 김은아. 2층 광장은 거짓말처럼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자신을 따르겠다던 학생도.

뒤늦게 같이 싸우겠다며 마음을 바꾼 학생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도망친 것이다.

“저, 건…….”

힘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김은아. 안젤라는 김은아의 목에 팔을 둘러 초크를 걸었다.

안젤라는 김은아가 단번에 기절하지 않도록 아주 조금씩 힘을 넣었다. 사실 탈락시킬 마음이었다면 첫 수플렉스에서 결착을 지었어야 했지만 안젤라의 목표는 그게 아니었다.

안젤라가 원하는 건 김은아의 완전한 절망.

“컥! 컥큭!”

안젤라는 숨이 막혀 버둥거리는 김은아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왠지 모르겠어? 쟤들은 AI잖아. 데이터에 불과해도 살기 위해서 누가 이길지, 판단한 거겠지? 네가 진다는 걸 말이야.”

“난, 큭! 안, 져어……. 저, 얼대로오…….”

안젤라는 가슴으로 김은아의 등을 밀어내며 팔뚝으로 경동맥을 조였다. 일명 리어 네이키드 초크. 다리까지 휘감은 안젤라의 안정된 자세는 정석 그 자체였다.

단 5초면 정신을 잃게 만들 수 있었지만 안젤라는 김은아가 정신을 잃지 않을 정도로 압박했다.

“학, 윽!”

공기가 부족해지며 아찔해지는 정신. 힘이 빠진 김은아의 반항이 점점 멈추자. 안젤라는 씨익- 웃었다.

“그 표정 알고 있지. 편해지고 싶은 거잖아? 정말 익숙해. 다들 탭을 치기 전엔 그 표정을 짓거든.”

김은아는 다시 안젤라의 초크를 떼어 놓으려고 버둥거렸다. 산소가 부족해질수록 흐릿해지는 정신.

김은아는 분함에 뚝- 뚝- 눈물을 흘렸다.

‘난 왜…….’

생각조차 나지 않는 아주 예전.

김석한을 필두로 한 신성일가는 김은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넌 자랑스러운 신성그룹의 후계자다. 가질 수 있는 건 모든 지 가질 수 있단다.]

분명 그렇다고 믿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실상은 아니었다. 가족과의 오붓한 시간을 원했던 어린 시절에도. 오빠인 김준혁이 정신을 잃게 된 순간에도.

그리고 어느 때보다 승리를 원했다. 지금 이 순간까지.

‘내가 정말로 원한 건……. 단 하나도…….’

흐릿해진 정신을 부여잡는 김은아의 모습에 안젤라는 팔뚝의 힘을 느슨하게 주었다.

“괴롭니? 그럼 내가 묻는 것에 대답해주지 않을래? 원하는 대답이라면 ……한 번쯤은 풀어 줄지도 모르는데?”

‘대, ……답?’

바보처럼 멍해진 눈의 김은아.

안젤라는 지금의 상황이 재밌는지 싱긋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나, 네가…… 왜 그 파티에 남아 있는 지? 궁금했거든. 너, 딱히 헌터를 하고 싶은 게 아니잖아?”

김은아는 안젤라의 말을 부정하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초크를 뿌리치며 아니라고 주먹을 휘두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반항하려할수록 더욱 강하게 초크를 조여 올 뿐, 김은아를 붙잡은 안젤라의 완벽한 우위였다.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어. 넌 우리와 같은 부류가 아니야. 혹시, 부잣집 아가씨의 취미 같은 거야? 아니면 아! 알겠다. 혹시…… 그 예쁘장한 남자애?”

큭큭큭- 웃고 있는 안젤라의 모습을 보며 김은아는 생각했다.

‘내가 파티에 남은 건…….’

파티원과 있을 때 즐겁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파티에 있는 동안은 신성그룹의 후계자가 아닌, 동료이자 파티원인 김은아로서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김은아가 승리하고 싶은 건. 파티원 모두에게 자신의 가치를. 파티원으로서의 활약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파티장인 신유성이 있었다.

‘……이제 알겠다.’

김은아가 이기고 싶었던 건, 어느 때보다 승리를 원했던 이유는 신유성을 위해서였다.

이건 신유성이 원하는 승리였고.

이유는 모르지만 김은아는 그 승리를 선물하고 싶었다.

“………다.”

느슨해진 초크 덕분에 김은아의 입에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내용을 듣고 싶었던 안젤라는 흥미로운 얼굴로 조금 더 힘을 풀었다.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다시 말해줄래?”

“……자 ………고.”

김은아가 들을 수 없이 작게 중얼거리자. 안젤라는 호기심 때문인지 조금 더 초크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응? ……뭐라고?”

그리고 그 순간.

휘익!

김은아가 몸을 틀며 팔꿈치로 안젤라의 갈비를 때렸다.

정권 지르기의 기본은 팔을 당기는 것. 김은아는 신유성의 아래에서 수천 번 정권 지르기를 연습했기에 팔꿈치의 파괴력이 엄청났다.

“컥!”

갈비를 맞은 안젤라가 숨을 토해내자. 김은아는 풀려버린 초크 사이로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야, 네 말대로. 예쁘장한 남자 때문에 남았다. 그래서 어쩔래?”

파앗! 파지직!

숨을 돌린 김은아는 안젤라를 내려다보며 전기를 피워 올렸다. 안젤라의 손에서 벗어난 이상. 김은아의 마나 사용은 자유로워졌다.

이젠 김은아가 S+급으로 측정된 특성의 잠재력을 보여줄 차례.

“이년이 귀여워 해줬더니!”

안젤라가 스읍- 입가를 닦으며 죽일 듯 소리 치자.

“……그건 귀여워 해주는 게 아니라 악취미야. 변태 년아.”

김은아는 차가운 얼굴로 번쩍 손을 들었다.

“오르카!”

쿠릉! 쿠루룽-!

뇌룡의 보주로 새롭게 얻은 스킬.

뇌룡강신(雷龍强身)

하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건, 용이 아닌 전기의 형상을 한 범고래였다.

이미지를 상상하기 편한 쪽이 구현이 쉽기 때문이었다.

파앗! 치지직! 치직!

전기로 만들어진 범고래의 형상이 하늘에서 낙하를 시작했다. 이번에 범고래가 도착한 곳은 김은아의 몸 그 자체였다.

파앙! 파지지짓!

매서운 소리를 내며 요동치는 김은아의 전기. 안젤라는 당혹감을 숨기며 오히려 강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전기에 대비를 안 했을 것 같아? 교복 안에 뭘 입은 줄 알고 있냔 말이야!”

두툼한 교복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안젤라는 아티팩트인 전기저항 슈트를 입은 상태였다.

전기저항 슈트는 김은아를 노린 완벽한 상성. 그러나 김은아는 절망하지 않았다. 오늘 김은아가 안젤라에게 선사할 공격은 전기가 아니었다.

‘……유성이가 가르쳐준 대로.’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강하게.

마나로 이루어진 전기가 몸을 지나치며 김은아의 신체를 강화시켰다. 특성이 전기인 이상 속도에 한해서 김은아의 공격은 한계를 몰랐다.

자신이 컨트롤 할 수만 있다면 무궁무진한 가능성. 이게 바로 김은아의 특성이 잠재력 S+ 등급을 받은 이유였다.

파즛! 파즈즈즉!

푸른빛의 전기를 튀기며.

“야.”

김은아가 차가운 목소리로 안젤라를 불렀다. 특성의 반응으로 하얗게 물든 김은아의 머리카락은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한 방에 끝낸다.’

파즛! 파지짓!

김은아의 의지에 반응하듯 주변을 향해 뻗치는 푸른빛의 전기.

“어디 이거도 한번 막아봐.”

파앗!

일순간 김은아가 사라졌다.

대신 유성처럼 푸른색 꼬리만이 길게 잔상을 남겼다.

“그래! 너 같은 건! 붙잡기만 하면!”

안젤라는 김은아를 잡기 위해 악을 쓰며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전기로 신체의 반응을 고조시킨 김은아에겐 너무 느렸다.

김은아는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특성의 힘을 빌리고, 아직은 모자라지만 자신이 보고 있는 건, 어쩌면 신유성과 같은 풍경.

같은 길을 걷겠다고 맹세하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게 되었다.

“넌 너무 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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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잔상이 안젤라를 지나쳤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전투가 벌어졌는지 알 수 있는 건 헌터 중에서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무, 슨…….”

무언가를 느낀 안젤라가 고개를 돌렸다.

[배리어가 1% 남았습니다!]

[잔여 데미지 99%]

[누적 데미지가 100%를 채울 시 포탈 밖으로 퇴출됩니다!]

하지만 늦었다.

김은아의 주먹은 이미 안젤라를 꿰뚫은 이후였다.

쿵!

몸을 꿰뚫린 안젤라가 무릎을 꿇자. 김은아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안젤라를 내려다보았다.

“한 방에는 좀 모자랐나.”

전기 특성을 가진 김은아에게 자신의 장기인 체술로 당했다는 굴욕. 안젤라는 표정은 일그러트렸다.

“언제 이런 체술을…….”

그러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전기의 속력을 더한 김은아의 공격은 너무나 깔끔했다. 신유성의 하드한 스케줄 속에서 배워낸 완벽한 주먹질이 오늘 빛을 발한 것이다.

“네가 졌어. 내가 이겼고.”

김은아는 평소처럼 팔짱을 낀 채 흐흠- 콧김을 내뿜었다. 가온의 세븐넘버이자, 신유성의 파티원으로서 당당하게 실력을 증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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