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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화 (143/434)

제143화

품격 있는 목조 건물.

신유성이 세바스 찬과 복도를 걷자. 마주친 시계탑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하나 둘 눈을 흘겼다.

한 남학생은 신유성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뜨고. 한 여학생은 시선이 마주치자 홱- 고개를 피했다.

말은 하지 않지만 시선에 서려있는 미묘한 적대감. 방금 전 보여준 거창한 환영식과 달리 시계탑의 학생들은 신유성을 반기고 있지 않았다.

“이거…… 참 곤란하군요.”

안내를 맡았던 세바스찬은 결국 멋쩍게 웃더니 신유성에게 씁쓸한 어투로 말했다.

“……귀빈들을 모시고 이런 대접이라니. 제가 사죄드리겠습니다.”

신유성은 세바스찬의 말에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학생들은 제 각각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그 감정 중 친근함은 없었다.

‘미움 받고 있군.’

신유성에겐 상관없는 일.

오히려 신경을 쓰는 건 안내를 맡게 된 세바스찬 쪽이었다.

“그래도……. 조금은 이해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유성 씨의 파티를 견제하는 건, 당신이 두렵기 때문이거든요.”

“……두려움?”

두렵다니 신유성에겐 영문을 모를 이야기. 신유성이 의문이라는 얼굴로 되묻자. 세바스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두려움입니다. 유성 씨는 로렐라이님과 승부를 하기 위해 오신 도전자. ……거기다 공식 대회에서 최초로 아델라 님을 꺾으신 초신성이시니까요.”

신유성을 바라보던 세바스찬의 눈에 약간의 존경이 깃들었다. 영국의 학생들에게도 무패를 자랑한 아델라의 실력은 전설이었다.

“모두가 긴장을 하고 두려워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로렐라이님은…… 저희 영국인들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나긋하게 말을 하던 세바스찬의 분위기가 로렐라이의 이름을 꺼내자 일순간 바뀌었다.

너무나도 진지한 세바스찬의 목소리. 세바스찬은 중앙계단에 걸린 거대한 액자를 가리켰다.

시계탑의 초대 교장. 그레폰.

영국의 최강자인 마녀 아리스.

세 번째로 액자에 걸린 주인공은 다름 아닌 로렐라이였다.

시계탑에는 현직 교장인 벨로체의 액자는 없었지만. 시련을 통과한 아리스와 로렐라이의 액자는 걸려 있었다.

“부끄러운 말씀입니다만. 저희 영국에서 남긴 탑의 기록들은. 대부분 시계탑의 시련을 최초로 통과한 아리스님의 것…….”

세바스찬은 신유성을 보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두 번째로 시련을 통과한 로렐라이 님에게 걸린 영국의 기대는 감히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신유성은 세바스찬의 말을 듣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중앙 계단에서 올라오던 시계탑의 학생은 신유성을 보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느껴지는 어렴풋한 두려움.

신유성은 계단을 내려다보며 세바스찬에게 말했다.

“제가 그 기대를 꺾을까봐. 두렵다는 말이시군요.”

신유성의 담담한 직구에 세바스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타국에도 들려올 만큼 유성 씨의 활약은 대단하니까요.”

영국인들의 기대가 그 정도라면 파티원인 세바스찬이 로렐라이에게 가지는 기대는 더더욱 강할 터였다.

“하지만. 당신은 저분들처럼 절 미워하지 않으시군요?”

그렇지만 세바스찬은 그들과 달리 너무나 친절했다. 두려움은커녕 미묘한 감정조차 없어 보였다. 고요한 눈에서 불타는 건 오직 승리 할 수 있다는 신념.

신유성은 간단하게 세바스찬이 자신과 동류라는 걸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건 세바스찬도 마찬가지.

“그건…….”

세바스찬은 입가에 퍼지는 즐거움을 억누르더니. 너무나도 온화한 표정으로 신유성에게 웃어주었다.

“로렐라이 님이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상대가 누구든 그분의 승리를 믿습니다. 그러니 두려워 할 필요도, 신사답지 않게 어설픈 가시를 세울 필요도 없죠.”

세바스찬은 상대로서 신유성의 강함은 인정했지만. 그럼에도 로렐라이의 승리를 믿고 있었다.

겨우 1학년의 나이에 시계탑의 ‘시련’을 통과하고 오라클이 된 학생.

심지어 6급 던전의 공략까지 생각해본다면 로렐라이는 신유성의 활약에 비견되는 상대였다.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받다니.’

하지만 신유성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액자 속 로렐라이의 사진에 고정시킨 신유성.

‘역시 마녀님의 제자인가.’

모든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머릿속이 분주함에도 신유성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강한 상대를 만나 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빠르게 가슴이 뛰고 있었다.

“정말 기대되네요.”

그렇게 말을 하며 신유성의 입가에 여유로운 웃음이 떠오르자. 마찬가지로 세바스찬도 웃었다.

“……역시 유성 씨는 남다르시군요. 로렐라이님을 상대로 이런 반응을 보이신 분은 처음입니다. 그럼.”

세바스찬은 간단하게 목례를 한 뒤 다시 신유성을 기숙사로 인도했다.

아카데미의 복도를 걷는 와중에도 신유성은 여전히 로렐라이에 대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

‘……시계탑의 시련이라는 건. 결국 내가 통과한 시간의 방과 비슷한 종류의 퀘스트겠지.’

이론이 뛰어난 스미레.

가온의 교수인 소해정.

로렐라이의 충신으로 보이는 세바스찬에 이르기까지. 신유성을 향해 수많은 사람들이 ‘시계탑의 시련’을 강조를 했다.

들려주는 건 시계탑의 시련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대단한 퀘스트며, 통과한 사람은 아직까지 2명밖에 없다는 이야기.

하지만 신유성은 그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은 사실이 있었다.

‘하지만 난 이미…….’

탑의 히든 스테이지.

‘시간의 방.’

시계탑의 학생이라면 누구나 도전 할 수 있는 시계탑의 시련과 달리 특정한 조건을 깨야만 탑에서 도전 할 수 있는 상격의 퀘스트.

‘그 이상의 퀘스트를 통과했어.’

신유성은 17살이라는 역사상 최연소의 나이로 탑의 히든 스테이지 중 하나를 깨버렸다.

심지어 신유성은 그 보상으로 특성의 강화를 이루어냈다.

이제 신유성이 가지고 있는 특성은 [집중력 강화]가 아닌 [초감각 각성]

포켓으로 확인했지만 등급조차 분류가 되지 않았다.

‘초감각 각성은 지금까지 내가 해낸 수련과 시간의 방을 통해 얻어낸 인류 최초의 특성.’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기에.

신유성의 특성은 상대에게 분석 될 수 없었고, 단점이나 파훼법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번 경기는 나와 로렐라이의 승부가 아니야.’

자만이 아니었다.

신유성은 최강의 전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언제나 전력을 다했다. 지금의 판단은 끝없는 생각의 결과.

지금까지 들었던 로렐라이의 [시간의 관리인] 특성이 사실이라면 신유성에게 필요한 건, 상대의 분석이 아닌 자신이 가진 [초감각 각성]의 활용이었다.

‘남은 시간은. 3일. ……충분하군.’

신유성은 영국에 있는 동안.

자신이 가진 발톱을 날카롭게 다듬을 생각이었다.

*     *      *

김은아와 에이미.

둘은 실력보다도 다른 의미로 시계탑에서 유명했다.

김은아는 한국 제일의 재벌 그룹이라는 신성의 후계자.

공중파에서 인터넷까지 온갖 방송에서 활약을 펼치는 에이미.

아무리 영국이지만 둘의 소문은 모르는 게 이상했다.

견제를 하는지 못 마땅한 눈초리의 여학생도 있었고, 일부러 더욱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몇몇 남학생이 관심을 가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쟤들인가 보네.”

“근데 뒤에 있는 사람…….”

하지만 남학생들은 그저 바라만 볼뿐, 섣불리 김은아와 에이미에게 다가오진 못했다.

‘수작 걸면 죽인다.’

둘을 안내하며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안젤라 때문이었다. 덕분에 평소라면 모르는 사이에도 말을 걸어 능글맞게 굴었을 남학생들도 좀처럼 다가오지 못했다.

안젤라는 남자에게 가차가 없었으니까.

“은아 양? 나중에 학생회를 통해서 포켓으로 교내 지도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혹시~ 불편하신 점은 있으신가요? 만약 있으시면 제가 전부 해결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공포로 여기는 안젤라도 김은아에겐 너무도 친절했다. 이렇게까지 안젤라가 상냥하게 굴어주는 상대는 로렐라이 정도.

손님이라고 모두 상냥하게 대해주는 건 절대 아니었다.

“나? ……그냥 뭐 괜찮던데?”

“정말이십니까? 그거 참, 다행이네요! 혹시나 시계탑의 시설이 불편하실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거보다 샤워실은?”

“여학생들이 이용하는 샤워실은 조금 더 걸어가셔야 합니다. 남학생들이 사용하는 시설과 정반대에 설치하느라. 거리가 좀 있답니다.”

“그래?”

무감한 김은아와 상냥한 안젤라.

김은아가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에이미는 슬쩍 안젤라에게 눈을 흘겼다.

“저, 저기…… 이제…… 우리끼리 갈 수 있을 거 같은데?”

누구에게나 마음을 여는 에이미가 어쩐 일인지 안젤라를 불편해하는 모습. 안젤라는 그런 에이미에게도 상냥하게 웃어주었다.

“아뇨. 귀빈 분들을 혼자 보내드릴 순 없죠. 교장 선생님의 부탁이시니 모쪼록 양해를…….”

“넌 뭘 데려다주겠다는데 그러냐.”

김은아가 한심하다는 듯 에이미를 바라보자. 안젤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전 상대 파티원이니까요. 에이미 씨가 부담스러우신 것도 이해가 갑니다.”

“아, 아니 은아야아…… 그게 아니라아…….”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끝을 흐리는 에이미. 안젤라는 그러거나 말거나 김은아의 옆에 다가가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은아 양은 피부가 참 좋으시군요. 무척 하얗고 티끌 하나 없는…….”

“어? 그, 그래?”

햇빛을 싫어해 경호원들이 양산까지 지참하는 김은아. 거기다 어머니인 김윤하의 적극 주장으로 에스테틱까지가서 피부 관리를 받고 있으니 김윤하가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뭐, 관리를 좀 받긴 한데…….”

갑작스런 칭찬에 김은아가 멋쩍어하자. 안젤라는 오히려 더 칭찬을 퍼부었다.

“몸의 곡선도 얼마나 유려하신지. 좀 전…… 운동을 하시는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뭐, 좀……, 그건 그렇지?”

점점 안젤라의 칭찬에 넘어가는 김은아. 이제 안젤라는 김은아의 바로 옆까지 다가왔다.

“그래도…… 격한 운동에 경기를 앞두고 근육이 뭉치시기라도 할까봐. 무척 걱정이네요.”

스윽.

자연스럽게 김은아의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손가락을 이용해 기분 좋게 꾸욱하고- 어깨를 눌러주는 안젤라.

“혹시, 제게 안마를 받으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그저 어깨나 주무르는 정도의 실력입니다만. 몹시 시원하실 텐데…….”

김은아를 바라보는 안젤라의 눈빛에는 꿀이 뚝뚝 떨어졌다. 김은아는 갑작스런 스킨십에 당황했지만 상대가 여자라는 점에 이미 가드가 내려간 상태. 오히려 놀란 건 에이미 쪽 이었다.

‘으, 은아가…… 위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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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는 안젤라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는 모양.

“아! 저기 샤워실 보인다! 이제 우리끼리 가도 되겠다! 그치 은아야?”

에이미가 샤워실을 가리키며 화제를 돌리자. 안젤라는 오히려 잘됐다는 얼굴로 음흉하게 웃었다.

“아, 그럼…… 같이 들어가실까요? 마침 저도 몸을 씻으려던 참이었습니다.”

“뭐!? 안 돼! 절대 안 돼!”

안젤라가 샤워실로 들어온다는 이야기에 팔짝 팔짝 뛰며 반대하는 에이미.

“너 진짜 오늘 왜 그러냐? 같이 씻을 수도 있지. 치사하게 상대팀이라고 그래?”

김은아가 그 모습에 쯧- 하고 혀를 차자. 에이미는 억울함이 몰려왔다.

“진짜, 은아 바보! 그런 거 아니야! 안젤라는…….”

에이미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긴장한 얼굴로 안젤라를 바라보았다. 에이미를 바라보며 마냥 웃고 있는 안젤라. 에이미는 시선을 돌리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헤, 헤헤…… 그게 그러니까……, 아! 맞다! 안젤라가 있으면 작전 회의를 못 하잖아? 꼭 당장 말해야 하는 급한 작전이야!”

다급하게 생각해낸 에이미의 변명.

김은아는 그것도 그러네- 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쩔 수 없네.”

안젤라는 아쉽다는 듯- 칫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안젤라는 다시 예의를 갖추며 정중히 둘에게 인사했다.

“그럼, 은아 양. 에이미 양? 모쪼록 다시 뵙기를 바라고 있겠습니다.”

에이미가 안젤라라는 마수의 손에서 김은아를 지켜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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