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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화 (140/434)

제140화

가온 아카데미의 부실.

파티원들은 장장 일주일에 가까운 수련을 끝내고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2시woo: 요새 사격에만 빠져 있었더니 감도 제법 찾은 거 같고. 자신감이 붙더라.]

[2시woo: 사쿠라 이 녀석 제법이더라. 실력이 장난 아니야. 덕분에 빨리 늘었지. 빨리 너한테도 내 사격을 보여주고 싶은데.]

[2시woo: 빨리 귀국하고 싶네. 유성이 너도 잘 지내고 있지? 국가대항전이 시작하기 전에 돌아갈게.]

하지만 소파 구석. 이시우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아직 일본에서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시우야.’

신유성은 만감이 교차했다.

이시우가 갑자기 일본으로 떠나겠다고 말했을 때는 말릴까 생각도 했었지만. 이시우의 눈에서 불타오르는 강해지겠다는 의지를 보고 말았다.

‘……무신산에서의 나와 같은 눈.’

신유성은 떠나간 이시우를 떠올리며 천천히 답변을 적었다.

[신유성: 기다리고 있을게]

메시지에 적혀있는 건 짧은 내용이었지만 이거면 충분했다. 소파에 비어 있는 자리는 영원히 이시우의 것. 그러니 신유성은 파티장으로서 느긋하게 기다려줄 뿐이었다.

타악!

그때 벌컥 부실의 문이 열리며 에이미가 활짝 팔을 뻗었다.

“으앙! 파티장님! 보고 싶었어요!”

양손에 종이 백을 든 채로 호들갑을 떨며 달려오는 건 다름 아닌 에이미. 김은아는 에이미의 돌진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막아냈다.

“그만. 이러다가 얼굴도~ 까먹겠다. 아주?”

김은아가 오괴도 섬의 수련을 빠진 것에 대해서 눈을 가늘게 뜨고 이죽거리자. 에이미는 충격을 먹은 얼굴로 자신의 입을 가렸다.

“헐, 은아야. 설마 나의 바쁜 스케줄 때문에 나도 같이 미워하게 된 거야?”

에이미는 종이 백을 놓치더니 털썩 소파에 주저앉았다.

“아니 그냥…… 얼굴 까먹겠다고. 누가 널 미워한대?”

마음이 약해진 김은아의 기세가 누그러지자. 에이미는 흐뭇한 표정으로 웃었다.

“흐흐흥~ 역시 그렇지?”

에이미는 김은아를 완전히 자신의 페이스에 빠트려버리더니. 슬금슬금 움직여 신유성의 곁으로 다가왔다.

“헤헤, 파티장님. 진짜 오랜만이에요! 후, 한번 파티장님과도 제대로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지금 해주고 있는 활동으로도 충분해. 아델라와 투표가 동률이 나올 수 있었던 건…… 에이미 네 공이 크니까.

신유성이 그렇게 말을 하며 웃어주자. 에이미는 감동한 얼굴로 쌍 엄지를 치켜들었다.

“……마음씨까지 잘생기셨어! 역시 파티장님은 최고에요! 물론…….”

말을 멈추더니 슬쩍 시선을 옮기는 에이미. 김은아를 바라보는 에이미의 능글맞은 표정에는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

“은아가 투정 부리는 게 이해가 가긴 해요. 제가 바쁘지만 않았어도. 더 긴밀한 사이가 됐을 테니까요!”

에이미가 그렇게 말을 하며 김은아의 팔뚝에 볼을 비비적거렸다.

“그리고 은아야. 나 이번에 결정했다? 외국 투어는 이제 당분간 안 가려고. 피곤해서 너무 힘들고, 음식도 느끼해서 한국이 그리웠어. 헉, 생각해보니 ……이, 이게 바로 향수병!?”

멈추지 않는 에이미의 입.

방송인답게 에이미는 혼자서 오디오를 꽉 채워주고 있었다.

“뭔. 향수병. 너 미국인이잖아.”

“에이~ 은아도 참! 나 혼혈이라니까? 반은 한국인이라구우~”

티격태격하지만 친근해 보이는 둘의 모습. 김은아는 포켓을 조작해 사진을 띄웠다.

“됐고. 이거나 봐.”

팟!

쓰러진 크로키슨의 옆에서 뿌듯한 표정으로 손가락 브이를 한 채 찍은 김은아의 사진.

“나 진짜 대단하지 않냐? 이걸 혼자 잡았다니까? 1시간 넘게 걸리긴 했지만……. 하, 진짜 마지막은 긴박감 쩔었는데.”

에이미는 사진을 보며 떨떠름하게 웃었다.

‘……이거 그냥 평범한 2급 몬스터잖아. 그리고 무슨 이거 하나 잡는데 1시간이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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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는 생각했다.

겨우 2급 몬스터를 잡은 게 대체 뭐가 대단하다는 걸까. 4급 보스인 여울룡을 잡아놓고 이제 와서 2급을 잡았다고 좋아하는 김은아의 모습은 너무 새삼스러웠다.

“어, 어어…… 응, 대단하네. 2급을 혼자서 잡은 거야?”

“유성이한테 수련을 받은 덕분이지. 확실히 강해지더라고. 물론 고생은 했지만.”

“으, 으으응…… 그랬구나, 강해진 덕분이구나……. 아, 근데 2명이나 안 보이네? 이시우는 일본에 갔고, 스미레는?”

“아 ……스미레?”

에이미의 질문에 김은아는 조용히 주방을 가리켰다.

*     *      *

마녀가 마법의 수프를 끓이듯이 카레를 국자로 휘휘- 저어주고 있는 스미레.

사실 이제 부실에서 기다리기만 해도 카레는 완성이었지만 스미레는 신유성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으, 으으. 나 유성 씨에게 왜 그런 짓을…….”

어제 자신이 했던 행동을 떠올릴수록 스미레는 얼굴이 화끈거려 죽을 맛이었다.

[……저어, 잘했으니까. 칭찬해주실 거죠?]

머리를 쓰다듬어달라며 교태를 부리고.

[이건 반칙이에요.]

뚱한 얼굴로 입술을 내밀어 애교를 부리고.

[……그럼, 부탁드려도 될까요?]

당당하게 신유성의 등에 업힌 채.

[유성 씨의 등. 엄청 따뜻해요.]

귓가에서 말을 속삭이기까지.

“나, ……정말 미쳤었나 봐.”

기억들을 정리하자 이제 스미레는 귀까지 붉어진 상태였다. 마음 같아선 자신의 행동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라플라스에게 진실을 들은 이상 이제 그런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뭐, 내 힘을 받았을 때 행동이 변한 건, 그리 거창한 이유가 아니란다. 평소보다 그저 자신의 욕망에 조금 솔직해지는 것뿐이지.]

라플라스의 힘을 받았을 때, 여왕과 같은 당당한 모습도.

지금처럼 소극적인 모습도 모두 스미레의 성격이었다.

그저 다만 낮았던 자존감이 라플라스의 힘으로 사라지며 겉으로 표출됐을 뿐, 다른 사람의 성격으로 변하는 게 아니었다.

즉 어제 보여주었던 행동은 온전히 스미레의 마음.

머리를 쓰다듬어달라며 애교를 부리고 싶었던 것도, 등에 업혀 달콤한 목소리로 교태를 부린 것도, 모두 스미레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바란 일이었다.

‘그럼, 역시 나는…….’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스미레의 콧등이 화악- 붉어졌다.

누구에게도 말을 한 적 없는 비밀이지만 스미레는 신유성과 가족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한 적이 있었다.

누구보다 자상하고.

진심으로 존경할 수 있는 남자.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고, 가족이 되어 같은 침대에서 눈을 뜨고. 아침에는 신유성과 자신을 닮은 아이들과 함께 도란도란 식탁에 모여 맛있는 식사를 함께 먹고.

밤에는 사랑을 속삭이며 잠이 든다면. 만약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휘적- 휘적-

망상에 취해 멍한 얼굴로 카레를 젓고 있는 스미레.

‘……유성 씨는 다정하시니까.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집이 따뜻해지겠지.’

스미레는 금방 생각을 접었다.

신유성과 자신은 어디까지나 파티장과 파티원의 관계. 스미레는 자신과 신유성의 거리가 너무나 멀어 보였다.

‘물론 유성 씨는 나 같은 건…….’

이미 스미레의 마음 속에서 신유성은 너무나 완벽한 존재. 그저 파티원이 되어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같은 파티로서 위기를 겪고, 힘을 모아서 그 위기를 헤쳐 나가고. 자신이 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지금의 순간만으로 스미레는 진심으로 기뻤다.

‘그러니까 더 욕심을 부리는 건 바보 같은 일이야…….’

그렇게 스미레가 씁쓸한 얼굴로 웃고 있을 때.

“스미레.”

신유성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평소와 같은 카레를 끓이는데도 좀처럼 주방에서 나오지 않자. 신유성이 직접 찾아온 것이다.

“도와줄 일 있어?”

“네? 아, 아뇨! 이미 다 끝내고 젓고 있는 중이었어요. 소파에서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면…….”

스미레가 다급하게 손을 저으며 말을 하는 도중 신유성이 입을 열었다.

“아니 여기 있을게.”

“……네?”

스미레가 신유성의 단호한 대답에 당황한 순간. 신유성은 담담하게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혼자 있으면 쓸쓸하잖아?”

스미레는 그제야 아- 하고 소리를 내어 웃고 말았다. 스미레는 이제야 왜 자신이 신유성에게 이런 감정을 가지게 됐는지, 어제의 자신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두 알 수 있었다.

“역시 유성 씨는…….”

그건 거창한 이유가 아니었다.

“정말…… 자상하시네요.”

그렇게 말한 스미레는 신유성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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