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39화 (139/434)

제139화

염소의 뿔이 달린 머리.

그 이마에 박힌 붉은 마석.

강철조차 간단하게 씹어 으깨버릴 괴수의 이빨. 오른팔 대신 뱀이 달려 있는 기괴한 형태.

로렐라이는 자신의 앞에 쓰러진 보스를 내려다보았다.

“……마왕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는 허무한 최후군요.”

6급 보스.

마왕 안드로말리우스는 마계 서열 72위로 최하위에 속했지만 엄연히 마왕으로 분류되는 보스였다.

하지만 안드로말리우스는 머리에 달린 뿔이 부서진 채로 온몸에는 날카로운 트럼프 카드가 박혀 있었다.

“그게 전부 로렐라이 님의 힘 덕분 아니겠습니까?”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는 안젤라.

“맞습니다. 저흰 그저 학생 한 명분의 몫으로 평범하게 서포트를 했을 뿐, 안드로말리우스의 공략은 모두 로렐라이 님의 공입니다.”

싱긋 웃어주는 세바스찬.

그들은 모든 공을 로렐라이에게 돌렸다. 입에 바른 소리가 아닌,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 안젤라와 세바스찬은 로렐라이를 진심으로 따르고 있었다.

꿈틀.

그때 안드로말리우스의 시체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휘익- 푹!

세바스찬은 마왕의 목에 카드를 던져 확인 사살을 해버렸다. 시체를 상대로도 방심하지 않는 세바스찬의 철두철미한 성격.

1년 전만해도 세바스찬은 자신이 누군가의 파티에 들어가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건 모두 과거의 이야기.

세바스찬은 존경이 담긴 눈으로 로렐라이를 바라보았다.

‘창피한 일이야. 로렐라이 님을 뵙기 전엔 내가 최고인 줄 알았지.’

실력. 성품. 배경.

모든 것이 완벽한 파티장.

하지만 세바스찬과 안젤라가 로렐라이를 존경하는 이유는 그런 게 아니었다. 로렐라이는 ‘시계탑의 시련’을 통과한 두 번째 인물. 로렐라이의 업적은 그런 사사로운 것들과 비교 할 수가 없었다.

“……자만할 필요는 없겠죠. 이건 모두 아리스 님께서 주신 아티팩트의 힘 덕분이니까요.”

로렐라이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옆에서 벌처럼 날아다니는 쇠구슬을 바라보았다.

부웅-! 붕붕!

쇠구슬의 이름은 유니크급 아티팩트 ‘성자의 구’. 봉인되어 있는 성스러운 힘을 개방하면 7일 동안 주변 반경에 성스러운 빛을 뿜어냈다.

“……이 아티팩트는 악(惡)을 몰아내니까요.”

효과는 로렐라이의 말처럼 악(惡)속성을 향한 디버프였다.

마족은 5할.

마족 중에서도 순혈이라 불리는 마왕급은 6할.

시체나 다름없는 언데드 계열은 최대 8할까지 전투력을 깎아버렸다.

안젤라는 성자의 구를 바라보며 기뻐했다.

“기쁜 일입니다. 마침 한국의 파티원 중 하나는 사령술사! 이 아티팩트만 있으면…… 후훗!”

웃고 있는 안젤라의 말에 로렐라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로렐라이가 악착같이 실력을 쌓은 이유는 모두 아리스를 위해서였다.

그렇기에 로렐라이는 지금까지 정정당당함을 추구했다. 자신의 실력은 그 무엇보다 긍지 높은 자존심이었으니까.

하지만 스미레는 무서운 상대.

누구의 편린을 흡수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로렐라이는 스미레가 일본전에서 보여주었던 활약으로 인해 그녀가 힘의 근원에 닿았다는 사실은 눈치 채고 있었다.

‘……한국을 이기는 건, 아리스 님의…… 소원.’

그렇기에 패배는 허용되지 않았다.

쓸 수 있는 모든 카드를 사용하는 게 맞다. 아티팩트를 사용하는 건 다른 파티도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힘의 전력까지 같을까?

성자의 구는 아티팩트 중에서도 1주일이라는 사용 기한이 제약(制約)으로 걸린 아티팩트.

스미레라는 사령술사의 언데드를 봉인해버린다면 그건 2대3과 같은 결과였다.

‘……아리스 님. 정말 그런 결과로 만족하시는 겁니까?’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당한 자신의 실력으로. 파티의 힘으로 한국을 이기고 싶었다. 자랑스러운 마녀의 제자로서 권왕의 제자를 이기고 싶었다.

‘전…… 할 수 있어요.’

로렐라이가 눈을 감았다.

자신은 아리스의 적법한 후계자가 되기 위해 시계탑의 시련조차 통과했다. 정신을 녹이던 그 괴로운 시간들을 버텨낸 건, 힘을 위한 갈망도 아니었고 명예도 아닌, 오직 아리스였다.

누구보다 아름답고도 누구보다 강한 아리스를 닮기 위해서, 그녀의 하나뿐인 자랑이 되기 위해서, 동경했던 어둠의 빛이 되기 위해서.

‘아리스 님 당신을 위해서라면…….’

로렐라이는 세상의 그 무엇과도 싸워 이길 수 있었다.

*     *      *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빛.

꿀꺽.

긴장한 김은아가 침을 삼켰다.

‘……내가 못할 거 같아?’

김은아의 팔목에는 얇은 특성 감식 종이가 둘러져 있었다. 원래는 범죄 현장에서 시티가드들이 조사를 위해 사용하는 물건이었지만.

[내가 전기로 잡고 안 썼다고 거짓말 치면?]

[은아 네가 특성을 사용하면 이 종이에 흔적이 남아.]

[……이 종이에?]

이번에 종이의 용도는 김은아의 이번 수련인 [특성 사용하지 않고 괴수 잡기]를 보조하기 위해서였다.

쿵쿵!

“크릉! 킁! 푸르르-!”

김은아의 상대는 2급 괴수. 크로키슨. 악어처럼 경질된 껍질을 가진 들소 괴수였다.

전기를 사용한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구워버릴 수 있는 허접한 괴수.

그러나 김은아는 찰나의 반응속도와 체술을 기르기 위해서 전기를 봉인하고 격투술로 크로키슨을 잡아야했다.

“다, 당장! 덤벼어어!”

툭!

김은아가 움켜쥐었던 조약돌을 던졌다.

“푸르르르!”

도발은 성공적.

크로키슨은 하늘을 보며 거친 숨을 뿜어내더니 땅을 박차며 돌진을 시작했다.

쿵쿵쿵!

‘아이 미친, 유성이는 진짜 9살에 저런 거랑 맨손으로 싸워서 이겼다고?’

무슨 어딘가의 신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 하지만 아델라를 이긴 신유성의 전투를 떠올리면 김은아는 납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9살도 하는데, 내가 못할 게 뭐 있어?’

겨우 2급 괴수와의 전투에서 결의를 다지는 김은아.

‘어떻게든! 이긴다!’

*     *      *

도망을 치며 5분.

공격을 피하느라 15분.

언덕에서 데굴데굴 구르더니 나무위로 숨느라 30분.

그렇게 크로키슨과 김은아가 전투를 한 지 1시간이 지났다.

자존심 강한 두 천재들의 전투.

승자를 알 수 없는 치열한 공방 끝에 승자가 결정 됐다. 역시 같은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은 없었다.

“헉! 흐으…… 내, 내가! 흐으!”

상체를 숙인 김은아가 거칠게 숨을 골랐다. 낭떠러지 아래에서 기절한 크로키슨이 보였다.

“내가 이겼다! 2급 괴수를 이겼다아아!”

김은아는 크로키슨을 내려다보며 함성을 질렀다. 숲에서 메아리치는 김은아의 목소리.

“정말, 정말…….”

감격한 김은아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2급 괴수를 이기다니, 처음에는 불가능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전부 포기하고 전기를 사용할까, 생각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크로키슨의 최후의 돌격을 피해 결국 낭떠러지로 떨어트렸다.

“내가 이겼다고오…….”

부웅-!

김은아는 손을 번쩍 하늘에 질렀다. 그리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손등을 바라보았다. 팔목에서 땀으로 번들거리는 종이의 색은 화창한 하늘처럼 푸르렀다.

김은아가 어떤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노력의 증거.

하늘에서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은 김은아의 허접한 승리를 밝게 축복하고 있었다.

*     *      *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스미레와 신유성. 하지만 장식품에선 뚱한 라플라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겨우 힘을 흡수하는 정도로 이틀이나 기다리란 말이더냐?

데스나이트가 라큘의 힘을 흡수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라플라스는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파앗!

포켓에서 뿜어진 홀로그램.

[재앙의 마녀 라플라스가 데스나이트에게 데런이라는 이름을 하사했습니다.]

마녀가 사역마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건 일종의 주술이었다.

- 이름에는 힘이 깃드는 법이지.

[데스나이트는 데런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았습니다.]

[데런과 라큘의 적합성이  99%로 올랐습니다.]

[데런은 위계가 올라가 데스나이트의 상격 존재인 듀라한으로 변했습니다]

[사역마: 데런]

[절망의 듀라한(Passive Skill) - 주변 언데드의 사기를 진작시켜 전투력을 올립니다. 높은 카리스마로 전장에서 지휘를 맡을 수 있습니다.]

[흑기사의 맹세(Skill) - 주군의 곁에 있으면 사역마의 능력치가 상향 됩니다. 주군을 위한 충성심이 높을수록 효과가 올라갑니다.]

스미레에게 선사하는 라플라스의 또 다른 선물. 바닥에서 육망성의 마법진이 그려지더니 데스나이트 데런이 소환됐다.

“주인님만을 모시겠습니다.”

투구를 낀 자신의 머리를 쥔 채, 무릎을 꿇는 데런. 스미레는 고고한 걸음으로 데런에게 다가가더니 서약을 위해 머리에 손을 얹었다.

“……네. 데런 씨,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듀라한으로 변한 데런에게 무뚝뚝하게 웃어주는 스미레.

사아아!!

스미레의 손에서 흘러나온 엄청난 양의 마나는 데런에게 흡수됐다.

새로운 사역마가 된 데런에게 주인으로서의 각인을 새기는 과정.

둘 사이에서 계약이 성공적으로 맺어지자 엄청난 마력을 소모한 스미레는 잠깐 몸을 휘청거렸다.

“……아!?”

탁.

“괜찮아. 스미레?”

그런 스미레를 잡아준 건, 다름 아닌 신유성이었다.

“아!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신유성이 걱정해줬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스미레.

“방금처럼 크게 마나를 소모했을 땐, 몸살이 올수도 있으니까. 무리하면 안 돼.”

신유성은 파티원인 스미레가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이렇게 쉽게 5급 보스를 혼자서 처치하다니. 거기다 스미레는 라플라스의 힘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어.’

엄청난 마나와 정신력.

지금 스미레의 전력은 현역 5급 헌터와도 맘먹을 정도였고, 일반적인 학생들 중에선 경쟁할 상대가 없었다.

아티팩트.

라플라스의 편린.

데런과 릴리스라는 강력한 사역마.

신유성은 스승인 권왕을 뛰어넘고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그에 걸 맞는 강력한 파티원이 필요했다.

‘스미레가 가진 잠재력이라면 분명 스승님의 동료보다도…… 강해질 수 있어.’

그렇기에 신유성은 스미레라는 원석을 발굴해내 최고의 보석으로 세공했다.

유원학이 키워낸 헌터가 신유성이라면 스미레는 신유성 자신이 키워낸 헌터.

신유성이 스미레에게 가진 감정은 동료사이라기엔 조금 더 각별했다.

“아, 정 힘들면 업어줄까. 스미레?”

스미레를 위해 담담하게 제안을 하는 신유성. 도도한 여왕처럼 고성에서 군림했던 스미레는 그 한마디에 간단한 표정 관리조차 하지 못했다

“유, 유성씨가 직접, 저를!?”

기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발뒤꿈치를 쫑긋- 쫑긋 들어 올리는 스미레.

파앗! 탁!

하지만 눈치가 없는 릴리스와 데런은 주인을 위한다며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아닙니다! 주인님! 저 릴리스가 직접 안아 드리겠습니다! 저와 함께 하늘을 활공…….”

“저 데런에게……. 그 영예를 맡겨 주십…….”

스미레는 얼어붙을 듯 차가운 시선으로 사역마들을 바라보며 검은색 기운을 스멀스멀 뿜어냈다.

괜히 끼어들지 말라는 메시지.

라플라스의 힘을 개방한 스미레는 평소와 기세가 달랐다.

“헤, 헥? 아, 아닙니다! 지금 보니 활공하기엔 저도 남은 체력이…….”

“거, 건방진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물러나는 릴리스와 데런.

스미레는 조심스럽게 신유성의 옷깃을 만지작거리며 배시시 웃었다.

“……그럼,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제 모든 수련을 끝냈으니 신유성은 파티원들과 가온 아카데미의 기숙사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니 스미레가 등에 업혀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제법 길었다. 스미레로선 상상도 못한 호사.

타악.

등에 업힌 스미레는 자신의 팔로 신유성의 몸을 부드럽게 감았다.

“……아카데미로 돌아가면 내일 식사는 뭐가 좋으세요?”

신유성의 뒤에서 들려오는 스미레의 달콤한 목소리. 하지만 신유성을 반응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메뉴 질문이었다.

“……닭고기로 만든 야키토리? 아니면 역시 카레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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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꼬치구이. 야키토리.

스미레의 정성이 담긴 카레.

신유성에겐 무엇 하나 포기할 수 없는 메뉴들이었다.

‘……카레에 야키토리를 얹으면 어떨까? 엄청 맛있을 거 같은데.’

신유성은 성격이 변한 스미레의 맹렬한 애정공세에도 음식에 대한 고민을 하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둘 다로 부탁해.”

산 속에 틀어박혀 12년 가까이 이성을 몰랐던 남자. 아직 신유성은 너무나도 순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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