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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화 (135/434)

제135화

[유성아! 허리가 굽었다! 그런 자세로 어떻게 주먹을 뻗겠느냐?]

손으로 직접 자세를 잡아주는 건 신유성에게 너무나도 익숙했다.

[쯧! 무게 중심이 어긋났구나!]

스승인 유원학이 신유성의 자세를 그렇게 잡아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은아에게 신유성의 손길은 너무나 갑작스런 일.

김은아는 허리에 신유성이 손가락이 닿자 돌처럼 딱딱한 자세로 굳어버렸다.

“소, 손…….”

생각하지도 못한 스킨십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김은아. 신유성은 그런 상황에도 친절히 동작을 짚어주었다.

“은아야. 주먹을 곧게 뻗으라는 말은 타점과의 거리를 조절해야 한다는 이야기였어.”

김은아의 주먹을 잡고 정확한 자리로 옮겨주는 신유성. 김은아는 무어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신유성의 강의는 너무나 진지했다.

“주먹을 내지른 위치와 주먹이 도착한 거리가 승부를 결정지어.”

신유성은 싱긋 웃더니 김은아의 주먹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치게 만들었다.

톡.

“이렇게 가까우면 주먹이 약하고.”

붕-

신유성은 뒤에서 김은아의 팔을 잡아 쭈욱- 주먹을 지르게 만들었다.

“이렇게 멀면 닿지 않아.”

신유성의 몸이 닿을 때마다 김은아는 움찔움찔 몸을 떨었지만. 차마 내색하고 싶지 않았다.

신유성이 직접 자세를 만져주는 건 어디까지나 순수한 열의. 한 조각의 흑심도 없다는 걸 김은아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 녀석 그런 부분에선 엄청 둔감하니까.’

아무래도 그건 신유성이 무신산에서 살며 여자를 몰랐던 과거 때문.

“그러니까 결국 무투에선 상대에게 공격을 맞추는 것도.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것도. 전부 거리로 결정이 되는 거야.”

말을 하던 신유성은 김은아의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툭- 쳤다.

덕분에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다리를 앞을 향해 움직이는 김은아.

“으힉!?”

점점 붉어진 얼굴은 이젠 시뻘겋게 달아올랐지만 신유성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니 거리에 따라 다리를 이용해 자세를 내딛는 것도. 후퇴를 하는 것도 가능해.”

그저 여전히 강의에 집중을 할뿐.

신유성은 김은아의 어깨를 잡고 살짝 자세를 낮춰주었다. 그 다음은 몸을 숙여 손수 무릎을 굽혀주었다.

“만약 타점을 낮춘다면. 이렇게 무릎을 굽히면 되겠지? 타점이 낮을수록 더욱 많이.”

뿌듯한 얼굴로 해맑게 웃어주는 신유성. 이번에도 다시 신유성의 손이 허리춤으로 다가오자. 김은아는 화들짝 뒤로 물러났다.

“……자, 자핫! 잠깐만!”

거친 숨과 함께 삑사리까지 낸 김은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촉촉해진 눈으로 신유성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는 김은아. 시선을 피한 김은아는 평소와 달리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가, 간지럼 잘 타니까……. 허, 허리는 만지지 마…….”

*     *      *

오괴도 중앙에 지어진 거대한 휴게 건물. 파이브라운지(Five lounge)

이곳은 오괴도에 찾은 헌터들을 위한 장소였지만 모든 헌터들이 동일한 시설을 제공 받는 건 아니었다.

작은 숙소와 1층의 식당이 제공되는 브론즈 카드.

그 외에도 다양한 서비스와 좋은 숙소를 제공하는 실버 카드.

스위트 룸 호텔급 숙소와 귀빈 대접을 받는 골드 카드.

그리고 극히 소수의 헌터에게만 허락되는 블랙 카드.

[Black Card 확인 중…….]

[No.33 확인 되었습니다.]

[파이브라운지는 김은아 회원님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배정된 숙소는 5B입니다.]

[현재 숙박인원: 하나지마 스미레]

김은아는 체크인에서 카드를 거두더니 신유성에게 물었다.

“스미레는 먼저 들어갔네. 우리도 바로 고?”

“응. 배도 고프니까 수련은 이만하고 올라가자.”

“수련이라는 말. 숙소에서는 하지도 마. 듣는 것만으로…… 몸이 끈적끈적해지는 기분이야.”

김은아는 그렇게 투정을 부리더니 킁킁- 자신의 냄새를 맡았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땀으로 푹 절여진 티셔츠.

“빨리 가자 씻고 싶어.”

김은아가 질색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자. 신유성은 싱긋 웃었다.

띠링!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함께 탑승하는 김은아와 신유성. 로비에 앉아 있던 헌터들은 그제야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 꼬마들이 블랙 카드?”

“몰랐어? 한명은 권왕님 제자잖아. 소문으론 협회장도…….”

“아주 탄탄대로네. 부러운데.”

VIP는 김은아였지만 정작 사람들이 주목한 건 비교적 유명한 신유성이었다.

그만큼 신유성이 유명해졌다는 반증이었다. 현역 헌터들의 부러움과 질투가 뒤섞인 눈초리.

‘저 꼬마…….’

그 중에서도 돋보이는 한 갈색머리의 소녀는 닫혀버린 엘리베이터를 보며 생각했다.

‘유월 녀석의 혈연이었지?’

그녀는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신유성을 꼬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신하윤에 유월. 그리고 저 꼬마까지인가? 후훗, 참…… 신기한 집구석이란 말이지.’

긴 세월을 살아온 탓일까.

그녀는 신오가문은 물론 헌터계의 모든 정보를 꿰뚫고 있었다.

‘차라리 대장이나 유민서가 침을 묻히기 전에 내가…….’

사실 신오가문의 유민서와 신강윤이 신유성을 탐내고 있다는 건, 업계에서 비밀도 아니었다.

신오가문이 대놓고 접근하지 못하는 건 오로지 유원학의 존재 때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직은 이르려나.’

갈색머리 소녀는 입술을 질끈 물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     *      *

[Black Card 확인 중…….]

[5B 인증완료!]

[반갑습니다. 현재 숙박 인원은 3명으로 표시하겠습니다.]

최고급 호텔의 스위트 룸이 부럽지 않은 파이브라운지의 시설. 하지만 신유성의 주의를 빼앗은 건, 문이 열리자마자 풍겨오는 맛있는 음식의 냄새였다.

‘……역시 스미레의 요리야.’

이 음식은 분명히 맛있다.

신유성의 직감은 냄새만으로 확신을 하고 있었다. 고된 수련 탓인지 음식의 냄새에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는 신유성.

“앗! 은아 씨! 유성 씨! 금방 돌아오셨네요?”

잠시 쉬고 있었던 스미레는 침대에 앉아 손을 흔들었다.

“으하앙! 스미레!”

다다다다- 와락!

입구에서 스미레의 품에 안겨드는 김은아.

“유성이 얘! 수련 방식 완전 사이코야!”

신유성에겐 쉬웠지만 김은아에게는 너무나 벅찼던 수련. 덕분에 김은아의 온몸에선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단 둘이 있을 땐 내색을 안했지만 김은아는 수련이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타이어에 산악행군에…… 나 맨손으로 절벽도 올랐어! 죽는 줄 알았다고…….”

평소와 달리 약한 소리를 하는 김은아.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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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레는 자신에게 약한 소리를 하는 김은아를 보며 일본에 있는 동생들을 떠올렸다. 어쩐지 익숙한 광경이었다.

“후훗, 은아 씨 많이 힘드셨죠?”

스미레는 품 안에 있는 김은아의 머리를 익숙하게 쓸어내려주었다.

“그래도 그렇게 엄청 힘든 와중에도…….”

스미레의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 자신의 품에서 칭얼거리는 김은아에게 스미레는 쐐기를 박아 넣었다.

“은아 씨는 정말 멋지게 해내주시고 있으신 거예요.”

“스, 스미레에…….”

감동한 김은아의 떨리는 목소리.

신유성은 그 와중에 둘의 신파를 깨고 스미레에게 메뉴를 물었다.

“저기 스미레? ……오늘 메뉴는?”

코끝에 맴도는 잘 익힌 돼지고기의 냄새. 스미레는 여전히 김은아를 껴안은 채로 시선만 신유성에게 고정시켰다.

“아! 오늘 메뉴는…… 오키나와의 음식들이에요! 제가 일본에서 살았던 곳이거든요.”

멋쩍게 웃은 스미레는 김은아와 신유성을 번갈아보더니 짐짓 엄한 어투로 말을 했다.

“하지만! 식사 전에 꼭! 샤워를 해주세요! 음식은 제가 책임지고 준비 할 테니까요.”

5B방은 블랙 카드로 들어와야 하는 만큼 호화로운 시설을 자랑했다. 덕분에 반신욕이 가능한 욕탕이 있는 건 물론이고, 따로 욕실까지 준비 되어 있었다.

“그럼 난 욕실. 괜히 물에 몸을 불리고 싶진 않거든. 아저씨 같잖아?”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김은아의 이야기. 스미레는 김은아의 말이 찔렸는지 괜히 눈치를 봤다.

“어, 그래도 요, 욕탕도…… 좋지 않나요? 온천은 아니지만…….”

휘익-

“왜, 온천 좋아해? 하나 사줄까?”

김은아가 양말을 벗어던지며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자. 스미레는 입을 가린 채로 소리 내어 웃었다.

“푸흐흣! 정말 재밌네요!”

선물로 온천을 사주겠다니.

스미레는 김은아의 말을 재밌는 농담 정도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은아는 농담이 아닐 수도 있지만.’

하지만 김은아의 재력을 생각한다면 불가능은 아닌 이야기. 김은아가 갑자기 온천이 딸린 여관을 선물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진짠데. 그거 얼마 한다고.”

“에히~ 은아 씨는 장난도~ 정말~ 자 그럼! 두 분 모두…… 천천히 씻고 와주세요?”

여전히 당당한 김은아와 웃어넘기는 스미레. 신유성은 화목한 둘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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