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4화
5개의 던전이 있는 오괴도(五怪島)
이곳은 헌터 협회가 관리하는 중급 헌터들의 대표적인 수련 장소였다.
‘보통은 현역 헌터들이나 입장 할 수 있지만…….’
신유성은 협회장인 강유찬의 비호 아래에 마음껏 헌터 협회의 설비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한결 편해진 수련.
신유성은 무성한 숲속 폐허가 된 성 앞에서 입을 열었다.
“여기가 오괴도의 유일한 언데드 던전이야.”
도착한 장소는 절벽 아래라 옅은 빛이 전부인 성은 겉으로 보기에도 음산해보였다.
신유성의 옆에 착 달라붙어서 얼굴을 흘기는 스미레. 그러다 서로의 눈이 맞자 스미레는 배시시 웃었다.
“유성 씨랑 가, 같이…… 들어가는 건가요?”
신유성과 함께 수련을 한다는 것에 은근히 기대한 스미레. 신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미레 넌 라플라스의 편린으로 엄청난 병력을 손에 넣었어. 네게 필요한 건 전술과 전략이야.”
신유성이 스미레에게 가르칠 건 유원학에게 배운 병법에 해당하는 지식이었다.
언데드 군단을 사용하는 스미레의 전투는 혼자가 아닌, 다수. 그러니 항상 숫자가 많다는 이점을 운용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처음은 작전을 펼칠 지형을 살피는 게 중요해.”
신유성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 스미레는 진지한 얼굴로 포켓에 메모를 적고 있었다.
공략하게 될 지형은 건물.
그것도 좁은 통로가 많고 시야가 제한되어 있는 고성. 스미레는 고개를 올려 폐허의 성을 바라보았다.
“이번 건물은 성이니까……. 좋아요! 자신 있어요!”
활기찬 스미레의 대답.
신유성은 달라진 스미레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그럼 같이 들어가 볼까?”
* * *
스미레는 엘리트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막 입학했던 초등학교 시절의 필기 성적은 최하위.
하지만 필기 전 과목을 최우수로 달성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크지 않았다.
헌터학.
던전학.
속성학.
포션학.
국가별 역사와 길드들의 던전 공략 연도까지 스미레는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필기 과목을 만점에 가깝게 통과했다.
일본에서도 가온에서도 필기 성적은 늘 최상위권. 아이러니하게도 그 결과는 스미레의 타고난 머리 같은 게 아닌, 성격 때문이었다.
[공부는 항상 메모가 중요하단다.]
[많이 알게 되는 것 보다는 배운 걸 잊지 않는 게 중요해.]
[배운 대로. 정석대로. 알겠니?]
정석대로.
교과서 위주로.
배운 걸 토대로.
스미레의 학습은 언제나 선생님의 말을 토대로 이루어졌다. 선생님의 입장에선 누구보다 가르치기 편한 학생.
그리고 그 성격은 이번 수련에서도 빛을 발했다.
‘유성 씨가 가르쳐주신 대로…… 좁은 통로에선 퇴로를 확보하고. 전방의 시야는 항상 선발대를 보내서 확인!’
스미레의 학습력은 그야말로 최상위.
설령 모르는 게 있을지언정, 신유성이 가르쳐준 것은 절대 까먹지 않았다.
“……저런 위쪽 공간이 탁 트인 방은 사수나 함정이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박쥐 패밀리어를 보내겠습니다!”
스미레는 신유성의 가르침대로 던전을 차분하게 파훼하고 있었다. 그 차분한 판단은 신유성조차 감탄할 정도.
‘……일부러 언데드 던전을 고르긴 했지만. 이 정도였다니…….’
신유성의 눈에 보이는 건 성을 뒤덮은 스미레의 대군. 릴리스와 데스나이트를 필두로 사역마들과 해골들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던전의 언데드들이 부서지거나 쓰러지면 스미레는 터치 한 번으로 피해를 복구했다.
“……일어나라.”
[망자의 관리자]에서 [마녀의 흑마술]이 되며 더더욱 강해진 스미레의 흑마술.
“주인님. 이 앞의 방에서 던전의 보스를 확인했습니다.”
릴리스는 한쪽 무릎을 꿇고 스미레에게 보고를 올렸으며.
“제, 가, 먼저 선, 두에 나서도록 하겠, 습니다! 적들에게 절, 망을!”
데스나이트는 하늘을 향해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아뇨. 공략은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하지만 스미레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 던전 보스를 앞둔 상황에서 공략을 포기하다니 너무나도 의외의 판단. 신유성은 스미레에게 물었다.
“스미레. 지금 공략을 멈추는 이유가 있어?”
스미레는 신유성의 질문에 아- 하고 웃더니 포켓을 눌러 홀로그램을 띄웠다.
“오괴도에 오기 전에…… 제가 조사해온 보스들의 내용이에요. 다섯 보스를 전부 조사했지만 폐허의 고성은 라큘이 등장하는 곳이니까요. 자아! 여기…….”
스미레는 부끄럽다는 듯 홀로그램을 검지로 가리켰다.
[보스 이름: 검은 망토의 라큘]
[※주의 사항: 특성이 아주 강력하니 미리 확인하고 조심 할 것! 크게 당 할 수도 있음... (。•́︿•̀。)ㅠ]
[특성: 버림받은 왕녀의 축복]
[효과: 24시간을 번갈아 가며 라큘에게 버프와 디버프가 적용. 버프 중에는 마나와 신체 능력이 2배. 디버프 중에는 50% 전투력이 4배 차이! (๑•̀ㅁ•́๑) /]
홀로그램에는 스미레의 메모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5개의 던전을 전부 조사해오다니. 스미레는 준비성이 정말 철저 하구나…….’
어떤 공략에서도 최선을 다한다고 자부하는 신유성조차 스미레의 준비성에는 감탄할 정도였다.
결국 감탄을 하며 스미레를 바라보는 신유성의 눈빛.
“언데드인 라큘은 도전자가 없는 이상 스테이지에서 움직이지 않으니까. 그…… 내일 공략하게 되면 변수 없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이었어요!”
스미레는 얼굴을 붉힌 채 설명을 하더니 히죽 웃으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어차피 이번 수련은 며칠 정도. 섬에서 묵고…… 가시니까.”
신유성과 같이 잠을 자고, 밥을 해주고, 던전을 공략하고, 상상만으로 벌써부터 기뻐지는 스미레.
반쯤 죽어가고 있는 김은아와 다르게 수련에 참여한 스미레는 너무나도 즐거워 보였다.
‘……수련이라는 거, 무지 행복한 거구나.’
신유성은 철저한 스미레의 준비에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스미레! 라큘은 내일 잡는 걸로 하자. 4급 보스는 충분히 공을 들일 만한 상대니까.”
신유성의 흔쾌한 허락.
“네! 좋아요! 그럼 유성 씨…… 저는 미리 숙소에 가보겠습니다.”
오괴도는 던전이 있는 섬 주제에 호텔급 숙소가 있었다. 신유성 일행뿐만이 아니라 오괴도를 찾은 현역 헌터 모두가 머무르고 있는 장소.
스미레는 미리 숙소에 가서 저녁을 준비할 모양이었다.
“……저녁 기대해주세요!”
* * *
김은아의 특훈은 오괴도의 북쪽에 펼쳐진 광활하고 푸르른 숲에서 진행됐다.
꾸욱- 꾸욱-
김은아는 움직이기 쉬운 레깅스와 티셔츠 차림으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얇은 옷차림을 하자 확실히 돋보이는 김은아의 매끈한 라인. 비록 신유성처럼 산 속에서 수련을 한 적은 없었지만, 김은아는 김윤하가 짜준 스케줄로 꾸준히 관리를 받아왔다.
어떻게 보면 다른 의미로 단련된 김은아의 몸.
“아우, 근육통- 후, 그래도 타이어 끄는 거 보단 이게 낫겠지?”
김은아가 스트레칭을 하며 훗- 하고 웃자. 신유성도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어주었다.
“금방 배울 수 있을 거야.”
이번 특훈의 테마는 체술.
하지만 김은아는 아직까지 자신이 격투를 배운다는 것에 회의감을 가진 모양이었다.
“근데 진짜 격투술이 나에게 도움이 될까? 어차피 아무리 배워도 너보다 약할 텐데.”
그러나 그건 잘못된 생각.
신유성이 가르치는 건 단순히 김은아에게 전투 기술을 가르치기 위함이 아니었다.
“아니. 격투는 오히려 은아 너라서 더 잘 어울리는 무기야. 네가 전기 특성을 가졌기에 더 의미가 있지.”
신유성은 가볍게 자세를 잡더니 나무들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파아앙! 우드드득-
파공음과 함께 매서운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나무들.
“이게 아직 내가 가진 평균적인 속도야. 내가 휘두르는 주먹은 강력할 순 있어도. 속도는 너의 전기 쪽이 훨씬 빨라.”
에너지 반응을 하는 전기의 속도는 가히 빛과 같았다. 그 누구도 이보다 빠르게 물리적인 공격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은아 네 공격에 상대가 반응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특성을 다루는 김은아로서도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
“……그, 글쎄?”
김은아가 볼을 긁적이자. 신유성의 몸이 사라졌다.
탓!
“아?”
김은아가 눈을 깜빡이자. 일순간에 시야를 가득 채운 신유성의 발.
파앙! 화아아악!
신유성의 발에서 몰아친 바람은 김은아를 뒤로 넘어뜨렸다.
“푸흐읍! 얏! 머하냐!”
바닥을 짚은 채 재빨리 몸을 일으키는 김은아.
“방금 공격. 막을 수 있었어?”
신유성이 빙긋 웃으며 묻자. 김은아는 도끼눈을 한 채로 신유성에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혀. 너무 빨랐어.”
“맞아. 공격을 막으려면 속력에 반응할 수 있는 반사 신경이 필요해. 그리고 공격도 마찬가지야.”
신유성은 돌을 하나 쥐었다.
목표물은 주변에서 하이에나처럼 기습의 기회만 노리고 있던 괴조.
파앙!
신유성이 돌을 던지자. 괴조는 푸드드득- 소리를 내며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저건 언제 있었대.”
김은아가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리자. 신유성은 이 와중에도 김은아를 가르쳤다.
“반사 신경이 낮으면. 이렇게 목표물을 놓치고 말아. 공격의 기회를 포착했을 땐 이미 늦었으니까.”
신유성은 다시 돌을 쥐었다.
이번에도 노리는 건 하늘을 날고 있는 괴조. 그러나 이번에는 방향을 트는 괴조의 날개의 움직임까지 정확하게 포착을 해 던졌다.
파아앙!!
결국 돌에 맞아 추락하는 괴조.
“오오…….”
감탄하는 김은아에게 신유성은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 너에게 필요한 건, 순간적인 판단력과 반응 속도야. 공격의 기회를 포착하고 발동하는 것도 단련이 필요하니까.”
그렇게 2시간. 무조건 해내겠다던 포부와 달리 김은아는 기본적인 자세를 배운 것만으로 힘이 빠지고 있었다.
“이거, 이게 정권…… 맞지?”
다 죽어가는 김은아의 질문. 가만히 바라보던 신유성은 천천히 김은아에게 다가왔다.
“아니. 좀 더 허리를 넣고. 손은 어깨에서 직선이야.”
툭.
자세를 가르치기 위해 신유성은 아무렇지 않게 김은아의 허리와 팔뚝에 손을 얹었다.
“……어, 어?”
얼굴이 맞닿을 정도로 너무나도 가까운 거리. 심지어 김은아의 허리에는 꾸욱- 하고 얹어진 신유성의 손가락.
“으, 으허어…….”
이제 김은아의 얼굴은 붉다 못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