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화
투투투투-!
상공을 나는 요란한 헬기 소리.
빠앙! 빵빵!
시끄러운 자동차의 경적.
“꺄아아아아! 저 괴물은 대체!”
“모두 이쪽으로 대피하십시오!”
런던에 있는 대부분의 시티가드가 템스 강 주변으로 모였지만 벌떼처럼 몰려든 시민들을 안내하기엔 인력이 모자랐다.
“대도시의 강을 3킬로미터나 경유하다니 헌터들은 도대체 뭘…….”
키오오오-!!!
그때 정체불명의 울음소리가 하늘을 찢어 놓았다. 도시 전체가 울릴 정도로 거대한 소리.
시티가드는 소리의 근원인 템스 강에 서 있는 괴수를 바라보았다. 검은색 살덩이가 뭉쳐진 몸. 날카로운 이빨과 산성액을 흘려대는 입. 계속 빛나는 붉은 눈.
크오오! 크르르르…….
템스 강을 거닐며 시민들을 위협하고 있는 건 50미터 높이의 초거대 괴수였다.
재앙이나 마찬가지인 7급 보스.
‘킹즈오라’.
헌터들의 공격에서 마나를 흡수해 체내에 보관하고 브레스로 내뿜을 수 있었다.
거기다 킹즈오라가 무서운 점은 어지간한 데미지는 곧바로 회복할 수 있는 무한한 재생력.
어중간한 공격은 킹즈오라를 죽이는 대신 도시를 초토화시킬 위험이 있었다.
결국 런던이 킹즈오라를 상대로 택한 건 수비전이었다.
콰아앙! 쾅쾅!
킹즈오라를 공격한 건 도로와 건물에 탑재된 다양한 무기들. 런던은 이미 킹즈오라 같은 초대형 괴수에게 대비해 요새화가 끝난 도시였다.
빌딩보다 큰 괴수들의 공격에도 런던 같은 대도시가 건재할 수 있었던 이유.
빌딩에서 발산된 레이저가 킹즈오라의 몸을 불태우고.
도로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킹즈오라의 몸에 작렬했다.
끝이 없는 폭격의 향연.
콰아앙! 쾅쾅!
하지만 그 수많은 폭격조차 킹즈오라의 진격을 막진 못했다. 아무리 몸에서 불길이 솟구치고 연기가 흩날려도 킹즈오라는 템스 강 유역을 꿋꿋이 걸어 나갔다.
즈으윽! 콰앙!
킹즈오라가 거대한 몸체를 움직일 때마다 넘실거리는 템스 강의 물. 영국의 시티가드는 런던에 있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더 이상 킹즈오라의 전진을 허용할 수 없었다.
- 전 대원에게 알린다. 템스 강 유역. 32N 22A에 대도시 방어 배리어를 전개 하겠다.
결국 사용을 허가한 국가급 병기.
시티가드들의 포켓에선 사령부의 명령이 울려 퍼졌다. 이번에 사용한 건 어지간한 위기가 아니면 볼 수 없다는 대도시용 배리어.
“살았다!”
베테랑이 주먹을 쥐며 기쁜 듯이 소리치자 1년차인 시티가드는 의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배리어 정도로 저런 거대한 괴물을 가둘 수 있을까요?”
“네 녀석은 본 적이 없나보 군. 대도시용이면 정말 엄청난 물건이라고. 좌표 설정이 힘든 게 단점이지만.”
“그건 괴수 놈이 강을 따라 걸어준 덕에 잘된 모양이네요.”
“그렇지.”
시티가드들이 템스강을 바라보는 순간. 여러 구역에서 하늘로 쏘아진 빚이 사각형을 만들었다.
지이이잉!
선과 선으로 이어진 레이저는 곧이어 푸른색의 면으로 변했다.
파앙!
결국 킹즈오라를 가둬버린 대도시 용 배리어. 이미 중국에선 대도시 용 배리어로 6급 보스인 사흉(四凶)의 혼돈을 가둔 전례가 있었다.
킹즈오라를 바라보는 베테랑 시티가드는 배리어를 의심치 않았다.
이제 천천히 정부의 작전만 기다리면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기이이이-
킹즈오라가 고개를 숙이며 입으로 모여드는 붉은 빛. 저건 킹즈오라가 브레스를 내뿜는 전조였다.
“설마……. 폐쇄된 배리어 안에서 브레스를?”
“……그럼 그냥 자살 아닙니까?”
화아아아아-!!
킹즈오라가 입으로 뿜어내는 강렬한 붉은 빛. 저건 지금까지 킹즈오라가 입었던 데미지를 마나로 바꾼 브레스였다.
파바바박!!
대도시 용 배리어는 리플렉스 아티팩트의 힘으로 킹즈오라의 브레스를 튕겨냈다.
결국 킹즈오라의 몸은 자신의 브레스로 좁은 통 안에서 구워지듯 지글지글 타올랐다.
브레스에 타오를수록 몸체에서 점점 차오르는 붉은 빛.
“저 놈 설마-!”
“배리어의 반사를 에너지로!?”
시티가드들이 비명 같은 외마디.
기이이이이-
지맥의 괴수 킹즈오라가 몸을 웅크렸다. 브레스에 맞은 킹즈오라의 몸은 터져 오르는 활화산처럼 울긋불긋 붉게 물들었다.
화아아아아-!!
킹즈오라는 그 데미지를 연료 삼아 다시 입으로 내뿜었다.
파바바바!
이번에도 킹즈오라의 브레스를 반사하며 스파크를 튀기는 배리어. 푸른색과 붉은색의 눈부신 섬광이 도시 전체를 빛냈다.
하지만 배리어가 브레스를 반사하면 할수록 킹즈오라는 그 데미지를 양분 삼았다.
즈으으으-
점점 붉어지고, 점점 강해지는 킹즈오라의 브레스. 킹즈오라의 몸은 지글지글 익으면서도 계속해서 재생했다. 그야말로 무한 동력.
쩍! 쩌적!
첫 시작은 작은 균열.
파창창!!
거대한 마나 조각.
금이 가던 배리어는 결국 유리 조각처럼 흩어지며 부서졌다.
킹즈오라의 몸에서 뿜어지는 연기. 그 속에서 천천히 드러나는 거대한 몸체.
지이잉! 파자자작!!
킹즈오라의 브레스가 이번에는 도시를 훑었다. 템스 강 주변의 건물들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화르륵!
런던의 거대 괴수를 위해 만들어진 대도시 배리어로도 킹즈오라를 막지 못한 것이다. 역시 재앙이라 불리는 7급 보스에 걸맞은 위용이었다.
이제 헌터 협회의 공략대가 올 때까지 런던은 킹즈오라에게 궤멸의 피해가 예정되어 있었다.
“대도시 배리어가…….”
“이, 이대로 끝인가?”
킹즈오라를 보며 절망에 빠진 시티가드. 멀리서 템스 강의 재앙을 지켜보는 시민들.
하지만 템스 강 타워브리지.
그 꼭대기에 앉은 한 남자가 홀로 재앙을 막아섰다.
“쯧쯧…….”
마치 킹즈오라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는 남자.
“저런 기계 따위에게 도시의 안전을 맡기니. 이 사단이 나는 것이지.”
꽈악!
남자가 킹즈오라를 바라보며 주먹을 쥐었다. 그에게 무기 따윈 없었다. 그저 맨손.
그러나 충분했다.
남자의 주먹은 요새화된 대도시의 무기보다도 위협적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이명은 拳王(권왕)
신체의 단련만으로 모든 헌터들의 정점에 섰던 남자.
고오오오오-!!
권왕 유원학의 주먹에 마나가 모이자. 템스 강을 킹즈오라의 눈이 번뜩였다. 둔해 보이는 괴수의 감각은 너무나도 기민했다.
요새화된 도시의 공격 속에서도 보여주지 않았던 반응을 유원학의 공격에는 보여주었다.
유원학은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
“감이 좋은 도마뱀이로군.”
7급 보스 킹즈오라.
대괴수의 최후는 유원학이 주먹을 쥔 순간 결정됐다.
뻐엉-!
투신류 수라권격(修羅拳擊)
템스 강의 수많은 인파 중에서 그 누구도 볼 수 없었던 정권.
파아아앙-!!!
정권으로 만들어진 풍압에 강물이 갈라지며 물보라를 만들고 주변을 휩쓸었다.
탁탁.
유원학은 쯧쯧- 혀를 차더니 가볍게 손을 털었다.
이미 휑하니 뚫려 있는 킹즈오라의 몸체. 도시의 재앙이 권왕의 일격에 절명한 것이다.
그그그그- 쿠우웅!!
킹즈오라의 몸이 천천히 기울더니 템스 강에 쓰러지자. 다시 거대한 물보라가 일었다.
이제 유원학은 위기에 처한 런던을 일순간에 구한 영웅. 하지만 유원학은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도 익숙해 보였다.
“이렇게 덩치가 큰 놈이면 우리 유성이를 위해 영약이라도 하나 뱉어낼 것이지…….”
타워 브리지 꼭대기에서 자리를 잡고 앉은 유원학이 턱을 괴고 투덜거리자. 언제 다가왔는지 30대로 불리는 미모의 여성이 싱긋 웃었다.
“전혀 녹슬지 않았네.”
챙이 큰 고깔모자.
신비한 분위기. 매혹적인 검은색 머리칼. 동양과 서양의 미를 동시에 가진 미인. 그녀는 유원학을 바라보며 작게 속삭였다.
“……오랜만이야. 후훗.”
어쩐지 반가우면서도 그리움이 담긴 웃음. 유원학은 여자의 인사에도 여전히 킹즈오라의 시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이해할 수 없군. 네가 여기에 있다면 협회 놈들은 왜 날 부른 거지?”
유원학의 시큰둥한 어투.
마녀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내가 부탁했거든.”
“대체 왜지?”
“옛 동료를 만나고 싶어서 말이야…….”
권왕 유원학을 동료라 부를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게 여자라면 더더욱.
“너답지 않군. 아리스. 그런 시답지 않은 일로 내 시간을 낭비하다니.”
영국의 마녀. 아리스.
한국의 권왕. 중국의 검신과 함께 최강의 헌터라 불렸던 여인. 세간의 헌터들은 수십 년이 지나도 젊음을 유지하는 아리스를 보며 정말 마녀가 아닌지 묻곤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리스가 보유한 강대한 마나 때문.
스윽.
아리스는 유원학의 옆에 앉았다.
오래전부터 등을 맞대고 서로를 지켰던 사이지만. 어느새 둘은 서먹해져버렸다. 이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거리감.
“시답지 않다니. 그냥 변해 버린 거야. 아무래도 시간이 흘렀잖아? 난 옛날과 달라졌거든. 그리고 오늘은 너에게 전할 말도 있으니까.”
아리스는 말을 꺼내려다 살짝 멈추었다. 10년 가까이의 긴 시간을 못 봤지만 역시 유원학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지금도 그때도 오롯이 완벽한 무를 추구했다. 아주 오래전, 아리스는 유원학의 그 목표와 행동이 바보 같다고 말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 아이를 하나 키우고 있어. 정말 귀엽고 착한 아이야.”
유원학을 보며 싱긋 웃는 아리스.
그녀가 유원학을 보며 이렇게 웃기까지는 생각해보면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너희가 부러워서 시작한 일이야. 그 사람도. 너도 정말 재밌어 보이더라고.”
아리스는 후훗- 하고 웃더니 짓궂은 장난을 던졌다.
“……물론 네 아이는 아니지만.”
“농이 심하군.”
그 말에 인상을 찌푸린 유원학.
“뭐, 처음에는 그냥 변덕이었지.
중국의 검신.
한국의 권왕.
아리스의 두 동료는 전부 제자를 키우기 시작했다. 물론 아리스가 제자를 받은 건 최강의 제자를 만들겠다는 권왕과 검신의 목표와 달랐다. 그저 사소한 변덕.
“하지만 이젠 나도 욕심이 나. 궁금한 게 생겨버렸거든.”
시간이 지나고 강해지는 로렐라이를 보며 아리스의 변덕은 점차 목표로 변해갔다.
“네가 모든 걸 쏟아 부은 아이를 내 아이가 이기면 그건 어떤 기분일까 하고. ……이름이 신유성이라고 했지?”
싱긋 웃는 아리스의 이야기에 유원학은 코웃음을 쳤다.
“글쎄다! 그건 불가능할거다. 유성이 그놈은…… 날 뛰어넘는 괴물이거든.”
제자인 신유성을 자랑하며 그제야 미소를 짓는 유원학. 아리스는 입술을 움찔거리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글쎄? 그건 대봐야 알지 않을까? 로렐라이의 힘은 강하다고 이겨낼 수 있는 종류가 아니거든.”
툭.
이야기를 끝낸 아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즐거웠어.”
아리스는 십여 년 만에 또 다시 작별 인사를 했다. 어쩌면 아직도 그녀는 유원학을 원망하고 있었다.
사아아!
갑자기 아리스의 등에서 솟은 검은색의 날개.
“그래.”
유원학의 건조한 인사와 함께 검은색 날개는 아리스를 감싸더니 일순간 주위를 향해 흩날렸다.
파앗!
하늘하늘 템스 강을 향해 떨어지는 검은색의 깃털들. 유원학은 아리스가 사라진 옆자리를 바라보더니 쯧하고 혀를 찼다.
“이래서 감상적인 녀석들은…….”
하지만 그렇게 장담을 했어도 마녀 아리스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그 아리스가 전력을 다해 가르쳤다면 어떤 괴물이 탄생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뭐, 그래봤자 유성이라면 결국 이겨버릴 테지만.’
어느새 지고 있는 석양.
권왕 유원학은 템스 강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타워 브리지의 밑에는 유원학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시민과 기자들이 빼곡했다.
‘……그래도 궁금하긴 하군. 조만간 만나야겠지.’
탑의 초행길.
투신류의 5장.
유원학은 신유성과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산더미 같았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 유원학은 타워브리지의 꼭대기에서 아래를 향해 풀쩍 뛰어내렸다.
쿵!
아직 유원학에겐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