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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화 (129/434)

제129화

[히든 스테이지 시간의 방에 입장 하셨습니다.]

[퀘스트: 7일간 버티십시오.]

[정보: 시간의 방에서 보낸 시간은 현실에 적용되지 않습니다.]

보이는 건 오로지 암흑.

그 칠흑 속에서 떠올라있는 건 탑의 홀로그램이 유일했다.

팟!

하지만 그 홀로그램조차 꺼져버리자 신유성에게 남아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포켓이 작동하질 않아.’

시각이 어둠에 제한당하자 그 다음 타겟은 청각이었다. 귀가 먹먹해지더니 이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퀘스트는 일주일을 버텨야 한다고 했지만. 이래서야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가 없군.’

청각과 시각이 제한당하자. 신유성은 신체의 감각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었다.

눈을 뜨려고 해도.

몸을 움직이려고 해도.

무엇 하나 확인할 수 없는 칠흑.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공허. 마치 깊은 심해 속에서 부유하는 기분이었다.

‘……이 상태에서 7일인가.’

시간의 방에선 물을 마실 수도, 음식을 먹을 수도 없다. 이곳은 모든 오감이 제한된 공간. 평범한 사람이라면 하루만 있어도 미쳐버릴지 몰랐다. 더욱 무서운 건, 하루가 지났는지, 이틀이 지났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것.

‘치밀하게 설계된 공간이군.’

감각이란 상대적이다.

그렇기에 사람은 빛이 있기에 시각을. 소리가 있기에 청각을. 사물이 있기에 촉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의 방은 모든 감각을 제한해 도전자의 존재조차 지워버리려는 것 같았다.

‘……이런 순간일수록 필요한 게 마음의 평정.’

지금 신유성에게 닥친 상황은 처음 겪는 미지(未知)였다.

‘어떻게든 이성을 냉철하게 유지해야 해.’

신유성의 판단처럼 시간의 방을 거스르고 어떻게든 자신의 오감과 존재를 확인하려고 하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그건 마치 물이 두렵다며 바다 위에서 발버둥 치는 것과 같은 행동.

‘……공포란 무지에서 온다. 탑이 나에게서 어떤 감각을 앗아가든. 상관없어.’

신유성은 살아 있었고.

자신의 의지로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의 방이 줄 수 있는 시련은 신유성의 오감을 앗아가는 정도. 물론 평범한 사람은 1분 1초가 괴롭겠지만 신유성은 바뀐 게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곳에서 버텨야 할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7일.’

신유성은 오히려 생각을 바꾸어 시간의 방이 쥐여준 7일을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냥 보내는 것보단 차라리…….’

마침 신유성에겐 피로도를 줄여주는 탑의 버프도 있었다. 신유성에겐 일종의 도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몸의 근원 깊은 곳에서 한순간에 마나를 끌어 올렸다.

사아아아-!

그제야 신유성은 시간의 방에 들어온 지 처음으로 또렷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마나는 느껴져!’

빛은커녕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신유성의 몸 안에선 천년옥의 마나가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 감각만으로 신유성은 자신이 존재하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신유성이 기뻐한 건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수련을 할 수 있어!’

마나가 느껴진다는 건 시간의 방에서 효율적이게 수련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 신유성은 그 사실에 기뻐하고 있었다.

집중력 강화를 가진 신유성조차 그 어떤 밀실에서도 모든 감각을 지워버릴 순 없었다. 하지만 시간의 방은 달랐다.

이 지독하리만큼 고요하고 제한된 공간은 오히려 신유성에게 도움이 되었다.

‘마침, 탑의 버프도 있으니 잘됐어.’

천년옥의 강대한 마나.

신유성이 그동안 흡수에 애를 먹었던 이유는 천년옥의 마나가 가진 특이한 성질 때문이었다.

응축.

천년에 가까운 시간을 지맥에 묶여 있으면서 천년옥의 마나는 단단하게 뭉쳤다. 마치 탄소가 짓눌려 만들어진 금강석 같았다.

그 힘은 강대하지만 자유자재로 끌어다 쓰기엔 너무나도 버거운 힘. 그래서 신유성은 천년옥의 마나를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마나의 성질과 비슷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신유성은 한 가지 방법을 택했다. 바위를 쪼개 자갈을 만들 듯이, 자신의 마나로 천년옥의 마나를 부수는 것.

물론 강력하게 응축된 천년옥의 마나를 부수는 건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7일의 시간 동안 집중한다면 충분해.’

심지어 시간의 방에서 보낸 7일의 시간은 현실에선 찰나에 불과했다.

히든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서 천년옥의 마나까지 흡수할 수 있다니 신유성에겐 더없이 좋은 기회.

‘보상이 기대되는걸.’

악명 높은 탑의 히든 스테이지조차 권왕의 수련으로 단련된 신유성의 질주는 막지 못했다.

*     *      *

간단한 아침식사.

좁은 욕조에서의 목욕.

헌터 도시에서 쇼핑하기.

과자를 먹으며 공포영화 보기.

밤이 다가오자 파자마 파티까지 마치며 스미레와 김은아는 둘이서 꼬박 하루를 같이 보냈다.

이젠 짧고도 길었던 휴식을 끝내고 잠에 들 시간.

스미레와 김은아는 오르카를 베개 삼아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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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정말 즐거웠네요.”

처음 입을 연 건 스미레였다.

어쩐지 시원섭섭한 스미레의 표정.

“……그러네.”

그건 천장을 바라보는 김은아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김은아와 스미레가 겪은 경험들이 파티원으로서의, 동료로서의 경험이었다면, 오늘 겪은 경험들은 친구로서의 경험이었다.

“흐흐, 저……. 취하신 상태라곤 해도. 은아 씨가 저와 놀고 싶다고 말해주셔서 무척 기뻤어요.”

스미레의 말에 김은아는 픽- 웃으며 말했다.

“내가 뭐라고 같이 노는 정도로 그렇게 기쁘냐?”

“네? 은아 씨는 엄청 대단하죠. 저와는 다르게 똑 부러지시고……. 강하시고……. 흐흐, 그리고 무엇보다 예쁘시잖아요?”

훅 들어오는 스미레의 칭찬.

“가, 갑자기 왜 이래. 크흠! 사람 민망하게…….”

김은아는 헛기침을 했지만 역시 칭찬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김은아는 슬쩍 스미레를 향해 눈을 흘기더니 입을 열었다.

“……너도 대단해.”

“제가요?”

“요리 잘하잖아. 엄청 맛있게.”

요리가 맛있었다는 이야기에 은근히 뿌듯해하는 스미레. 김은아는 거기에 칭찬을 덧붙였다.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뭐, 나랑은 다른 거 아닐까?”

“흐흐, 그래도……. 그런 생각을 하곤 해요. 제게 조금만 용기가 있었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진 않았을 텐데……. 하고.”

스미레로선 처음 꺼내는 이야기.

‘그 사건’을 떠올린 스미레가 씁쓸하게 웃자 김은아는 여전히 천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우리. 비밀 말하기 할까? 각자 3개씩. 난 친구에겐 비밀은 없어야 한다는 주의거든.”

“앗, 3개요? 저 3개나 비밀을 가지고 있진…….”

스미레가 심각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접고 있자. 김은아는 에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바보. 아무거나 대충 말해도 돼.”

“저, 일본에서 유학 온 거. ……실은 도망친 거예요.”

처음부터 이야기를 털어놓는 스미레. 김은아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그저 담담했다.

“제가…… 능력을 폭주해서, 저 때문에…… 같은 반의 학생들이 다쳤었거든요.”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김은아는 툭하고 말을 던졌다.

“무서웠구나?”

이야기를 하던 스미레는 속을 들켰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빙긋 웃었다.

“네. 무척 무서웠어요. 저 때문에 다친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도……. 그 죄책감을 견디는 것도…….”

스미레는 숨을 골랐다.

어쩐지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유는 몰라도 이 비밀을 김은아에게만큼은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한국으로 도망쳤어요. 파티장인 키라시마 씨에게 조차 말하지 않고…….”

스미레는 막상 이야기를 전부 털어 놓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저 때문에 키리시마 씨는…… 또 한 번 상처 받으셨겠죠. 그래서 가끔은…….”

스미레는 천장을 보며 숨을 골랐다.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이기적인 제가 싫어요. 다른 사람들에겐 피해만 입히고 도망쳤으면서. 유성 씨의 파티에 들어와서…… 다행이라고 안도하는 제 자신이 창피해요.”

스미레의 이야기가 끝나자. 김은아는 미간을 찡그렸다.

“야.”

“에, 네?”

김은아의 부름에 스미레가 고개를 돌리자.

투욱!

김은아는 양 손바닥으로 스미레의 볼을 눌러 자신을 바라보도록 고정했다.

“으헥!? 으, 응나 씨?(은아 씨?)”

“그게 뭐가 창피하고 뭐가 이기적이냐?! 좋은 사람을 만나면 당연히 기분이 좋은 거지! 일본에 있었으면 못 만날 뻔했네! 하고 안도할 수도 있는 거고! 맞아 아니야?”

갑자기 열변을 토하는 김은아.

볼을 붙잡힌 스미레는 힘겹게 중얼거렸다.

“그, 그치마…….”

“그치만은 무슨 그치만이야! 맞아 아니야!?”

“마자요…….”

툭.

대답을 들은 김은아는 그제야 스미레의 볼을 놓아주었다. 그다음은 자신을 진정시키려 옅게 한숨을 쉬었다.

“……네가 이기적이면. 세상 사람들은 다 이기적이게? 절대 그런 생각하지 마. 알았어?”

“으, 은아 씨…….”

스미레가 위로에 울먹거리자. 김은아는 할 수 없다는 듯 자신의 품을 내주었다.

“……뭔 걸핏하면 울어. 이리와.”

스미레를 끌어안아 쓰다듬어주려는 김은아.

포옥-

하지만 김은아는 오히려 스미레의 품에 안겨버렸다. 거기다 이번에도 스미레가 먼저 김은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흑, 감사해요……. 은아 씨가 그런 말을 해주시다니…….”

위로를 하려던 김은아는 순식간에 스미레의 품에 안겨 머리를 허용하고 있었다.

쓰담쓰담.

“저, 은아 씨가…… 파티원이라서 흑, 너무 기뻐요!”

결국 스미레가 엉엉 울기 시작하자. 김은아는 자포자기하고 말았다.

‘……그냥 이렇게 있어야겠다.’

그렇게 한차례 소란이 지나가고 안정이 된 스미레는 다시 천장을 보며 물었다.

“……근데 은아 씨의 비밀은 뭐에요?”

“나? 네 비밀에 비하면 별 거 아니야. 그냥…….”

김은아는 멋쩍게 웃더니 스미레의 귓가에 속삭였다.

“안 말해줄래~”

의외의 대답에 벙 쪄버린 스미레.

김은아는 평소처럼 소악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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