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28화 (128/434)

제128화

투신류 폭룡암쇄장(暴龍巖碎掌)

콰아아앙!!

매서운 돌풍과 함께 흩날리는 흙먼지. 힘을 조절하지 않은 신유성의 폭룡암쇄장은 가공할 파괴력으로 일순간에 렉스보어를 형체도 없는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크릉! 크응!”

칼드보어의 전투는 우두머리를 따라 경로의 모든 걸 짓밟아버리는 돌진으로 시작되어 끝난다. 그러나 신유성의 일격에 우두머리를 잃은 칼드보어들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크응! 킁킁!”

“크응!”

콰앙!!

그때 대검남이 휘두르는 대검이 칼드보어 중 하나의 머리통을 깨부쉈다. 끼으으윽! 괴음과 함께 쓰러지는 칼드보어.

“잡았다! 오른쪽을 부탁해!”

“맡겨두셔!”

곧바로 안경녀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결국 땅에서 솟기 시작하는 나무 덩굴. 칼드보어의 진형이 무너지자자. 남아 있던 칼드보어들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키잉! 킹!”

“크릉 킁킁!”

신유성은 그 광경을 보며 만족했는지 미소를 지었다.

‘1분도 채 안 걸렸군.’

[렉스보어 토벌 완료.]

[3층 입장 조건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해당 층의 히든 몬스터 등장 확률이 0.025% 올라갑니다.]

[렉스보어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한 헌터는 탑의 축복을 받습니다.]

탑이 보여주는 홀로그램을 읽으며 신유성은 살짝 웃었다.

‘탑의 축복이라……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나쁘다고 해야 하나.’

[축복: 렉스보어의 강인함]

[효과: 7일간 신체에 누적되는 피로도가 낮아집니다.]

축복은 특정 보스의 토벌이나 퀘스트를 클리어할 시 탑에서 내려주는 일종의 버프였다. 2층을 클리어하는 정도로 버프를 내려주는 건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역시 2층인가.’

신유성은 운이 좋게 축복을 받았지만 그 효과가 너무 미약했다. 특성이나 스킬의 잠재력을 끌어올리거나 영구적으로 마나를 증가시키는 버프도 있는 걸 감안했을 때, 렉스보어의 축복은 효과가 미비했다.

‘그래도 전투가 아닌, 수련을 할 때는 분명 도움이 되겠어.’

신유성은 렉스보어의 축복조차 백분 활용할 생각이었다. 마침 신유성의 몸속에는 갈무리 중인 천년옥의 마나가 있었다.

‘……이 버프가 있다면 좀 더 효율적으로 천년옥의 마나를 흡수할 수 있겠지.’

스케줄을 생각하는 신유성의 앞에 갑자기 처음 보는 알림이 떠올랐다.

[히든 스테이지 해금 완료!]

‘……이건?’

한편.

“저, 저기?”

신유성의 실력을 확인한 현역들은 아까와는 다르게 신유성에게 다가오는 걸 어려워하고 있었다.

“근데 저 학생은 대체…….”

조금은 겁을 먹은 머리핀녀.

“……와, 너 정말 엄청나구나.”

안경녀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봐도 신유성은 자신보다 훨씬 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학생인데도 ……5급은 그냥 넘겠는데? 이게 가온이냐?”

“저도…… 가온 출신인데요?”

머리핀녀가 슬쩍 손을 들자. 안경녀는 고개를 저었다.

“다 저런 건 아닌가 보네.”

현역들 사이에서도 신유성의 실력은 뛰어났다. 상황이 이쯤 되니 신유성조차 유원학의 이야기에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스승님과 비슷한 실력을 가진 헌터라는 거. 정말 있는 걸까?’

하산하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유원학이 해준 이야기 중 몇몇은 거짓말이었다. 그중 가장 심한 거짓말이 바로 헌터들의 강함에 대한 것.

[잘 들어라. 유성아. 무신산의 바깥에는 6급 보스 정도는 손가락으로 죽일 수 있는 헌터들이 즐비하고. 학생들조차 5급 보스는 손쉽게 썰어버리지.]

[현역 정도면 보통 다 나 정도는 싸운다 이 말이다!]

그러나 무신산을 나와 보니 손가락으로 6급 보스를 죽이는 그런 헌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 정말 그런 헌터가 있다면 스승님이겠지.’

그에 버금가려면 권왕 유원학의 동료였던 검신이나 마녀정도. 지금까지 신유성은 무신산에서 유원학에게 단단히 속고 있었다.

‘물론 전부 날 위해서 하신 말씀이지만.’

신유성이 유원학을 떠올리며 웃고 있을 때 3명의 헌터들은 무리를 지어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근데 얘만 있으면 우리 10층도 갈 수 있는 거 아냐?”

탑의 10층에서 어떤 퀘스트가 주어질진 모르지만 안경녀의 말처럼 전력은 충분했다. 그러나 대검남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겨우 10층? 조금만 정비하면 20층도 어렵진 않을 거 같은데? 나도 나름 무투파인데 쟤는 진짜 강해.”

“헉, 20층!? 그럼 우리 진짜 운 좋은 거 아냐?”

안경녀가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탑에서 20층이면 어지간한 길드는 전부 프리패스가 되는 수준. 중소 길드라면 중직을 맡을 수도 있었다. 즉, 탑의 기록은 현역 헌터에게 일종의 스펙이었다.

“20층…… 정말 상상하기만 해도 좋네요.”

머리핀녀는 힐끔 갑자기 노골적으로 신유성에게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저기, 너 5층까지 간다고 했지?”

신유성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묻는 머리핀녀.

“네.”

“그러지 말고. 우리랑 같이 10층에 가지 않을래? 네가 원한다면 준비를 해서 20층도…….”

신유성을 차지하고 싶었던 머리핀녀의 조심스러운 부탁. 하지만 신유성은 단호했다.

“죄송합니다. 이미 정해둔 파티가 있어서요. 그리고 오늘은 컨디션이 나빠서…….”

“크흐,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쩝…….”

못내 아쉬워하는 대검남.

신유성은 파티원의 멤버들을 훑어보았다.

‘……나 혼자서 기록할 수 있는 건 5층까지. 굳이 혼자서 주말에 탑을 올라갈 이유는 없지.’

그리고 함께 탑을 올라갈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알림: 탑의 2층에서 6번 히든 스테이지의 해금 조건을 모두 충족했니다.]

[조건1-첫 토벌이 보스몹일 것.]

[조건2-일격에 죽일 것.]

[조건3-그 보스몹의 보상으로 버프 획득할 것.]

[조건을 충족한 자만이 히든 스테이지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히든 스테이지 이름: 시간의 방 ]

방금 전 보았던 탑의 홀로그램.

그곳엔 탑의 층수와 관계없이 열리는 히든 스테이지의 정보가 적혀 있었다. 신유성이 히든 스테이지의 해금 조건을 채운 것이다.

‘오직 나만이 입장할 수 있어.’

굳이 진짜 파티원도 아닌 일행들에게 이 사실을 알릴 필요는 없었다.

“그럼 다음에 보자! 예쁜이!”

멀리서 안경녀가 손을 흔들며 일행들과 사라져 갔다. 신유성은 그제야 워프석 앞에 섰다.

‘……히든 스테이지.’

난이도는 그야말로 천차만별.

히든 스테이지는 클리어를 위해 어떤 조건을 충족시켜야 할지 들어가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6급 보스몬스터를 잡아야 할 수도 있고, 아주 간단한 조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용기의 대가인지는 몰라도 히든 스테이지의 보상은 대부분이 아주 강력하다.

그중에는 스미레가 가진 파편의 경우처럼, 태생적인 특성을 강화시켰다는 소문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겁을 먹고 놓칠 수 없는 기회야.’

마침 이번 스테이지는 조건을 해금한 신유성 혼자 입장을 할 수 있는 장소. 파티원 없이 신유성이 혼자 있는 지금이 적기였다.

사아아!

판단을 내린 신유성이 손에 마나를 싣자.

‘물러서지 않는다.’

흰색 빛이 신유성을 휩쓸었다.

*     *      *

친한 친구가 생기면 꼭 해보고 싶었던 김은아의 버킷리스트.

[3. 과자 먹으며 공포영화 시청]

그중에서도 당당하게 3번을 차지한 건 영화시청이었다. 재벌의 후계자라기엔 소박한 목표. 하지만 김은아가 정말 믿을 수 있는 동성 친구를 사귄 건 스미레가 처음이었다.

와작! 와작!

거기다 김은아는 혼자라면 절대 먹지 않았을 팝콘까지 맛있게 집어 먹고 있었다.

“야 근데 베란다에 무슨 소리냐?”

쥬으으읍-

스미레는 빨대로 콜라를 들이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빗소리에요. 아까부터 내리기 시작했어요.”

“왜 으스스하게……공포영화 볼 때 비가 내려?”

김은아는 좀비 영화 정도는 무섭지 않다고 장담을 했지만 영화가 시작하자. 스미레의 곁에 꼬옥- 붙어 있었다.

“후후, 그래도 아직 무서운 장면은 없었는데요?”

“그건 그렇지…….”

김은아가 다시 와작- 팝콘을 입에 집어넣고 있을 때, 영화에선 카우보이 모자를 쓴 남자가 여주인공을 말리고 있었다.

[헤이! 베나! 돈트 오픈 더 도얼~! 컴온!]

문을 열지 말라고 말하는 남자.

“아니! 진짜 왜 열어주려고 그래!? 바깥에 뭐가 있을지 알고?”

카우보이VS좀비VS사무라이

B급으로 유명한 영화의 스토리에 잔뜩 몰입한 김은아.

“후훗, 그래야 재밌는 장면이 나오니까요?”

스미레는 그런 김은아가 귀엽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이런 걸 보면 역시 은아 씨는 정말 귀여우셔.’

[노오! 히! 이즈~ 쟌슨!]

하지만 김은아의 투정에도 불구하고 여주인공은 굳이 동료가 분명하다고 확신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벌컥!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휑한 문 앞.

[……쟌슨?]

어리둥절한 상황에 여주인공이 작게 읊조린 순간.

[키에에에에엑!]

옆에서 덮쳐오는 보라색 좀비.

화면에는 끔찍한 좀비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며 여주인공은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아악!]

그러나 스미레의 예상과 달리 김은아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대신 부서져라 스미레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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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욱!!

무서우면서도 굳이 겁을 먹지 않은 척 두 눈에 힘을 주고 화면을 노려보고 있는 김은아. 반면 스미레는 여유롭게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은아 씨. 귀여워.’

[탕!]

영화 속의 카우보이가 총을 쏴서 좀비를 맞추자.

[키에에에에!! 캬악!]

머리통이 날아가며 쓰러지는 좀비.

그제야 한숨을 돌린 김은아는 잔뜩 몰입한 얼굴로 자신의 플랜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지, 진짜 바보네. 나였으면 화장실에서 샴푸 챙겨서. 2층 침대 밑에 숨는다. 냄새랑 발소리만 안 나면 좀비도 모른다고 했으니까.”

“와, 진짜네요. 그렇게 버티고 있으면 헬기가 도착하지 않을까요?”

스미레가 신기하다는 얼굴로 맞장구를 쳐주자.

“그치? 식량은 아까 3층에서 콩 통조림 있다고 했으니까. 수통에 수돗물만 담으면 되잖아.”

신난 얼굴로 눈을 빛내는 김은아. 스미레는 김은아의 등을 쓰다듬어주며 생각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김은아의 말처럼 행동하지 않는 이유는 당연히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캐릭터들이 철두철미하게 행동하면 영화는 시작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스미레는 굳이 김은아를 지적하지 않았다.

‘……몰입하셨어. ……귀여워.’

그저 스미레는 김은아의 행동에 흐뭇하게 영화를 바라볼 뿐, 동성 친구가 생겨서 기쁜 건 스미레도 마찬가지였다.

‘……친구와 같이 영화를 본다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이구나.’

신성그룹이라는 배경 때문에 진실한 관계의 친구를 사귀기 힘들었던 김은아.

‘그 사건’ 이후 낮아진 자존감으로 친구가 없었던 스미레.

그러나 동료가 된 둘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휴식은 그 연장선. 김은아와 스미레의 관계는 점점 돈독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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