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화
연회가 끝난 다음날.
대부분의 학생들이 쉬는 주말임에도 신유성이 도착한 곳은 의외의 장소였다.
헌터 협회. 학원 도시 지부.
헌터를 지망하는 수많은 학생들 중에서도 최상급 대우를 받는 학생들이 아니면 드나들 수 없는 곳.
“……이틀이나 연속으로 보게 되었군요. 학생과 이렇게나 자주 보게 되다니. 조금은 정이 들어버릴지도 모르겠네요.”
메이린이 옅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자. 신유성은 같이 웃어주었다.
‘이제 이런 식의 인사도 해주시네.’
사무적이었던 메이린과 조금은 친해졌다는 증거. 메이린은 익숙한 어투로 관계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G-3번 포탈의 도착 장소를 탑으로 지정해주십시오. 포탈 안내원은 필요 없습니다. 제가 직접 동반할 테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간결한 대답과 함께 포탈을 작동 시키는 관계자.
지이잉!
메이린은 포탈에 들어가기 전.
신유성에게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려고 했다.
“신유성 학생은 강합니다. 저층 구간의 클리어는 간단하겠죠. 하지만 저층 구간에서도 조심해야 할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을 하려다가 멈춰버리는 메이린. 그녀는 준비가 탄탄한 사람을 정말이지 좋아했다.
덕분에 만반의 준비를 하는 신유성의 성격은 여울룡의 공략에서 메이린의 호감을 샀었다.
‘설마 이번에도?’
메이린은 신유성을 쳐다보더니 혹시나 하는 얼굴로 물었다.
“신유성 학생. 탑의 저층 구간에서도 조심해야 할 3가지 이유. 혹시 알고 계신가요?”
메이린의 갑작스런 질문에 신유성은 잠깐 생각에 빠졌다.
‘……저층에서도 벌어지는 탑의 변수?’
그냥 탑으로 규정하자면 탑의 변수는 너무 많았다. 탑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곧 변수였으니까.
같은 30층이라도, 탑은 시기에 따라 아예 다른 스테이지가 나오곤 한다. 언제 바뀔지 모르는 스테이지의 로테이션과 클리어가 되어야 알 수 있는 랜덤한 보상, 그리고 항상 목적이 다른 퀘스트들이 모여 탑을 예측할 수 없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저층에는 그렇게까지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지.’
탑은 10층까진 퀘스트라고 할 게 없다. 오직 상층부를 향해 돌파하는 것뿐. 그저 탑이 원하는 몬스터를 처치해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게 전부다.
‘……하지만 장소는 탑. 그 몬스터들도 각각 차이가 있지.’
신유성은 기억을 더듬어 유원학이 해준 말을 떠올렸다.
[……탑이란 곳은 말이다. 워낙 제멋대로라서 말이지. 항상 주변을 잘 살펴야 한다. 유성아.]
[네!]
아직 어렸던 신유성에게 유원학이 강조했던 3가지.
“아마 3가지 이유라면. 히든 몬스터와 챔피언 보스. 그리고 히든 스테이지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신유성의 대답에 메이린은 흐뭇한 표정으로 웃었다.
“정확하군요. 그럼 히든 몬스터와 챔피언 보스의 차이는 무엇이죠?”
이제 메이린은 정답으론 만족할 수 없는지 신유성에게 해설까지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신유성의 대답이 관심을 끌었다는 이야기.
신유성은 자신 있게 입을 열었다.
“……히든 몬스터는 아주 극히 드문 확률로 층과 관계없는 괴수가 등장하는 것. 그저 변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챔피언 보스는 다릅니다.”
“……히든 몬스터에 대한 설명은 완벽하군요. 후훗, 챔피언 보스는 어떻게 다르죠?”
메이린이 웃음을 띄우며 묻자. 신유성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바로 설명을 시작했다.
“기존의 보스가 특정한 조건을 갖췄을 때 새롭게 진화하는 것입니다. 그 진화는 서식지와 조건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도 극히 드문 특수한 케이스. 10층 이하에선 20건 정도밖에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교과서를 편 듯 완벽한 설명.
쉽게 말하자면 히든 몬스터는 뜬금없이 강한 몬스터가 나오는 경우.
반면 챔피언 보스는 기존의 보스가 특별한 이유로 강해진 경우였다.
그렇게 신유성의 설명이 끝나자 메이린은 박수까지 치며 감탄했다.
“정말이지. 완벽한 설명이군요. 이론 성적은 스미레 학생만 높아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메이린은 이번엔 자신이 ‘히든 스테이지’에 관한 설명을 시작했다.
“히든 스테이지는 원래 목표로 한 장소가 아닌 곳으로 워프 되는 경우입니다. 어떤 변수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후퇴를 추천하지만……. 신유성 학생이라면 알겠죠?”
“포탈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도착한 곳에 워프석이 없는 경우도 있죠.”
모든 질문에 답변한 신유성.
메이린은 잔뜩 만족한 얼굴이었다.
“……학생임에도 벌써부터 문무를 모두 갖추시다니. 역시 회장님께서 아끼시는 이유가 있으셨군요.”
평소라면 하지 않을 칭찬까지 해주는 메이린.
“과찬이세요.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도. 모르는 것도 많습니다.”
신유성이 겸손하게 웃자.
메이린은 턱에 손등을 괴고 빤히 신유성을 바라보았다.
‘……착하고 똑똑한 데다 잘생기고 실력까지 강하다? 정말 어딜 가도 예쁨 받을 타입이군.’
하지만 메이린은 신유성을 탐내지 않았다. 신유성을 찜한 건 다름 아닌 권왕 유원학과 협회장 강유찬. 아무리 6급 헌터라도 자신이 비빌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사아아!
준비가 끝났는지 푸른빛을 내며 작동하는 포탈. 메이린은 몇 번이나 포탈의 위치를 확인한 후 신유성을 안내했다.
“포탈을 통과하면. 탑의 1층일 겁니다. 이번에는 저와 같이 입장하도록 하죠.”
스으윽!
포탈의 안으로 먼저 들어가는 메이린. 신유성은 주먹을 꽉 쥐는 걸로 가볍게 마음의 준비를 했다.
‘탑은 어떻게 생겼을까?’
신유성은 탑에 대해서 항상 이야기로만 들었다. 이야기를 해준 사람은 당연히 스승인 유원학.
[일단 탑의 1층만 가게 되어도 넌 느끼게 될 거다. 세상에 헌터가 얼마나 많은지!]
[네가 얼마나 강해져야 하는지!]
호탕하게 웃던 유원학의 웃음을 떠올리며 신유성은 포탈의 너머를 향해 걸어 들어갔다.
사아아아!
가슴에 품은 미지에 대한 기대감.
포탈을 걸어 나오자. 신유성의 눈앞에는 상상도 못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8층 돌파할 헌터? 여기 이탈리아인도 한국어 잘해요! 1자리 남았어요! 빨리빨리!”
“……Andiamo e basta.(……그냥 출발하자.)”
함께 탑을 돌파할 멤버를 구하는 한국인 여자와 이탈리아 남자.
[헌터 용품 수리/매입/판매!]
[마석 환전소]
[헌팅 의뢰소(3급~5급)]
탑의 1층에 자리한 다양한 목적의 가게들. 수많은 인파가 뒤엉킨 탑의 1층은 마치 광장이나 시장을 방불케 했다.
“……여기가 탑?”
신기한지 주변을 둘러보는 신유성.
“항상 이런 건 아니지만. 1층은 대부분 이렇죠. 여정이 시작되는 장소니까요.”
메이린은 안내를 해주려고 가게들을 하나씩 손으로 가리켰다.
“포탈 비용이 아까운 헌터들은 이렇게 1층에서 재정비를 하곤 합니다. 고장 난 헌터 용품을 고칠 수도 있고. 숙소에서 쉬기도 합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탑의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선 접수소의 워프석을 사용해야 하죠.”
메이린이 신유성을 이끌고 간 곳은 그녀의 말처럼 워프석이 놓인 접수소. 메이린은 안내원에게 강유찬이 줬던 허가서를 내밀었다.
“확인되었습니다. 그럼 참가자는 신유성 헌터님 혼자이신가요?”
허가서를 확인하자 생글생글 웃어주는 안내원. 메이린은 참가자인 신유성에게 의사를 물었다.
“지금 혼자서 체험을 할 수도. 나중에 파티원들과 함께 올 수도. 아니면 이곳에서 현역들과 멤버를 모을 수도 있습니다. 신유성 학생. 어떻게 하실 거죠?”
메이린의 질문에 신유성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곤 하는 짧은 고민.
‘역시 난…….’
생각을 마친 신유성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 * *
아침이 되자 커다란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 김은아는 눈을 비비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여긴…….’
푹신한 침대와 부드러운 이불.
자신의 집이라기엔 검소한 수준의 가구들. 김은아가 멍한 얼굴로 눈을 비비적거리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일어나셨군요?”
목소리의 정체는 티셔츠를 입고 싱글싱글 웃고 있는 스미레. 김은아는 뭔가 허전한 기분에 시선을 내려 재빨리 자신의 옷차림을 확인했다.
‘……이 옷은 뭐야?’
자신이 입고 있는 건 가슴이 너무나도 헐렁한 티셔츠.
“아으…… 머리야. 여기…… 기숙사지?”
김은아가 티라미수의 숙취에 이마를 짚고 말하더니 스미레를 흘겼다.
“근데 스미레. 나 여기 왜 있어? 여기는 네…… 집 아냐?”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김은아가 질문을 하자 스미레는 멋쩍게 웃었다.
“그게 은아 씨가……. 꼭 저랑 가고 싶다고 떼를 쓰셔서…….”
“앵? 뭐!? 내가?”
절대 그럴 리 없다며 기억을 짚어보는 김은아. 하지만 옅은 기억 속에서 김은아는 어제의 자신이 조금씩 떠올랐다.
[나아아~ 시러~ 오늘은 혼자 자기 시러~ 아 싫어어~ 저택 말고~ 나 파티 애들이랑 잘래.]
술에 취해서 떼를 쓰는 자신.
[……스미레에. 나 좋아?]
[꺄아!? 네!? 네! 좋아요!]
[흐흣, 나도 좋아~ 그럼 같이 자! 만약 나랑 안자면 나 시러하는 거야…….]
기억이 떠오를수록 김은아의 얼굴은 점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미, 미안……. 나 어제는 좀 상태가 이상했거든…….”
결국 다급히 사과하는 김은아.
스미레는 웃으며 김은아의 침대 위에 미니식탁을 펴주었다.
“자! 여기 아침밥입니다.”
“뭐야, 죽이네?”
“아침이니까. 소화가 쉬운 걸로 준비해봤어요! ……흐흐, 어제는 저희 모두 과식을 했으니까요.”
그렇게 말을 하며 귀엽게 자신의 배를 통통 두드리는 스미레. 김은아는 숟가락으로 죽을 한 입 집어 먹더니 눈을 빛냈다.
‘마, 맛있다…….’
김은아의 기준에선 이상하게도 셰프가 한 음식보다 스미레의 평범한 죽이 맛있었다.
정말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일.
김은아는 천천히 죽을 퍼먹더니 뒤늦게 스미레에게 물었다.
“근데 유성이는?”
“아, 유성 씨는 오늘 탑으로 견학을 가셨어요.”
“혼자서?”
어쩐지 섭섭해 보이는 얼굴의 김은아.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불현듯 몰려오는 기억에 김은아는 숟가락질을 멈췄다.
[응? 나, 그것보단 유성이 마싯는 거 머겨주러 왔는데…….]
[유성이~ 내가 주는 거. 잘 바다머거~ 아기새 같아.]
그리고 어젯밤에 있었던 모든 기억이 떠오르자 김은아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 그냥 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