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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화 (124/434)

제124화

어떻게 찾았는지 티라미수에 잔득 취한 채 테라스를 습격한 김은아.

“……으, 으나야?(은, 은아야?)”

볼이 잡아 당겨진 신유성이 당황한 표정으로 웃자. 김은아는 고개를 좌우로 까닥- 까닥- 움직이며 붉어진 얼굴로 헤실헤실 웃었다.

“응! 왜에~?”

티라미수에 들어간 칼루아의 평균 도수는 20도에서 26도. 소주보다도 훨씬 도수가 높았다. 물론 티라미수의 다른 재료와 함께 가공을 거친 탓에 이 정도로 취하는 경우까진 없었지만. 김은아는 알코올에 너무나도 약했다.

“으, 은아 씨! 흐익, 그, 그렇게 당기면! 유성 씨의 볼이!”

신유성의 당겨진 볼을 걱정하며 울상이 된 스미레. 김은아는 드레스 차림에도 폴짝 뛰어 신유성의 등에 업혔다.

꽈악.

지금 김은아의 모습은 마치 어미에게 붙은 코알라 같았다.

“은아씨! 그러시다간 보일 지도 몰라요!?”

스미레는 화들짝 놀라더니 말려들어간 김은아의 드레스를 재빨리 만져주었다.

김은아는 스미레가 자신을 내리려고 한 줄 알았는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시러! 시러! 시러어……. 안 내려가! 나도 끼워죠오…….”

처음 듣는 김은아의 혀 짧은 소리.

“네! 끼워 드릴게요!”

김은아가 취한 걸 눈치 챈 스미레가 재빨리 대답하자. 김은아는 신유성의 등에 얼굴을 가리고 슬쩍 스미레에게 눈을 흘겼다.

“……진짜아?”

“네! 당연히 진짜죠!”

“나아…… 섭섭했서. 디저트도 가져왔는데 계소옥…… 너희끼리만 있구우…….”

취기 때문인지 방금 전 느꼈던 질투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김은아. 스미레는 동생들을 돌본 경험을 백분 살렸다.

“에?! 절대 아니에요! 파티장님과 저는 이야기만 끝내고 바로 은아씨한테 가려고 했어요!”

“진짜아? ……진짜루?”

“네! 진짜!”

김은아는 그제야 신유성의 목을 감싸던 손에 힘을 점점 풀더니. 슬그머니 등에서 내려왔다.

“……나 있지이이~ 너희가 엄~ 청! 좋다?”

김은아는 몸을 배배꼬며 평소에는 부끄럽다고 절대 하지 않을 애정 표현을 잘도 했다.

‘……귀, 귀여워.’

스미레는 그런 김은아를 보자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저도! 은아 씨가 엄~ 청! 좋아요!”

결국 김은아의 애교를 받아주며 과장된 팔 동작으로 자신의 애정을 강조하는 스미레.

“흐흐, 정말루? 왜에~?”

효과는 좋았다.

곧바로 김은아의 관심은 스미레에게 쏠렸다. 김은아는 스미레의 팔에 찰거머리처럼 딱 달라붙더니 고개를 까닥- 까닥- 좌우로 움직였다.

“나~ 왜 좋아? 으응~ 예뻐서~?”

배시시 웃으며 스미레에게 잔뜩 애교를 부리는 김은아. 제법 난이도가 높은 상황에도 스미레는 재빨리 칭찬을 쏟아냈다.

“저, 저랑 달리! 은아 씨는 자신감이 넘치시고! 예쁘시고…… 멋있으시고……. 그리고 저희 파티원이시니까요!”

스미레의 이야기가 감동적이었는지 갑자기 눈이 커지는 김은아.

“아, 마자……. 파티원…….”

김은아는 우우- 하고 소리를 내더니 스미레를 껴안았다.

“나아, 쫓아내면 안대……. 얘드라 우리…… 평생 같이 있자아~?”

무슨 이유인지 취한 김은아가 약한 모습을 보이자. 스미레는 단호하게 받아주었다.

“당연하죠! 저희는 평생 함께인걸요! 무슨 일 있어도 반드시!”

모처럼 다시 동료 간의 우정을 확인한 김은아와 스미레. 잔뜩 어리광을 부리는 김은아의 모습을 보며 신유성은 생각했다.

‘……일본에서의 일 때문이구나?’

김은아는 갑작스런 가족의 일 때문에 국가대항전에 참여하지 못했다. 물론 신유성이 그 일을 탓 한 적은 없었지만 김은아의 성격상 마음에 담아둔 게 분명했다.

‘……은아는 생각보다 섬세하단 말이지.’

김은아의 겉모습은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알고 보면 모두 ‘척’에 불과했다.

강한 척.

외롭지 않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그러나 정작 김은아의 진짜 성격은 도도한 고양이보다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토끼에 가까웠다.

‘오히려…… 이런 쪽에서 강한 건 스미레인가.’

반면 스미레는 일본에서 겪은 ‘그 사건’ 이후 낮아진 자존감을 점점 극복해내고 있었다.

잇신을 마주하고 따낸 승리가 그 증거. 신유성은 파티장으로서 항상 파티원들의 성장을 고려하고 있었다.

‘이번 대항전에서 주력 멤버인 만큼……. 빨리 은아가 기운을 차려줘야 할 텐데.’

그러니 신유성은 김은아가 빨리 마음의 짐을 털어내는 편이 좋았다.

이 모든 건 국가대항전의 결과와 파티의 전투력을 증강하기 위함. 신유성은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에 빠졌다.

‘등반도 은아와 스미레를 위주로 스케줄을 짜두었는데. 페이스가 무너지면…… 큰일이니까.’

등반. 

탑을 오르는 과정.

신유성이 갑자기 등반을 마음먹게 된 건 어제 도착한 메이린의 메시지 덕분이었다.

[美琳(Meil-in):협회장님께서 신유성 학생에게 보낸 허가증이 하나 있습니다.]

[美琳(Meil-in):일단 직접 확인하시는 편이 빠르시겠죠.]

띠링! 팟!

신유성이 포켓으로 메시지의 확인 버튼을 누르자. 알람과 함께 서류 형태의 홀로그램이 펼쳐졌다.

[탑 출입 허가증]

[1차 목표:10층]

[허용 인원 5명]

[※주의:1차 목표를 채우면 관리자가 재차 확인 필요.]

메이린에게 전달받은 건 탑 출입 허가증. 이 물건만 있다면 최대 5명의 파티원이 등반할 수 있었다.

물론 이시우가 개인 수련으로 빠져버린 지금, 등반이 가능한 파티 인원은 에이미를 포함해도 4명. 여기서 만약 에이미가 방송 스케줄로 빠져버린다면 인원은 3명.

최악의 경우 신유성은 김은아와 스미레만 데리고 등반을 해야 할 수도 있었다.

‘물론 그만큼 은아와 스미레가 강해지긴 하겠지만……. 그래도 밸런스가 맞는 편이 좋을 텐데.’

시선을 앞으로 고정한 채 곰곰이 생각에 빠진 신유성. 김은아는 그런 신유성을 도끼눈으로 흘겼다.

“유성이 너어……. 지금! 진지한 생각하지? 자꾸 그러며언…… 또 꼬집어 준다?”

김은아는 짧아진 혀로 나름 협박을 하더니 테라스 구석으로 성큼 성큼 걸어갔다.

툭.

그리곤 테이블에 앉는 김은아.

팡팡!

김은아는 스미레와 신유성을 바라보며 의자를 두드렸다.

“……바보야. 오늘 가튼 날은 좀 쉬어도 대. 진지한 생각 금지!”

톡-

혀 짧은 소리를 낸 김은아는 포켓을 건드리더니 하나둘 음식이 담긴 접시를 꺼냈다.

“우, 우와…… 은아 씨가 직접 담아 오신 거예요?”

그 광경은 옆에 앉은 스미레를 놀라게 만들었다. 현대의 공주나 다름없는 김은아가 직접 나서서 음식을 담아 오다니. 김은아의 본래 성격을 생각하면 연상하기 힘든 봉사였다.

“응응! 흐흣, 나 잘했지?”

칭찬해달라는 듯이 머리를 들이미는 김은아.

‘……귀, 귀여워.’

스미레는 못 참겠다는 얼굴로 입가를 이죽이더니 김은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잘했어요~ 훌륭해요~”

“아흐흐~ 그 정도는 아닌데에~”

스미레의 칭찬에 잔뜩 신이 난 김은아는 비스킷 하나를 집었다.

“내가 너희 먹여주께. 스미레 아~”

직접 스미레에게 비스킷을 먹여주는 김은아. 스미레는 비스킷을 받아먹더니 입을 우물 우물거리곤 환하게 웃어주었다.

“맛있어요!”

스미레의 칭찬.

김은아의 시선은 이제 다음 차례인 신유성으로 옮겨갔다.

“유성이는 단 거 조아하니까. 초코칩 쿠키! 유성이~ 아~”

“……으, 응.”

아이 취급을 받은 신유성이 떨떠름하게 입을 벌리자. 김은아는 분한 듯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엉덩이를 콩콩 거렸다.

“으응-! 유성이 더 크게~ 아~”

결국 순순히 입을 벌리는 신유성.

김은아는 그제야 만족한 듯 집적 신유성의 입에 초코칩 쿠키를 넣어주었다.

“마싯지? 그치?”

여전히 취기가 감도는 붉은 얼굴로 신유성을 향해 헤- 하고 웃는 김은아. 그렇게 테라스에서 조촐한 파티를 벌이길 1시간.

“은아. 잠들었네.”

신유성은 아무렇지 않게 파삭- 비스킷을 베어 물며 김은아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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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응……. 흐흐……. 오르카~”

당사자인 김은아는 잠꼬대까지 하며 스미레의 무릎에 누워 있었다. 스미레는 쉿- 하고 신유성에게 주의를 주더니 작게 속삭였다.

“……은아 씨는 깨시지 않도록. 제가 조심해서 기숙사에 데려갈게요.”

스미레에겐 데스나이트와 릴리스를 비롯한 든든한 언데드 군단이 있었다. 무게가 가벼운 김은아를 옮기는 건 일도 아니었다.

“스미레. 정말 괜찮겠어?”

신유성의 물음에 스미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내일. 주말이니까요.”

잠든 김은아를 부드러운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스미레.

그때.

지이이잉.

누군가의 메시지로 포켓이 울렸다.

[6月:오랜만이야. 동생.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도저히 누군지 유추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닉네임. 하지만 그 뒤에 온 메시지를 보자. 정체를 눈치 챈 신유성은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6月: 내가 누나를 대신해서 너에게 할 말이 있단다.]

‘이 사람은…….’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질긴 악연인 신오가문의 일원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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