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8화
타아앙-!!
강렬한 폭음과 함께 쏘아진 탄환.
파악!
이시우의 사격은 완벽했다. 탄환은 언제나 과녁의 정중앙을 꿰뚫었다. 절대 총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지금 그는 총을 잡고 있었다.
‘……처음부터 안일한 생각이었어.’
타앙! 타앙! 타앙!
권총을 든 이시우에겐 가늠쇠도 동력원도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저 감각을 이용한 속사로 과녁판을 전부 박살내버렸다.
이것이 바로 어린 시절을 통째로 바친 노력의 결과.
‘……아버지 때문에 활을 사용하겠다고?’
이시우는 재장전과 동시에 허리춤에서 쌍권총을 꺼내더니. 공중을 향해 권총을 돌렸다.
철컥! 팽그르르-
양손에 하나씩 권총을 잡고 쏴버리는 이시우.
팟! 탕탕-!
‘……아버지한테 손을 뻗는 건 죽기보다 싫지만.’
결국 이시우는 패배를 통해 마음을 정했다. 자신이 선택해야 할 길을 알게 되었다.
[……유성아. 금방 돌아올게. 미안, 이건 나를 위한 시간이야.]
[기다릴게. 시우야.]
‘짐짝이 될 바엔 그만두고 말지.’
이시우는 아버지와 총에 대한 복잡한 마음보다. 아직도 자신을 믿어주는 신유성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파티에 남고 싶다면 적어도 짐이 되지 않을 정도까지는…… 강해지는 거야.’
지금은 자신이 투정을 부릴 때가 아니었다. 결국 이시우는 자존심을 굽히고 오히려 자신이 먼저 아버지에게 머리를 숙였다.
[제가 틀렸고, 아버지 말이 맞았어요. 그러니까 전에 말했던 ‘그 훈련’ 그냥 속행해주세요.]
권위적인 아버지가 흡족해하는 모습은 이시우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풋, 활이니 뭐니 까불 때부터 알아봤어. 진작 이랬으면 좀 좋니?]
옆에서 그럴 줄 알았다며 깐족거리는 누나도 짜증이 났다.
하지만 이시우는 이 굴욕을 모두 참아낼 수 있었다.
‘……강해질 수만 있다면. 상관없겠지.’
이시우의 목표는 하나였다.
국가 대항전이 끝나기 전에 전성기 이상의 실력을 되찾고 신유성의 힘이 되는 것. 그 목표를 위해서라면 아버지를 향한 투정은 잠시 접어둘 수 있었다.
* * *
오르카의 입 속에서 보내는 생각과 반성의 시간.
툭.
답답하지도 않은지 김은아는 한참이 지나서야 머리를 꺼냈다. 여전히 눈치를 보는 김은아였지만 방금보단 한결 편안한 분위기였다.
“……그래도 이긴 거 축하해. 졌으면. 나 진짜 미안해서 죽을 뻔했는데…….”
그렇게 말을 하며 슬쩍 눈을 흘기는 김은아.
“스미레의 활약 덕분이지. 편린의 힘을 얻었어도 능력을 발휘하는 건 힘든 일이거든.”
“……뭐, 그런 걸 보면 신기하더라. 결국 스미레를 데려온 건 유성이 너잖아. 걔가 강해질 수 있도록 한 것도 너고.”
신유성은 열등생인 스미레를 파티원으로 데려왔다. 이제 스미레는 세븐넘버는 물론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전투력을 보유한 학생. 가온 파티의 자랑스러운 전력이었다.
김은아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숨기려는 건 아니지만 이런 이야기를 뱉으려니 기분이 간지러웠다.
하지만 김은아는 숨을 들이쉬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국가대항전에 못 가게 된 거. 실은 엄마 때문이야. 내가 헌터 일을 제대로 하는데 반대하더라고…….”
느릿하게 오르카를 만지작거리는 김은아의 손. 신유성은 말없이 김은아를 바라보았다.
‘……위험하기 때문인가.’
확실히 김은아의 신분을 생각하면 한번은 맞닥뜨려야 했던 문제였다. 신유성에게 김은아는 파티원이지만 세간에서 김은아는 한국의 가장 큰 재벌그룹의 후계자.
신성그룹의 입장에선 김은아가 위험한 활동을 하는 게 부담이었다.
“……나도 알긴 해. 솔직히 내 배경이 거추장스럽다는 거.”
계속 오르카를 만지작거리는 김은아의 손. 신유성은 아무 말 없이 그런 김은아의 옆에 앉아주었다.
피식. 김은아는 살짝 입가에 웃음을 머금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있잖아 유성아. 난 내가 재밌고 좋아하는 걸 할 거야.”
민망함에 붉어진 김은아의 얼굴.
하지만 김은아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지만 어떻게든 말을 덧붙였다.
“……근데 난 너희들이랑 있을 때. 제일 재밌어.”
신유성과 파티원들은 가족을 제외하면 김은아가 처음으로 마음을 연 상대. 김은아는 파티가 너무 좋았다.
“그러니까, 엄마한테 억지를 부린 거야. 너희랑 쭉 있을 거라고……. 솔직히 강한 헌터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말을 하던 김은아는 멋쩍은 표정으로 목덜미를 긁적이더니 오르카로 스윽- 얼굴을 가렸다.
“……대춘 먼 마린지 알지?(……대충 뭔 말인지 알지?)”
솔직하게 털어놓았지만 김은아는 여전히 이런 이야기가 민망했다. 이건 김은아가 타고난 성격.
이야기를 모두 들은 신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신유성도 김은아를 비롯한 파티원들과 있을 때 즐거웠다. 몰랐던 것을 보고, 먹고, 느끼며 새로운 걸 알아갔다. 공백의 시간들이 채워지며 계속해서 바뀌어 가는 자신.
“그러니 걱정하지 마. 절대 난 너희들이 다치게 두지 않아.”
소중한 것을 지킨다. 그건 신유성이 강해진 이유 중 하나였다.
“……흠.”
말없이 신유성을 바라보는 김은아의 눈. 정적을 유지하지만 둘 사이에 어색한 기류는 없었다.
오히려 김은아는 한결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져 있었다.
“……너 우리 그룹 연회에 오기로 한 거 안 잊었지?”
이젠 장난스럽게 먼저 질문까지 던질 정도.
“내가 춤도 가르쳐줬으니까. 꼭 와야 한다?”
김은아가 은근한 눈빛을 보내는 그때. 누군가 부실의 문을 노크했다.
“응, 누구지?”
스미레나 파티원이라면 이런 식으로 노크를 할 리가 없었다. 그 외의 손님이 분명한 상황.
오르카를 소파에 두고 김은아는 직접 문을 열어주었다.
벌컥.
“……안녕?”
김은아를 내려다보며 짓는 여유로운 미소. 딸을 가진 부모라곤 믿기지 않는 20대의 외모. 손님의 정체는 다름 아닌 신성그룹의 대표이사.
김윤하였다.
“뭐, 뭐야! 어, 엄마가 여길 왜 왔어!?”
당황했는지 격한 김은아의 반응.
하지만 김윤하는 팔짱을 낀 재 흐뭇하게 웃었다.
“딸이 있는 곳인데. 내가 못 올 이유가 뭐니?”
김윤하가 경비원들을 대동하여 부실에 들어오자. 교장인 진병철은 뒤늦게 부실로 달려왔다.
“아이고! 미리 말씀이라도 해주셨으면 제가 어떻게든 안내원을 보냈을 텐데!”
“괜찮습니다. 이미 부실 위치 정도는 알고 있었거든요.”
김윤하는 그렇게 말을 하며 살짝 웃었다. 사소한 동작에서도 숨길 수 없는 그녀의 품위.
가온에 재계의 스타가 직접 행차했다는 소식은 교직원은 물론 학생들에게까지 퍼진 모양이었다.
“우와! 신기하다! 공중파 뉴스에서 본 사람인데!”
“저런 분이 학생들 부실까지 직접 온다고?”
“오겠지. 김은아 어머니잖아.”
복도에서 웅성거리는 학생들의 목소리. 진병철은 우렁차게 소리를 질렀다.
“린샤오 교관! 당장 학생들 관리하세요! 하하, 사모님……. 가온에 머무시는 동안 불편하신 게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을 주십시오! 헛헛!”
교장이라는 직책을 가졌음에도 싹싹- 손을 비비는 진병철. 김은아는 김윤하가 학교에 찾아온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아아! 엄마! 진짜로오! 나 창피하게 여긴 왜 왔어!”
“어머, 얘는 엄마가 창피하니? 그리고 내 딸이 있는 곳이니까. 한번쯤은 올 생각이었어. 부실도 신유성 학생도 직접 확인하고 싶었거든.”
그렇게 말을 하며 김윤하는 신유성에게 눈웃음을 지었다.
마나를 가진 헌터도 아닌데 느껴지는 묘한 위압감.
“……신유성 학생. 우리 따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김윤하는 은은한 미소와 함께 부탁을 했다. 그녀가 가진 입지를 생각한다면 정말이지 겸손한 태도.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겠습니다. 은아는 소중한 파티원이니까요.”
신유성의 깍듯한 대답에 김윤하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웃었다.
‘뭐, 정말 그게 전부인지는…… 이야기를 해봐야 알겠지만.’
김윤하는 신유성에게 확인하고 싶은 것들이 여러모로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