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17화 (117/434)

제117화

재벌가 모녀의 포옹.

이수현은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생각했다.

‘……뭐, 괜찮네.’

이만한 일자리는 아니라도.

6급 헌터인 이수현을 찾는 곳은 많았다. 잘리더라도 새로 구직을 하면 될 일 이었다.

반면 김윤하의 명령을 어긴 자신의 행동은 김은아의 인생을 뒤바꿀 선택이었다.

‘잘리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이제 은아는 파티에 남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김윤하는 김은아를 품에 안고서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수현 비서? 어쩌면 엄마인 나보다 당신이 은아를 더 잘 아는 것 같군요.”

“……네? 아, 아닙니다! 사모님!”

이수현이 급하게 고개를 젓자. 김윤하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아니. 당신이 얼마나 은아를 진심으로 생각하는지 알았어요. 그러니까 내 명령을 어긴 거겠죠?”

“네? 그, 그건…….”

이수현이 당황하자. 김윤하는 후훗하고 소리를 내어 웃었다.

“……정말. 끝까지 겸손한 사람 같으니. 역시 나도 은아도 인복은 있나 보군요.”

차가웠던 신성그룹의 여제가 온화한 얼굴로 말을 하자. 이수현은 차마 더 이상 부정을 할 수가 없었다.

“그, 그…… 좋게 봐주셔서 가, 감사합니다!”

“아니. 인사를 드려야 할 사람은 나인 거 같군요. 앞으로도 우리 은아를 잘 부탁한다고요.”

상상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버리는 전개. 이미 반말부터 입술 꼬집기까지 다양하게 일을 저질러 버린 이수현은 식은땀을 흘렸다.

“하, 하하…….”

“그리고…… 이수현 비서도 이번 일로 입장이 난처했을 테니. 내가 보너스를 명목으로 작은 성의를 표하도록 할게요.”

김윤하의 작은 성의라니 과연 얼마일까. 작은 성의라는 건 어디까지나 김윤하의 기준. 이수현의 입장에선 커도 너무 큰 성의일 게 분명했다.

“……가, 감사합니다. 사모님.”

결국 자본에 굴복해버린 이수현.

스으윽.

김은아가 김윤하의 품에서 슬쩍 이수현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네.”

펑펑 운 탓인지 아직까지도 붉은 기가 가득한 눈. 김은아는 이수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어색하면서도 훈훈한 분위기.

‘…역시 이, 입술은 괜히 꼬집었나?’

이수현은 여러모로 걱정이 되었지만 신성그룹의 압도적인 자본의 단맛에 결국 억지로 웃었다.

“네, 네! 아가씨!”

*     *      *

헌터 협회.

강유찬은 아득할 정도의 전망을 내려다보며 메이린에게 말했다.

“……껄껄, 우리 유성이가 첫 승부를 승리로 마쳐서 다행이구만.”

“정말. 많은 파티를 봐왔지만 신유성 학생의 파티는 1학년 중에선 전례 없이 강했습니다.”

메이린의 보고에 강유찬은 당연하다며 웃었다.

“유원학 그놈이 다른 건 몰라도 제자 하나는 정말 잘 키웠단 말이야.”

“……종목만 운이 따라준다면. 이번 대항전은 정말 한국이 우승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껄껄, 그렇게 되어야지.”

강유찬은 사람 좋게 웃더니 서류들을 살폈다. 하나하나가 헌터 협회장의 지시가 필요한 체급 큰 사안들.

“그래도 타 국가도 쟁쟁한 학생들이 너무 많더군. 얼굴 보기 힘든 칼잡이 놈도 제자를 아주 괴물로 키웠다고 하던데 말이야.”

“……맞습니다. 마천루의 류진. 소문으론 검신님께서 탑에서 얻으신 비전서까지 전수하셨다고 합니다.”

메이린의 보고에 강유찬은 그럴 줄 알았다며 피식 웃었다.

“아마, 유원학에게 자극을 받은 모양이지. 자신들도 모자라서 이제 제자들까지 라이벌로 만들어버리다니. 껄껄껄!”

이젠 협회장이 되어 일선에선 물러났지만 강유찬은 여전히 영광의 시대를 기억하고 있었다.

한국의 권왕.

중국의 검신.

영국의 마녀.

이탈리아의 은빛바람.

그리고 강유찬 자신에 이르기까지 지금 인류가 누리고 있는 평화와 번영은 수많은 고수들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여전히 팔은 우리 유성이를 향해서 안으로 굽지만 말이야. 솔직히 이쯤 되니 누구 하나를 응원하기가 어렵구만.”

강유찬의 이야기에 메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신유성 학생의 우승을 응원하고 있지만. 솔직히 섣부른 예측은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유망주들은 제법 쌓인 정보가 있지 않은가?”

강유찬은 유망주들 중에서도 콕 누군가를 짚어 메이린에게 정보를 물었다.

“특히 로렐라이 학생은 나조차 궁금하더군. ……이제 1학년인 학생에게 시간의 마녀라니 너무 거창한 이명이지 않은가.”

“……죄송합니다. 영국의 대표인 로렐라이 학생은 아직 자세한 정보를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여자의 제자라면 그럴만하지. 껄껄! 자신도 모자라서 결국 제자까지 신비주의라니……. 여러모로 닮았단 말이지.”

강유찬은 호쾌하게 웃어넘기더니 포켓을 건드려 의뢰의 정보를 메이린에게 넘겨주었다.

파앗!

[탑 출입 허가증]

[1차 목표:10층]

[허용 인원 5명]

[※주의:1차 목표를 채우면 관리자가 재차 확인 필요.]

떠오른 홀로그램을 읽으며 메이린은 무언가를 알아챈 눈치였다.

“아 저번에 말씀해주셨던…….”

“유원학 그놈이 하도 탑을 가지고 노래를 불러서 말이지. 1차전이 끝났으니 시간도 넉넉하지 않은가.”

“탑의 10층이라. 확실히 좋은 경험이 되긴 하겠군요.”

메이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유찬은 진지한 얼굴로 옅게 웃었다.

“그래. 유성이의 파티원들은 공략할 실력도 충분하니 말일세.”

탑의 10층.

물론 강유찬 같은 전설의 헌터에겐 맛보기에 불과하지만 학생들에게 탑은 미지의 구조물이었다.

강유찬은 그런 미지의 구조물에 신유성이 1학년부터 출입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해 준 것이다.

강유찬은 아득한 전망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젠 나도 유성이 네가 어디까지 강해질지 궁금하구나.’

협회장인 강유찬은 신유성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     *      *

일본에서 가온 아카데미로 복귀한지 하루째 되는 날. 신유성은 느긋한 발걸음으로 부실로 향했다.

저벅저벅.

‘이제 다음 대항전까진 꽤 시간이 생겼네. 천년옥의 흡수만 마치면… 파티원들과 2차전도 단단히 대비해둬야겠어.’

일본 팀을 이겼음에도 신유성은 방심하는 마음을 품거나 준비를 게으르게 하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선…….’

진지한 생각을 하며 부실의 문을 여는 신유성.

‘일단 파티장으로서 멤버들의 보강해야 할 부분을 미리 알아내는 게. 내 역할이겠…….

벌컥.

하지만 신유성은 상상도 못 한 광경에 생각을 멈추고 말았다.

“……!?”

어지간하면 당황하지 않는 신유성조차 놀라게 만든 충격적인 상황.

범고래 인형 오르카의 입에 누군가의 머리가 잡아먹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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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뎨숑합니다.(죄송합니다.)”

인형의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작지만 익숙한 목소리.

“……은아야?”

신유성이 떨떠름한 얼굴로 묻자. 김은아는 여전히 오르카의 입에 머리를 넣은 채 말을 했다.

“……뎨항저네 못 가서 밍안.(대항전에 못 가서 미안.)”

“괜찮아. 가족의……. 그러니까 오지 못할 사정이 있었던 거잖아?”

신유성이 어떻게든 웃으며 위로를 했지만 김은아는 가지런히 무릎에 손을 모은 채 계속 사죄를 했다.

“……그애도 밍안. 난 걍 이러케 머기로…… 주글래.(……그래도 미안. 난 그냥 이렇게 먹이로…… 죽을래.)”

결국 신유성은 직접 김은아의 머리에서 오르카를 떼어내 주었다.

툭. 그제야 보이는 김은아.

김은아의 붉어진 얼굴의 이유는 파티원들에 대한 미안함이 5할. 뒤늦게 몰려온 인형극의 민망함이 5할이었다.

“그…… 유성아. 미안. 괜히 우리 가족 때문에…….”

은아가 쭈뼛거리며 시선을 피한 채 사과를 하자. 신유성은 그제야 픽- 하고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그 이유가 뭔 줄 알고. 이렇게 쉽게 용서해? 화도 안 나?”

김은아가 눈을 흘기며 슬쩍 묻자. 신유성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전혀.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잖아? 넌 내 파티원이니까.”

신유성의 대답에 김은아는 한참 동안 말이 없더니. 갑자기 다시 오르카의 입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지그믄 놔둬.(지금은 놔둬.)”

당최 이유를 알 수가 없는 행동이지만 이게 김은아의 진짜 성격과 모습. 신유성은 변한 김은아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일단은 이렇게 둘까.’

조금씩 변하고 있는 건, 신유성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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