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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화 (116/434)

제116화

신유성이 있는 곳은 새카만 암실.

여긴 특별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이 암실은 완벽하게 밀폐된 공간으로 마나를 가두고. 소리와 빛을 차단해 극한의 집중력을 유도하기 위한 장소.

거기다 건물의 내부는 금강석보다 단단한 특수한 소재로 만들어져 있었다.

‘여기라면 충분하겠지.’

신유성은 미소를 지으며 천년옥을 꽉 쥐었다. 천년옥을 흡수할 수 있는 학생이 오직 신유성뿐인 관계로 천년옥은 자연스럽게 그에게 주어졌다.

‘……천년옥.’

신유성은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지금부터 진행할 일련의 작업들은 절대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목표는 최대한……. ……아니, 천년옥의 모든 마나를 흡수한다.’

콰앙! 쨍그랑!

신유성이 천년옥을 깨트리자 구슬에서 터져 나오는 마나.

파아아악! 츠츠츠츳!!

내부의 담긴 마나를 봉인하던 틀이 사라지자 천년옥의 갈 곳 잃은 마나들은 구체 형태로 뭉쳐 거세게 이리저리 요동쳤다.

파앙! 쿵! 콰앙!

천년옥에 봉인되어 있던 마나는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마나에 불과하지만 그 양이 너무도 많았다.

쿠웅! 쾅!

구체 형태의 마나가 벽에 부딪히며 들려오는 엄청난 소리. 일반인이라면 폭주하는 마나에 닿는 순간 뼈가 으스러져 버릴 정도의 힘이었다.

하지만.

파악!

신유성은 폭주하는 천년옥의 마나를 몸 안으로 흡수했다. 마나가 돌아다니는 좁은 통로에 억지로 집어넣었다.

“……큭!”

엄습하는 상상을 초월한 고통.

거대한 마나가 통로를 비집는 건 신유성 조차 숨을 토해낼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하지만 참아내야 해.’

어쩔 수 없었다.

더 많은 마나를 받아들이고, 더 큰 고통을 참아내야 천년옥의 힘을 최대한 흡수할 수 있었다.

강해지기 위해 신유성이 지금까지 이루어냈던 극한의 수련. 지금까지의 수련으로 쌓인 정신력 덕분에 신유성은 고통을 참아낼 수 있었다.

파아아앙-!!

파공음을 내며 이동하는 무수한 마나 구체.

파악! 팍! 파악!

구체가 몸에 부딪히며 깊숙이 파고들 때마다 신유성은 움찔거렸다. 살이 아닌 더욱 깊은 내부의 무언가가 잘게 찢어지는 감각이었다.

그러나 몸 안에 마나 구체를 흡수 할 때마다 느껴지는 강한 힘.

자신이 강해지고 있다는 확신은 신유성의 기분을 충실하게 만들었다.

‘이정도의 마나를 단순한 연공법으로 쌓으려면 몇 년이 걸릴까?’

보유한 마나 수치가 높다는 건 연료가 넉넉하다는 말과 같았다. 흑룡강신을 비롯한 고급 기술들의 지속력, 그리고 기술의 파괴력을 강화 시켜 전투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1년? 2년? 아니, 어쩌면 졸업이 끝나도 만들어내지 못할 마나야.’

신유성은 천년옥을 통해 그 지긋지긋한 과정을 손쉽게 스킵하고 있었다.

그렇게 3시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암실의 문이 열렸다. 눈앞이 아찔할 정도로 밝게 느껴지는 빛.

저벅저벅.

신유성은 천천히 걸어 나왔다.

파아악! 스스스…….

몸 안에서 갈무리된 마나는 천천히 푸른빛의 오오라를 뿜어냈다. 한층 깊어진 신유성의 눈.

‘……이게, 천년옥의 힘.’

이전과 달리 몸 안 가득 차오른 마나를 느낄 수 있었다.

띠링!

[기존에 가진 마나와 다른 성질의 마나가 융화되고 있습니다.]

[현재 안정화 수치 22%]

[100%까지 예상 추측 시간은 182 시간입니다.]

눈앞을 비추는 홀로그램.

신유성의 마나가 변화했음을 느낀 포켓은 상세한 설명으로 지금의 상황을 안내했다.

‘일주일 정도면 모두 흡수되겠지.’

아직 안정화가 되지 않았는데도 이정도의 힘. 모든 단계가 끝났을 때 신유성의 능력은 지금보다 얼마나 강해질지 예측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신유성 자신이 직접 만들어낸 투신류 5장. 그 경지에 닿을 수도 있었다.

‘이 힘이라면…….’

신오가문의 차기 가주. 신하윤의 염동력을 파훼할 비장의 카드.

‘……분명.’

신유성에게 신하윤은 단 한 번도 붙어본 적이 없는 상대였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예측이 가지 않았다.

신하윤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전력을 보여준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신유성이라면 가능성은 넘쳐흘렀다.

*     *      *

[넌 상처받고, 연약하고. 세심한 아이란다. 마치 온실의 화초처럼 말이야. ……네가 정말 헌터들이 겪는 좌절을 견뎌낼 수 있을까?]

김윤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겉으론 강한 척하지만 김은아의 마음은 연약했다. 생각지 못한 이별에 쉽게 상처를 받았다.

[……분명 넌 고장 나 버릴걸. 차라리 더 정이 들기 전에 파티에서 떠나는 게 어떻겠니?]

만약 파티원들과 더 가까운 사이가 된다면. 신유성에게 더 의지해버린다면. 완전히 마음을 열어버린다면.

그런 상대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만약 강제로 이별을 겪어야 한다면. 그때도 정말 자신이 버틸 수 있을까?

머릿속의 의문들은 김은아의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이미 생각을 마친 내용들이었다.

“나도……. 그런 건 나도 알아.”

김은아는 어머니인 김윤하를 노려보며 목소리를 떨었다. 자신의 명백한 단점. 김은아는 어린 시절부터 말에는 재주가 없었다. 늘 감성이 앞섰다.

“나도 그래서…… 그래서…… 친해지기 싫었어.”

김은아는 숨을 골랐다.

최대한 차분하게 말하려고 애썼다.

자신이 어떻게 친해지게 되었는지, 왜 파티에 남으려고 했는지. 김윤하는 아무 것도 모르니까.

“……근데 그럼 난…… 평생 혼자잖아.”

가라앉은 김은아의 목소리.

김윤하의 눈썹이 움찔 떨렸다.

“왜 네가 혼자라는 거니? 네 곁에 얼마나…….”

김윤하가 태도를 바꾸고 자신을 달래려고 하자. 김은아는 곧바로 말을 끊어 버렸다.

“……내 곁에 누가 있는데?”

김은아의 무거운 목소리에 비서인 이수현은 입술을 질끈 물었다. 정을 준 상대의 약한 모습을 보는 건 어른인 이수현에게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은아야.’

김은아는 자신의 감정을 속으로 갈무리하고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내가 모를 줄 알아? 나도 알아. 사람들이 왜 나랑 친해지려고 하겠어?”

김윤하는 애써 담담한 척했지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은아야. 그건…….”

“전부 내 배경 때문이잖아. 내가 누군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아무 것도 몰라. 그 사람들은 그냥 친해지고 싶은 거야……. 내가 아니라. 내 엄마도 아빠도 할아버지도 전부 대단한 사람들이니까…….”

김은아는 김윤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게 얼마나 짜증나는 일인지 알아?”

“……은아야.”

김윤하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은아를 혼자 둔 건 자신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딸이 외로움을 얼마나 많이 타는지 알았다.

오빠의 부재에 소리 죽여 울고 있다는 사실도. 이수현의 보고로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어른의 잣대로 문제들을 회피했다.

누구보다 상처를 받은 건, 아직도 17살에 불과한 김은아였다.

“근데 유성이는…… 걔들은 달라. 나랑 오빠가 재벌이 아니었어도, 분명 구해줬을 거야.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알고. 내가 잘하는 게 뭔지도 알아.”

고개를 숙인 그녀는 계속 혼자 중얼거렸다.

“같이 카페도 가고. 산도 가고. 무도회장에서 춤도 추고……. 나한테 오르카도……. 선물해주고……. 그리고…….”

김은아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자신의 딸은 도대체 얼마나 울보인걸까. 김윤하는 김은아를 위한다는 이유로 파티 생활을 포기하게 하려고 했다.

신유성은 권왕의 제자로 세계의 정점을 목표로 하는 헌터. 그 파티에서 머문다면 아무리 김은아의 실력이라도 위기는 찾아오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김은아는 김윤하의 강요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나도, 나도 알아. 실은 친해지는 게 엄청 무서웠단 말이야……. 근데 이제 겨우 마음을 열었는데…….”

김은아는 울음을 꾹 참아내느라 점점 목소리가 작아지고 있었다.

“엄마는…… 나보고, 또 헤어지라고……. 이제는 누가 됐든 친해질 수도 없는데…….”

부모로서 찢어지는 김윤하의 마음.

아무리 냉정하다고 소문난 그녀라도 사랑하는 딸이 눈앞에서 우는 장면은 보기 너무나 괴로웠다.

김윤하가 김은아에게서 시선을 피하자. 이수현은 고개를 움직였다.

끄덕.

아무런 말이 없어도 김윤하는 이수현의 끄덕임이 가진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김은아를 믿어주라는. 기회를 주라는 의미.

스윽.

김윤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각또각.

대리석에 하이힐 소리를 내며 천천히 다가온 김윤하는 말없이 김은아를 끌어안았다.

화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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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먹이던 눈이 한순간에 커진 김은아. 김윤하는 부드러운 손으로 김은아의 등을 쓰다듬어주며 뜻을 굽혔다.

“미안. 은아야. 미안하다. ……많이 외로웠지?”

상상도 못한 김윤하의 따뜻한 위로에 멍한 얼굴로 있던 김은아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윽, 으윽으……. 흑. 엄마, 아, 흑, 으…….”

김윤하로선 쉽지 않은 선택.

하지만 그녀에게도 선택지는 없었다. 자신은 바쁘다는 핑계로 딸의 외로움을 외면했던 부족한 부모였다. 그러니 김은아는 자신이 아닌 신유성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김은아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마음을 치료해준 건 다름 아닌 신유성.

김윤하에게는 둘을 찢어 놓을 자격이 없었다.

“울지 마. 뚝. 엄마가 잘못했어.”

토닥토닥.

김윤하가 등을 도닥여주자 김은아는 더 서럽게 울었다. 역시 울보 중의 울보. 이수현은 그런 김은아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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