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15화 (115/434)

제115화

한일전.

2대1의 치열한 접전 끝에 국가대항전의 승패가 정해졌다.

“스미레 학생의 3라운드 승리로! 우승 팀은 한국입니다! 일본 팀은 패배조로 이동되어 패자부활전을 진행하게 되며 추후…….”

진행자인 유키의 설명이 끝나기 전에 스미레는 포탈 근처에 있는 신유성을 향해 걸어갔다.

파악!

“유성 씨! 저 힘냈어요!”

스미레는 헤실헤실 웃으며 신유성의 팔에 안겼다. 마치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처럼 신유성을 올려다보는 스미레.

“유성 씨를 위해서 꼭! 반드시! 이기고 싶었어요! 후훗.”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야릇한 웃음. 그건 확실히 평소의 스미레답지 않은 웃음이었다.

“스미레. 네 활약 덕분에 우승할 수 있었어.”

결국 살짝 웃어주는 신유성.

스미레는 아까 보여주었던 여왕님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이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는 표현. 거기다 배시시 웃는 스미레의 애교를 바라보며 신유성은 라플라스의 장식을 떼어냈다.

‘이 상태일 땐 영향을 받는구나.’

톡.

“……아? 헉, 으, 으아…….”

그러자 거머리처럼 신유성의 팔에 붙어 있던 스미레는 화들짝 놀라 떨어졌다.

“죄, 죄송해요! 유성 씨에게 이상한 행동을…….”

당황한 스미레가 다급하게 사과를 하자, 신유성은 비로소 자신이 아는 스미레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아니. 잘했어. 스미레.”

그렇게 말을 하며 스미레의 부탁대로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신유성. 스미레는 얼굴이 붉어진 채 히죽거리는 입술을 꾹 참아내고 있었다.

“아, 흐흐, 흐…….”

행복에 겨운 얼굴의 스미레.

진행자인 유키는 떨떠름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자! 그럼 인터뷰와 함께 승자 팀에겐 헌터 협회에서 제공한 상품을 수여하도록 하겠습니다!”

유키의 안내에 정장을 입은 2명의 남성은 화려한 상자를 가져오고 있었다.

거기에 담긴 아티팩트는 50층의 보상. 천년옥.

‘……천년옥!’

신유성도 처음 확인한 우승 상품.

하지만 천년옥의 정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스승님께서 동료분들과 얻으셨던 아티팩트야.’

천년옥에 담긴 힘은 마나와 신체를 성장시켜주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정점에 닿았던 권왕과 동료들에겐 계륵이었다.

이미 너무나 강해진 헌터들에겐 상대적으로 성장 기대치가 낮았던 것.

하지만 비교적 성장 잠재력이 높은 학생들이 흡수한다면 그 효율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후계를 양성하기 위해. 아티팩트를 기증하신 거구나.’

그리고 그걸 신유성의 파티가 얻게 되었다. 천년옥은 권왕과 동료들이 남긴 의지를 정식으로 이어가는 아티팩트. 신유성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천년옥의 힘을 전부 흡수할 수 있으면…….’

신유성은 어디까지 강해질지 알 수가 없었다. 스미레는 신유성이 기뻐하는 표정에 자신이 더욱 기뻐했다.

“저, 유성 씨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정말, 정말로 기뻐요.”

진심 어린 스미레의 말.

열등생이었던 스미레는 신유성이 뻗어준 손을 잡고 한 사람의 몫을 단단히 해내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은 신유성의 신뢰가 이뤄낸 결과였다.

오도도도-

달려오는 누군가의 발소리.

“스미레! 진짜 최고야아아아-! 흐헤헤, 파티장님 저희가 우승할 줄 알았어요! 오늘 완전 방송 터졌다니까요?”

발소리의 정체는 에이미.

방송이 끝나자마자 어떻게든 빨리 달려온 모양이었다.

“헤, 흐흐흐…….”

오늘의 스미레는 칭찬을 사양하지 않았다. 신유성에게 가까이 붙어서 정말로 기뻐하는 모습.

이시우는 애써 웃어 보였다.

“진짜 고맙다. 스미레. 나 때문에 질 뻔했는데…….”

“그, 그래도…… 흐흐, 모두가 최선을 다해서 나온 결과인걸요? 1라운드는 유, 유성 씨가 이겨주시기도 했고…….”

신유성을 바라보며 볼이 붉어지는 스미레. 국가대항전의 승리로 파티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     *      *

승패가 결정 나고.

이제 대항전을 마무리하는 단계.

- 아니. 잘했어. 스미레.

- 아, 흐흐, 흐…….

잇신에게 들려오는 신유성과 스미레의 목소리. 그러나 잇신은 미동도 없이 멍한 눈을 한 채 무대에 서 있었다.

‘……하나지마.’

16594421815264.jpg 

새로운 파티원들과 웃고 있는 스미레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지금까지 잇신에겐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웃음.

어쩌면 잇신과 스미레는 진정한 파티원이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둘의 관계는 서로를 믿는 동료 관계가 아니었다.

잇신은 스미레의 실력을 믿지 않고, 강한 자신이 보호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스미레는 잇신보다도 강해졌다. 한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이전보다 행복해 보였다.

자신이 스미레에게 해주지 못했던 위로와 신뢰를, 신유성과 한국의 파티원이 준 것이다.

그러니 잇신이 남길 수 있는 건 씁쓸한 미소.

‘내가 하나지마에게 손을 뻗었던 이유는…….’

어쩌면 그건 단순히 파티원을 얻기 위함이 아니었다. 실력은 낮지만 계속해서 신경 쓰이고, 남에게 당하는 걸 지켜보기 힘들고.

그건 단순히 동료로서 가지는 감정이 아니었다.

시리고.

아프고.

편안한 기분.

이제야 잇신은 스미레에게 가졌던 감정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물론. 이미 늦어 버렸지만.’

팍!

잇신에게 어깨동무를 하는 누군가의 손.

“잇신! 사쿠라! 모두 수고했어!”

파티장인 세이지가 웃으며 말했다. 비록 졌지만 시원하게 털어낸 세이지의 모습에 사쿠라는 피식 웃었다.

“흐응~ 그렇게 화끈하게 졌는데도 금방 회복했네?”

“에이! 내가 약한 걸 알았으면 더 강해져야지! 우울해질 시간은 없잖아?”

세이지는 그렇게 말을 하며 웃었다. 마치 류코처럼 힘을 낸 세이지의 대답. 사쿠라는 잇신을 보며 말했다.

“……라고 하는데?”

잇신은 아무런 대답 없이 멍하니 스미레를 쳐다보더니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음을 뒤흔들던 무언가가 빠져나가 버린 기분.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던 두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고양이.

비 오는 날.

흰색 제비꽃.

스미레를 떠오르게 하는 기억과 단어들. 잇신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화창한 하늘에선 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기만 해선 절대 볼 수 없는 풍경. 굴레를 벗어던진 잇신은 옅게 미소를 지었다.

“돌아가자.”

소심하고 바보 같지만.

착하고 여린 마음을 가진. 자신의 짝사랑. 이제 잇신은 미숙했던 과거를 인정하고 떠나보낼 준비를 했다.

*     *      *

아주 오래전.

모닥불이 피워진 동굴에서 권왕 유원학은 신유성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후회가 되는 일이 하나 있구나.]

신유성이 아는 스승님은 후회라는 단어를 입에 담지 않았다.

신유성으로선 놀랄 일이었다.

[……스승님께서 말씀이십니까?]

눈이 커져서 묻는 신유성.

유원학은 크흠- 하고 소리를 내더니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리 놀랄 건 없다! 그냥 지금 생각해보니 아쉬워서 말이다.]

뒤적뒤적.

유원학은 꼬챙이에 꿰인 고기를 뒤집더니 말을 이었다.

[예전의 나는 말이다. 내가 제자를 키울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유원학이 자신을 내려다보자. 신유성은 배시시 웃었다.

[그래서 필요 없는 아티팩트를 친구 놈에게 전부 줘버렸지 뭐냐?]

최강이 되어버린 유원학에겐 필요가 없는 물건들이었다. 유원학은 아티팩트의 도움이 필요 없는 경지에 닿았다.

하지만 제자인 신유성은 달랐다.

그때 남겨둔 아티팩트들이 있었다면 유원학은 훨씬 빠른 속도로 신유성을 성장시킬 수 있었다.

[그중에선…… 흑룡포를 비롯해 여러 가지 아티팩트가 있었지만. 역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하나구나.]

그리고 그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가파른 성장을 위한 최고의 아티팩트.

[스승님 그게 무엇입니까?]

궁금해진 신유성이 눈을 빛내며 묻자. 유원학은 근엄한 얼굴로 말했다.

[바로 천년옥이다!]

특정 지맥에서 천년의 시간 동안 마나를 흡수한 보옥. 그 아티팩트만 있다면 일정수치까지 마나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천년옥의 힘을 흡수한다면 명상이나 마나 연공법 같은 수련의 시간을 비약적으로 단축할 수 있지.]

흐으음- 하고 유원학이 아쉽다는 눈초리로 수염을 쓰다듬자. 신유성은 또렷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런 아티팩트가 필요 없을 만큼 열심히 수련하겠습니다!]

그때의 신유성은 흑룡포와 천년옥 같은 아티팩트가 자신의 손에 들어오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전부 가지게 되었다.’

신유성은 협회의 대회와 대항전의 승리를 통해 흑룡포와 천년옥을 모두 가지게 되었다.

이 힘만 온전히 흡수한다면 신유성은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수 있었다. 다만 천년옥을 흡수하는 건 리스크가 따랐다. 강한 힘이 봉인된 만큼 어느 때보다 신중히 다뤄야 하는 아티팩트.

‘…집중할 장소와 시간이 필요하겠어.’

신유성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천년옥을 꽉 쥐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