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화
정적이 흐르는 경기장의 대기실.
신유성은 모니터 속 이시우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분위기가 바뀌었어.’
이시우는 총을 내던지며 사쿠라를 상대로 기세를 잡았다.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사쿠라에겐 이시우의 제안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이시우가 총을 잡으면서 시작된 변화.
‘역시 시우의 주력 무기는. 활이 아니었구나.’
신유성은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다. 이시우는 호흡과 집중력에 비해 궁술의 실력은 형편이 없었다.
즉 활을 사용하기 이전에 다른 무기를 사용했다는 이야기.
하지만 이시우는 그런 사정을 제쳐두고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던 권총을 꺼내 사용했다.
신유성은 이시우를 파티원으로 삼은 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시우가 가지고 있는 힘은……. 단순히 특성에 의존한 게 아니야.’
신유성의 수련처럼 이시우는 훈련을 통해 힘을 만들어낸 케이스였다.
전투와 경험을 통해 보유한 특성이 강화되고 마나가 늘어난다면 사수로서 차별화된 헌터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일본팀의 사쿠라도 마찬가지겠지.’
사쿠라는 특성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궁술을 계속해서 훈련한 케이스. 사쿠라의 궁술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완벽했다.
그러나 실력을 분석하는 신유성과 달리 스미레는 이시우와 사쿠라의 관계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두 분은 무슨 사이일까요?”
옆에 있던 스미레가 조심스레 묻자. 신유성은 옅게 미소를 지었다.
“글쎄.”
신유성은 이시우와 사쿠라가 무슨 관계인지는 추측조차 가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해.”
하지만 흔들리는 사쿠라의 눈빛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사쿠라는 시우의 제안을 받아 들일 거야.”
지금까지 신유성의 예측은 틀린 적이 없었다.
* * *
메아리 숲의 구석.
“너…….”
사쿠라가 이시우를 노려보며 인상을 쓰자. 이시우는 담담한 얼굴로 대답했다.
참고 있음에도 여실히 분노가 드러나는 사쿠라와 대조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시우는 사쿠라에게 승패가 걸린 상황에서도 너무나 여유롭게 말했다.
“내가 만약 총을 잡는다면 말이지. 그건 너한테 어울려 주려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내 파티의 승리를 위해서야. 알겠어?”
픽- 하고 웃는 이시우.
사쿠라는 이를 꽉- 깨물었다.
‘……분명 보고 계시겠지.’
국가 대항전은 전 세계에 방송되는 경기. 아버지는 어디에선가 사쿠라를 지켜보고 있을 게 분명했다.
어린 시절의 가르침대로 줄곧 자신을 갈고닦아 지켜온 궁술. 사쿠라는 이번 경기에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내고 아버지에게 당당히 말하고 싶었다.
당신은 틀리지 않았다고.
그러기 위해선 이시우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했다. 무기조차 들지 않은 상대를 이기는 건 어떤 증명도 할 수 없었고,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내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해?”
차갑게 식은 사쿠라 목소리.
이시우는 능글맞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글쎄? 네가 특성을 사용하면. 어차피 총을 들어도 질 거 같아서 말이지. 지는 싸움을 위해 총을 들고 싶진 않거든. 이쪽도 사정이 있어서 말이야.”
이시우는 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주워 묻어 있는 흙을 털며 말했다.
“빨리 대답해. 특성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난 권총을 들고 여기서 흩어진다. 그 다음 너에게 덤벼줄게.”
이시우는 솜씨 좋게 권총을 허공에서 팽그르르- 돌리더니 건들건들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내 제안이 맘에 안 들면 지금 쏘던지. ……물론, 도장에서 있었던 일은 평생 갚아주지 못하겠지만.”
이시우의 쐐기를 박는 한마디.
사쿠라는 고심 끝에 힘겹게 입을 열었다.
“……좋아. 특성은 안 쓸 테니까. 전력으로 덤벼.”
“그래 오로지 사격술로 승부하는 거야.”
미소를 짓는 이시우.
사수들의 1대1은 약속처럼 언제나 스무 걸음. 둘은 마치 서부의 카우보이처럼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거리를 벌렸다.
‘정말 내 제안을 받았군.’
이시우가 승부를 걸 수 있었던 건 도장에서 보여주었던 사쿠라의 표정을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책가방을 메고 궁술을 바보 취급하지 말라며 소리치던 사쿠라. 어렸던 이시우는 그런 사쿠라가 신기했다.
‘궁술이든 사격이든, 어떻게 저런 일에 진지할 수 있는 거지?’
이시우에게 사격이란 온통 끔찍한 기억뿐이었다. 사쿠라가 가진 궁술에 대한 자부심 같은 건 이시우에게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겨우 그까짓 자부심 때문에 국가 대항전에서 이런 도발을 당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바보 중의 바보.
하지만 이시우는 너무나도 기분이 찝찝했다. 사쿠라가 도장에서 느꼈던 기분 같은 건, 한 점도 공감할 수 없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가슴이 무거웠다.
만약 사쿠라가 자신에게 진다면 어떻게 될까?
한 점의 긍지도 가지고 있지 않은 자신의 탄환이 사쿠라를 보기 좋게 꿰뚫어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울게 될까?
활을 포기하게 될까?
궁술을 싫어하게 될까?
도장에서 보았던 아버지에겐 사쿠라는 어떤 얼굴로 말을 할까?
한 걸음, 한걸음 발을 뗄수록 이시우는 생각이 깊어졌다.
‘……생각하지 마. 난 유성이의 파티원이고. 내 총알에 대항전의 승패가 걸렸어.’
사격만큼은 극한으로 단련된 이시우. 그러니 이곳이 극지방이든 열대우림 속이든 이시우는 총만 있다면 훌륭하게 사격을 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마음의 죄책감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렇게까지 사쿠라가 긍지로 여기는 궁술을, 사격을 외면했던 자신의 탄환으로 짓이겨 버리는 건 이시우도 입맛이 찝찝했다.
‘뭔가 닮았네. ……아니 정확히는 정반대인가.’
이시우는 누구보다 권위적인 아버지를 싫어했다. 권총을 잡는 것만으로 괴로웠던 훈련이 떠올랐다.
권총을 자신의 긍지나 자랑으로 여겼던 기억은 단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사쿠라는 누구보다 아버지를 존경했고. 궁술을 자부심으로 여겼다.
아이러니하게도 둘은 너무나 닮았으면서 너무나 달랐다.
열아홉 걸음.
스무 걸음.
하지만 이시우는 무의식적으로 발을 한 걸음 더 뻗었다.
이시우의 사격술을 생각한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실수.
“아!”
짧게 단말마를 외친 이시우가 몸을 회전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스무 걸음을 걸었던 사쿠라는 전력을 다해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즈즈즛-!
하지만 당황한 것도 잠시 이시우는 순식간에 자세를 잡았다. 만약 흔들리지 않았다면 이번 대결은 이시우의 완벽한 승리.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 사격에 소홀했던 탓일까. 방아쇠에 걸린 이시우의 손가락은 망설이고 있었다.
[궁술을 바보 취급하지 마세요!]
겨우 어린 시절의 만남이 전부인 상대.
[활도! 궁술로도!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어요!]
이시우는 이를 꽉 물었다.
총을 잡았는데 망설이다니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 이시우는 분명 자신의 머리가 고장 난 게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시우는 끝까지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자신의 상황을 투정하며 어중간한 고민에 빠졌던 자신.
오롯이 궁술만을 긍지로 삼고 달려온 사쿠라.
‘……큭.’
이시우의 손가락은 방아쇠를 당길 자격을 허락하지 않았다.
파악-!
이시우의 머리통에 정확히 꽂힌 화살. 한순간에 어질해진 시야 속에서 배리어가 파편처럼 흩날렸다.
[배리어가 100% 파괴되셨습니다.]
[남은 배리어 0%]
이시우의 마지막 시야 속에서 보이는 건 홀로그램의 메시지. 자신의 사격술디 더 뛰어났지만 이상하게도 이시우는 패배가 억울하지 않았다.
자신에겐 사쿠라를 이길 실력은 있을지언정, 사쿠라를 이길 자격은 없었다. 지금의 승패는 그 결과였다.
‘……망할.’
쓰러진 이시우는 빛에 휩싸여 사라졌다.